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10화 (110/774)

110화. 관계와 관계 속에서 (5)

우우우웅!!

아름다운 황금빛 물결이 연무장 주변을 넘실거렸다.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 뿐이었다.

그 물결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악귀를 때려잡다가 스스로 귀신이 되어 버린 마왕의 분노였다.

금강야차(金剛夜叉)는 곧 불교의 사천왕(四天王) 중 다문천왕(多聞天王)을 뜻한다.

달리 비사문천(毘沙門天)이라고도 하며 수미산(須彌山)의 북쪽 하늘을 지킨다.

부처의 대척점에 있다는 파순을 신봉하는 천마신교에 어찌 금강야차라는 이름의 마공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금강야차마공이 신교에서 손꼽히는 마공이란 것은 분명했다.

쿠구궁!

두 발을 바닥에 딛고 일어난 마동필의 눈은 뿜어져 나오는 거센 기파와 달리 무척이나 평온했다.

‘이것이로구나.’

평온한 안광 속에 깃든 것은 극에 이른 희열이었다.

‘힘을 온전히 쓴다는 것이 바로……!’

마동필의 손이 묵왕검에 닿았다.

번쩍!

하늘 높이 충천하는 찬연한 검기(劍氣).

지금까지 펼쳐 냈던 검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이 이룩한 경지와 내공력, 무공, 의지가 합일된 고밀도의 검기였다.

짝짝짝.

한옆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놀란 마동필이 고개를 내렸다.

벽에 기댄 서량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제대로 잡아먹었구만. 축하한다.”

“공자님…….”

“잘 써먹어, 그 힘.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만.”

납검한 마동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의 이 힘은 오로지 공자님의 목숨을 위해서만 쓰일 것입니다.”

“내 목숨이라…….”

서량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씁쓸하게 들렸다.

물끄러미 마동필을 보던 그가 검지를 까딱였다.

“방으로.”

방으로 따라온 마동필에게 서량이 명령 하달 문서를 던졌다.

의아한 표정으로 문서를 내려다본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특수감찰사라면……?”

“그래, 나갈 일이 생겼다.”

“교주님께서 직접 하달하신 명령이군요.”

“맞아.”

마동필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교주님께서 후계자들에게 쉬이 직급을 주지 않으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냐? 대공자는 두어 번 해 먹었다던데?”

“아, 그렇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침상에 앉은 서량이 진지하게 말했다.

“내일 새벽 묘시(卯時, 5시~7시) 초에 출발한다. 호위 부대 하나가 딸려 온다고는 하는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어.”

“알겠습니다.”

“시작은 적사가다.”

“예.”

마동필은 달리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서량의 말을 흘려듣는 것이 아니었다. 무공이 강해진 만큼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깨달은 그는 진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주관이 뚜렷하고 목표가 분명하다면 흔들릴 이유가 없다. 마동필의 여유는 강자의 여유였다.

그런 마동필을 보는 서량의 얼굴이 어둡게 흐려졌다.

“동필아.”

“예, 공자님.”

“…….”

“…….”

“…….”

“하기 어려운 말씀이면 나중에 하셔도…….”

“너, 조금 전에 말했지? 너의 그 힘을 나를 위해서만 쓴다고.”

“물론입니다.”

“그러지 마라.”

“예?”

“그러지 마. 그 힘은 오롯이 너의 힘이다. 나의 목숨보다 너의 목숨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해.”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그 명령만큼은 따를 수 없습니다.”

“야, 인마.”

“저는 공자님의 호위무사입니다. 제 시체를 넘지 못한 칼이 공자님께 닿을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서량이 깊은 탄식을 삼켰다.

이래서 마동필이 개인 호위로 왔을 때 떨떠름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순간에 그를 내치지 못할 것 같았기에.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했다. 자신을 향한 마동필의 충심(忠心)을 알고 있으니, 신교를 버리고 자신과 함께 가자는 제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건 순간이었다.

마동필에게 천마신교는 집이자 일터이고, 종교이자 인생이었다.

고작 일 년 넘게 붙어 있었다고 집을, 인생을 버리라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일이었다.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떠나겠다고 말하는 자신을 마동필이 막아선다면? 마동필의 올곧은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리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서량은 마동필을 베지 않겠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그에게 마동필은 소중한 사람이었다. 마동필 덕에 목숨을 건진 적이 몇 번인가. 이전 생을 생각해 봐도 마동필처럼 자신을 위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런 사람을 베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배신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녀석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情)이 많으면 무사가 못 되는 법이야.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해.’

친인에게 일일이 미안함을 느끼면 꿈을 이룰 수 없다. 진정 꿈을 이루고 싶다면 냉정해질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 냉정해져야지.’

꿈을 이루게 된 훗날, 그곳까지 이른 모든 과정을 후회하게 되더라도.

‘미안하다. 알아달란 말은 안 할 테니, 너 역시 나를 용서하진 마라.’

비겁한 생각이란 걸 안다. 그러나 비겁하더라도 더 이상 누군가의 손에 인생이 휘둘러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알았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해. 단단히 채비토록 하고.”

“알겠습니다.”

마동필을 보낸 서량이 턱을 괴곤 창가로 눈을 돌렸다.

저 멀리 대문 앞을 쓸고 있는 앵화가 눈에 보였다.

“빌어먹을, 내가 언제부터 정에 휘둘렸다고.”

그래도…… 앵화한테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막상 기다리던 날이 오니 마음만 먹고 행하지 못한 것들이 후회된다.

크릉.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 서량이 고개를 내렸다.

잠에서 깬 금호가 그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대고 있었다.

“요놈 자식.”

금호를 안아 올린 서량이 목을 간질였다. 기분 좋은 듯 금호가 눈을 감고 갸르릉 소리를 냈다. 역시나 고양이 같은 놈이었다.

“적어도 정든 인연을 죄다 끊어 내진 않아도 되겠구나.”

골골골.

“너도 인마, 중간에 생각 바뀌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 나랑 살면 재미없을 거야.”

골골골.

“……하여간에 웃기는 놈이야. 너 근데 암놈이냐, 수놈이냐? 수놈 맞지?”

낄낄거리며 금호와 노는 서량의 얼굴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 * *

“후욱!”

한참 땀을 흘린 위홍련이 웃옷을 훌러덩 벗었다.

어지간한 사나이 저리 가라 할 만한 기백. 속곳을 입고 있었지만 땀에 젖은 천 위로 드러나는 굴곡진 몸매가 몹시 매력적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멋진 몸매를 감상할 인간들이 하나 같이 바닥에 뻗어 있다는 데에 있었다.

“이 새끼들아! 이 악물고 덤비지 못해?! 팔다리 몇 개 아작 났다고 병신처럼 누워만 있을 거야!”

위홍련의 주위로 오십여 명의 광마대원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그녀 말마따나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사지 중 두어 군데는 부러져 있었다. 다행히도 관절은 부러지지 않았지만 중상인 것은 분명했다.

“끄으응!”

“으드득!”

쓰러진 대원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났다.

위홍련이 살벌한 미소를 띄웠다.

“그래야지.”

광마조우필사(狂魔遭遇必死)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팔이 부러지면 다리로 싸우고, 다리까지 부러지면 이빨로 물어뜯어 죽이는 게 광마대였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라 진짜였다. 위홍련을 노려보는 광마대원들의 눈에 광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연습도 실전처럼 목숨을 걸고 한다. 폭발할 듯한 살기와 충천하는 광기로 무장한 그들의 모습은 가히 마귀라 불릴 만했다.

“뭐 해? 덤벼!”

파아아악!

일시에 뛰어드는 광마대원들.

위홍련이 그들 사이로 성난 사자처럼 뛰어들었다.

서걱! 퍼버벅!

순식간에 십여 명의 대원들이 날아갔다.

포아검에 맞아 큼직한 검상을 입은 이들도 있고, 또다시 뼈가 부러진 대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전의를 잃지 않았다.

퍼억!

한 대원의 발길질에 등판을 맞은 위홍련이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서 대원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이럴 때는 진형을 맞추는 것보다 혼란스럽게 몰아붙이는 게 낫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위홍련이 몸을 숙여 양팔로 머리를 막았다.

퍼버버벅!

무지막지한 구타 속에서 그녀가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불을 뿜는 안광 속에 도사린 것은, 대원들의 광기를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더 농밀한 독기였다.

“으아아아!”

빠가각! 퍼억! 펑!

서로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검술, 권법, 각법 등등 무지막지하게 휘몰아쳐 오는 반격에 대원들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헉헉! 새끼들! 이제야 좀 하네.”

숨을 고른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의 비무는 불가능하다. 자신은 아직 팔팔했지만 대원들은 정말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끝까지 위홍련을 노려보는 광마대원들의 독기는 가히 귀신을 방불케 했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원들의 눈에서 독기가 빠졌다.

“아이고!”

“으으, 이러다 죽는다, 정말.”

“허억! 허억! 나, 나 갈비뼈가…….”

“……내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거 혹시 내장이냐?”

살벌한 대화들을 유쾌하게도 한다.

눈치를 보며 서 있던 혈혼각 소속 의원들이 재빠르게 대원들에게로 향했다. 응급 처치 후 의실로 옮기려는 것이다.

광마대의 수련은 그러했다. 한 번 비무를 하면 최소 보름은 앓아누울 정도로 지독했다.

연마의 시간은 부족하지만 독기를 주입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광마대가 최강은 못 되어도 최악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나머지 대원들은 각자 수련해! 사흘 뒤에는 이 조(二組)에서 차출할 거야!”

“존명!”

우렁찬 명령에 어울리는 패기 넘치는 대답이었다.

중년 의원이 조심스레 위홍련에게 다가왔다.

“대주님. 상처는 어떻게…….”

“난 됐으니까 애들이나 돌봐 줘.”

“그래도 내외상이 제법 심하십니다.”

“침 바르면 나아. 아! 깨끗한 천 있으면 그거나 줘.”

의원이 건넨 허연 천을 받아 든 그녀가 복부를 빙빙 둘렀다. 찢어진 상처를 진기로 조이고 탁기를 뽑아낸 후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다.

한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의원은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한 의원보다 빠르고 정밀한 손놀림이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이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위홍련이 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이 짓거리도 이젠 못 해 먹겠군.’

체력이 달리는 게 아니라 지루해서 문제다.

매 순간이 배움의 연속이라지만 자신보다 실력 낮은 이들하고만 붙어 대니 무공이 느는 것 같지가 않았다.

가끔은 감당키 힘든 고수들과 손속을 나눠 봐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흔하겠는가.

심지어 잘못 걸리면 목숨이 날아가는 것도 순간이다.

‘죽는 게 겁나는 건 아니지만.’

좀 아쉽잖아? 고작 이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끝난다면 말이야.

‘이를테면 그 마검가의 미친놈이나…….’

무지막지한 내공으로 깨달음의 차이를 씹어 먹은 애새끼 괴물.

‘아니면…….’

미친년이라고 악명이 자자한 자신보다 더 미쳐 있는 주제에 무공까지 강한 삼공자나.

위홍련이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 나 좀 챙겨 주면 어디 덧나나?”

신병이기와 십대마공을 달라고 떼를 썼지만 솔직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리 친분을 쌓았다 한들, 자신은 삼공자에게 마동필만큼 가까워지긴 어려운 위치였다.

‘한판 시원하게 쌈박질이나 해 주던가.’

하긴, 한판 붙자고 하면 일격에 기절시키고 나 몰라라 도망칠 인간이긴 해.

“어우!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위홍련이 집무실로 걸어갔다.

부대주인 차광이 은근슬쩍 다가왔다.

“대주님. 이제 옷 좀 입으…….”

빠각!

“……죄송합니다.”

콧방귀를 뀐 그녀는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퍼졌다.

“으, 심심해. 뭐 임무라도 안 떨어지나?”

그때였다.

“그렇다면 임무 하나 맡아 볼 의향이 있으신가?”

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누구…… 에?”

창가 앞에 뻣뻣한 자세로 서 있는 사내는 바로 고구였다.

“형법당주? ……님?”

“…….”

“여긴 어떻게?”

고구가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외부감찰대리와 함께할 임시 감찰 부대의 증명서일세.”

“……예?”

“원래 호법원이나 본당, 둘 중 한 곳이 맡아야겠지만 요새 교내가 워낙 수상하여 두 곳 모두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되었네.”

“무슨 말…….”

“그러니 자네가 맡아 주게.”

툭.

위홍련이 채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녀에게 서신을 던진 고구가 몸을 돌렸다.

“명일 새벽에 출발일세. 준비토록 하게.”

느닷없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 증명서를 내려다본 위홍련.

곧이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고 요고 또 재미있겠는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