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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26화 (126/774)

126화. 늪에 빠져도 숨은 쉴 수 있다 (5)

내 사람이 되어라. 참으로 많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갑자기요?”

“그래.”

위홍련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랑을 고백하는 자리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데요?”

“…….”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장난을 치시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장난 아니다.”

“그래 보이네요.”

“그래서 대답은?”

위홍련은 서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이었다. 적어도 가볍게 툭 던진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저는 공자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공자님 역시 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시고요.”

“그 역시 맞는 말이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네 말대로 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투성이야. 그래도 하나는 알고 있어.”

“뭘요?”

“쓸 만하다는 거.”

상당히 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반면에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위홍련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마치 품평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고, 동시에 그 사람이 서량이라서 기분이 좋았다. 적어도 무공 관련으로 서량이 얼마나 냉정하고 진지한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홍련은 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말을 한 사람이 서량이 아니었다면 웃기지 말라며 자리를 떴을 것이다.

“교에서 나올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지만 깊게 캐묻고 싶지 않았어요. 적사가에서 칼춤 추실 때도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죠.”

“…….”

“하지만 저에게 그런 말까지 하시는 거 보니까 이젠 진짜로 묻고 싶어지네요. 대체 왜 이리 변하신 겁니까?”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그는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고, 그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을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듣고 싶…….”

“널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면 최소한 나의 진심을 보여 줬어야 했어.”

마동필 때와는 다르다.

마동필과는 고죽림에서부터 생사를 함께 했다. 실제로 그에게 목숨의 빚을 진 적도 많았다.

더하여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개인 호위가 되었다. 지난 인연, 그리고 현재의 직책까지 마동필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사람인 셈이었다.

그러나 위홍련은 경우가 달랐다. 그녀와의 인연도 가볍다 볼 순 없었지만 깊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하물며 그녀는 전투 부대의 수장이었다. 그녀 한 사람이 움직이면 광마대 전체가 움직이게 된다.

그녀를 얻고 싶은 이유이자, 더더욱 진지해져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량은 자신의 진심을 밝혔다.

“나, 세상을 한번 뒤집어엎어 보려고.”

“……네?”

“정확히는 의천맹, 그리고 철혈성을 공략해 볼 생각이다. 그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위홍련만이 아니라 마동필도 깜짝 놀랐다. 공식 석상에서도, 사석에서도 쉽게 나오기 힘든 말이었다.

“오늘 뭔 날이에요? 이런저런 폭탄 발언을 많이 듣네요.”

“새삼스러울 것 없잖아? 어차피 본교의 마인인 이상, 의천맹과 철혈성은 공략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맞는 말씀이기는 한데 그 당연한 말을 하려고 그렇게 무겁게 각 잡으신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위홍련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싫으니까.”

“……단순히 그 이유가 전부입니까?”

“그 어떤 이유보다도 간단하면서 확실하지.”

“…….”

“나는 놈들을 증오해.”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진지하게 말할 땐 무게가 실리고, 농담처럼 뱉을 땐 깃털처럼 가볍다.

위홍련과 마동필은 서량이 이렇게까지 무게 있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난 방금 증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난 내 증오를 인내해야 할 한(恨)이나 감수하고 씹어 삼켜야 할 녹슨 찌꺼기 정도로만 생각했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

“그 한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경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화려한 색채로 날 물들이고 있는 명화였지. 고백하자면 난 지금껏 그 그림의 이름도 몰라서 감상해야 할지, 치워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우우우웅!!

불그죽죽한 안광이 스치고 지나간 서량의 두 눈에는 무저갱처럼 깊은 분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신교 최악의 부대의 수장이라는 위홍련조차 압도될 만큼 강렬한 감정.

“지금은 알아. 그 그림은 감상용이 아니야. 내 손으로 직접 찢고 부수고 불태워야 할 대상이다.”

“…….”

“장담하는데 넌 결단코 맹성(盟城)을 나만큼 증오하지 않아. 그럴 수가 없어. 어쩌면 타성적인 분노에 사로잡힌 숱한 마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

“저는…….”

“그럼에도 내가 널 원하는 이유는 하나야.”

“…….”

“넌 상대를 가리지 않아. 의천맹이든 철혈성이든, 설혹 상대가 신교라도 이유를 만들어 주면 칼을 겨눌 사람이지.”

위홍련은 그렇지 않다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장난으로 넘어갈 수도 없었다.

서량 역시 본인의 진심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난 후계 싸움에 관심이 없어. 하지만 신교의 의지가 그 두 곳을 향하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고삐를 채워 돌려 버릴 생각이야.”

“그건…….”

“그래. 나에겐 그럴 권한이 없지.”

서량의 위험천만해진 눈빛.

“내가 차기 교주, 후계자가 되지 않는다면.”

“……!”

“제대로 날뛰게 해 주마. 나와 함께하면 적어도 짜릿한 재미는 느낄 수 있을 거야.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약속할 수 있어.”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위홍련.

이윽고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서량의 눈빛만큼이나 흉악한 미소였다.

“그 약속, 지키실 수 있습니까?”

“목숨을 걸고.”

“……뭐, 목숨까지 거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참 믿음이 갑니다.”

“이제 대답할 마음이 섰냐?”

위홍련은 머리를 긁적였다.

“싫다고 말하면 단숨에 대갈통을 깨 버리실 것 같은데요?”

“농담을 원해? 그럼 그러겠다고 대답해 주지.”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난 그저 쓸 만한 인재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괜찮은 선물을 들고 찾아왔을 뿐이야. 말하자면 제안이자 유혹이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대갈통을 깰 만큼 경우 없는 놈은 아냐, 내가.”

위홍련이 서량의 손에 들린 목곽을 힐끔거렸다.

“선물이라면 그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영약인가요?”

“그래.”

“성능은요?”

“최상급.”

“천마신단(天魔神丹)에 비하면요?”

“양심 있냐? 그거랑 비교하면 안 되지.”

“에라이, 천마신단 급이었으면 완전히 공자님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농담 같은 대화로 분위기를 푸는 그녀.

하지만 위홍련의 얼굴은 서량보다 더 진지했다. 지금 이 자리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크나큰 분기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위홍련은 생각에 잠겼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진심이 전달된 모양이군.’

막말로 대답은 그리하겠다 해 놓고 영약만 날름 삼키고 배 째라 하면 서량도 그녀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위홍련이 이 귀한 영약을 앞에 두고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량의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후.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린 위홍련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오! 나는 생각 많은 거 싫단 말입니다!”

“복잡한 거 좋아하는 사람 없어. 그러니까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위홍련이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하나 더요.”

“엉?”

“그거 받고 칼도 하나 내주십쇼.”

“……?!”

“묵왕검까진 바라지 않으니까 인심 좀 더 쓰세요.”

서량이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도냐? 이 영약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천마신단 급은 아니라면서요.”

“네 몸값을 너무 높게 책정한 거 같은데?”

“햇살 쨍쨍할 땐 개도 안 쓰는 도롱이가 장마 때만 잘 팔리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만큼 절실히 날 원하고 있으니 합당한 금액을 팍팍 써 재끼란 소리였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런 그녀가 밉진 않았다. 자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참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심하네.”

“왜요.”

“사기를 친 적은 있어도 당한 적은 처음인 것 같거든.”

“사기라고 할 게 뭐가 있어요? 무공 비급을 내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결국 제가 강해지면 공자님한테도 좋은 일 아닙니까.”

뻔뻔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서량은 이내 피식 웃고야 말았다.

“시간 날 때마다 팍팍 부려 먹어 주마.”

“마 씨처럼 하인 비슷해져서 모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바라지도 않아, 인마. 그리고 동필이가 왜 하인이야?”

“그냥 그래 뵈네요.”

서량이 턱으로 책장 하나를 가리켰다. 웅덩이에 가장 가까운 책장이었다.

“저 책장 뒤에 있는 거 가져.

위홍련이 의아한 기색으로 책장 뒤의 물건을 가져왔다.

여느 장검과 비슷한 길이였지만 무게는 네 배 이상이었다. 이전의 두 검과 마찬가지로 천으로 싸여 있어서 생김새는 알 수 없었다.

“그거면 그럭저럭 마음에 들 거다.”

“뭔데요?”

“까 봐.”

천을 풀어 헤친 위홍련.

곧이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딱 너 같은 검 아니냐.”

모습을 드러낸 검은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색을 띠고 있었다.

길이는 삼 척, 손잡이가 여느 장검보다 두 배는 길었고 검신(劍身)은 훨씬 짧았다. 검신 역시 포아검만큼은 아니지만 평범한 장검보다 세 배는 넓고 두툼했다.

기형검(奇形劍)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상당히 독특한 외양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외양보다 인상적인 것은 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예기였다.

“호포검(虎咆劍)이다. 과거에 백호검(白虎劍)이라 불리던 신병(神兵)이지.”

“……!”

“이제는 전설이 된 사신병기(四神兵器) 중 하나야. 마음에 드냐?”

마음에 들다 뿐인가.

손에 쥘 때부터 심상치 않은 병기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호포검일 줄은 몰랐다. 묵왕검이 당대 최고를 논하는 마검이라면 호포검은 과거의 전설이었던 호쾌한 흉검(凶劍)이었다.

“……꿀꺽. 이, 이 정도면 괜찮네요.”

솔직하지 못한 대답이다. 그녀는 호포검에 완전히 홀려 버렸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내 앞에 앉아.”

“…….”

“……?”

“…….”

“야, 인마!”

“헉! 네? 저 부르셨어요?”

“이거 완전히 넋이 나갔구만.”

“누, 누가 넋이 나갔다고 그래요.”

“됐으니까 얼른 내 앞에 앉아 보라고. 시간 없어.”

“시간이 없다니요?”

서량이 목곽을 흔들었다.

“천마신단이나 소림의 대환단(大丸丹) 급은 아니지만 사령단(邪靈丹)이나 소환단(小丸丹)보다는 훨씬 좋은 영약이다.”

“……!”

“하루 안에 네 단전으로 죄다 쑤셔 박을 거니까 집중 제대로 해. 긴장 놓치면 아까운 기운 날아간다.”

“……막상 이렇게 되니까 좀 무서워지네요. 얼마나 부려 먹으시려고 운기까지 도와주세요?”

“네가 말했잖아? 네가 강해지는 게 결국 나한테도 좋은 일이라고.”

“그래도요.”

서량이 목곽을 열었다.

순간 안가 내로 청아한 향이 가득 퍼졌다.

“이런 선물을 투자해도 일 년 뒤에 네가 살아남을지, 말지도 확신이 안 서.”

“…….”

“긴장해라.”

* * *

하루 뒤.

소향곡의 입구로 일단의 무리가 접근했다.

거경가주 종리산과 호위 부대인 해왕위가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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