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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28화 (128/774)

128화. 탐욕의 마수(魔手) (2)

가득현이 무릎을 꿇었다.

“광마대가 대주님을 뵙습니다.”

척!

뒤이어 모든 대원들이 무릎을 꿇었다.

마도 무림의 거물이 앞에 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만 봐도 그들이 위홍련을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알 수 있었다.

위홍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 없었냐?”

“그렇습니다.”

“알았다. 그만 일어나.”

광마대원들이 동시에 자세를 바로 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종리산은 은근히 감탄했다.

‘제대로 훈련되었군.’

광마대의 무력 때문에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위험천만한 광기를 드러내면서도 꽉 잡힌 군기(軍氣)가 인상적이다. 그들의 눈빛이, 자세가 광마대라는 부대의 명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언사가 건방지군.”

“음?”

“일개 대주가 칠가의 가주에게 보여 줄 언행이 아니다. 예우부터 똑바로 갖추도록.”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예우를 원하셨다면 건방도 떨지 마셨어야지.”

“건방이라?”

“그럼 이쪽에서 새벽이슬 맞아 가면서 댁들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나?”

“…….”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감찰사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 감찰사님은 곧 교주님의 의지를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하물며 교주님의 제자이기까지 하지.”

“알고 있다.”

“아는데도 그러신다?”

“하지만 내가 칠가의 가주라는 사실도 명백하다. 지금껏 어떤 감찰사도 가주를 오라 가라 한 적이 없었어. 그렇다면 적어도 우릴 기다리게 할 생각은 말았어야 했다.”

종리산의 말에는 그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상대가 날 존중하지 않으면 나 또한 상대를 존중할 수 없다.”

위홍련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이유도 없이 배 째라 하는 무뢰한은 아니셨네.”

“다시 한번 말한다. 분란 없는 일 처리를 원한다면 너부터 언사를 바로 하라.”

“뭐, 그럽지요.”

사아아악.

무거우면서도 날카로운 기파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나이도 어린 계집이 점점 도를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감정에 쉬이 휩쓸리지 않는 해왕위지만 지금은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르르륵!

해왕위가 강렬한 기세를 뿜어내자 광마대도 질세라 마기를 발산했다. 무겁고 날카로운 해왕위의 기파와는 달리 광마대의 기파는 한없이 위험한 불꽃과 같았다.

종리산과 위홍련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스륵.

첨예하게 대립하던 두 집단의 기운이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쓸데없는 기 싸움은 이쯤 해 두죠.”

“좋다.”

“시원시원하시네.”

“그래서 감찰사는?”

“언사는 그쪽도 똑바로 해야 할 것 같은데?”

“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됐고, 잠시 후에 나오실 테니 기다리십시오.”

종리산의 눈이 깊어졌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이해를 하건 말건 지금 당장 나올 상황이 아닌데 그럼 어쩌라고요.”

들으면 들을수록 말투가 가관이다.

심연과 같은 눈으로 위홍련을 바라보던 종리산이 이내 그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었다.

“이각을 기다리겠다. 그 안에 감찰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린 이대로 돌아갈 거다.”

“부적합 판정을 받을 텐데?”

“왜 그런 판정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면 그뿐이다.”

“시원시원하면서 화끈하기까지 하시네.”

종리산은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위홍련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나쁘지 않아.’

딱딱하고 오만하긴 해도 싫은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호탕함도 엿보인다.

‘칠가라고 다 빙충맞은 것들만 있는 건 아니었어.’

그녀가 몸을 돌렸다.

“식사들은 했냐?”

“그렇습니다.”

“새끼들, 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챙겨 먹어요.”

가득현이 미소를 지었다.

“밥을 제때 먹어야 힘도 제때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말 잘하는 것들이 싫어.”

“그나저나 어떠셨습니까?”

“뭐가?”

가득현이 그녀의 등 뒤를 힐끔거렸다.

“못 보던 병기인데요? 딱 봐도 대단해 보이는데, 안에서 감찰사님께 한 수 가르침이라도 받으신 겁니까.”

“하나 추가다. 말 잘하는 것들만큼이나 눈치 빠른 놈들도 싫어.”

위홍련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얻은 게 많긴 하지.”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은 그리했지만 가득현은 내심 깜짝 놀랐다.

위홍련은 강자였다. 하지만 저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위홍련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된다. 그의 감각이 잡아낼 수 없을 만큼 위홍련의 진기가 깊어진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코가 확 꿰인 대가지 뭐.

위홍련은 그 말은 내뱉지 않았다. 아무리 미쳤다고 소문이 난 그녀지만 수하들에게 할 말, 못 할 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가득현의 얼굴이 삽시간에 진지해졌다.

“감찰사님은 언제 나오시는 겁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거경가주가 한 말, 결코 장난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이각 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이대로 돌아가겠다는 말.

대놓고 하는 협박보다 훨씬 무서운 협박이다. 그들이 돌아가면 감찰사는 제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게 되어 버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감찰사님이 언제 나오실지 진짜로 몰라.”

위홍련은 머리를 긁적였다.

‘쳇, 그렇게 무리를 하시더니.’

전혀 다른 마공을 익힌 사람의 내기를 다스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서량의 경지가 높고, 보유하고 있는 마기 역시 최상의 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량도 영약의 약력을 모두 녹여 낸 후엔 탈진해 버렸다.

그만큼 그와 위홍련의 마기가 상성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위홍련이 다치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었을 테니 심력 소모도 컸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원체 괴물 같은 분 아니냐.”

가득현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하면 본대는 현 상황을 유지하겠습니다.”

“그래.”

광마대를 수습한 위홍련은 종리산의 맞은편에 가서 털썩 앉았다.

맞은편이라 해 봤자 삼 장이 넘는 거리였지만 고수에게는 한 걸음에 좁힐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종리산의 눈이 빛났다.

“용감하군.”

“용감한지는 모르겠고 미쳤다는 소리는 제법 듣습니다.”

“내가 조금만 변덕을 부려도 넌 죽는다.”

“어쩌라고요.”

“상대의 영역 반경에 함부로 접근하지 말란 소리다. 그러다가 언젠가 된통 당할 날이 올 거야.”

위홍련이 콧방귀를 뀌었다.

“죽는 거 무서워하면 광마대주 일도 못 해 먹어요.”

“죽어도 유의미하게 죽는 게 좋지 않나?”

“죽음에 의미 따위를 왜 둡니까? 무덤이란 것도 결국 산 자들을 위한 위안에 불과합니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종리산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

“어쩌면 너처럼 사는 게 속 시원할 수도 있겠다.”

위홍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종리산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아 두거라. 생사(生死)는 하나다. 죽음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삶에도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사는 건 좋은 거고 죽는 건 안 좋은 건데 왜 같답니까?”

“좋고 나쁨은 다름이 될 수 있어도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위홍련의 숨이 가빠졌다. 이런 선문답 같은 대화는 질색이었다.

“어려워요. 그만 말하죠.”

종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가 그런 대화까지 가게 됐지만, 굳이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신기하네요.”

“…….”

“칠가의 가주들은 죄다 패배감에 물든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

“몇 번째입니까?”

“뭐가 말인가.”

“칠가의 가주들이 강하다는 건 아는데요, 가주님은 그들 중 몇 번째냐고요.”

그 유치하기까지 한 물음에 종리산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했다.

하지만 위홍련은 진지했다.

“적사가주보다 강합니까?”

“그건 왜 묻지?”

“궁금하니까 묻죠.”

“그저 궁금함 때문이라면 말하지 않겠다.”

“왜요?”

“실력의 서열이란 것은 그리 단순하게 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 정도는 알지 않나?”

“알죠. 그날의 날씨, 기분, 병장기의 상태 등등 변수가 많으니까요.”

“알면서 묻나.”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인진 알아 둬야 대응을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대응?”

“혹시라도 가주님이 우리를 공격하려 들 때 어느 정도 수준일지 짐작은 가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요.”

종리산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까지 위홍련과의 대화를 되짚어 본 그.

“적사가주가 너희를 공격했나?”

“다툼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쪽팔려서 소문 못 내죠.”

“적사가주가 당했단 말인가?”

“그랬으니까 우리가 여기에서 진을 치고 있죠. 가주님은 적사가주의 성격을 알 거 아닙니까?”

물론 그는 홍관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분명 강한 사내였지만 자신감이 지나치게 과했다.

그래서 종리산은 깜짝 놀랐다.

“홍 가주가 손을 썼다면…… 쉽게 그곳을 벗어날 수 없었을 텐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절대 쉽지 않았어요. 감찰사님 아니었으면 거기서 다 뼈를 묻을 뻔했다니까요.”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하긴, 그 사태가 난 것도 감찰사님 때문이지만.”

“……?!”

“여하간 적사가주를 그렇게 평가하시는 걸 보면 실력 차이가 크진 않겠네요. 알겠습니다.”

종리산은 정말이지 궁금했다.

“대체 어쩌다가…….”

“자세하게는 몰라요. 감찰사님이 갑자기 눈 돌아가셨거든. 다만 유추를 좀 해 보자면, 적사가주가 신교 몰래 허튼짓을 좀 한 것 같긴 한데.”

“……!!”

훅.

종리산의 몸 주변으로 먼지바람이 확 일었다. 막을 수 없는 격동에 저절로 기파가 방출된 것이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위홍련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

“뭐 켕기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

“……흐음.”

스륵.

위홍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그게 반역(反逆)…….”

그때,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피로가 느껴지는 목소리. 내공조차 담겨 있지 않아 그다지 크지도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위홍련이 몸을 돌렸다.

골짜기 안에서 서량과 마동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감찰사님.”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손님 좀 잘 받으라고 했더니만 그새 또 사고 치고 있냐?”

“네? 사고라뇨?”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으면 너 이빨 몇 개 날아갔을 거다.”

“예?”

위홍련은 다시 종리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으잉?’

종리산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이글거리는 두 눈에서 흉흉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전신 근육이 부풀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했다.

위홍련은 그제야 깨달았다. 서량이 중간에 끼어든 것은 그녀의 말을 막으려던 것이 아니라, 종리산의 행동을 막으려는 것이었음을.

“뭐야……?”

그럼 방심하고 있다가 한 대 맞을 뻔한 거야?

그녀가 이유를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어느새 서량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거경가주 종리산, 맞습니까?”

“…….”

“뭐, 이 정도 기파라면 가주가 분명하겠지.”

“…….”

“제 수하가 귀하께 무례를 범했습니다. 대신 사과할 테니 이만 마음 푸십시오.”

서량이 포권을 취했다.

설마하니 감찰사한테 먼저 인사를 받을 줄 몰랐다. 당황한 종리산은 이내 마주 인사했다.

“감찰사를 뵙소.”

“예, 자질구레한 인사는 집어치웁시다. 보아하니 그쪽도 바쁜 것 같은데 후딱 끝내도록 하지요.”

“……?”

“장부 주십시오. 얼마 안 걸리니까 검토할 동안 마음이나 다스리시길.”

우우웅.

종리산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잠시 서량을 바라보던 그가 해왕위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한 무인이 수천 장의 문서들을 가져왔다.

“이게 삼 년 치 장부들입니까?”

“그렇소.”

대답이 어색하다.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이라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서량이 문서 몇 장을 대충 훑어보았다.

“음.”

고개를 끄덕이는 서량.

그때였다.

우웅!

그의 오른손에서 시퍼런 불꽃이 피어올랐다.

상마진화의 불꽃이 순식간에 문서들을 불태워 버렸다.

화르르르륵!

갑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종리산의 놀라움은 남들보다 몇 배는 더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감찰은 끝났습니다.”

“뭐, 뭐라?”

불타는 문서들을 발로 툭 치운 서량이 진지하게 말했다.

“감찰은 모두 적합 판정을 내릴 테니까, 우리끼리 건설적인 얘기나 좀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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