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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07화 (107/774)

107화. 관계와 관계 속에서 (2)

오라버니?

‘어디 보자.’

내 나이가 지금 쉰아홉……이 아니고.

‘스물다섯쯤 되는데 저 애는 기껏해야 열 살이 좀 넘어 보이는데?’

나이 차이가 열 살이 넘는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자식을 많이 낳은 가정을 보면 첫째와 막내 사이의 나이 차가 열 살이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니까.

문제는 이 서량이란 몸뚱이의 혈육이 신교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여아 역시 혈육이 아니다.

한데 오라버니라니? 이 몸이 누구한테 오라비라 불릴 만한 위치인가?

어라?

“다섯째?”

“…….”

“……는 아니고. 아, 일곱째! 그러니까 그…… 막내구나?”

“네에.”

여아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손이 저도 모르게 가슴으로 올라갔다. 심장에 직격타를 맞은 것 같았다.

‘저거 완전히…….’

저 정도면 존재 자체가 신화 아니냐?

천신의 곁을 지키는 어여쁜 시동(侍童)이 내려온 것 같다. 인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위험해!’

위험해…… 왠지 모르겠지만 진짜 위험해…….

저 여아가 위험한 게 아니라 자신이 위험하다. 아니, 여아를 보는 누구라도 스스로를 위험하다 생각할 것이다.

왜냐?

‘너무 귀여운 거 아냐?’

금호를 처음 봤을 때도 그놈 참 귀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아이는 또 다르다.

뒷골목 꼬질꼬질한 아이들도 가끔은 깨물어 주고 싶었는데 얘는 차원이 다르다.

가히 천상의 피조물이라 할 만하다. 검지를 물고 자신을 빤히 보는 모습을 보니 염통이 다 쫄깃해졌다.

“여, 여기서 뭐 하니?”

저도 모르게 그리 묻고 말았다.

여아, 채여민(彩麗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공 서적을…… 보고 있어요.”

그렇겠지. 무고에서 무공 서적을 보지 뭘 하겠어?

“아, 십대마공을?”

“네에.”

“교주님께서 허가를 해 주셨구나.”

“네에.”

“…….”

“…….”

“……음, 그렇지. 허가를 해 주셨으니 여기 있겠지.”

그런데 벌써 십대마공을 볼 수준이라고? 다섯째도 겨우 얼마 전에야 허락을 받았었는데?

‘알 게 뭐야!’

서량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느새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져 허벅지에 슥슥 닦아 냈다.

“…….”

“…….”

흐음, 말수가 별로 없는 녀석이구나?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지.

이 녀석이 나이는 어리지만 벌써부터 삶의 지혜를 터득한 모양이다. 그래, 녀석아. 역시 사람은 진중한 게 좋은 거야.

“…….”

“…….”

흠, 그래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인생에 입 터는 재미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닌가.

그래, 이 선녀, 아니 막내에게도 입 터는 재미를 느끼게 해 볼까?

‘근데 어떻게?’

……언제 어린애들이랑 대화다운 대화를 해 봤어야지!

또르륵.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눈썹과 볼을 지나 이내 턱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게 뭐야?! 세상에,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붙을 때도 땀 한 방울 흘린 적이 거의 없는데!

서량이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을 할 때였다.

“저기…….”

“어? 어어! 말해, 말해.”

잠시 망설이던 채여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먼저 가 볼게요, 오라버니.”

“응? 아, 그럴래?! 그래! 알겠다!”

“…….”

“조, 조심히 들어가고. 알았지?”

“네에.”

스르륵.

공손하게 선 자세로 채여민이 사라졌다. 나이답지 않게 놀라운 신법이었다.

하지만 그에 감탄할 새가 없었다.

거하게 한숨을 쉰 서량이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았다.

“……애들은 어려워.”

* * *

마동필이 떨리는 눈으로 비급을 내려다보았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평생 익혀 왔던 마공을 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결함이 있는 걸 빤히 아는데 원래 것을 고집하는 것도 옳다고 볼 순 없지.”

“……공자님.”

“갈아타자. 갈아타는 게 맞다.”

격동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마동필을 보며 서량이 손을 저었다.

“그렇게 애틋한 눈으로 보지 마.”

“감사합니다.”

“넌 내 개인 호위야. 할 수 있는 걸 다 해 줘야 빠릿빠릿하게 날 지켜 줄 거 아니냐고.”

서량이 비급을 훑었다.

“지금 네 수준이면 하루 만에 운공이 가능할 거야. 물론 그간 익혀 왔던 마기를 금강야차의 마기로 치환하는 작업은 제법 걸리겠지.”

“……예.”

“그동안 많이 당했지?”

그렇다.

고죽림에서만 해도 서량은 마동필 덕을 많이 봤다. 마동필이 아니었다면 석 달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마동필은 유독 당하기만 했다. 물론 그가 약했다기보다 대진 운이 좋지 않았다고 봐야 하지만.

그러나 그 나쁜 대진 운이 평생 간다면 어쩌겠는가. 언제까지나 천운을 바라며 생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본인이 가진 힘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지키려 들지만 말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해. 그러려면 그동안 익혀 왔던 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지.”

“명심하겠습니다.”

“알았으면 지금 바로 시작해라.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서 내 뒤치다꺼리 좀 잘해 줘.”

마지막 말이 이상했지만 마동필은 고개를 숙임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대신했다.

그렇게 마동필은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비급을 읽었다.

환경이 나쁘다? 지금 마동필에게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연무장이 아니라 화살 비가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라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무섭게 집중하는 마동필.

그런 마동필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서량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위홍련이 가느다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

“뭐, 인마!”

“……치사해.”

“이 새끼 말버릇 보소?”

“치사해요. 치사하다고요.”

“뭐가 그렇게 치사해?”

“왜 마 씨만 그렇게 챙겨 줘요? 엄청난 내공에다 이젠 십대마공까지? 저 검도 그냥저냥 끗발 괜찮은 보검인 줄 알았더니 묵왕검이었잖아요.”

“어쩌라고.”

“저도 줘요.”

“뭘 자꾸 줘!”

“저도 보검 달란 말이에요! 저한테도 십대마공 주세요!”

“나도 제발 부탁 좀 하자! 별일 아니면 여기 오지 좀 마! 대원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냐!”

위홍련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검지로 척 하니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혹이 났어요.”

“그래서 뭐!”

“공자님이 던진 짱돌 때문에 생긴 상처에요. 자칫 잘못했으면 그대로 이승 하직할 뻔했다고요.”

“결과적으로 살았잖아, 이년아.”

불퉁하게 서량을 보던 위홍련이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치사한 인간아!”

그 말과 함께 위홍련은 대문을 나섰다.

“저년 저거 언제 한번 볼기짝을…… 아오! 지금 칠걸!”

분을 삭이며 위홍련을 보낸 서량이 연무장 한구석에 앉아 숨을 돌렸다.

“날씨 참 좋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짓는 서량.

어느새 그의 옆에 금호가 다가왔다. 꼬리를 살랑이며 그의 허벅지에 얼굴을 부비는 금호가 갸르릉 소리를 냈다.

“넌 고양이냐, 여우냐? 어쭈? 발톱 보게? 이거 완전히 새끼 호랑이잖아?”

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에 금호의 얼굴을 이리저리 주물럭거려 본다. 금호가 앙! 앙! 소리를 내며 마구 버둥거렸다.

낄낄거리며 금호와 놀기를 한참.

‘응?’

배를 보이고 씩씩대는 금호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던 서량은 문득 등을 푹푹 찔러 오는 시선 하나를 느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반쯤 열린 문 사이로 고운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어…….”

뭐지, 이 익숙하면서도 괜히 소름이 돋는 인기척은?

그나저나 대단하다. 어지간하면 수십 장 밖에서 접근하는 무인의 인기척도 느낄 만큼 예민한데 대문에 접근할 때까지 몰랐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무고에서도 그랬지.’

인기척 숨기는 능력 하나만큼은 발군이다. 굳이 숨기고 접근해야 했나 싶지만.

그놈 참, 역시 교주가 눈독 들일 만한 재능…….

‘……이 아니라!’

서량은 벌떡 일어났다.

뭐야? 여긴 또 왜 온 거야? 어떻게 알고 왔지? 아, 거처 정도는 서로들 다 알고 있으려나? 난 넷째네 말고는 모르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너무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허둥거리기만 바빴다.

그때, 큼직한 문 사이로 채여민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주먹이 절로 꽉 쥐어진다. 볼 때마다 더해지는 듯한 치명적인 귀여움에 가슴 한구석이 콱! 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서량이 자신을 발견했다는 걸 깨달은 채여민이 잠시 서성이다 쫄래쫄래 걸어왔다.

그러곤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안녕하세요, 오라버니.”

“……안녕.”

채여민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냥……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크윽!

* * *

“부르셨사옵니까, 교주님.”

“이리로.”

호요성이 웃으며 이천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음? 오늘은 어쩐 일로 난을 그리고 계십니까?”

평소와는 다르게 이천상은 정자 위에서 술잔 대신 붓을 들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벼루에 붓끝을 다듬고는 힘차게 난을 치는 그의 모습은 의외로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렸다.

“난을 치시는 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무척이나 격의 없는 언행이다. 신교 내에서 이천상에게 그런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 주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말없이 난을 치던 이천상이 이내 소매를 휘휘 저어 먹을 말렸다.

“준비는 다 끝났는가?”

“예, 잡아먹기만 하면 됩니다.”

“범이 사냥감을 노릴 땐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는 승냥이들도 뒤따르게 마련이지.”

“물론입니다.”

“그 승냥이들은 어찌할 셈인가.”

“그냥 놔둘 생각입니다.”

이천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반선(半仙)의 경지에 오른 그의 의도를 알아채는 사람은 온 천하를 뒤져도 몇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호요성은 참으로 편하고 멋진 군사라 할 수 있었다.

“보통 승냥이들이 아닐세.”

“알고 있습니다. 독니를 가진 승냥이들이지요. 하물며 한두 마리도 아니고요.”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런 승냥이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만한 범을 보내면 되지요.”

“누가 적합하겠나?”

잠시 고민하던 호요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확실히 하려면 원로원이 움직여 주는 게 좋긴 합니다만.”

“불가하네.”

“예,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면 백팔마장(百八魔將) 서너 명을 딸려 보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상위 열 명 중에서요.”

“그 또한 불가하네.”

“괜찮은 범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들은 할 일이 많아. 조만간 몇을 추려 북해(北海)로 보낼 생각일세.”

호요성의 눈이 커졌다.

“건드려 보시려고요? 그치들을?”

“그렇다네.”

“흐음…… 거기까지 예상하진 못했습니다만.”

잠시 고민하던 호요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다면 딱 맞는 인재가 하나 있습니다.”

“누구지.”

“아마 교주님께서도 바라시던 대답일 것 같습니다만.”

이천상이 호요성을 올려다보았다.

호요성이 웃으며 말했다.

“근래 제법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본인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 준 고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 마른 종이에 세필로 글자를 적고는 호요성에게 건넸다.

“셋째에게 전하게.”

“직접 부르진 않으십니까?”

이천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새로이 난을 그릴 뿐이었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 건, 삼공자에게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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