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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09화 (109/774)

109화. 관계와 관계 속에서 (4)

“외부감찰대리(外部監察代理) 특수수사원주(特殊搜査院主)?”

“그렇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린 서량은 멋들어지게 그려진 난초(蘭草) 아래쪽에 쓰인 글을 읽었다.

“뭡니까? 이 길고 복잡하면서도 왠지 남한테 눈총만 죽도록 받을 것 같은 관명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호요성이 웃으며 말했다.

“줄여서 특수감찰사(特殊監察司)라고 하지요.”

“줄긴 했는데 부담은 두 배가 됐네요.”

“직급명만 들어도 무슨 일인지 감이 팍 오죠?”

“감이 팍 와서 이해가 안 됩니다. 도대체 왜 저한테 이런 직급을 주시는 겁니까? 후계 후보들에게는 직급이 부여되지 않는 거 아니었어요?”

후계 후보는 신교 최상위 신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증명하는 건 아니었다.

후계자들의 신분이 높은 이유는 신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후 신교 최강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즉 잠재력을 공인받은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후보들에게 직급을 주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능력 검증이 되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조직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만약 그들 중 하나라도 직급을 갖게 되면 권력을 탐하는 온갖 벌레들이 꼬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외부감찰‘대리’라는 단어가 붙었잖습니까. 그거 한시적인 직급이라 괜찮아요.”

“한시적이지만 한 번이라도 직급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요?”

“왜요?”

“어쨌거나 날파리들이 꼬이게 될 테니까요. 후계 싸움에 영향을 끼치게 되잖아요?”

“지위가 높고 권력이 강한 자들에겐 항상 꼬이는 게 날파리입니다. 새삼스러울 것 있습니까? 본교의 수뇌부들은 하루가 멀다고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제 신분이죠.”

“뭐,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래도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는 건 말이 안 되죠.”

염병,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무슨.

서량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근다…… 왠지 의미심장한 발언입니다그려.”

“그렇습니까?”

“이번에 담글 장에는 구더기들이 유독 많이 득실거릴 것 같은 이 고약한 불길함은 뭘까요?”

“글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우리 총군사님의 활짝 갠 얼굴을 뵈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낚싯바늘에 돌돌 묶인 미끼 신세가 된 것 같은데, 이거.”

서량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교주님의 명령이니 별 순 없겠지만, 고생만 죽도록 하는 특별 관직은 싫단 말입니다.”

호요성의 미소가 짙어졌다.

장난스럽게 빙글거리며 웃고 있지만, 그는 새삼 서량의 눈치에 감탄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날카롭구만.’

정말 감 하나는 국보급이다. 권력 싸움에 능하지 않은 게 분명한데 어찌 저리 예리할까.

‘생존 본능의 연장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간 교주님이 들려준 얘기와 첫 대면에서의 모습만 봐도, 삼공자는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공자님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벌써 초절정의 영역에 접어드셨다고요?”

“거야 뭐…….”

“본교의 고수 중엔 당장 노는 병력이 없습니다. 심지어 대공자는 아직 폐관 중이지요.

와중에 삼공자께서 걸출한 능력을 보여 주시지 않았겠습니까? 당연히 부탁을 드릴 수밖에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잖아요, 이거.”

“어찌 되었든 간에요.”

“킁.”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연배에 상위 마장(魔將)급에 비견될 만한 무공을 쌓으셨다니요.”

“말 돌리시긴.”

“제 말빨이 공자님께는 영 안 먹히네요.”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그 마장이라는 거, 백팔마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요? 아! 입마 전의 기억을 상당 부분 잃었다고 하셨던가요?”

“……아, 예.”

순간 잊었다. 지금 자신과 대화하는 게 누구인지를.

이 인간 앞에선 어지간하면 실수하지 말자. 감히 전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혹시 또 모른다.

“백팔마장은 본교 최고의 선봉장들입니다. 한 명, 한 명이 전투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 모두가 신장부(神將部) 소속입니다.”

신장부라…….

서량은 소연심이 준 문서 속 천마신교의 조직 체제를 떠올렸다.

‘이궁(二宮), 이부(二部), 삼원(三院), 사군(四軍), 오단(五團), 육대(六隊).’

이궁은 마신궁과 비궁(秘宮)을 뜻한다. 마신궁은 교주의 거처이자 신전으로, 신교의 마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비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은퇴한 전대 교주 처소라느니, 신성한 교보(敎寶)가 비치된 장소라느니 하는 추측만 무성했다.

이부는 군사부와 신장부를 뜻한다. 군사부가 신교의 머리라면 신장부는 신교의 칼이다. 독립된 조직이지만 위기 시에는 하나로 합쳐지기도 한다.

삼원은 환희원과 호법원, 원로원을 뜻함이고 사군(四君)은 신교 최강의 무력조직 사방천마군(四方天魔軍)을 뜻함이다.

그중 두 개 군은 내전에, 나머지 두 개 군은 외전에 있다.

오단과 육대 역시 내전과 외전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오단과 달리 육대는 철저한 전투 부대라는 점이었다.

그 외에 무수한 조직들이 산재해 있지만 간단한 조직 편성은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신교의 조직 중, 고수의 숫자는 신장부가 제일 많다는 건가.’

서량은 혀를 내둘렀다.

‘신장부 하나만 보내도 대문파 몇 개는 잡아먹겠군.’

물론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고수의 숫자가 많으면 백팔마장 중에서 고르지 그래요?”

“그들은 언제 외부로 뛰쳐나가야 할지 모르는 긴급 병력이자 신교의 수호 마인들이기도 하지요. 이런 일로 나서는 건 적합하지 않습니다.”

“쳇.”

호요성이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지워 냈다.

“어찌 되었건 교주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틀 뒤에 출발하셔야 하니 준비하십시오.”

교주의 명령.

따르지 않는다면 설령 제자라 할지라도 즉참이다.

‘그러고 보니 그 양반이…….’

일전, 이천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조만간 네게 명을 하나 내릴 것이다. 보고도 않고 바깥바람을 쐬러 나갈 만큼 굶주려 있는 네 녀석이 콧바람 풀기에도 제격이라 생각한다.

- 그저 그리 알고만 있도록.

제기랄, 그 명이 이런 명이었어?

‘어? 잠깐만?’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콧바람을 풀어? 바깥?’

그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총군사님. 이 임무, 제가 출교해야 하는 일입니까?”

떨떠름한 듯, 호요성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말했잖아요, 외부감찰대리라고. 외부, 즉 신교 바깥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

“신교 내의 감찰은 군사부가 형법당 흑조위들의 도움을 받아 시행하고 있어요. 특수감찰사라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완장 차고 바깥으로 돌라는…… 엥?”

“…….”

“공자님?”

“…….”

“공자님.”

“헉! 아, 불렀습니까?”

“왜 그렇게 넋이 나가 있으십니까?”

후다닥 정신을 차린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밖에서 찬 바람 맞을 생각을 하니까 좀.”

“찬 바람이라뇨? 산 아랫동네가 여기보다 더 따뜻할 게 분명하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시큰둥한 얼굴과는 달리 서량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말이 날 출교시켜 주는 거였어? 그런 거였어?!’

정말이지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싶다.

‘그 양반이 드디어 그럴싸한 선물을 주는구나!’

암영진마공을 구유마공으로 진화시킬 수 있었던 단초를 제공한 사람한테 잘도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 서량에겐 이천상이 내려준 소소한 가르침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머리를 꽉 채운 것은 바로 희망과 희열이었다.

‘시벌! 나갈 수 있어! 또 나갈 수 있어!’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호요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에, 어쨌든 공자님께서 특수감찰사라는 완장을 차고 하셔야 할 일은…….”

“명령 하달 문서 따로 챙겨 오지 않으셨습니까?”

“챙겨 왔습니다만.”

“그거 주십쇼.”

“설명 따로 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 문서에 다 적혀 있긴 하지만요.”

“슥 둘러보다가 개 같으면 작살 내고 깔끔하면 엉덩이 토닥여 주는 게 제가 할 일 아닙니까?”

“……그보다 더 맛깔 나는 설명을 찾긴 힘들겠군요. 맞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호요성이 품에서 잘 밀봉된 문서를 꺼내 그에게 전했다.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대공자도 두어 번 이런 임무를 거쳐 봤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예.”

서량은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을 살피던 호요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유가 있으면 예전처럼 술이나 한잔하겠지만 저도 좀 바빠서요. 이만 일어나 봐야겠습니다.”

“그러십니까? 하면 빨리 가십시오.”

“예에. 배웅은 못 해 드릴 것 같습니다. 무사히 귀교하시길 바랍니다.”

귀교? 흥!

“하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서량의 배웅 같지도 않은 배웅을 받으며 다시 마차에 오른 호요성.

그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어째 무지 들떠 보이는데? 그렇게 좋은가?”

교주님의 말씀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교내에서 머무는 걸 제법 답답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하더니만 그렇게 나가고 싶었던 걸까.

호요성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주변 광경의 사이사이로 수많은 마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관계라…….’

최근, 신교와 칠가(七家)의 수직적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신교의 손발이 되어 준 그들 중 몇몇은 더 이상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파순제에 참가한 거경가와 적사가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인 것이 그를 증명했다.

심지어 그 두 가문은 교주에게 혈육을 제자로 바친 가문들이었다.

그것은 두려워하는 대상을 제거하고 싶은 심리와 비슷했다.

귀신을 두려워해 주술(呪術)에 능한 술사를 불러 없애려 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누군가를 불러 두려움의 대상을 치우려 하고 있었다.

‘마검가와 천보금가(千寶金家)는 제외해도 괜찮아.’

이번 파순제에 참가한 칠가 소속은 네 가문.

그 중 마검과 천보는 깨끗하다. 그들의 반응 이전에 군사부에서 직접 조사해 본 결과가 그러했다.

‘이제 슬슬 잡을 때가 됐지.’

신(神)은 움직이지 않았고 제사장들은 침묵했다.

그 인고의 시간을 버틴 지금에야 비로소 웃음 속에 숨긴 칼날의 살기를 읽었다. 그리고 그 살기를 없애기 위한 또 다른 칼로 삼공자는 제격이었다.

“알고 있습니까? 그때 술자리, 나름 즐거웠지만 양껏 마시진 못했습니다.”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무사히 돌아오면 그때는 한번 진탕 마시고 취해 봅시다, 삼공자.”

* * *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거처로 돌아온 서량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간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내 발로 나갈 수 있다.

이천상의 명령이란 게 좀 걸렸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것은 이번 외유가 이전과는 달리 합법적이라는 것에 있었다.

‘드디어……!’

수송대와 함께하는 바람에 주변 지리, 지부의 병력 수치나 움직임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돌아왔다.

그래도 괜찮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좋다.

일 년이 넘도록 생활한 신교에서 드디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평생토록 꿈꿔 온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바깥으로 나간 후에도 꽤나 작업을 쳐야겠지만.

“오라버니?”

“어? 아! 여민이구나. 아직 안 갔네?”

채여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그럴 리가 있냐, 인석아.

“으하하하! 절대, 결단코, 무조건 아프면 안 되지!”

“아, 네에.”

서량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유다!’

몸까지 부르르 떨며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는 서량.

그런 서량을 채여민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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