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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08화 (108/774)

108화. 관계와 관계 속에서 (3)

“…….”

“…….”

“…….”

“커흠, 괜찮니?”

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서량의 물음에 칠공녀, 채여민이 활짝 웃었다.

“네에, 괜찮아요.”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뽀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르자 귀여움이 폭발하는 듯하다.

‘진짜 무시무시한 아이구만.’

순간 ‘납치’라는 두 글자가 떠오를 정도였다.

서량은 불쑥 떠오른 부덕한 생각을 후다닥 지워 냈다.

“저기…….”

“어? 어어! 말해!”

“……반갑습니다.”

채여민이 어색하게 허리를 숙였다.

인사는 이미 했으면서 뭘 또 반갑대?

어쨌거나 참 어려운 아이임은 틀림없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말투는 어른스럽지 않은가. 확실히 어린아이의 치기어린 태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반갑……네. 음, 그렇지. 반갑다.”

결국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좋았는지 채여민이 다시 한번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정체 모를 긴장으로 잔뜩 물들었던 서량의 마음도 살살 풀어졌다.

두 사람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

“…….”

살금살금 도망갔던 긴장이 어색함이란 단어로 돌변해 찾아왔다.

입이 쩍쩍 마르는구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교본 같은 거 없어? 어린애랑 대화하는 법 같은 거 말이야.

별일 없으면 무공 수련 아니면 술이었다. 그 외에는 내려오는 명령에 따라 목표물을 죽이기 바빴다.

심지어 목표물도 대다수가 나이 든 노인이거나 젊은 고수들이었다.

채여민은 말이 없는 서량에게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서량은 어색하게 마주 웃어 주다가 문득 채여민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오밀조밀한 아이의 손가락이 조금씩 까딱거리고 있었다.

‘……긴장했구나.’

어린아이라도 눈치를 안 보는 건 아닐 것이다.

천마신교 교주 제자라면 충분히 오만해도 될 신분이었다.

문제는 여기가 속 편히 날뛰어도 될 곳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살벌한 마인들 천지에, 감히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여하간 문제는 문제다.

‘뭔가 분위기를 풀어야 하는데.’

그는 이 어색함을 타파할 계책을 떠올렸다.

“음, 차나 한잔…… 아니지. 술…… 이건 더 안 되고.”

한참 눈알을 굴려 대던 서량이 손뼉을 쳤다.

“너, 아니 여민아!”

“네에.”

“밥은 먹었니?”

“네, 먹었어요.”

하긴 이 시간이면 안 먹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서량은 단호했다. 먹을 것을 빼고는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이것저것 많이 먹어 둬야 해. 그래야 쑥쑥 잘 크지.”

“네에.”

“앵화야!”

한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앵화가 후다닥 다가왔다.

“네, 공자님!”

“먹을 것 좀 부탁해.”

“알겠습니다, 공자님!”

“아, 식사는 말고 그…… 어린애가 좋아할 법한 그런 거 없나?”

앵화가 활짝 웃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어어, 고마워.”

“별말씀을요. 빨리 준비할게요!”

그렇게 앵화가 자리를 비웠다.

“…….”

“…….”

채여민의 손가락이 좀 더 빨라졌고, 서량의 등허리는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어험, 안에 들어갈까? 좀 춥지? 날씨가 제법 쌀랑하네.”

“괜찮아요. 안 추워요.”

“…….”

“…….”

“그래도 일단 들어갈까? 서 있기는 좀 그렇잖아. 다리도 아플 테고.”

“괜찮아요. 안 아파요.”

저 나이에 십대마공까지 배우는 천잰데 그거 조금 서 있었다고 아플 리가 있겠냐, 등신아!!

서량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꿈틀거리는 채여민의 손가락이 더더욱 빨라졌다.

“커허허험! 앵화가 간식 가져오면…… 아, 저 언니……라고 해야 하나? 이름이 앵화거든. 앵화가 가져오면 밖에서 먹긴 좀 그렇잖아. 그렇지. 그런 거지.”

“…….”

“아, 저 언니가 차를 좋아하거든. 우리 같이 차라도 끓이면서 기다릴래?”

그제야 채여민의 손가락이 딱 멈추었다.

채여민이 활짝 웃었다.

“네!”

서량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공자님, 간식거리를…… 에?”

방으로 들어온 앵화는 눈을 끔뻑였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서량과 채여민의 분위기가 상당히 음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량은 의자에 반쯤 늘어졌고, 채여민은 찻잔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탁자 옆, 거의 세숫대야를 떠올릴 만큼 큼직한 동이에는 엄청난 양의 철관음이 김을 펄펄 피워 올리며 담겨 있었다.

“어…… 왔니.”

“네, 넵!”

“여기다 놔 줘.”

앵화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탁자에 간식을 놓았다.

서량은 억지로 힘을 쥐어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도 향도 엉망이었지만 뜨끈한 차가 뱃속에 들어가니 활력이 났다.

채여민은 당과를 오물대면서 슬쩍 서량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지쳤대도 어찌 그 눈길을 무시하겠는가. 서량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맛있니?”

“네, 괜찮아요.”

서량의 표정이 대번에 떨떠름해졌다.

“괜찮다는 말을 엄청 자주 하는구나.”

“네, 괜찮으니까요.”

채여민이 다시 발을 흔들며 시선을 돌렸다.

서량이 힐끔 앵화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원래 이래?’

‘저도 뵌 적이 없어서 잘…….’

눈빛으로 하는 대화는 짤막했다.

서량은 과장되게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한데 여기는 어쩐 일로 왔어?”

“…….”

“아, 혹시 심심했어?”

채여민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힐끔거리며 서량의 얼굴을 살필 뿐이었다.

서량의 미소가 짙어졌다. 왜 웃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억지로 미소를 띄웠다. 초감각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

“……진짜로 묻었나?”

그때, 채여민이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인사성이 무지하게 바른…….”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응?”

감사? 감사할 일이 뭐가 있다고?

아! 당과를 말하는 건가?

“아냐, 이 정도는 뭐 언제든지 줄 수 있…….”

“오라버니 덕분에 살았어요.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살았다니? 죽을 만큼 심심했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량을 보며 채여민이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

“홍위문, 그 개자식을 묻어 주셔서 감사해요.”

“……?!”

흠…… 개자식이라.

참으로 맛깔스러운 표현 아닌가.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의 부모까지 개로 격하시키는 멋진 욕이다.

심지어 묻어 주셔서 감사하단다. 저 개방(丐幇)의 거지들은 개고기를 먹을 때 땅에 묻어서 훈연 방식으로 조리한다 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저희들만의 전통 방식이라나 뭐라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서량이 입을 쩍 벌렸다. 한옆에 시립해 있던 앵화의 눈이 접시만 해졌다.

설마하니 이 곱상하고 귀엽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험악한 말이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 그, 그래?”

“네. 그 개자식이 저를 계속 중독시키고 있었거든요. 오라버니께서 그 자식을 묻어 주지 않았다면 저는 더 버텨 내지 못했을 거예요.”

고것 참 예의는 바른데 입은 은근히 험하네?

‘아! 그러고 보니…….’

처음 대전에서 봤을 때만 해도 병색이 완연했다.

한눈에 봐도 중독 증세임을 알 수 있었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 이상 신경을 쓰진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

홍위문 앞에서 소연심과의 거래를 가로챌 때 홍위문에게 말한 적 있었다.

음으로 양으로 형제들을 죽이는 네놈은 뭐냐고, 그 어린 막내한테까지도 손을 쓰고 싶더냐고.

신교 내에서 후계 후보를 중독시킬 만큼 간 큰 인간은 없다. 같은 후보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홍위문의 짓이라는 걸 확신했다. 형도 죽이려는 놈인데 막내라고 가만히 놔둘까.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나한테 감사할 필요 없어. 그냥 거슬리게 하니까 걷어찼을 뿐이야.”

딱히 너를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뜻.

호의를 품은 대상의 발언치곤 다소 냉정한 감이 있었다. 특히 어린아이라면 그 말을 듣고 섭섭해할 만했다.

하지만 채여민은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오라버니 덕분에 제가 살아난 건 사실이잖아요.”

“어…… 그, 그런가?”

“네.”

채여민이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오라버니가 저를 살려 주신 거예요.”

어색하기 짝이 없던 방금까지와는 달리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그 부담스러운 눈빛에 서량이 은근슬쩍 고개를 돌렸다.

“음……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확실히 그런 거예요.”

“어…… 뭐, 그런 거겠지.”

“그런 거겠지가 아니라 분명 그래요.”

“그렇게 느낀다면야…….”

“확실히 그렇게 느꼈고, 그게 맞아요.”

당돌하고 당당하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좌우지간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러 와 준 아이다. 이 삭막한 강호에 아직 정(情)이란 것이 남아 있긴 했구나.

뭐, 어린애니까.

“지금은 어떠니? 몸은 괜찮아?”

“네에.”

“하긴.”

회복도 안 된 몸으로 십대마공을 익히려 들진 않겠지.

그나저나 신기하긴 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어떻게 십대마공에 입문하려 들지? 교주도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무고의 출입증을 내주었을 것 아냐?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 녀석도 보통 천재는 아니구만.

“너무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아니에요. 소당(素當)이 그랬어요, 은원(恩怨)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요. 은혜를 받았으면 응당 고마워해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것 참 멋진 말이로군.

“소당이 누구야?”

“제 시녀장이요.”

“아하? 시녀장과 굉장히 친하구나?”

“네에. 소당이 밥도 차려 주고 옷도 입혀 줘요.”

“거의 엄마군.”

“네?”

“아니다. 문득 궁금해진 건데, 은혜를 입었으면 응당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지?”

“네에.”

“그럼 원한은 어떻게 처리하라고 하던?”

채여민이 순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찢어 죽이라고 했어요.”

“…….”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작살을 내 놓으라고도 했어요.”

“…….”

“…….”

“그 소당이란 시녀장이 홍위문을 뭐라고 부르더냐?”

“개자식이요.”

알 것 같구만.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 소당이란 시녀장,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어린 막내의 교육 담당으로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아니지.’

어쩌면 천마신교라는 환경에선 저런 가르침이 옳은 걸 수도 있다.

특히 채여민은 홍위문 때문에 죽을 뻔하지 않았나.

원한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너무 과격한 교육을 한 건 아닌가 싶지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선 그런 잔혹함도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간에 고마워하지 않…… 아니지.”

서량이 헛기침을 했다.

“네 감사 인사는 잘 받았어.”

채여민이 활짝 웃었다.

“네!”

귀엽긴 정말 귀엽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채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왠지 금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른해진다.

“헤헤.”

실없는 웃음을 짓고 몸을 배배 꼬는 채여민.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서량은 생각했다.

‘이제 슬슬 보내야겠다.’

어차피 이 아이도 감사 인사가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언제까지 계속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두두.

그때 저 멀리서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바퀴 소리만 들어도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저 묵직함과 경쾌함을 번갈아 가며 터트리는 굉음은 분명 마신궁 휘하의 마차다.

“어? 마차네?”

서량이 채여민을 바라보았다.

채여민은 손가락을 빨며 창가 너머로 보이는 대문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아이야.’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의 마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민하다. 기감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잠시 후, 대문 바깥에서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접니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자, 서량의 눈이 당황으로 흔들렸다.

“뭐야? 마신궁에서 온 마찬데 왜 당신이……?”

“의외지요?”

호요성이 웃으며 접힌 종이를 흔들었다.

“교주님의 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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