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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23화 (123/774)

123화. 늪에 빠져도 숨은 쉴 수 있다 (2)

“흐읍, 흐읍.”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방령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풀리지 않아.’

밧줄을 어찌나 꽁꽁 묶어 두었는지 피가 하나도 통하지 않는다. 그 상태로 반나절을 넘게 있었으니 눈앞이 노래질 지경이었다.

내공만 제대로 쓸 수 있었다면 단숨에 풀고 도주했을 텐데.

‘이익!’

방령의 목에 핏줄이 섰다. 그래도 봉인된 단전은 그녀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천사술력(天邪術力)은 천하에 산재한 사공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신공이다.

게다가 천사술력은 단순히 수준 높은 사공이 아니었다. 비요왕의 진신절학, 사신(邪神)의 심법을 익히기 전 꼭 대성해야만 하는 무공이었다.

천하제일사공(天下第一邪功)의 발판인 것 자체가 다른 사공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바, 천사술력을 익힌 사람의 단전을 봉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데도 봉인당했다. 단순히 기해혈(氣海穴)을 짚어 일시적으로 내공을 못 쓰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전자가 풀지 않으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 정도로 독한 수법이었다.

세상에 이런 점혈법도 있었던가?

‘이건 마학(魔學)이 아니야.’

마도학(魔道學)은 사도학(邪道學)과 유사하다. 정신을 제압하는 술수는 있어도 섬세한 점혈로 내력을 통제하는 수법에는 취약하다.

‘정파 무공의 제압술, 봉인법에 가깝다.’

아니, 확실하다. 많이 변형되긴 했지만 이 수법은 분명 정파 무공을 익힌 자들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그것도 태산북두(泰山北斗) 소림(少林)의 불혈수(佛穴手)와 극히 유사한…….’

덜컹!

방령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마차 문이 열린 것이다.

우우우웅!!

뻗어 나오는 강력한 마기.

불그죽죽한 마력이 방령을 감싸자 그녀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털썩!

방령이 땅에 떨어졌다.

몸도 제대로 못 놀리는 사람을 내동댕이친 격이다. 방령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깟 통증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푹!

방령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얼굴과 채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박힌 날렵한 청색의 칼. 은은한 보광(寶光)과 함께 흘러나오는 예기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잘 쉬었나?”

오싹!

칼날이 주는 예기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운 목소리였다.

밧줄에 묶여 고개조차 들 수 없는 상황. 보이는 것이라고는 시린 도신(刀身)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발이 전부였다.

물론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자신 앞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신교의 삼공자!’

우우웅.

유성청도가 은은한 마기를 받아 떨려 왔다.

“촉박한 건 아니지만 시간 낭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 그러니 묻는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도록.”

“…….”

“비요왕과 무슨 관계냐?”

방령은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어떻게 사부님을 알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타파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머리를 굴리는 방령.

하나 서량은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서걱.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주르르륵.

잘린 귀에서 피가 쏟아졌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방령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같은 질문을 다시 묻지 않는다. 말을 하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적사가주와는 어떻게 만났지?”

“그, 그건…….”

“그건?”

“……말할 수 없다.”

파악!

끔찍한 비명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이번에 잃은 부위는 왼 손가락 전부였다.

척.

방령의 몸이 굳어졌다. 유성쌍도가 그녀의 눈 밑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다음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눈 하나를 파내겠다는 경고였다. 침묵의 폭력이 주는 무자비한 공포에 방령의 호흡이 급속도로 격해졌다.

“네년의 사공은 적사가주의 마공과 무척 잘 화합되더군. 둘 사이의 어떤 거래가 있었나?”

방령의 몸이 덜덜 떨렸다. 눈 밑, 예민한 피부에서 올라오는 예기가 어찌나 섬뜩한지 입도 잘 열리지 않았다.

“나, 나는……!”

“나는?”

“나는…… 그저 사부님의 명을 받고 적사가주와 만났을 뿐이야.”

이제야 비로소 대답할 마음이 생긴 모양.

하지만 서량은 냉정했다.

푹!

비명은 갈수록 커졌다.

귀, 손가락 다음은 눈이다. 서량은 한 쌍이어야 할 신체 부위를 하나씩 날려 버리고 있었다.

실로 악랄하기 짝이 없는 고문이었다. 고통보다도 상실감에서 오는 공포가 몇 배는 더 컸다.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군. 다음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답하도록 해. 알겠나?”

“이…… 이 개자식!”

퍽!

방령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유성청도가 그녀의 어깨 관절을 후벼 판 것이다.

“대답을 들어야 하니 혓바닥은 놔두겠다만 주둥이를 함부로 놀린 대가는 치러야지?”

“끄으으윽.”

서량의 얼굴에 싸늘한 웃음이 맺혔다.

“얼추 본인의 상황을 깨달은 것 같으니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일각 뒤, 만신창이가 된 방령을 끌고 숲에서 나온 서량이 그녀를 아무렇게나 던졌다.

털썩!

“다시 포박해서 마차에 실어 놔.”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방령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연신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끔찍한 공포를 자아냈다.

방령의 머리채를 잡고 상태를 살핀 위홍련이 혀를 끌끌 찼다.

“이거 완전 걸레짝이 다 됐네.”

귀가 잘리고 눈이 파이고 손가락이 날아가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방령의 눈은 죽은 생선의 눈알과 비슷했다. 극도의 공포에 정신이 황폐해진 것이다.

육신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지만 정신적 충격은 치료하기 어렵다. 이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다면 상단전(上丹田)에도 막대한 타격이 갔을 터, 단전의 봉인이 풀려도 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상처는 어떻게 할까요? 지혈은 해 놨지만 상처는 가만두면 썩을 텐데요.”

“죽이지 않은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지.”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동필은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흠, 뭐 그도 그렇죠. 그나저나 알아낼 건 다 알아내셨습니까?”

“대충.”

“뭔데요?”

서량은 말없이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을 닦는 모습에 익숙함이 묻어 나왔다.

어깨를 으쓱한 위홍련이 방령을 다시 묶어 마차에 던져 두었다.

“근데 저 상태로 데려가 봤자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죽이죠?”

광마대주다운 말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고민 중이야.”

“공자님도 아시겠지만 사람이 저 정도로 맛이 가면 정상으로 돌아오기 어려워요. 본교로 데려가서 심문하려 해도 대답이나 똑바로 하겠어요?”

“안다.”

위홍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일행의 좌장은 서량이다. 서량이 그러라고 하는데 굳이 딴죽을 걸 필요는 없다.

“거경가로는 언제 출발할까요?”

“일단 쉬도록 해. 따로 하달토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위홍련이 자리를 나섰다.

마동필이 조심스레 물었다.

“공자님.”

“음?”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내상은 다 잡혔으니까 다른 곳의 회복도 빠를 거다.”

“그것이 아니오라…….”

“그럼?”

몇 번이나 입을 달싹이던 마동필은 결국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괜히 공자님의 신경을 곤두서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 없어.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봐.”

“…….”

“정 묻기 어려우면 됐고.”

“달라지셨습니다.”

서량이 마동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동필이 침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평소의 공자님과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굳이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말투도 상당히 딱딱했다. 그래서 더욱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래?”

“예. 정확히는 출교하실 때부터 평소와 다르셨습니다.”

“그랬겠지.”

“적사가로 들어가기 하루 전, 다시 평소의 신색을 되찾으셔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가내로 진입하고 나서도 걱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동필이 마차를 힐끔거렸다.

“저 여자가 나타나고 난 이후부터 공자님께선 완전히 달라지셨습니다.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요.”

“…….”

“저는 공자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감히 여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도 어떻게 말을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또다시 입술을 달싹이던 마동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저 걱정이 되어서 드린 말씀입니다. 주제넘은 발언이라 생각하신다면 그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동필아.”

“예, 공자님.”

“전에 한 번 내가 말했던 적 있었지? 넌 누군가에게 원한 품고 살지 말라고.”

마동필은 기억하고 있었다. 서량을 만난 이후, 그가 했던 모든 언행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수송대의 일이 마무리되고 교로 돌아가기 전에 말씀하셨지요.”

“그랬지. 내가 그때 또 뭐라고 했었지?”

“화를 내든 싫어하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런 감정들을 빨리 잊고 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

“그리고 난 이렇게 말했지. 그런 감정들을 나처럼 꽁하게 품고 살면 인생이 피곤해진다고.”

마동필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나도 어지간하면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피곤한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 원한이 있든 뭐든, 그냥 다 잊고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 살고 싶다.”

“공자님.”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를 깨달았어. 저년을 만난 후에 말이야.”

서량의 눈이 차가워졌다.

“나는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야. 아니, 살아온 인생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중요한 건 나는 원한을 죽어도 잊지 못하는 성격이란 것이지.”

“…….”

“더 이상 이게 피곤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난 내 마음이 후련해질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볼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 거겠지.”

물끄러미 서량을 주시하던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께서 어떤 인생을 선택하셨든, 저는 그저 공자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래선 안 되지. 너도 선택을 해야 해.”

“선택이라니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함께 한다? 안 돼, 그 정도로는 모자라. 그건 나한테도, 너한테도 피해야.”

마동필이 힘 있는 어조로 말했다.

“명령으로 시작한 관계이지만 저는 이미 선택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단단한 진심을 느낀 걸까.

서량의 얼굴도 더없이 진지해졌다.

“아마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를 거다.”

“괜찮습니다.”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 많을 거야.”

“상관없습니다.”

“내가 널 장기의 말처럼 써야 할 순간도 반드시 오게 될 거야.”

“일개 졸(卒)로 쓰셔도 기쁘게 명을 받겠습니다.”

마동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공자님께서 본교의 존귀한 신분이라서가 아닙니다. 공자님께서 위대한 무인이라서가 아닙니다.”

“…….”

“그래도 저는 공자님을 따를 것입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마동필이 자신을 따를 것임을.

하지만 그래도 선택지를 주고 싶었다. 본인이 선택한 길이라는 걸 자각하고, 않고는 큰 차이가 있을 테니까.

“위 대주에게 전해. 반나절 뒤에 출발한다고.”

“거경가입니까?”

“거경가는 가지 않는다.”

“하면 어디로……?”

서량의 눈이 빛났다.

“수년 동안 찾아가 보지 못한 보물 창고. 중원 전역에 흩어져 있는 창고 중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창고.”

“예?”

“호남, 형산(衡山)의 소향곡(素鄕谷)으로 간다.”

서량이 몸을 돌렸다.

금호가 커다란 꼬리를 살랑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

“위 대주한테 이 말도 전해. 거경가주한테 감찰 문서들을 갖고 소향곡으로 오라 하라고.”

“……!”

“안 오면 모조리 부적합 판정 때린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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