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나를 깨닫다 (4)
폭산경은 내가중수법의 일종으로 그 힘을 극대화한 일격필살의 암경(暗勁)이다.
암경이라고 해서 발산하는 힘까지 은밀하지는 않다. 일반 발경보다 진기를 훨씬 세심히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요란해질 위험이 있다.
그런 암경의 기척을 한계까지 죽이고 폭발력까지 가미한 것이 폭산경이었다.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몇 번이고 쓴 무공이지만 실상 초절정고수라도 손쉽게 구사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서량은 거기서 하나 더 얹었다.
내부를 터트리는 폭산경 위로 외부부터 부수고 들어가는 강벽수의 기운을 담았으며, 강벽수의 표면 위에 또다시 폭산경을 얹었다.
중첩된 암경으로 폭발의 위력이 커지느냐?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여일(如一)한 위력의 폭산경을 이중으로 맞는다면? 인화도법의 연환식에서 보인 빈틈 따위 없이, 일격에 중첩해서 터트린다면?
일차 가격으로 인해 흐트러진 진기의 방벽을 다시 세울 찰나의 시간조차 없다면?
쾅! 콰르릉! 콰앙!
응축된 암경의 폭발에 홍관이 훨훨 날아가 땅을 굴렀다.
눈, 코, 입은 물론 좌우 귀까지, 칠공(七孔)에서 피가 쏟아졌다. 온 얼굴이 벌건 핏물로 뒤덮인 홍관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웨에엑!”
서량이라고 멀쩡하진 못했다. 한 발이었다면 모르되 두 발을 중첩해 코앞에서 터트렸으니, 그에게도 충격이 갈 수밖에 없었다.
파아아악!
연신 피를 토하면서도 질주하는 서량.
한옆에 꽂힌 유성쌍도까지 재빠르게 챙긴 그가 순식간에 홍관의 마혈을 짚었다.
서량이 외쳤다.
“모두 멈춰!!”
쩌어어어엉!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에도 퍼져 나가는 목소리에 엄청난 마기가 실려 있다.
피독단(避毒丹)을 취하고 전권으로 들어오려던 적사가의 병력이 움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동필과 위홍련, 광마대는 물론 이곳을 보고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훅! 훅!”
연신 숨을 몰아쉬는 서량. 복부에 구멍이 뚫리고 극심한 내상까지 입었지만 눈빛만큼은 형형했다.
“움직이지들 마라. 난도질 치기 전에.”
죽이겠다는 말보다 더 섬뜩한 발언이다. 하물며 내상을 입은 몸으로도 여전히 막강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으니 누구도 그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서량의 상태를 면밀히 주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충격으로 혼비백산할 지경이었다.
홍관이 당했다.
마도 무림에서는 구대마존을 제외하고 손에 꼽힐 만한 무력의 소유자라고 정평이 난 그였다. 칠가의 가주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런 초고수가 서른도 안 된 후기지수에게 당해 쓰러져 버렸다. 상대가 교주의 제자라는 걸 감안해도 불가해(不可解)한 상황이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쓸어 보던 서량은 내심 안도했다.
‘무리한 보람이 있었어.’
이 전투는 차근차근 공을 들여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 아니었다. 조금, 아니 심하게 다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할 전투였다.
나이 어린 자를 업신여기는 홍관 특유의 성정이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격장지계는 시도도 못 했을 것이다.
‘후속 전투가 일어나지만 않으면 돼.’
서량은 오른팔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폭산경을 중첩한 것 자체가 위험한 시도였는데, 그 사이에 강벽수까지 둘러쳤으니 내상이 훨씬 심화됐다.
덕분에 지금 오른팔 뼈 전체에 금이 가 있었다. 구유마기로 단단하게 경화(硬化)시켜 두었기에 움직일 수라도 있는 것이다.
‘만약 강벽수로 충격을 해소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꼴이 됐을 거다.’
그런 무공에 직격으로 당하고도 죽지 않은 홍관이나, 그런 무식한 공격을 터트린 서량이나 독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동필.”
“예, 예!”
서량이 방령을 노려보았다.
방령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잡아.”
파아아악!
마동필이 빠르게 움직였다. 지옥풍의 바람과 무간도의 열기로 독기의 대부분을 날려 놓았기에 마동필의 움직임에도 제약이 없었다.
“이익!”
방령의 눈이 다시 시커멓게 변했다. 서량에게 시도하려 했던 최악의 사공, 현령귀안술(顯靈鬼眼術)을 펼치려는 것이다.
하지만.
촤아아악!
“꺄아아악!”
방령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상체에 사선의 검상(劍傷)이 새겨졌다.
거의 뼈에 닿을 정도로 막강한 검격이었다. 분노한 마동필의 검은 그렇게나 단호했다.
“이!”
설마 현령귀안술이 안 통할지는 몰랐다. 그녀는 어느새 날카롭게 날이 선 손톱으로 마동필의 목을 노렸다.
묵왕검이 냉정하게 움직였다.
서걱!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네 개가 날아갔다.
퍼어어억!
단숨에 복부를 가격당한 방령이 축 늘어졌다. 재빨리 마혈을 짚고 지혈까지 마친 마동필이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멨다.
의식을 잃어 가면서도 방령은 의아했다.
왜? 왜 현령귀안술이 통하지 않은 거지?
그 의문은 서량에게도 있었다. 방령의 사안(邪眼)은 잠시나마 자신을 움찔하게 할 정도로 고차원적인 사술이었다. 한데 마동필은 그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방령을 든 마동필이 서량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너는?”
“저는 괜찮습니다.”
마동필은 제법 침통해 보였다. 이번 싸움에서 나름 활약을 했지만 서량을 제대로 호위하지 못한 것도 맞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턱대고 일으킨 전투다. 넌 네 몫 이상의 일을 했어. 풀 죽어 있지 마라.”
“예.”
“아니 근데 넌 이년 사술이 아무렇지도 않…….”
그때, 홍상호가 앞으로 나섰다.
“지금 뭐 하자는 것인가!”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감히 본가에서 가주를 습격하고 이 난리를 쳐 놔?! 아무리 네놈이 교주님의 제자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서량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입 안 닫아?”
“닥쳐라! 당장 가주님을 풀고 순순히 무릎을 꿇도록! 하면 최소한의 아량을 베풀어…….”
순간 한 줄기 검기가 홍상호에게로 날아갔다.
쩌어엉!
홍상호의 몸이 주춤했다. 기습적으로 날아들었는데도 손아귀가 저릴 정도로 강한 검기였다.
사락!
어느새 서량의 앞에 선 위홍련이 무시무시한 안광을 토해 냈다.
“신교의 삼공자이시자 현직 특수감찰사 면전이다. 그대야말로 언사를 똑바로 하도록.”
“이런 쳐 죽일!”
“경고는 한 번이다. 경고를 무시할 경우 본 광마대는 적사가를 황색적도에서 적색적도(赤色敵徒)로 전환, 적도들의 완전한 섬멸(殲滅)로 임무를 변경할 것이다.”
“……!”
“우리도 죽겠지만 너희도 팔 하나 날아갈 각오는 해야 할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본교로 전해질 테지.”
스륵.
위홍련이 홍상호에게 포아검을 겨누었다.
“결국 너희는 어떻게 해도 멸문이야.”
오싹!
적사가의 마인들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신교 최악의 부대라는 광마대의 대주가 공언하는 말이다.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위홍련은 그들이 생각할 시간 따위 주지 않았다.
“광마대는 전원 광룡특진(狂龍特陣)을 펼쳐라!”
촤라라락!
눈만 드러난 복면을 쓴 마귀들이 순식간에 서량의 주위를 에워쌌다.
완벽한 호위 너머로 불꽃 같은 살기를 피워 낸다. 요인 호위에 특화된 진법임과 동시에 적도들의 공세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광마대의 특수 진법이었다.
사아아아악!
광마대 모두가 살기를 피워 올렸다.
총원 이백, 현 인원 백이다. 고작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 그 절반이 뿜어 내는 기파가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서량과 마동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렴풋이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이렇게나 다른 것이다. 실제 임무에 투입되었을 때의 광마대의 기세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일 조까지 왔다면 진짜로 한 번 해볼 만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이!”
분노로 몸을 떠는 홍상호.
서량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얌전히 길 터라.”
“…….”
“나는 이 여자 하나만 호송해서 가면 된다. 적사가주 따위 데려가 봤자 쓸모도 없어.”
으드득.
홍상호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형을 좋아하진 않지만 저런 애송이의 입에 함부로 담기는 것 또한 달갑지 않았다. 적사가주는 남의 입에서 가벼이 오르내릴 이름이 아니다. 한 가문의 수장을 두고 저따위 말을 하다니, 정말이지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홍상호 옆에 서 있던 장우휘가 입을 열었다.
“감찰사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뭔 소리냐.”
“이제 와서 누가 먼저 선공(先攻)을 가했느냐는 의미가 없겠지요. 다만 저희는 일을 평화롭게 해결하길 원합니다.”
“그래서?”
“얌전히 가주님을 놓아주시고 감찰 결과에 모두 적합 판정을 내려 주십시오. 하면 이대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위홍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이대로 보내 주겠다?”
“그렇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감찰사님을 믿겠습니다.”
장우휘의 눈이 번뜩였다.
“하지만 이대로 버티신다면 저희 측에서도 강경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다.”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네가 가주 대행이냐?”
“……?”
“내 알기로, 가주가 없을 때는 이가주에게 가문의 전권이 위임되는 걸로 아는데 틀렸나?”
“물론입니다.”
“그럼 건방 떨지 말고 뒤로 빠져, 너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까부터 뒤에 서서 쫑알쫑알 말이 많더군. 난 신교의 특수감찰사다. 자격도 되지 않는 놈과 시간 죽이잡시고 말장난이나 하고 싶지 않아.”
장우휘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내 마인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자존심이 된통 구겨진 것이다.
“잊으신 모양인데, 현재 귀하들은…….”
그때 홍상호가 그의 말을 끊었다.
“내가 이가주다. 나와 대화하도록 하지.”
장우휘의 눈이 흔들렸다.
“이가주님.”
“장 총관은 뒤로 빠지시오. 더 이상의 참견은 용납하지 않겠소.”
장우휘는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이 자존심만 센……!’
가끔 실리보다 자존심이 중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실리를 취해야 할 때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주가 적들의 손에 잡혀 있지 않은가. 이런 쪽으로 별다른 경험이 없는 홍상호는 뒤로 빠지는 게 옳았다.
“이가주님, 일단은 가주님의 안전부터 약속받아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절대로 저들을 자극하지 마십시오. 자칫하다간 신교의…….”
홍상호가 버럭 소리쳤다.
“이만 입 닥치고 뒤로 빠지시오! 한 번만 더 주제넘게 나선다면 그땐 가주 대행 권리로 처벌할 것이오!”
장우휘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후원 벽에 서서 서량 일행을 내려다보던 홍상호가 대담하게 움직였다.
파악!
단숨에 일행 앞, 오 장 거리까지 들어온 홍상호.
스르륵.
광마대원 둘이 좌우로 빠지자, 서량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홍상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군.”
“가주가 강하더군.”
“내상만이 아닌데? 중독이 심한가?”
실제로 서량의 흰자위는 누렇게 떠 있었다. 진기로 감싸 한곳으로 몰아 두었지만 워낙 독기가 강해서 자꾸만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완성된 흑골사영수의 독기에 당하면 그렇게 되지. 내력이 심후해서 버티는 모양인데 그대로 두면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외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위홍련은 끝까지 홍상호를 노려보았지만 언뜻 걱정의 기색을 내비쳤다.
“해독제를 주겠다. 하니 얌전히 가주를 이대로 넘겨.”
“닥치고 길이나 트지.”
“그렇게 죽고 싶나?”
주르륵.
서량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치솟은 독기가 혈관에 상처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우우웅.
마기가 제멋대로 타올랐다. 신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자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서량이 흐릿하게 웃었다.
“홍위문, 그놈의 독기보다 훨씬 강하군. 역시 가주는 가주야.”
홍상호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번뜩이는 눈빛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그거 알고 있나?”
“뭘?”
“극심한 내상, 중독까지 된 몸.”
“…….”
“그 몸으로 넌 나와 너무 가까이에 섰어.”
“그래서? 날 기습해서 역으로 인질을 잡을 생각인가?”
우우우웅!
홍상호가 씨익 웃었다.
“정확해!”
파아아아악!
장우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대는 교주의 제자이자 특수감찰사다. 안 그래도 최악의 상황에서 저런 짓을 하려 하다니?!
“안 돼!!”
마동필도, 위홍련도 기겁하여 움직였다. 설마 상대가 저런 극단적인 수를 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거리의 차이가 너무 났다.
‘건방진 놈! 네놈을 사로잡아 반드시…… 어?’
웃으며 손을 뻗는 홍상호.
찰나의 순간,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웃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서량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왜?!’
그때, 세상이 황금빛 광채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황금빛으로 가득 찬 세상이 거꾸로 뒤집혔다.
뭐지? 왜 세상이 뒤집혀 있지?
‘이상하군…….’
콰드드드득!!
거대한 짐승이 홍상호의 목을 물어뜯었다. 뻗은 손은 서량의 옷깃에도 닿지 않았다.
서량이 조소를 지으며 장우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네가 입을 열어야겠구나.”
크르르릉.
피투성이가 된 서량의 옆.
황금빛 서기가 도는 털을 가진 거대한 짐승이 홍상호의 목을 물곤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우리를 뭐, 어쩌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