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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06화 (106/774)

106화. 관계와 관계 속에서 (1)

파순제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파순께 올리는 제사가 엄숙하게 치러졌지만 제사 시간은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지금의 파순제는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축제가 끝났으니 남은 것은 뒤처리뿐이다.

총군사는 신교 병력의 칠 할을 동원, 이틀 만에 뒤처리를 끝내 버렸다.

하루 이틀 업무가 마비되더라도 신속하게 정리를 마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언제 그런 분위기였냐는 듯 신교는 평온함을 되찾았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별 것 아닌 바람도 유독 춥게 느껴지듯, 떠들썩했던 축제가 끝난 천마신교는 무척이나 적막해 보였다.

* * *

“괜찮냐?”

“허억! 허억!”

땀범벅이 된 마동필은 두 손으로 땅을 짚고서 헐떡이고 있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어깨에 척 하니 용린도를 올려놓은 그의 얼굴은 화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제법이야. 하루하루 늘고 있어.”

“헉헉!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 네가 강해져야 내가 안전하지. 그냥 투자라고 생각해라.”

말은 그렇지만 마동필은 감사함을 느꼈다.

투자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칼질 하나, 발걸음 하나하나 신경 써서 지도해 주는 서량은 신교에서 본 어떤 교관보다도 훌륭한 스승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판 더?”

“물론입니다!”

“호흡 제대로 골라. 마지막인 만큼 제대로 붙어 보자고.”

“예!”

반 각 동안 충분히 숨을 고른 마동필이 검을 곧추세웠다.

그때, 대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저 왔어요, 공……!”

퍼억!

허공에서 한 바퀴 돈 위홍련이 그대로 자빠져 쓰러졌다. 흰자위를 드러내고 혀까지 내어 문 채 쓰러진 그녀의 옆에는 주먹만 한 짱돌 하나가 구르고 있었다.

서량이 으르렁거렸다.

“이제는 문도 안 두들겨? 미쳐 가지고, 저게.”

마동필은 침을 삼켰다.

“고, 공자님. 그래도…….”

“그래도 뭐!”

“……아닙니다.”

“하여간 몰상식한 것 같으니라고. 나중에 볼기짝을 때려 줘야겠어. 어떻게 된 게 죽지도 않아, 저거는.”

짱돌에 맞는 것보다 차라리 볼기가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동필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지금은 위홍련의 안위보다 일검(一劍)에 집중할 때였다.

“시작해.”

“예.”

치이이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묵왕검에서 푸른 검기가 피어올랐다.

비기인 단혼검과 귀천검이 아니었다. 검첨(劍尖)에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검기구(劍氣球)는 참격(斬擊)이 아닌 자격(刺擊)을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배움이 빨라졌어.’

강한 초식이라고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니다. 요(要)는 상대에게 가장 효율적인 공격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이천상이 한 수 가르침을 내려 준다고 했을 때 본능적으로 칼을 뽑아 내리친 서량처럼,

빈틈을 찾고 약점을 공략하는 눈이 있어야 진정 고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마동필이 추구하는 강검(强劍)과 중검(重劍)은 체화만 시킨다면 상성을 거의 안타는 부류의 무공이었다.

공방 양측에서 확실한 무리(武理)를 얻는다면 난공불락의 무위를 자랑할 것이다.

“일검, 갑니다.”

“언제든지 와라.”

잠시간의 집중 뒤에, 마동필이 움직였다.

터어엉!

어떠한 속임수도 없는 정직한 진격.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요것 봐라?’

전진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 어떻게든 일격을 욱여넣기 위해 폭발적인 움직임을 지속했던 마동필답지 않았다.

‘어떻게 공격하려고?’

이번만큼은 서량도 마동필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삼 장, 이 장, 일 장 거리까지 좁혀들 때 즈음.

우웅.

마동필이 검을 휘둘렀다.

‘어?’

빠르고 신속한 자격을 감행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닿지도 않는 거리, 위에서 아래로 묵왕검을 휘두른다. 검기가 서린 것도 아니었고 속도 역시 느리기만 했다.

‘뭐 하는…… 흡!’

쿠우웅!

순간 어깨 위에서부터 강렬한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쩌저적!

서량이 디딘 땅에 실금이 번졌다. 마치 천 근의 바위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저 자식 저거…….’

마동필의 얼굴은 진지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게 창백했다. 일순간 뿜어내는 공력이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서량이 어깨 위의 용린도를 들어 올렸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느릿느릿한 동작이었다. 마동필의 검압(劍壓)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끄응!”

콰지지직!

허공에서 짓누르던 무형의 검압이 모조리 박살 났다.

동시에 마동필이 움직였다.

쾅!

이전과는 달리 폭발적인 움직임이다. 지금껏 보여 주던 어떠한 속도보다도 빨랐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공기를 밀어젖힌 묵왕검의 검첨이 자신의 심와(心窩)를 노리고 쏘아져 왔다.

용린도를 휘둘러 대처하긴 늦다. 어느새 그의 왼손에 우측 요대에 달려 있던 칠야도가 들려 있었다.

천마의 살병(殺兵)과 고대의 마병(魔兵)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르릉!

“커헉!”

폭음과 함께 마동필이 연무장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몇 바퀴나 구른 그가 한 차례 토혈을 했다.

“우웨엑!”

쏟아지는 핏물이 심각한 내상을 증명했다. 내상을 감수하고 펼친 이식일초(二式一招)인데, 거기에 감당키 힘든 일도(一刀)까지 맞았다.

의식이 날아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본 앵화가 놀라서 마동필에게 달려갔다.

“마 호위님! 괜찮으세요?”

“쿨럭쿨럭! 헉헉!”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도검의 충격파를 그대로 받아 낸 후유증이었다. 의식은 있지만 어지럼증에 무릎도 꿇지 못한다.

앵화가 걱정 어린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고, 공자님. 어떻게 하죠?”

서량은 그녀의 시선도, 목소리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놀란 눈으로 마동필을 보기 바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치리링!

깔끔하게 납도한 그가 마동필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지만 마동필은 연신 기우뚱거렸다.

충격파가 고막까지 파고들어 평형 감각에 이상을 일으킨 것이다.

서량의 손이 그의 명문혈에 닿았다.

우우우웅.

고순도의 마기가 순식간에 마동필의 전신을 휘돌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유마공 위로 무애공까지 운용했다.

주르륵.

마동필의 코로 죽은 피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흔들리던 시야가 바로잡히고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후욱! 후욱!”

그제야 정신을 차린 마동필이 숨을 헐떡이며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서량은 말없이 마동필을 내려다보았다.

마동필의 표정에 의아함이 담겼다. 지금껏 서량의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감탄한 듯하면서도 씁쓸해하고, 놀란 듯하면서도 썩 마땅치 않아 하는 묘한 얼굴.

“야.”

“예, 예?”

“언제부터였냐?”

“……송구하옵니다만 무슨 말씀이신지.”

서량이 입술을 매만졌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허!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무공에 천근추(千斤錘)라는 수법이 있다.

강력한 내공을 이용, 제 몸의 무게를 증폭시키는 기술.

물론 그것은 천근추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내공이 아무리 신묘한 힘이라 한들 인체의 무게를 증폭시키진 못한다.

다만 내력을 이용해 근력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무게 중심에 내력을 쏟아부어 한순간 폭발적인 무게‘감’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제 몸에 한해서나 가능한 게 보통이다. 마동필처럼 검압에 천근추의 묘리를 실어 타인의 육신을 찍어 누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곧 허공섭물의 신기(神技)로 나아가는 길목 중 하나이기도 했다. 기파를 발산해 타인의 육신을 제압하는 초절정고수의 능력과도 닿아 있었다.

“방금의 한 수를 지영현과 대치했을 때 쓸 수 있었다면 너 역시 놈을 제압할 수 있었을 거다.”

“……예?”

“지영현은 압도적인 내공을 갖고 있었어. 깨달음 높은 고수마저 억누를 정도였지. 하지만 진짜 실력자들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 힘이야.”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례로 서량은 지영현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으니까.

“조금 전의 너처럼.”

“……!”

“어떻게 그런 수를 쓸 생각을 했어?”

“아…… 저는 그저…….”

횡설수설하던 마동필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빠르고 강하기만 한 공격으로는 공자님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야. 내가 너보다 빠르고 강하니까.”

“예. 그럴 바에야 저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똑같은 힘이라도 익숙한 무공을 구사할 때의 효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판단했어.”

“하지만 단순한 공격으로는 이전과 별 차이가 없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거기서 공자님의 무공에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실마리? 어떤?”

“공자님의 그 도법…… 그러니까…….”

“구유인화도법.”

“예, 전에 한 번 제게 시연해 주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랬지?”

“강력한 도풍(刀風) 이후 몰아치는 극한의 화력, 화력 이후에 스며든 빙설(氷雪)의 한풍은 그야말로 무(武)의 이상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풍이 더 무서운 이유는, 바로 앞에 구사한 초식이 극양지공이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둔검(鈍劍) 이후의 쾌검(快劍)으로 속도감을 극대화시켰다?”

“예. 물론 그조차 통하지 않을 듯하여, 호구지책으로 검압의 힘을 증폭시켜 보았습니다.”

마동필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 역시 더 강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군요.”

“……등신.”

“에?”

“지가 얼마나 대단한 짓을 벌였는지 모르는군.”

서량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너를 만난 이후, 순수하게 무공으로 가장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

“우직한 노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발상의 전환이지. 발상의 전환은 창의력에서 나오고, 창의력은 곧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야만 펼칠 수 있어.”

“…….”

“네 무공의 가장 큰 장점을 알았기에 그런 수도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거다.

그런 창의력과 시도가 차곡차곡 쌓여서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지. 그 덩어리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아냐?”

“저는 잘…….”

“깨달음이라 한다.”

“……!”

“번쩍하고 영감을 얻는 것만이 깨달음인 게 아냐. 차분한 노력과 끊임없는 연마로 나도 모르게 성장하는 것 역시 깨달음이다.”

서량이 마동필의 어깨를 두들겼다.

“진심으로 감탄했다. 나조차 까딱 위험할 뻔했어. 오죽했으면 칠야도까지 뽑았겠냐.”

마동필의 얼굴에 감격의 기색이 어렸다. 존경하는 공자님께 이런 극찬을 받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만 그와 같은 술수를 쓰기엔 네 몸이 충분히 단련되지 않았어. 순수 내공량은 나에 육박하지만 육신이 그 힘을 온전히 활용하질 못해.”

“아…….”

“물론 넌 지금껏 충분히 단련했다. 그럼에도 육신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은 수련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야. 네가 익히고 있는 마공의 한계 때문이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공조식 좀 하고 있어.”

“어, 어디 가시는지요?”

“안 알려 줘.”

그렇게 서량이 휘적휘적 대문을 나섰다. 한옆에 쓰러진 위홍련을 뻥! 걷어차서 마동필에게 날린 만행을 저지르고 난 후였다.

* * *

“오! 이거다.”

십대마공서들 중 하나인 금강야차마공(金剛夜叉魔功)을 보던 서량의 얼굴이 일순 환하게 밝아졌다.

“딱 그놈 거로구만.”

본래는 일전 고죽림에서 본 포천금마공(捕天禁魔功)을 떠올렸는데 이 무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금강야차마공은 그야말로 마동필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녀석과 딱 어울렸다.

“이거랑 검법 두어 개 골라서…… 엥?”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수많은 책장 저편, 몰래 숨어서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런데…….

‘작다?’

키가 엄청 작고.

‘하얗다?’

피부가 엄청 하얗고.

‘……어리다?’

그리고 굉장히 어렸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 누구니?”

“딸꾹!”

빤히 봐 놓고도 걸릴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꽤 놀란 것인지 딸꾹질을 한 여아(女兒)가 발끝을 꼬며 등장했다.

‘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 참.’

귀엽네.

귀티가 좔좔 흐르는 여아였다.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다. 얼추 보면 예닐곱 살쯤으로도 보이고 많이 보면 열 살이 넘어 보이기도 한다.

불안한 듯 눈알을 굴려 대던 여아가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세요, 오라버니!”

서량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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