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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21화 (121/774)

121화. 나를 깨닫다 (5)

사람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상황을 목도하게 되면 충격에 몸이 굳는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러했다. 서량이 가주를 쓰러트린 것도 상식 밖의 일이었지만, 서량의 옆에 나타난 이름 모를 짐승의 존재는 모든 이들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스르륵. 스르르륵.

거대한 꼬리가 연신 좌우로 흔들린다.

황금빛 털이 풍성한 꼬리는 서량의 키보다도 컸다. 길쭉하게 뻗은 다리 역시 꽤 장신인 서량의 다리와 비슷할 만큼 길었다.

다리 길이와 꼬리에 비하면 몸통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다. 그래도 어지간한 표범보다는 컸고, 범보다는 약간 작았다.

그리고 얼굴.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짐승의 모습이 이와 같을는지 모르겠다. 날렵하게 뻗은 주둥이와 코, 신비로운 청색 동공과 뒤로 뻗은 커다란 귀에서 귀티가 흘렀다.

크기는 위압적이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굉장히 고귀해 뵌다. 언뜻 보면 여우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늑대 같기도 한 독특한 생김새였다.

그러나 누구라도 한 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을 만큼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설령, 주둥이에 뜯겨 나간 사람의 머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해도.

스르륵.

서량이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우가 눈을 감고 그의 팔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친근감의 표시였다.

“……!”

충격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이윽고 공포가 어렸다.

거대한 여우가 사람의 머리를 입에 물곤 친근감을 표시한다.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극심한 두려움을 품게 했다.

감탄을 넘어 감동이 일 만큼 아리따운 저 짐승이 살의를 품었을 때, 얼마나 잔혹한 광경을 보여 줄 것인가.

기습이었다고 한들, 이가주인 홍상호조차 단숨에 물어 죽인 저 짐승의 능력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금호.”

크르릉.

나직이 목을 울리는 금호.

홍상호의 머리가 툭 하고 떨어져 바닥을 굴렀지만 그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잘 왔다.”

금호는 예전처럼 앙증맞게 짖지 않았다. 그저 심연과도 같은 눈으로 서량을 주시하며 조용히 친근감을 내보일 뿐이었다.

‘신기하군.’

놀랍다. 사람 팔뚝만 했던 귀물, 아니 영물(靈物)이 어찌 이리 한순간에 커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편안했다. 이런 상식 밖의 변화를 눈으로 보고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사락.

뒷발을 접어 앉는 금호. 몸통보다 큰 꼬리는 여전히 하늘로 치솟아 살랑거린다.

앉아 있는데도 그 키가 서량의 가슴께에 올 정도였다. 그 신비한 자태를 보자면 ‘수호신(守護神)’이라는 세 글자가 떠올랐다.

서량이 장우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장우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거친 인생을 살아와 경험이 충만한 그도 감히 이런 식의 변수가 터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지금도 저 거대한 여우를 보고 있자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해 봐.”

사아아아악!

서량의 몸에서 희뿌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금호의 등장과 함께 체내의 탁기가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과다 출혈로 어지러웠던 머리가 맑아졌고, 용암처럼 부글거렸던 구유마기도 잠잠해졌다.

홍관이 주입한 독기마저도 감히 날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를 어쩌겠다고 했지? 뭐? 감찰에 적합 판정을 내리라고?”

“…….”

“아직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

모두의 시선이 장우휘에게로 향했다.

부르르.

꾹 쥔 주먹이 떨려 왔다. 그는 지금껏 살아오며 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게까지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너희는 생각 자체가 글러 먹었어. 가주도 그렇고, 우리의 관계에서 너희가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이곳이 너희 영역이라 그런가?”

“…….”

“가주 밑에서 일하는 놈들답다만, 너희의 제안은 시작부터 잘못됐다. 너희는 애초에 제안을 할 처지가 아니야. 부탁이라면 모를까.”

“……!”

똑. 똑.

서량의 검지 끝에서 자색 섞인 핏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홍관이 주입한 독기가 핏물에 섞여 빠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금호의 영기(靈氣)와 동화된 서량의 몸은 이제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파지지지직!

명치에서부터 동심원을 그리며 뿜어져 나오는 붉은 번갯불이 전신을 뒤덮었다. 마침내 구유마공이 본래의 힘을 되찾은 것이다.

우우우웅!!

명치, 중단전(中丹田)이 거세게 요동쳤다.

몸이 회복될수록 마공이 급속도로 정상화된다. 중단전에 콱 박혀 있는 모종의 기운이 마르지 않는 영수(靈水)의 샘이 되어 무공 그 자체를 되살아나게 하고 있었다.

서량은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운이 잠재되어 있는지. 이 신화나 전설에서나 언급될 법한 영물이 왜 자신과 무형의 기(氣)로 소통할 수 있는지.

‘영죽!’

고죽림의 가장 깊숙한 곳.

새끼였던 금호를 처음 봤을 때 발치에 걸렸던 그 자그마한 죽순의 기운이 중단전에 고스란히 틀어박혀 있었다.

훗날 또 다른 깨달음이 온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 녹여 낼 수 있는 기운은 아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녹일 필요가 없다. 극도로 순수한 영기가 중단전을 보호하며 육신을 최상의 상태로 바꿔 주고, 진기의 농도마저 끊임없이 짙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서량이 금호를 돌아보았다.

금호는 여전히 신비로운 눈빛으로 서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랬군.’

이 죽순은 고죽림의 핵(核)이나 마찬가지다.

양은 많지 않지만 그 자체로 고죽림을 지탱하고 있는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금호는 이 죽순 덕에 고죽림의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걸 내가 빼앗아 버렸던 것이로군.’

말하자면 금호는 자신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죽순의 핵을 따르고 있었던 것뿐이다.

서량의 얼굴에 미안함이 어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때 이 기운을 다시 되돌려 주마.’

말하지 않아도 그 눈빛을 읽은 것일까.

금호가 서량의 어깨에 머리를 비볐다. 단순히 죽순 때문에 자신을 따른 게 아니라는 듯했다.

미소 짓던 서량이 다시 장우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네놈이 최고 책임자가 된 것 같은데, 이만 결단을 내리지 그래?”

“…….”

“길을 터라. 광마대주의 말마따나 무력 충돌은 너희에게 최악의 결과를 선사할 것이다.”

“하지만 본가의 장부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시 가져와. 지금 당장.”

“…….”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숨기려 하지 마라. 나는 그저 투명한, 있는 그대로의 인과(因果)를 원할 뿐이다. 감찰도 마찬가지야. 지 금 이 자리에서 본 그대로를 보고할 것이다.”

장우휘의 얼굴에 혼란이 깃들었다. 정말 그래도 될까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가주의 막무가내식 행동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차라리 이곳에서…….’

그때였다.

크르르릉.

깜짝 놀란 장우휘가 금호를 바라보았다.

금호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가만히 있을 때는 그 고고함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는데,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세상 어떤 맹수보다도 흉포해 보였다.

침을 삼킨 장우휘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가주는 사경을 헤매고 있고 이가주는 이름 모를 짐승에게 목이 달아났다.

상대가 적이라면 모르되 저들은 적이 아니었다. 감찰사의 말마따나 크게 보면 적사가 역시 신교 휘하의 조직일 뿐이었다.

자존심을 찾다가는…… 진짜로 멸문의 길을 걸을 것이다.

“각 부서의 장들은 다시 삼 년 치 장부들을 가져오도록 하시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구유마공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내외상이 심각하여 여전히 피로한 상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평온했으며, 동시에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를 명확하게 직시할 수 있었으니까.

잠시 후, 적사가 내 모든 부서가 각기 장부를 가져왔다.

장부를 보는 시간은 무척이나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한 부서의 장부를 확인하는 것만도 반나절을 족히 소모할 일이거늘 그 부서의 수가 십여 개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량은 한 부서의 삼 년 치 장부를 확인하는 데에 일각 이상의 시간을 쓰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속독(速讀)에 능한 그였고, 상단전도 크게 성장하여 신속한 이해가 가능했다.

거기에 천라육통식, 초고관(超考觀)을 발동하여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켰다.

“위 대주.”

“예, 감찰사님.”

“적을 준비가 되었나?”

“미리 세필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받아 적어. 장부를 확인해 본 결과, 몇몇 오차는 있지만 부서 대부분이 홍위문과의 비리에 연루되었다고 보이지 않음. 다만…….”

서량이 저 멀리 서 있는 홍여린을 바라보았다.

홍여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짧고 시끄러웠던 난동에서 일찌감치 몸을 피했던 그녀의 얼굴은 장우휘와 똑같이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감히 서량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내원 금화부(金華部)의 삼 년 전, 그리고 이 년 전 장부에 큰 오차가 있음. 자금의 흐름을 볼 때 누군가가 중간에서 빼돌린 정황이 포착됨.”

홍여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조사는 불가. 이른 시일 내에 재방문하여 상세한 조사를 권함.”

“적었습니다.”

“그대로 본교로 보내.”

“예.”

서신을 흔들어 먹을 말린 그녀가 작은 세통에 종이를 말아 넣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광마대원 몇 명도 같은 내용의 서신을 적어 통에 담았다.

이제 이 세통은 근처 지부에 전달될 것이고, 그 즉시 신교 본단으로 전서구가 날아갈 것이다. 천마신교에서 직접 기른 전서구는 어떤 새보다도 빨랐다.

서량이 양손을 뻗었다.

우우우웅!

멀찍이 놓여 있던 용린도와 칠야도가 손에 잡혔다.

유성쌍도를 등허리에, 칠야도를 요대 우측에 찬 그가 용린도를 척 하니 어깨에 걸쳤다.

가만히 장우휘를 보던 서량이 용린도를 휘둘렀다.

목표는 홍관이었다.

촤아아악!

홍관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장우휘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무, 무슨 짓입니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엔 지장 없으니까.”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치료를 하지 않으면 내가 침투시킨 마기가 가주의 단전을 공격할 것이다. 빨리 조치를 취한다면 약간의 공력을 잃는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늦으면 평생 쌓은 공력의 태반을 잃을 것이다.”

“……!”

“즉, 너희는 우리를 쫓을 새가 없어. 가주의 치료에나 만전을 기하도록.”

서량이 용린도를 등에 걸쳤다.

“서로의 안전을 위한 장치 정도라고 생각해라.”

절대로 자신들을 건드릴 수 없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서량은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이를 악물며 서량의 등을 보던 장우휘.

이내, 그가 한숨 쉬듯 말했다.

“길을 터라.”

그렇게 일행은 마차를 타고 유유히 적사가를 나섰다.

입가한 지 한나절 만에 칠가의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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