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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05화 (105/774)

105화. 신(神)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 (5)

호요성의 말이 떠올랐다.

- 제가 굳이 이르지 않아도 교주님께선 다 알고 계실걸요?

- 제가 아는 걸 교주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잖아요?

그렇다.

호요성이 대단-혹은 위험-한 이유는 개인적인 능력과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안목을 지닌 천재이며, 동시에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을 가진 총군사였다.

그리고 그런 호요성보다 한 차원 높은 곳을 거니는 사람이 바로 이천상이었다.

신교 최고의 권력자인 교주의 직위가 더 높은 것은 물론, 개인적인 능력 역시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호요성이 신교의 눈이라면 이천상은 신교 그 자체다.

이 년 전, 일곱 교도를 간살한 진범이 누구인지도 훤히 알고 있는 이천상이 서량의 출교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왜 서량을 질책하지 않았을까.

-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요. 교주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실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제 눈에도 보이지 않거든요.

서량은 땀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이천상 몰래 허벅지에 문질렀다. 목이 콱 잠겼고 등허리는 축축해졌다.

그래, 알고 있었다. 호요성과의 대화를 통해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 얘길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만약 그 일로 벌을 내리고 싶었다면 진즉에 불렀을 테지. 당연히 이제 와서 책잡으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는데 왜 이리 불안하니.

이천상이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이 약초들은 영약을 만들기 위해 채집한 것이 아니다.”

아, 예.

“이것들은 어떠한 성분이라도 없애고(滅), 빼앗고(奪), 죽이는(殺)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약력을 증폭해야 하는 영약을 제조하는 데에는 별 쓸모가 없어.”

“…….”

“하지만 나에게는, 제자로 받은 지강현처럼 쓸모가 있지.”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천마신교를 위해 지강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저 약초들은 지강현처럼 자신을 위해 쓸모가 있다고 하였다.

스스로를 천마신교 자체라 생각하는 것. 과연 교주다운 자신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서량은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지강현더러 재료라고 하지 않았어?’

재료.

그것은 은유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지강현을 재료로 쓰겠다는 이천상의 진심이 느껴졌다.

“쓸모라고 하심은?”

“이 약초들로 놈에게 실험을 할 것이다.”

“실험……이요?”

“그렇다.”

특유의 무심한 눈빛. 그 눈빛에서, 서량은 인간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마신의 잔혹함을 읽었다.

“진기의 농도, 의식의 명료 정도, 욕망의 한계치. 그 모든 것을 상정한 후 놈의 인간성을 말살할 것이다.”

“……!”

“성공 확률은 산출 불가다. 당연히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고, 놈은 십중팔구 폐인이 되겠지.”

인간성을 말살해? 십중팔구 폐인이 된다고? 이건 또 무슨 섬뜩한 말이야?

이천상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깃들었다.

“실패 시 놈은 용도 폐기가 될 것이다.”

서량은 오싹함을 느꼈다.

용도 폐기라니? 이천상은 지금 성공 가능성이 없는 인체 실험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냐고 묻고 싶지는 않았다. 알려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진짜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 제자로 받겠다 하신 겁니까?”

“마검가주가 원했으니까.”

“……!”

“자식을 제자로 삼아달라는 요구가 없었다면 난 내 몸에 실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벌을 받아 마땅할 중죄인이라면 실험 재료로 써도 나쁠 것 없겠지.”

“실험이 끝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때가 되어 봐야 안다. 하지만 요리가 끝난 물고기가 다시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그 실험이 얼마나 지독한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단칼에 목이 잘리는 것이 낫지, 누군가의 실험 재료가 되어 절망에 울부짖고 싶진 않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벌을 받는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끔찍한 최후가 될 것은 분명하다.

‘사람이 해선 안 될 짓이야.’

그렇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짓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실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량의 눈에 잔혹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것도 아주 처참히요.”

신교의 일곱 교도를 간살했다?

그것만으로도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중범죄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다.

놈은 분명 지금껏 수많은 양민들을 지옥에 처박았을 것이다. 눈가에 감도는 생생한 살기가 그것을 증명한다.

죄가 낱낱이 밝혀져 형법당에 수감되어 봤자 기껏해야 사형, 혹은 무기징역일 터.

그러느니 끝도 없는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당하는 게 낫다. 그게 서량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서량을 보며 이천상은 생각했다.

‘가까워지고 있군.’

셋째를 판마정에 들였을 때, 녀석에게선 죽음(死)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은 본능적으로 죽음이란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마(魔)를 파헤치고, 지금은 마라는 개념에서조차 벗어나기 시작한 이천상도 이런 놈이 현실에 존재할 거라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롯이 죽음 속을 거닐던 놈이 지금은 서서히 마(魔)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녀석이 왜 분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놈이 예전보다 한층 잔인해지고 거칠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점차 마(魔)에 가까워지면, 나중에는 이유가 중요치 않게 될 것이다. 이유 없이 잔혹하고 거칠어질 것이며 사악해질 것이다.

만약 그 전에 극마지경(極魔之境)에 들지 못하면…… 이 녀석도 그저 강하기만 한 흔한 마인에 그치겠지.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좌우지간 일이 이렇게 될 거였으면 제가 괜히 설친 격이 되었군요.”

이천상은 진범을 알고 있었고, 그를 처리할 생각까지 있었다. 결국 자신은 공연히 나섰다가 몸만 고생한 꼴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예?”

“나는 제자를 다룸에 있어 혈육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나선 덕에 마검가주가 이 사태를 깨닫지 않았느냐.”

“……?”

“설령 대죄를 저질렀다 한들, 제 혈육을 망가트린 교주에게 반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

“……!”

“네가 나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마검가주는 내게 불만을 품지 않게 되었다. 미리 아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스스로 인정했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큰 차이다.”

“……그렇군요.”

“고로, 마검가주는 네게 감사해야 한다.”

감사?

“그 덕에 가문의 명맥이나마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서량의 눈이 커졌다.

가문의 명맥을 유지해? 이건 또 뭔 소리야?

잔을 비운 이천상이 말했다.

“조만간 네게 명을 하나 내릴 것이다. 보고도 않고 바깥바람을 쐬러 나갈 만큼 굶주려 있는 네 녀석이 콧바람 풀기에도 제격이라 생각한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그냥 넘겨 줘서 고맙긴 한데 굳이 저런 말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나저나 명이라?

“그저 그리 알고만 있도록.”

“아, 예.”

“이만 나가 보거라.”

고개를 숙이곤 대전을 나가는 서량.

일순 드는 궁금증에 그가 몸을 돌렸다.

“저…… 교주님.”

“…….”

“질문 하나만 더 드려 봐도 될까요.”

“허락한다.”

서량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럼 삼남, 그러니까 지영현이는 왜 그렇게 된 건지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그럴 줄 알았지.

“엄청난 내공을 봉인해 두고 있었습니다. 무공은 하찮았지만요.”

“그렇겠지.”

“심지어 낮에는 멀쩡했지만 밤에는 이성을 잃어버렸지요. 그 녀석은 대체 왜……?”

이천상이 딱 잘라 말했다.

“거기까지 알 필요 없다.”

머쓱해진 서량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쿵.

그렇게 대전의 문이 닫히고.

홀로 잔을 채우던 이천상이 품에서 금낭(錦囊)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화신보옥(禍神寶玉)이라…… 아직 강호에 남아 있었던가.”

그의 눈에 옅은 흥미가 감돌았다.

“재미있는 물건을 구했어.”

수송대 마인들이 보고와 함께 올린 물건 중 하나다. 당시 습격 현장에서 쓸 만하다고 판단된 것은 모두 수거되었다.

수거 품목에는 혈랑의 체모와 발톱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일룡이 화신보옥을 얻는 대가로 철위단주 오경화에게 주었던 금낭도 그의 손에 있었다.

“여러모로 셋째 덕을 보는군.”

화신보옥은 적당한 상황만 조성되면 흡정(吸精)의 역할을 한다.

내공을 빨아들이는 게 아니다. 사람의 생명령, 원정지기를 빼앗아 흡수하는 것이다.

만약 화신보옥이 손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지영현도 손아귀에 넣으려 했을 것이다.

지강현의 술수로 변이된 흡정마공(吸精魔功)을 익히게 된 지영현은 앞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을 테니까.

지영현이 묵왕검을 노린 이유도 그것이었다. 천고의 마병 속에 잠들어 있는 극한의 마기를 빨아먹기 위해 접근한 것이다.

물론 묵왕검의 마기까지 빨아먹었다면 그 길로 몸이 터져 죽었겠지만.

‘혈육의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 욕심을 너무 부렸어.’

지강현이 지영현에게 흡정마공을 대리로 익히게 한 이유는 그 부작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강현은 끊임없이 지영현을 관리해 왔을 것이다.

이성을 잃고 타인의 내공을 빨아먹으려 드는 지영현의 욕망을 절묘하게 조종하고 또한 이용했을 것이다.

지영현이 하필 입교한 첫날에 사고를 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지영현의 욕망을 억눌러 줄 사람이 마신궁에 드느라 그의 곁에 없었던 것이다.

“마검가주에게 잊을 수 없는 파순제가 되겠군.”

장남은 물론 삼남의 처리도 생각해야 할 테니까.

* * *

“그렇게 되었습니다.”

“…….”

“…….”

고구와 소연심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서량은 입맛을 다셨다. 걸러 낼 것은 걸러 내고 전한 다소 싱거운 결말이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천상이 속한 판인 것을.

이천상이 그러겠다 했으니 두 사람은 놈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꼴을 볼 수 없게 됐다.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연심이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다행이군요.”

“…….”

“교주님께서 진범을 어떻게 처리하실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요.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어요.”

애써 그리 믿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고구가 고개를 저었다.

“소 원주의 말씀이 맞소. 교주님께서 그러겠다 하셨다면, 진범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꼴을 당할 거요.”

“네?”

“내 신(神)의 의중을 떠보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주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상벌을 주실 때 이러겠다, 저러겠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오.”

“……!”

“그런 교주님께서 직접 처리하겠다 하셨소. 감히 짐작건대 진범은 지옥보다 더한 곳에서 몸부림치게 될 것이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소연심은 물론 서량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형법당의 수좌인 고구가 저리 말한다. 현실감이 확 들었다.

“그럼 지영현은 어떻게 하실까요?”

“그에 대한 말씀은 없으셨소. 아마 우리들끼리 처리하도록 놔두시지 않을까 생각하오.”

“그렇군요.”

소연심이 탄식했다. 심사가 복잡한 모양이었다.

“저도 결국 남들과 똑같나 봐요. 죄를 저지른 것은 형인데 동생인 지영현도 좋게 보이지가 않네요.”

“이해합니다.”

“하면 지영현은 어떻게 되는 거죠?”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마검가주가 석방해 달라 요청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야 하겠지만요.”

고구가 말했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죄가 있소. 신교의 교도를 공격했으니까.”

“이 양반아, 그건 함정 수사였잖아.”

“그것도 그렇소. 하지만 그를 놔두면 또 그런 짓을 할 줄 누가 알겠소?”

“그럼 그때 잡아. 형법당이 왜 형법당이겠어?”

“당의 존재 의의를 논하고 싶소? 미안하지만 나는 형법당주이자 본교의 마인이오. 놔두면 본교에 해가 될 것이 분명한 자를 알면서도 풀어 줄 수는 없소.”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저런 논리를 따져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긴, 형법당에 구금되어 있으니 내가 이래라저래라할 필요도 없는 문제군.’

그때, 고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굳이 잡아 두려 하지 않아도 마검가주는 삼남을 달라 요청하지 않을 것이오.”

“잉? 왜? 첫째를 무간지옥에 처박아 둔 셈인데, 더더욱 셋째를 데리고 가려 들지 않을까?”

“마검가주는 자식 관리를 잘못했소. 그리고 그것을 교주님이 알고 계시오.

이쪽에서 무리한 요구라 판단할 수 있는 일은 그 어떠한 것도 마검가주는 택할 수 없소.”

고구의 눈이 빛났다.

“아들 때문에 가문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겠지.”

“…….”

“그는 이미 장남을 버렸소. 아비가 아니라 마검가주로서 결단을 내린 것이지. 두 번째 선택은 더 쉬울 것이오.”

“……그렇군.”

“물론 그만큼 마음은 깎여 나가겠지만.”

비정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서량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그놈에 대한 처리는 알아서들 하세요. 난 이만 빠지는 게 맞는 것 같으니까.”

고구가 포권을 취했다.

“결과를 떠나 삼공자에게 빚을 졌소. 이 빚은 잊지 않으리다.”

“킁, 됐네요.”

소원주도 고개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어요. 일간 한번 찾아뵐게요.”

“좋은 술 하나 가져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이에요.”

서량이 두 사람을 일별하고 형법당을 나섰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마동필이 서둘러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어어.”

“마무리는 잘되셨습니까?”

“좀 엉성하긴 하지만 뭐…….”

나직이 한숨을 쉰 서량이 히죽 웃었다.

“파순제 이틀 남은 거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은 이틀 제대로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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