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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17화 (117/774)

117화. 나를 깨닫다 (1)

홍상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각 안에 모든 부서의 삼 년 치 장부를 내놓으라고? 이런 미친!”

쾅!

울화를 참지 못하고 휘두른 주먹에 벽이 움푹 꺼졌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가주가 직접 명령을 내렸다고 하지 않나.

그는 가주가 얼마나 냉혹한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명을 어기면 혈육이라도 봐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때, 총관 장우휘가 다가왔다.

“장 총관?”

“이가주님.”

“어떻게 된 일이오? 모든 부서의 삼 년 치 장부를 이각 안에 내놓으라니?”

장우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혈은 했지만 볼에 난 상처가 여전히 붉었다.

“짧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일단은 가내 장부들을 모두 수거해야겠습니다.”

홍상호가 이를 갈았다.

“가주께서는 대체 뭘 하셨단 말이오? 한두 곳도 아니고 가내 모든 부서의 장부를 확인해?! 이건 우릴 업신여기는 처사가 아니오!”

“그래서 문제입니다.”

“뭣이라?”

“감찰사가 본가 역시 신교 휘하에 딸린 집단이란 말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이 오만방자한!”

“그 앞에서 어찌 권속이 아니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상황이 이러하니 신속하게 움직여 주셔야겠습니다.”

홍상호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혔다.

“좋소. 하지만 이 일이 끝난 후 그 애송이 감찰사 놈을 제대로 처리해야겠소.”

장우휘의 눈이 깊어졌다.

무공보다 차가운 이성을 무기로 삼는 그였지만 서량에게 당한 모욕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 역시 굳이 홍상호의 말이 아니더라도 흐지부지 넘기고 싶진 않았다.

그때였다.

‘……?’

홍상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우휘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

“이가주님?”

“음?”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오. 괜히 으슬으슬해서 그렇소.”

“의원들에게 말해 놓겠습니다. 탕약이라도 한 채 지어 드시지요.”

“그래야겠소. 이거야 원, 근래 원체 바빠서…….”

콰아앙!

갑작스레 들려온 폭음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동시에 구름처럼 퍼져 나가는 강력한 살기.

“……!”

장우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보다 기감이 더 뛰어난 홍상호는 순간적으로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느꼈다.

‘무슨 살기가……!’

압도적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이 안 된다. 가히 초월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살기에 두 사람의 몸은 확 굳어 버렸다.

‘잠깐!’

이 살기가 뻗어 나오는 방향은?

“장 총관! 내원의 마인들을 가주실의 후원으로 집결시키시오!”

“예, 예?”

“정신 차려!!”

짝!

눈앞이 번쩍할 정도로 아픈 따귀였다. 지혈해 둔 상처가 퍽! 소리를 내며 다시 터졌다.

하지만 그 덕에 장우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만약 홍상호가 뺨을 때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멍하니 굳어 있었을 것이다.

“마인들을 후원으로 집결시키시오! 당장!”

“예!”

홍상호의 얼굴에 불안함이 감돌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 * *

퍼어어엉!

강력한 폭음은 소리에 못지않은 충격파를 발산해 냈다.

뒤로 훌훌 날아간 위홍련의 얼굴이 실로 볼만해졌다.

‘빌어먹을!’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에 시뻘건 번개를 흩뿌리는 죽음의 뇌공(雷公)이 있었다. 순식간에 구유마공의 지저옥관귀문식까지 개방해 버린 서량의 무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마 씨! 공자님께서 갑자기 왜 저러시는…….”

“광마대를 호출하시오! 어서!”

차아아앙!

순식간에 병기 보관대에서 포아검을 들고 온 마동필이 그녀에게 검을 던졌다.

얼떨결에 포아검을 받은 위홍련이 마동필을 보았다.

마동필은 이미 그녀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황금빛 마기를 발산하며 먼지구름을 돌파하는 그의 신법은 가히 눈이 부신 것이었다.

“젠장!”

앞뒤 잴 시간이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싸움이 벌어졌으니 병력을 불러야 함이 옳다.

위홍련이 재빨리 후원을 이탈했다. 진즉에 뽑아 든 포아검에서 강력한 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쿠우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렸다.

천 근, 아니 만 근의 무게감이 세상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폭발하는 살법과 받아치는 장법, 그 속에서 피어나는 날카로운 사기(邪氣)가 미친 듯이 얽혀 들고 있었다.

“공자님!”

번쩍!

금강야차마공을 개방한 마동필은 불가의 천왕(天王)이 아닌 마계(魔界)의 마왕(魔王)이 되었다. 웅혼한 마기가 시야를 부옇게 가린 먼지구름을 단숨에 걷어 냈다.

마침내 육안으로 완전하게 확인되는 전황.

사방으로 퍼진 적사가의 마인들이 서량을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서량은 방령을 노리며 달려들었고, 그 앞을 홍관이 막고 있었다.

마동필의 신법이 불을 뿜었다.

콰아앙!

순식간에 서량의 등 뒤에 선 그가 묵왕검을 뽑아 들었다.

지이이이잉!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검명(劍鳴)이 실로 우렁찼다. 극에 이른 황금빛 검기가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냈다.

“감히!”

마동필이 묵왕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헉!”

“크윽!”

네 명의 노고수들이 저마다 뒤로 물러났다.

절반 이상의 고수들이 홍관의 명을 받고 뛰쳐나가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묵왕검을 쥔 마동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하다.’

저들 네 명의 노고수들은 적사가의 장로들이었다. 비록 누구 하나 초절정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했지만, 하나하나가 자신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기습으로 검을 휘둘러 다행이었지 순수한 정면 승부였다면 지금쯤 상당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이런…….’

입술을 깨무는 마동필.

장로 중 하나인 홍인(紅忍)이 외쳤다.

“이놈! 썩 비키지 못할까!”

마동필은 대답하지 않은 채 개방시킨 금강야차마공의 힘을 더욱 세심히 조절했다.

한순간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죽는다.

‘죽는 건 상관없지만…….’

여기서 자신이 죽으면 공자님이 더더욱 위험해진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이들만큼은 막아야 한다.

치이이익!

묵왕검에서 허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마기를 극한까지 담아 낸 덕분이었다.

마동필이 끝까지 장로들을 주시하며 외쳤다.

“공자님! 일단은 이 자리에서 벗어나시지요!”

그의 성격상 어지간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을 말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량의 살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죽는 이 없이 사태가 마무리되어도 이유 없이 선공을 날린 쪽은 서량이었다. 적사가에서 그것을 걸고넘어진다면 아무리 삼공자에 감찰사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잠깐.’

이유 없이?

‘분명 뭔가를 들었어.’

너무 갑작스러운 사태라 흘려들었지만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

‘……비요왕?’

- 너. 비요왕, 그 개 같은 년과 무슨 사이냐?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갑자기 십대고수 중 일인인 비요왕의 별호가 왜 나오는 거지?!

콰앙!

‘이런!’

빈틈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아닌, 호위 대상의 죽음으로.

“공자님!”

다급히 외친 마동필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정!

훅! 하고 끼쳐 드는 충격파에 서량의 의복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하지만 서량은 마동필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지만 무시했다.

이 일은 결코 과격하게, 단순하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래선 안 된다.

이성이 끊임없이 외쳐 댔으나 터질 것 같은 분노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정일룡 때와 같았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수, 그리고 그 원수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자를 마주칠 때마다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그 크기를 모르고 있었던 한(恨).

너무나도 크고 짙었기에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한이 지금 이 순간 폭발해 버린 것이다.

서량의 두 주먹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퍼퍼퍼퍼펑!

목표 대상에 닿기도 전에 공기부터 터져 나간다. 쏟아지며 부서지는 폭포수처럼 수십 개로 흩어진 주먹이 단숨에 방령에게 날아갔다.

제천기 최속의 무공, 연환비폭권이 발동된 것이다.

퍼어어어엉!

수십 번의 주먹질을 막아 내는 강력한 장법.

방령의 앞에 선 홍관이 이를 갈았다.

“이놈! 감히 예가 어디라고……!”

파아악!

대답도 하지 않는다. 서량이 귀찮다는 듯 다리를 휘둘렀다.

장애물을 치워 버리기 위해 휘두른 각법(脚法)이지만 그 위력은 심상치가 않았다. 제천기의 각법, 암룡각(暗龍脚)이었다.

퍼어억!

홍관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각법을 막은 팔뚝에서 저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적사가 최강의 무공, 적화교룡마공(赤火蛟龍魔功)으로 보호받는 육신임에도 통증이 느껴지자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어지간한 보검으로 내리쳐도 베이지 않는 강철의 피부가 아니던가.

“이!”

콰아앙!

서량이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실로 강력한 수공(手功)이었다. 공격 중 절반 이상을 흘려 냈음에도 잔존하는 충격파에 관절이 삐걱거릴 정도였다.

과연 적사가주, 마도칠가의 일익을 담당할 만한 무공이었다.

당연하게도 서량은 그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팟!

홍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물러난 서량의 몸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그때,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불처럼 타오르며 주변을 잠식하던 살기의 농도가 후방에서 확 짙어졌다.

구천축지신보를 펼친 서량이 홍관과 방령의 뒤로 돌아간 것이다.

파아아악!

보법의 속도에선 서량을 따라잡기 힘들지만, 보법의 절묘함에서는 서량 못지않은 홍관이었다.

홍위문이 구사했던 교룡보법이 펼쳐졌다.

같은 보법이지만 수준 차이가 엄청났다. 그의 신형이 늘어진다 싶던 순간, 어느새 폭산경을 내리치려는 서량의 앞에 그가 나타났다.

콰르릉!

서량이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홍관도 마찬가지였다. 주춤거린 것이 전부였지만 실로 강력한 폭산경의 폭발력에 홍관의 움직임에도 순간 제약이 생긴 것이다.

홍관의 눈이 흔들렸다.

‘이럴 수가!’

분명 실력은 자신이 한 수 위다. 몇 번 부딪쳐 보지 않았지만 확실한 실력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허공섭물로 찻잔을 떠오르게 하거나 식은 찻물을 끓인 것을 보며 놀랐지만, 피부에 확 와닿는 실감은 없었다.

지금은 달랐다. 손속을 마주해 보니 보통 대단한 놈이 아니었다. 저 나이에 어찌 저만한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놀라움은 곧 당황을 불러일으키고, 당황은 분노를 키우는 땔감이 되었다.

사아아악!

홍관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서량의 살기가 불처럼 거칠고 화려하다면 홍관의 살기는 어둡고도 습했다. 두 사람의 무공과 성향은 정반대를 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찰사랍시고 봐줬더니 정녕 피눈물을 쏟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콰르릉!

홍관의 몸이 흔들렸다. 그의 뒤에 선 방령의 몸도 흔들렸다.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극에 이른 분노로 진각을 내리친 서량의 힘이 너무 강해서 땅이 울린 것이다.

불그죽죽한 살기를 토해 내는 서량의 안광.

그가 한옆으로 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강력한 염원.

그 염원에 내공이 실리니 손에 닿지 않는 물체가 저절로 주인을 찾아온다.

칠대천마의 애병, 칠야도가 순식간에 그의 손안으로 날아들었다.

차아앙!

칼을 뽑은 서량이 으르렁거렸다.

“비켜.”

“이놈!”

“비켜, 이 새끼야!!”

번쩍!

살기의 폭풍을 담은 붉은 초승달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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