102화. 신(神)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 (2)
“…….”
“…….”
“…….”
“……커허허험! 거참, 왜들 그렇게 보는 거야?”
그래도 자신은 당당하다는 것을 피력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슴을 좍 펴고 배도 슬쩍 내미는 모습이 그런대로 위풍당당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네 사람의 눈빛은 여전했다.
콧방귀를 뀌며 그들을 보던 서량의 표정이 조금씩 어색해졌다.
“어쨌든 잡긴 잡았잖아? 그럼 됐지, 뭘. 그렇죠, 원주님?”
그가 소연심을 바라보았다. 소연심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음…… 아! 위 대주! 너야말로 미쳤으니까 알 거 아냐. 봐서 알겠지만 난 결코 미치지 않았어. 너랑 완전 다르잖아. 그렇지?”
그가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위홍련이 코웃음을 쳐 댔다.
“저게 확! 아, 그래. 동필이는 날 이해해 줄…….”
마동필을 본 그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했다. 어떻게든 공자님을 이해해 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 새끼를 너무 잔혹하게 다뤄서 그래? 패면서 막 웃고 그래서 그러는 거야? 도대체 왜 그렇게들 보는 거냐고!!”
“삼공자.”
“왜!”
고구가 손가락으로 지영현을 가리켰다. 쓰러진 지영현은 금해철로 만들어진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었다.
“저놈 얼굴을 보시오.”
“얼굴이 뭐!”
“…….”
“……조금 상하긴 했지만 얼추 알아볼 만하잖아.”
고구가 한숨을 쉬었다.
팔짱을 낀 위홍련이 서량의 목소리를 과장되게 흉내 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야 하니까 절대로 상처 입히지 마.
일이 잘못되면 마검가주하고 원수지간 된다. 특히 위 대주 너 조심해. 신난다고 그놈 팔 하나 날리고 그러지 말란 말이다.”
“…….”
“그러네요. 팔은 안 날렸네요. 얼굴이 죽사발이 되긴 했지만.”
“아니, 직접 상대해 봐서 알잖아? 저 새끼 괴물이야. 달리 제압할 방법이 없었다니까?”
“네, 네, 그러시겠죠.”
“적당히 하지?”
“왜요? 환자 치게요? 쳐 봐요. 저도 저놈 얼굴이랑 똑같이 만들어 보세요, 한번.”
“…….”
“뭐? 뭔 병신한테 뭘 얻어와? 늦게 온 덕에 피똥 싼 사람한테 고생했단 말 한마디는 못 해 줄망정.”
끄으으응.
마음 같아선 뒤통수라도 한 대 갈겨 주고 싶지만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위홍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까.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뭐 어쩌겠어?”
뻔뻔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다른 사람은 다 돼도 서량이 그리 말해서는 안 됐다.
비난의 눈초리로 그를 보던 소연심이 한숨을 푹 쉬었다.
“공자님의 말씀도 틀린 건 아니에요. 시간도 없는데 지나간 일로 입씨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말이 그겁니다.”
“…….”
“……입 닫고 있을게요.”
“네, 잠시만 부탁드릴게요.”
서량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웃으며 자신을 보는 소연심의 얼굴에서 싸늘한 기색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당주께선 어떻게 하시겠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나보다는 삼공자에게 물어봐야 할 거요. 애초에 이 작전을 세운 사람은 삼공자니까.”
“어찌 되었든 당주도 수락을 했잖아요. 뭔가 방도가 있으니까 그러셨을 거 아니에요.”
“방도 같은 거 없었고, 수락도 안 했소.”
“…….”
“워낙 자신만만해하더군. 물론 최악의 경우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한다고는 했소만.”
소연심의 표정에서 허탈한 심정이 묻어 나왔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심증만으로 지영현을 저 꼴로 만들었단 말인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시오? 그 꼴을 만든 건 삼공자요.”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서량에게 쏠렸다.
혼자 무어라 투덜거리며 돌멩이로 땅을 벅벅 긁고 있던 서량이 헛기침을 했다.
“공자님?”
“……말씀하십시오.”
“방도가 있겠죠?”
“당연히 있죠.”
소연심의 얼굴이 풀어졌다. 하긴, 지금이야 저런 쭈글쭈글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서량은 신교의 삼공자다.
그리고 그녀는 서량을 충분히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증거를 모을 수 있지요, 그럼?”
“뭔 소립니까?”
“……?”
“증거라니요?”
소연심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난할 시간 없어요, 공자님.”
“장난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증거를 말하는 겁니까?”
“지영현이요. 저놈이 범인이란 실질적인 증거를 찾아야죠.”
서량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워낙 기가 찬 기색이라 모두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겼다.
“저놈이 범인이라니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네?”
“이놈은 분명 낮에 우릴 습격했던 그놈이 맞습니다. 이놈 검기에서 느껴지는 내력이 풀잎에 남아 있던 내력과 똑같았으니까요.”
“……?”
“하지만 전 이놈을 범인이라 생각하고 잡은 적은 없습니다. 범인은 장남이라고 형법당주가 그랬잖습니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고구의 눈이 차갑게 굳어졌다.
“마동필에게 이놈을 유인하라 한 것은 삼공자였소. 그리고 삼공자 말대로 이놈은 버젓이 나타났지.”
“그래서?”
“그래서라니? 유인하라 한 것 자체가 이놈을 범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었소?”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놈이 범인이라고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는데?”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러고 보니…….”
지난 대화를 돌이켜 보니 분명 그러했다. 그는 마동필을 미끼 삼아 이놈을 잡는다고 했지, 이놈이 범인이라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이놈을 잡는다고 했겠습니까? 이놈이 지강현, 그놈이 범인이란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잡는다고 한 겁니다.
그런데 뭔 증거를 또 찾아요? 재작년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물증이 남아 있겠습니까?”
위홍련이 떠듬떠듬 말했다.
“그, 그럼 상처를 입히지 말란 뜻은 뭐예요?”
“장난해? 증거가 될 인간을 개박살 내면? 그게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겠어? 당연한 거잖아!”
서량이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뭐어…… 결국 내가 죽사발을 만들어 놓긴 했지만…….”
“…….”
“어쨌든 난 이놈이 범인이라 생각하고 잡은 게 아니야.”
“…….”
“아, 그리고 딱 봐도 이놈은 아니잖아? 이지를 상실해서 미쳐 날뛰는 놈이 어떻게 사람을 간살(姦殺)하고 자취를 감춰? 상식적으로 가능해, 그게?”
덕분에 몰상식한 사람이 된 네 사람은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과 말이 통하지 않는 광기만 보았지 성욕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게다가 이놈이 쓰던 무공을 생각해 보라고.
오로지 수검(手劍)으로 펼치는 검기공 하나잖아? 아예 기본적인 백타술도 모르더만.
이런 놈이 시체를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겠어? 그냥 반 토막을 내 놓았겠지.”
들으면 들을수록 옳은 말이다.
고구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코앞만 보고 범인을 단정하다니. 당주 실격이로군.”
소연심도 고개를 저었다.
“제 눈도 흐렸어요. 분위기에 휩쓸려 지영현이 범인인 줄로 착각해 버렸어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위로하려는 건 아닌데, 머리에 열 좀 빼시죠?”
누가 봐도 위로는 아니잖아.
“두 분이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좀 더 투명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미쳐 날뛰는 건 나나 위 대주 전문이란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서량의 안목은 분명 대단했지만 오랫동안 신교의 살림을 담당해 왔던 소연심만큼의 정치력이나, 숱한 죄인들을 다뤄 본 고구만큼의 연륜은 없었다.
소연심이 한숨을 쉬었다.
“공자님 말씀이 옳아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
고구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렇다고 삼공자가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오.”
“하여튼 옹졸하다니까.”
“그나저나 그건 뭐였소?”
“뭐가?”
“어딘가 급하게 들렀다 올 데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 그거?”
서량이 품에서 고이 접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약첩이었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지.”
“그러니까 그게 뭐요?”
“그놈은 이걸 환극초라고 하던데?”
“환극초? 그놈은 또 누구요?”
“홍위문.”
모두가 깜짝 놀라 서량을 바라보았다.
“적사가는 내일 새벽에 방문한다고 하더구만. 그럼 그놈하고 독대할 시간이 없어지잖아.
그래서 미리 가서 강탈해 왔지. 신 뭐시긴가 하는 놈이 달달 떨면서 주더라고.”
자기가 작살내 놓은 사람한테 찾아가 약초를 강탈해 왔단다. 이 무시무시한 뻔뻔함에 좌중은 혀를 내둘렀다.
와중에 위홍련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극초가 뭔데요?”
“미약한 환각 성분이 든 약초야.”
“환각이요?”
“환각 성분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중독성은 없다데. 그래서 가져왔지.”
“그걸 누구한테 쓰시게요?”
서량이 지영현을 힐끔 바라보았다.
“쟤.”
“……이미 기절한 사람한테 그걸 왜 써요? 좋은 꿈이라도 꾸라고요?”
“누가 저 지경이 될 줄 알았남.”
“기절 안 했으면 어쩌려고 했는데요.”
“환각 성분이 든 약초는 종류를 불문하고 의지를 박약하게 만들어. 자백제(自白劑)니 뭐니 하는 것도 사실은 환각 성분을 근본으로 만든 거거든.”
“아, 취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가져온 거야. 그렇다고 고문을 할 순 없잖아?”
위홍련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덕분에 우린 죽을 뻔했네요. 장하십니다.”
“제대로 자랑스럽게 만들어 줘? 지금이라도 죽여 주랴? 확 그냥.”
“쳇.”
“너희 둘을 믿지 않았으면 가지도 않았어. 어쨌거나 잘 버텼잖아? 그럼 됐지, 뭘.”
서량이 손을 탈탈 털며 일어났다.
“됐고, 이제 슬슬 움직입시다.”
“자, 잠깐만요!”
소연심이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어떻게 하긴요? 일단 저놈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부터 알아봐야지.”
“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것도 모르는데 저놈이 증거로서의 효용 가치가 있는지는 어찌 판단합니까?”
이건 뭐 갈수록 놀랍다. 소연심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번 일은 그다지 단순하지가 않아요. 진범은 당연히 범행을 부인할 거고, 그렇다면 이쪽에서 부인하지 못할 증거를 내밀어야 하지요.
하지만 재작년에 벌어진 사건인데 당장 쓸 만한 물증을 찾을 수 있을 리가요.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량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범인이 제 입으로 죄목을 토해 내도록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 * *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지운회의 모습은 무척이나 운치 있어 보였다.
“신교에서 마시는 차는 확실히 다르군.”
그는 술을 엄격하게 삼갔다.
검사의 마음은 명경지수와도 같아야 하는 바다. 마공을 익힌 마인이 명경지수를 찾는다는 게 우습지만 적어도 검사는 그래야만 한다고 그는 믿었다.
물론 오로지 그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아니었다. 명경지수를 이루는 건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는 그저 술로 인해 흐트러지는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술 대신 차를 마셨다.
적어도 차를 마실 때면 어지러운 생각도, 답답해진 마음도 정리가 되었다.
‘한데…….’
지운회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입교한 첫날이라서 그런 걸까? 혹은 아들내미가 내일이면 교주님의 제자로 들어가서 그런 걸까?
좋은 밤바람에 향긋한 차가 있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이 영 진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떠한 연유로 마음에 파랑이 일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운회가 한숨을 내쉬었다.
‘되었다. 정리되지 않는다면 그저 그대로 둘…….’
순간 그의 눈이 번뜩였다. 날카로운 감각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걸린 것이다.
잠시 후.
“술이 아니라 차로군. 바른생활 사나이시오.”
“……삼공자.”
지운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량이 정자까지 걸어갔다. 일체의 거리낌도 없는 발걸음이었다.
지운회의 눈이 흔들렸다.
‘삼공자 때문인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낮에 마주한 서량의 무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붙게 되면 자신의 승리가 확실하겠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볼 상대도 아니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상대’가 된다는 것.
세상에 어떤 천재가 있어 그 나이에 저와 같은 경지를 구축하겠는가.
하물며 저 정도 인재가 셋째이거늘, 대공자와 이공자의 무공은 또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교주님, 도대체 당신의 능력은…….’
아마 이천상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한들 서량의 대단함이 폄하될 이유도 없었다.
“올라가도 되겠소?”
“물론이외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탁 하나를 두고 마주 앉았다.
“빈 찻잔이 없구려. 아랫것들에게 시켜…….”
“괜찮소. 식후에 마시는 차로도 충분하오.”
“하면…….”
“어차피 가주께서도 거추장스러운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찾아온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지운회의 눈이 빛났다.
“경청하겠소. 말씀하시오.”
“귀하의 삼남, 지영현의 신병을 구속했소.”
“……?!”
“장남 지강현도 그래 볼까 하는데 귀하의 생각은 어떻소?”
순간 지운회의 몸에서 엄청난 기파가 터져 나왔다.
후욱!
“그게 무슨 말인가. 셋째의 신병을 구속하다니?”
“그 말 그대로요.”
“……이놈!”
“이유를 알고 싶소?”
“뭣이?”
“그렇다면 당신도 우리가 하려는 일에 한 다리 껴야 할 거요.”
서량이 싸늘하게 웃었다.
“낮에 당신 입으로 했던 그 말을 증명하려거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