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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12화 (112/774)

112화. 부서지는 껍질 (2)

빠르게 달리는 마차의 내부는 고요했다.

평소와는 달리 턱을 괴고 가만히 창가를 보는 서량의 눈빛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함께 탄 마동필과 위홍련이 말이 없는 것은 서량 때문만이 아니었다. 마동필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고, 위홍련은 진지한 얼굴로 명령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마동필이야 그렇다 쳐도 위홍련의 이런 모습은 뜻밖이었다.

평소 왈가닥에 독기만 드센 모습을 보여 주긴 하지만 그녀 역시 전투 부대의 대장이었다. 임무에 돌입했을 때 실패하지 않기 위해 진지하게 임하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위홍련이 서량을 보며 말했다.

“감찰사님. 마차의 속도를 볼 때 대략 닷새 후 적사가에 도착합니다. 좀 더 여유 있게 가시면 하루, 이틀 더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게 낫다고 보나?”

“저는 여유를 갖고 가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다시 서류를 검토하던 위홍련이 재차 물었다.

“연주(連州)에 본교의 비밀 지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머무르시겠습니까?”

“재정비하기 좋나?”

“그렇습니다. 시간을 느슨하게 가질수록 여러모로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것은 대원들에 한한 문제입니다. 저희는 호위 겸 비상 병력일 뿐입니다. 감찰 임무에 지장이 가는 휴식이라면 배제하심이 옳은 줄 압니다.”

“그럼 들르지 말고 가지.”

“알겠습니다.”

달리 이유를 묻지도 않고, 설명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각자가 다른 마음을 갖고 있지만 대화 자체는 깔끔하고 원활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마동필이 눈을 떴다.

“공자님.”

“어.”

“동이 텄는데 식사를…….”

그때, 서량의 품에서 금호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마동필의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이 어렸다. 장포 앞섶이 풍성하긴 했지만 설마 금호가 품에 있는 줄도 몰랐다니.

“금호를 데려오셨군요.”

“뭐, 지가 오고 싶다니까.”

서량이 습관적으로 금호의 턱을 긁어 주었다. 금호가 갸르릉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걱정하지 마라. 방해도 안 할 거고 다치지도 않을 거다.”

“아, 예.”

마동필은 입맛을 다셨다. 공자님의 분위기가 평소와 달라서일까? 농담이라도 던져 이 어색함을 풀고 싶은데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애초에 농담이나 장난 따위와는 거리가 먼 그였다. 서량과 지내며 상당히 부드러워졌지만 그게 유쾌해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마동필이 마차 바닥에서 뜨끈한 주먹밥을 꺼내 들었다. 그래, 안 하던 짓 하지 말자.

“드시지요.”

“생각 없다. 너 먹어.”

어……라……?

서량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마동필은 당황했다. 평소 밥이라면 식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거부한 적 없던 그이지 않았나.

위홍련도 제법 놀랐는지 힐끔힐끔 서량을 살폈다.

“공자…… 아니, 감찰사님.”

“음?”

“제때 식사를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입맛 없다.”

“으음, 그건 참으로 큰 문제로군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리 대답하고야 말았다.

위홍련이 슬쩍 마동필을 향해 속삭였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왜 저러셔?’

‘모르겠소.’

‘누구한테 눈탱이라도 맞으셨나?’

‘말조심 좀…….’

서량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눈탱이 맞은 거 아니다.”

“……헤헤, 들으셨어요?”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런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으니까 밥 먹어라.”

“아, 그럼 뭐.”

두 사람은 주먹밥을 열심히 씹었다.

창가를 보던 서량이 내심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젠장 할.’

이거 왜 이렇게 마음이 싱숭생숭하냐?

‘그렇게 바라온 자유잖아? 근데 왜 이러는 거냐, 너? 자유가 필요 없어졌어?’

그는 진지하게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

‘그럴 리가.’

경치 좋은 곳에 큼직한 집을 짓고 신선놀음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삶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의 천성이, 성향이 바라는 꿈이 바로 유유자적한 삶이었다.

꿈과 목표는 다르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 그 꿈을 이루게 되면 또 다른 꿈을 꾸게 되겠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다시 무림이 그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꿈을 이루고 난 이후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려. 나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꿈을 이루고 싶다.’

그런데 왜 이리 불편한 거지?

‘남겨 둔 앵화 때문에?’

그렇다.

‘동필이와 헤어질 생각을 해서?’

그 또한 맞는 말이다.

‘…….’

서량의 얼굴이 흐려졌다.

‘단순히 그게 전부가 아니야.’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됐다. 자신이 세상에 보기 드문 성자는 아니지만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정(情)에 약한 위인임은 분명하다고.

그러나 이 불편함은 단순히 정을 준 사람들과의 헤어짐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 정작 꿈을 달성해도 마음 한구석에 드리워질 것이 분명한 이유 모를 어둠.

‘대체 그게 뭘까?’

서량이 힐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주먹밥을 맛나게 먹고 있었다.

막말로 이대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구유마공으로 암신유체(暗神幽體)를 제대로 펼칠 순 없겠지만 호위자들의 눈 정도는 속일 순 있을 것이다.

알아차리고 나면 늦겠지. 최대한 속력을 내면 사흘 안에 호남의 안가로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끝이다. 호남의 안가에는 이 년은 거뜬히 버틸 만한 비상식량과 영약들이 구비되어 있다. 이 년 동안 더더욱 실력을 다져서 아무도 모르게 중원을 뜨면 그만이다.

사실상 적사가와 부딪치며 죽음을 꾸며 내지 않아도 손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좋아, 굳이 길게 끌 것 없겠지. 오늘 밤에 바로 행동에……!’

순간 서량의 눈에 핏발이 섰다.

지잉! 지잉!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울림.

의천맹과 철혈성의 천라지망에 갇혔을 때보다도, 이천상과 마주했을 때보다도 훨씬 지독한 울림이다. 초감각이 미친 듯이 울려 대고 있었다.

‘이대로 도주하면 안 된다고?’

도대체 왜?!

‘호남에 전염병이라도 창궐했나? 내가 그곳에 가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초감각은 쉽게 말해 육감이다. 육감은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감이며, 당연히 당장에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신통한 능력이지만 아무리 초감각이라도 먼 지방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까지는 알 수 없다.

“……사님.”

“…….”

“감찰사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놀란 서량이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큰둥한 얼굴 위로 보이지 않는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괜찮으세요? 웬 땀을 그렇게 흘리세요?”

“어?”

그는 이마를 훔쳤다. 위홍련의 말마따나 식은땀이 흥건하게 배어나와 있었다.

“아냐, 괜찮다.”

마동필이 물었다.

“혹 몸이 안 좋으시다면…….”

“그럴 리가 없잖아.”

하기야 저 나이에 절정의 한계를 깨 버린 괴물이 몸 좀 안 좋다고 식은땀까지 흘릴 리는 없다.

“그냥 생각을 좀 하느라 그런 거야. 걱정하지 마라. 별 이상 없으니까.”

“……예에.”

마동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대답은 그리했지만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다. 어제부터 공자님의 모습이 평소와 많이 다르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그저 임무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괴물처럼 강하지만 교주님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니 나름대로 생각이 많으실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부담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게다가 공자님의 성격상, 이 정도로 부담을 느끼실 리도 없잖은가?

서량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묻었다.

“내 걱정일랑 말고 푹 쉬어. 나도 잠 좀 자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는 애써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도주고 뭐고,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좀 쉬자.

* * *

엿새 후.

“전방 오 리(五里) 앞에 숲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야숙을 하겠습니다.”

“그래.”

“명일 정오 전에 적사가의 영역에 진입할 것 같습니다. 아마 미시(未時, 13시-15시) 중반쯤 되어 적사가에 도착할 겁니다.”

“알았어.”

“마차에서 주무시겠습니까?”

“그래.”

잠시 후, 숲에 도착한 일행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광마대 인원 서른 명이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하였다.

모닥불을 만들고 장작을 뒤적거리던 위홍련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마동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에서 쉬지 뭐 하러 왔어?”

“공자님께서 혼자 계시고 싶으신 듯하여 나왔소.”

위홍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공자님은?”

“위 대주도 봤잖소.”

“나보다는 네가 훨씬 공자님과 가깝잖아.”

“나도 모르겠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온을 되찾아 가고 계신다는 것뿐.”

“평온? 진짜로?”

“……방금 말했지만, 위 대주도 직접 봤잖소?”

“제기랄, 나는 무신경해서 그런 거 잘 몰라. 그리고 시시각각 보고를 받느라 너처럼 공자님 안색을 계속 살피진 못했다고.”

마동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좋아지셨소.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정리가 되신 것 같소.”

“그래? 뭐, 그럼 됐어.”

“의외로군.”

“뭐가?”

“위 대주가 그렇게 공자님을 생각하는지 몰랐소.”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은 본교의 삼공자와 위홍련의 관계가 아니라고. 특수감찰사와 광마대주로 엮인 거야. 수장이 흔들리면 임무도 흔들릴 텐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건 위 대주의 말이 맞소.”

“어쨌든 괜찮아지셨으면 다행…….”

그때, 그녀의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정하기 짝이 없는 마음 씀씀이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학!”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나온 것인지 서량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어, 언제 오셨어요?”

“방금.”

“아니 인기척이라도 내고 오시지. 근데 은신술이 무시무시하신데요?”

“은신술은 염병, 너희들 감각이 둔한 거다.”

투덜거리던 서량이 모닥불 앞에 털썩 앉았다.

“배고프다, 육포 있으면 좀 줘 봐.”

마동필이 공손하게 육포를 건넸다.

서량은 열심히 육포를 씹었다. 그동안 먹는 둥, 마는 둥 제대로 식사를 안 해서 그런지 딱딱한 육포도 꿀맛이었다.

위홍련이 묘한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배가 고프실 만도 한데요.”

“쩝쩝, 근데 뭐?”

“그 뻣뻣한 걸 용케 맛나게 씹으시네요.”

“그럼 맛없게 씹으랴?”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요. 산해진미를 입에 달고 사셨을 텐데 너무 맛있게 드시니까.”

“소싯적엔 이것보다 만 배는 더 맛없는 육포로 연명했다.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뭘.”

서른도 안 된 청년이 소싯적이라고 하니 참 안 어울린다.

뭐가 어찌 되었든 평소의 공자님으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다. 위홍련이 품에서 손바닥만 한 납작한 수통을 꺼냈다.

“한 모금 하실래요?”

“어, 고마워. 근데 뭔 놈의 수통이 이렇게 작냐?”

수통을 입에 문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너?”

“헤헤, 야숙할 때 몸 좀 덥히려고요.”

“참나, 감찰사와 대주로 만난 거라니 뭐라니 하면서 술까지 가져왔어?”

“임무 끝나고 홀짝이려고 가져온 거예요. 아끼던 거니까 조금만 드세요.”

서량은 피식 웃어 버렸다. 평소엔 참 귀찮기 짝이 없는 녀석인데 오늘은 왠지 고마웠다. 위홍련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편하게 생각하자.’

감찰사 임무를 맡았으니 이 업무까지는 하자. 중간에 튀어 버리면 마동필과 위홍련에게도 징계가 떨어질 테니까.

도주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난 이후에 하자. 뭐, 그게 그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맡은 일까지는 마무리하는 게 좋겠지.

‘이별을 마음먹었다고 미리 선 긋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남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결국 내가 편해지고자 하는 이기심이잖아?’

어차피 함께할 수 없는 인연이었다면 마지막까지 편하게 가자. 초감각이고 자시고 일단은 마음 가는 대로 달려 보는 거다.

‘그래, 그럼 되지.’

세 사람이 웃으며 담화를 나누었다.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진 제대로 된 대화였다.

좋아! 적사가부터 제대로 한번 털어 보자!

다음 날 정오.

활력 넘치게 말을 달린 덕에 예상 시간보다 한 시진 빨리 적사가에 당도한 일행의 앞을 일단의 무리가 막아섰다.

“신교에서 오셨소?”

선두에 선 위홍련이 오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의 장, 적사가의 이가주(二家主) 홍상호(紅像皓)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부 공사 중이오. 인원을 모두 수용하기 어려우니 호위 부대는 다른 곳으로 모시겠소.”

“……?”

“감찰 대리만 날 따라오시오.”

위홍련의 얼굴이 대번에 차갑게 굳어졌다.

당장이라도 쌍욕을 뱉어 내기 직전.

덜컥.

문이 열리고 서량과 마동필이 내렸다.

서량은 홍상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홍상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서량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서량이 툭 던지듯 물었다.

“가주?”

“……이가주 홍상호라 하오.”

“이가주? 가주가 아니라 이가주가 나왔어?”

“가주께서는 지금…….”

“위 대주.”

위홍련이 고개를 숙였다.

“예, 감찰사님.”

서량이 몸을 돌렸다.

“이것들은 자세가 안 됐다. 본교를 우습게 보는 놈들이라 따로 감찰할 것도 없다고 보고서 작성해.”

“……!”

“시간 아깝다. 거경가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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