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신(神)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 (3)
다음 날 아침.
“성신(聖神)께서 출발하셨습니다! 모두 예를 갖추십시오!”
화려하고 멋스럽게 치장된 내전의 중앙 광장은 이전과는 달리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거대한 악귀상을 가운데에 두고 사방이 뚫린 광장은 무척이나 넓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간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숨소리마저도 조심했다.
지금 이곳, 중앙 광장을 향해 마도 무림의 유일무이한 절대자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두우웅! 두우우웅!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웅장한 북소리.
마신궁에서 이곳까지는 범부의 걸음으로 이각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한데도 벌써부터 이곳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조아렸다.
천마신교의 교주, 마도 무림의 태양.
이들에게 있어 천마(天魔)라는 존재가 얼마나 두렵고 경건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인파의 가장 앞 열은 신교의 내외(內外) 마수(魔首)들이 자리를 지켰다. 그 바로 뒤쪽으로 마도칠가의 고위층들이 차례로 도열했다.
그중 지운회가 서 있는 곳은 소연심의 바로 뒤편이었다.
고개를 숙인 지운회의 얼굴은 평소와 달랐다. 날카로운 눈매와 고집스러운 입매는 그대로였지만 왠지 모르게 수척해 보였다.
두우웅! 두우웅!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가까워지는 북소리.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귓가에 파고드는 묵직한 울림이 선조(先祖)들의 불호령처럼 느껴진 탓이다.
지운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북소리 너머, 떠올리기 싫은 대화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했다.
- ……믿을 수 없다.
- 사실이오. 뭣하면 형법당주를 지금 이 자리로 불러 줄 수 있소.
- ……!
- 내가 왜 당신의 삼남을 구속했는지 알겠소? 지영현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소. 당신은, 당신 아들의 몸에 어떤 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몰랐단 말이오?
- 그, 그 아이는 절대 그런……!
- 하물며 지강현이 그런 끔찍한 범죄의 진범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오.
혹, 마검가에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니오? 신교에 결코 들켜서는 안 될 모종의 계략이라도 꾸미고 있는 거요?
- 말도 안 되는 소리!
- 그렇다면 증명해 보시오. 당신 입으로 직접 뱉었던 그 약속과 함께.
쿵! 쿵!
어느새 저 멀리서 엄청나게 거대한 가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촤르륵! 촤르르르륵!
말이 가마였지 그것은 거의 하나의 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각종 보물로 장식된 커다란 지붕 아래로 황금빛 굵은 술이 늘어져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가마를 움직이기 위해 무려 오십 명에 달하는 마인들이 가마꾼 역할을 해야 했다.
그들 모두가 상당한 마공을 익힌 자들임을 생각하면, 가마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다.
강호 무림의 어떤 권력자도 저런 가마에 타 보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의 가마도 저러지는 않을 것이다.
신(神)을 모시기 위해 최고의 장인들이 수백 일에 걸쳐 만든 보물.
마황거(魔皇車)가 마침내 온전한 자태를 드러냈다.
마황거를 힐끔 본 지운회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마황거 뒤편으로 수많은 마인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내전의 수뇌부들도 진정한 정체를 모른다는, 오로지 교주만을 따르는 마신궁 소속의 비밀 호위들이었다.
그리고 그 비밀 호위들 사이에 화려한 복식을 갖춘 청년 한 명이 보였다.
바로 자신의 아들, 지강현이었다.
- 나는 믿을 수 없다. 혹, 네놈이 내 아들을 질투하는 것은 아니더냐? 아니면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 이미 내 손에 넷째가 작살이 났소. 지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꼬락서니로 거처에 틀어박혀 치료나 받는 신세지.
- ……!
- 후계 싸움은 진즉에 시작되었소. 봐서 알겠지만 당신 아들 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소.
- 이……!
- 그러니 쓸데없는 의심하지 말란 말이오.
당신이 무엇 때문에 아들을 교주님의 제자로 들이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는 신교의 교도들을 일곱이나 간살한 중범죄자요.
당신은 그런 아들을 진정 이곳으로 보내고 싶소?
- …….
- 아까도 말해 두었지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줄 수 없소. 어서 마음을 정리하길 바라오.
- 영현이부터 봐야겠다. 나를 지금 영현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
- 보여 드릴 것이오. 하지만 그 전에, 당신 장남부터 불러 주시오. 대화를 해 본 후, 그놈과 함께 삼남을 보러 가시오. 그러면 되겠지.
- …….
- 왜? 싫소?
- 싫은 것이 아니다. 지금 강현이는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다.
- ……젠장, 이미 마신궁에 들었군. 하긴 대관의 예법을 미리 배워 둬야 하니까. 그래도 너무 빠른데?
- …….
-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지. 당신의 삼남을 보여 주겠소.
- 어서, 어서 안내하거라!
- 좋소. 그 전에 한 가지는 약속하시오.
- 무슨 약속을 말함이냐?!
쿠우웅!
마황거가 거대한 마귀상 앞에 놓였다.
분명 부드럽게 내려놓았는데도 대지로 그 충격이 전달된다. 화려하게 장식된 마황거는 보는 것 이상으로 무거웠던 것이다.
그때, 가마꾼 역할을 하던 마인 둘이 엄숙한 걸음으로 마황거의 뒤편으로 다가가 기다랗게 늘어진 굵은 밧줄을 당겼다.
촤르르륵!
거대한 휘장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갔다. 안에 탄 교주의 모습을 가려 주지만, 안에 탄 교주는 바깥을 환히 볼 수 있다.
장인들은 그것을 천마휘장(天魔揮帳)이라 불렀다.
철컹!
마침내, 어지간한 이불보다 두 배는 더 큰 비단 방석 위에 앉은 천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절을 올렸다.
“군림성교(君臨聖敎)! 천마불사(天魔不死)!”
교내 마인들의 경건하고도 우렁찬 포효 이후, 이곳에 모인 모든 마인들이 외쳤다.
“미욱한 마(魔)의 자식들이 성신(聖神)을 알현하나이다!”
아랫배에서부터 끌어 올린 목소리가 목구멍을 지나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콰르르릉!
모든 마인들은 하늘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를 들었다.
실제 천둥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천둥소리이기도 했다.
후욱!
만인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오랜만에 자신의 기파를 드러내는 이천상.
그의 기파를 대한 모두가 황량한 절벽 위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고작 기파를 대하는 것만으로도 이 많은 마인들이 단체로 환각과 환청을 겪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서지 못한 저곳에서, 내 아들이 신(神)으로 추앙받는 것을 보고 싶었다.’
지운회가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내 아들은 그것이 가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그런데…… 그런데!
‘도대체 어찌하여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 어떻소?
- …….
- 맥을 짚어 봐서 알 것이오. 당신 삼남의 몸에 숨겨진 이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 …….
-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요? 어째서 이놈 몸에 이런 엄청난 게 숨겨져 있는지를 몰랐소?
갈무리되었을 때는 극마에 이른 고수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은밀했지만, 당신은 이놈의 아비가 아니오?
- 나는…… 나는…….
- 이놈은 저 친구의 검을 노리고 있었소. 거의 맹목적이라고 봐도 될 수준이었지.
- ……!
- 좋소. 이제 와서 삼남의 몸에 어찌 이런 힘이 숨겨져 있는지를 따져 봐야 머리만 아픈 일이지.
다만 우리는 가주에게 우리의 결백을 증명했음을 확인받고 싶소. 인정하오?
- ……인정한다.
- 그렇다면 이제 가주는 어찌할 것이오?
- …….
- 당신의 아들이 교주님의 제자가 되어 또다시 본교의 교도들을 간살하는 파렴치한이 되는 걸 보고 싶소?
그로 인해 온갖 오욕을 뒤집어써 가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보고 싶소?
- 그것은……!
- 말해 두겠는데,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타이르겠단 말은 마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가주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 …….
- 나아가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은 받아야 하오. 당신 가문에서 벌어진 일이면 또 모를까, 당신의 장남은 본교의 교도를 건드렸소.
- ……!
- 선택하시오. 수백 년 마검가의 명운이 당신의 양심에 달렸소.
“잘들 오셨네.”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꽂히는 이천상의 음성.
그 한마디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지에 힘이 쭉 빠져 버린다. 동시에 허리에는 힘이 바짝 들어간다.
사락.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만큼은 그도 격식을 차렸는지, 평소와 달리 곤룡포를 제대로 차려입고 있었다.
관을 쓰진 않았으나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이 오히려 그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듯했다.
“알고들 있겠지만.”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좌중을 바라보던 그가 문득 저 멀리 오 층 전각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지붕 위에 키가 큰 청년 한 명과 아직 새끼인 황금빛 여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아직 새끼로군.’
존재는 알았으나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번쩍!
시랑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보았는지 기묘한 오색 안광을 빛내고 있었다.
‘그래, 아직 새끼의 형상이지만 그간 쌓아 온 힘은 건재하다는 것이냐?’
이천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군.
“본좌는 거추장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매년 개최하는 파순제에서 그가 이토록 의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이곳에 모인 마인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다. 애초에 신은 인간에게 예우를 갖춰야 할 필요가 없다.
그가 나름의 격식을 차리고 이 자리에 온 이유.
반드시 이곳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리고 그 예상대로 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요신(妖神)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수백 년 동안 공력을 모은 끝에 영물이 된, 하지만 세상을 속여 가며 스스로 윤회를 거듭한 또 하나의 마(魔).
이천상은 자신의 격에 모자람이 없는 그를 보며 진실로 만족했다.
“그러나 먼 길을 찾아왔는데, 그에 대한 성의 표시 정도는 해야겠지.”
촤르르륵.
거대한 마귀상의 발치에 육천심주 네 병이 나타났다.
그게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기도 했지만, 빤히 보고도 어찌 된 조화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칠가의 수장들은 육천심주를 가져가도록 하라. 직접 담근 술이니만큼 맛이 나쁘진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지운회를 포함한 가주들이 외쳤다.
“성신의 은혜에 감읍하나이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소개를 마지막으로 대면을 마치기로 하지.”
순간 지운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서량과 소연심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형법당을 비워 둘 수 없는 고구를 제외한 모두가 이곳에 진범을 잡기 위해 모여 있었다.
“금일부로.”
부르르.
떨리는 주먹에 격동이 어렸다. 지운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다.
‘이대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은가? 굳이 내 입으로 본가의 명예에 먹칠을 해야 하는가?’
망설이는 그의 머릿속에 서량의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다.
- 수백 년 마검가의 명운이 당신의 양심에 달렸소.
양심? 그 양심이 나의 체면보다 중요한가? 마검가의 명예보다도 중요한가?
이미 재작년에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그 일을!
순간 억울하게 죽었다는 마인이 떠올랐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마지막까지 교주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이름 모를 마인.
그 마인은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명을 뒤집어쓴 채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리석었다.’
삼공자가 작정했다면 진즉 교주님께 그 사실을 고했을 수도 있었다.
만약 자신이 지금 이 사태를 묻어 두려 한다면, 오히려 마검가의 꼴이 더 우스워질 수도 있다.
삼공자는 결코 이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선택의 기회라도 준 것이오?’
내 입으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진정 마검가의 명예를 지키는 길인가.
지운회가 눈을 감아 버린 순간, 이천상이 말을 마쳤다.
“마검가의 장남 지강현을 내 제자로 받아들인다.”
순간 모든 마인들이 외쳤다.
“새로운 신(神)의 핏줄을 얻으신 것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이미 수뇌부들 모두가 알고 있었던 얘기였던 만큼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설령 몰랐다 한들 교주가 제자를 받겠다 하니 축하의 함성을 지르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천마신교의 새로운 제자가 탄생하는 순간.
바로 그때였다.
“기다려 주시옵소서!!”
저벅저벅.
상체를 숙이며 잔걸음으로 나온 지운회가 마귀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검가주 지운회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드리옵니다!”
서량의 눈이 빛나고, 소연심이 양손을 꾹 쥐었다.
지운회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 외쳤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의 아들은 크나큰 죄를……!”
“그만.”
우우우우웅!
마신의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광장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힐끔 지운회를 내려다본 이천상이 천마휘장을 닫았다.
“마검가주는 육천심주를 갖고 마신궁에 들도록.”
쿠웅!
휘장이 닫히고 마황거가 들렸다.
당황한 지운회가 마황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마황거는 크게 한 바퀴 돌더니 마신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놀란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 뭐야?”
서량도, 소연심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천상이 저리 간단하게 선포를 끝낼 줄도 몰랐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검가주의 말을 막을 줄도 몰랐다.
모두가 저마다의 놀라움과 혼란을 겪는 이 시점.
상황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