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24화 (124/774)

124화. 늪에 빠져도 숨은 쉴 수 있다 (3)

“…….”

서신을 보는 종리산(鍾里山)의 눈이 깊어졌다.

마주 선 종리천(鍾里川)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직권 남용입니다. 아무리 감찰사라지만 어찌 칠가의 가주를 오라 가라 한단 말입니까?”

“…….”

“절대 응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신교 본단으로 서신을 보내시지요.”

“뭐라고 보내란 말인가?”

“감찰사가 보낸 내용 그대로를 보내야지요! 이처럼 오만방자한 감찰사는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종리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

“가주님!”

“감찰권은 교주님께서 직접 하사하는 직책이다. 감찰사에게 불만을 품는다는 것은 교주님께 불만을 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전혀 다릅니다! 교주님께서 권한을 주셨다 하더라도 놈은…….”

“삼공자지.”

“……!”

“교주님의 제자이자 감찰사라면 신교의 의지 그 자체라 보아도 무방해.”

종리천이 이를 악물었다.

“해서, 이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하실 생각이십니까?”

“고민 중이다.”

“절대 응하셔서는 안 됩니다! 다른 칠가들이 우리를 어찌 보겠습니까?”

“다른 가문의 시선 따위에 신경 쓴 적 없다.”

“그래도 안 됩니다! 가주님은 그러실지 몰라도 본가의 마인들이 우습게 보이는 것은……!”

순간 종리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뭐라 했느냐?”

종리천은 아차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

“하지만……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직권 남용입니다. 본가의 마인들 사이에서도 분명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이건 직권 남용이 아니다.”

“예?”

“교주님께서 오라고 하면 가야 한다. 교주님께서 수그리라고 하면 수그려야 해.”

“하지만 감찰사가 교주님은 아닙니다!”

“교주님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지.”

“그것은……!”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종리산이 고개를 저었다.

“이쪽에서 합리적인 답안지를 들고 가도 신교에서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행위의 부당함을 부르짖는다고 해도, 따르라는 말 한마디면 우리는 굴종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

“모든 것은 마신(魔神)의 뜻대로. 그것이 바로 신교와 칠가 관계의 본질이다.”

종리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안다.”

“말이 되지 않음을 알고 계시면서도 따르실 생각이십니까?”

“따른다고 하진 않았다. 다만 고민은 필요하지.”

“그 말도 안 되는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종리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리천이 말을 이었다.

“가주님께서 신교와 단절하려는 이유는 칠가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입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움직이는 적사가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위험한 발언은 삼가도록.”

“여기서 감찰사의 요구에 응하신다면…… 그 일은 평생 요원하기만 할 겁니다.”

종리산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을 해야겠다. 이만 나가 보아라.”

종리천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자신의 형을 믿었다. 하지만 신교와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말로는 신교에서의 독립을 바란다면서 정작 보여 주는 모습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신교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을 보여 주곤 했다.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종리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종리천 역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종리천이 나간 가주실에 종리산만이 홀로 남았다.

‘이상하군.’

심연처럼 깊게 가라앉은 종리산의 눈에 은근한 혼란이 일었다.

‘부서의 장부를 가져오라고? 직접?’

종리천이 저리 화를 내는 것도 이해는 한다. 처음 이 서신을 받았을 땐 종리산도 울컥 올라오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왜?’라는 생각도 들었다.

‘장부를 정리해서 가져오지 않으면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말은 좋지만 결국 제대로 된 감찰이 아니야.’

막말로 이쪽에서 허위 장부를 만들어 가져간다면 어쩔 것인가? 거경가에 대한 제반 지식이 없는 감찰사에게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방도가 있을 리 없다.

‘즉, 감찰사는 진짜 감찰을 하려고 이런 서신을 보낸 게 아니다.’

단순히 모욕을 주기 위해서일까?

‘그럴 가능성도 적어.’

모욕을 주는 방법은 많다. 제 임무를 포기하는 이런 방식을 쓸 이유가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명령 아닌 명령을 거부한다면 감찰에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된 거경가는, 뭘 시작해 보기도 전에 마도 무림의 세력 판도에서 멀어질 것이다.

“형산이라…….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군.”

위치도 이곳에서 가깝다. 쉬지 않고 말을 몰면 사흘 안에 도달할 거리였다.

가기로 결심했다면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부분은 한 가지였다.

제대로 된 장부를 가져가느냐, 아니면 대비한 장부를 가져가느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종리산이 총관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금일 밤, 해왕위(海王衛)를 대동하고 형산으로 향할 것이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전까지 장부들을 추리도록. 그리고 그 장부들은 전부…….”

* * *

형산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마차를 모는 말들은 하나같이 천하의 명마들이었고, 마차의 골격 자체도 기동성을 중시한 것들이라 가벼운 축에 속했다.

문제는 금호였다.

새끼였을 때면 몰라도, 지금의 금호는 무척이나 눈에 띄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체구는 호랑이보다 작아도, 몸통보다 커다란 꼬리와 상서로운 황금빛 털은 주변의 이목을 잡아끌 것이 분명했다.

적사가에서 잠시 벗어날 때면 모를까, 형산까지 이동하려면 나름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행의 고민은 금호가 직접 해결해 주었다.

“공자님.”

“말해.”

“금호가 정말 따라오고 있는 거 맞나요?”

위홍련은 연신 창가를 힐끔거렸다. 물론 아무리 창밖을 보아도 금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뭐, 별문제는 없겠지만…….”

초절정의 영역을 넘보는 홍상호조차 단숨에 물어 죽인 금호였다. 맹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고수가 나타나도 금호를 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금호가 사람의 눈을 잘 피해서 올 수 있을까 싶은 거죠.”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을 거야. 걱정 마.”

위홍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하신다면 걱정은 접어 두겠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굳이 사람의 눈을 피할 필요도 없다. 이목이 쏠리는 건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천마신교를 건드릴 집단은 없을 테니까.

강호의 다른 문파들을 공략하려는 것도 아니니 의천맹이나 철혈성이 알아도 상관없다.

다만 껄끄러울 뿐.

“근데요.”

“왜?”

“형산에는 왜 가시려는 겁니까? 소향곡이라는 곳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네요.”

그 호기심에 용케 지금까지 물어보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순진하게 자신을 보는 위홍련의 눈빛이 답지 않게 귀여웠던 것이다.

“궁금하냐?”

“당연히 궁금하죠. 이래 봬도 저 감찰 부대의 대장이에요.”

마동필도 슬쩍 서량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말은 안 했어도 궁금했던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여쭤보는 건데, 이번 명령은 다소 이상해요. 부서의 장부를 추려서 가져오라니요? 걔네가 허위 장부를 가져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대가를 치러야지.”

“그건 당연한 거고요. 문제는 그걸 알 방법이 우리한테 있느냐는 거죠. 그렇다고 힘들게 형산까지 불렀는데 다시 거경가로 가서 확인할 것도 아니잖아요?”

“그럴 거였으면 형산으로 오라고 말도 안 했지.”

“제 말이요.”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그냥 감찰의 범위를 확장한 것뿐이야.”

“확장이요? 그건 또 뭔 말이래요?”

“그러려니 해. 최소한 감찰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테니까. 위 대주는 제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위홍련이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일단 알겠습니다. 더는 물어보지 않을게요.”

“계속 물어봐도 대답은 똑같을 거야.”

“그럴 것 같더라고요.”

왠지 정감 넘치는 대화네.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전보다 진지하고 딱딱해지셨지만, 공자님은 여전히 공자님이다. 그런 공자님과 광마대주의 대화가 과거보다 유해졌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위홍련이 듣지 못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 아직은 혼란스러워.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 ……?

- 이제부터 제대로 움직여 보려고. 지금까지처럼 어중간하게 살진 않을 거야.

- 공자님께선 충분히…….

- 아니지.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어. 그저 추상적인 목표에 불과했지. 그래서 이곳은 안전한지, 저곳은 괜찮은지 잡스럽게 확인만 반복했을 뿐이다.

- …….

- 더는 그러지 않아. 옳은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길을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효율적으로 나아가 볼 생각이다.

서량이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마동필 역시 확실하게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량의 그 말을 듣고 마동필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 번 길을 정하면 좌우를 둘러보지 않는다.’

과거 연무 중 혼란에 휩싸였을 때 공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 숨이 끊어질 때까지 달려 보라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달린 후에야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해 보라고.

그 말에 마동필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해도 안 될 때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해 보라는 것.

다소 극단적인 사상이지만 공자님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무공을 연련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공자님은 달려 볼 생각이신 것 같다. 뚜렷한 목표를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저질러 볼 생각이신 듯했다.

‘어디까지 가시려는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뒤따르겠습니다.’

잠시 후, 마차가 멈춰 섰다.

마부석에 다녀온 위홍련이 말했다.

“감찰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곳입니다. 형산이기는 한데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은 아니에요.”

“여기가 맞아. 잘 찾아왔어.”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마차에서 내린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렇게 찾아오는군.’

이곳에 오면 마음이 무척이나 들뜰 줄 알았다. 이곳이야말로 두 번째 인생의 분기점이 될 곳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이곳에 말과 마차, 광마대 전원을 두고 간다.”

“네?”

“입구가 작아. 안은 넓지만 백 명을 수용할 정도는 안 된다.”

위홍련은 당황했다.

“그럼 광마대를 여기서 대기시키고 우리만 갑니까?”

“그래.”

“대체…….”

서량이 위홍련을 바라보았다.

“위 대주는 꼭 따라와야 해. 그러니 대원들에게 명령을 확실히 내려 놓도록.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

“거경가주가 생각이 있다면 이틀 내로 찾아올 거야. 그 전에 일을 끝내야 해.”

“어떤 일이요?”

“들어가 보면 안다.”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위홍련이 이내 히죽 웃었다.

“좋습니다. 다만 일이 잘못되면 저는 공자님 뒤에 숨을 테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감찰사님이 아니라 공자님이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건 너 하기 나름이지.”

웃으며 대화를 마친 두 사람.

잠시 후, 광마대를 주변에 포진시켜 둔 위홍련이 서량에게로 다가왔다.

“어디 그럼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그러자고.”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실망하진 않을 거야.”

그렇게 세 사람은 중원 전역에 만들어 둔 살왕의 안가(安家)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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