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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29화 (129/774)

129화. 탐욕의 마수(魔手) (3)

“잠깐만요!”

당황한 위홍련은 말까지 더듬었다.

“가, 감찰이 끝났다고요?”

“그래.”

“몇 장 살펴보신 게 전부잖아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이 자리에서 서량과 마동필을 제외하고 당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불특정으로 몇 장을 꺼내 살폈지. 적어도 내가 살펴본 문서들은 허위가 아니었어. 간단한 교차 검증도 마쳤고.”

“허위로 작성된 문서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잖아요! 저거 보세요! 수천 장이나 된다구요!”

모두 진짜 장부라고 종리산은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역시 궁금했던 것이다.

“허위로 작성하려 들었다면 통째로 바꿨겠지.”

“……그렇긴 하지만요. 아니, 그리고 감찰이란 게 장부가 진짜냐, 허위냐를 따지는 게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다. 감찰사는 단순히 허위 장부를 판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통틀어 감사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장부만 갖고 감찰을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 조직에 들어가서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하나 전부 확인해야 옳다.

물론 그 역시 감찰사 재량이지만.

서량이 피식 웃었다.

“굳이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야겠어?”

그가 종리산을 바라보았다.

종리산의 얼빠진 표정은 실로 압권이었다. 코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보다 사람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대화 나눌 준비가 안 된 모양이로군요.”

“…….”

“조금 더 기다려 드릴까요?”

“……아니오.”

“그럼 바로 시작해 보죠.”

“그 전에.”

종리산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이대로 감찰이 끝난 거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감찰사요.”

“압니다.”

“아니, 모르는 것 같소. 날 이곳에 부른 것 자체가 감찰사로서 부적절한 행동이었음은 알고 있소?”

위홍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미 끝난 얘기를 굳이 꺼내 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리산은 예우 문제나 불쾌함에 대해 토로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날 이 자리로 불러냈다면 최소한 약식이나마 제대로 된 감찰을 해야 하오. 한데 문서 몇 장 보고 적합 판정을 내리겠다니,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소.”

“굳이 이해를 시켜 드려야 합니까? 어찌 되었든 적합 판정을 내렸다면 귀하 측에겐 좋은 일 아닙니까?”

“그건 그렇소만.”

“뭐가 문제입니까?”

종리산이 눈썹을 찡그렸다.

“정말 이걸로 끝이란 말이오?”

“앞으로 몇 번이나 물어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끝입니다.”

“…….”

“다만 말씀드렸지요? 건설적인 대화나 해 보자고. 그 대화까지 마무리되면 적합 판정을 내리겠습니다.”

“이럴 거면 굳이 날 불러야 했소?”

“대화 상대가 가주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부른 겁니다.”

어쨌든, 이유 없이 부른 건 아니라는 말이다.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종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들어 봅시다. 미리 말하지만 시답잖은 이유라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오.”

“그러시든지.”

사아아악.

해왕위들이 또다시 묵직한 기파를 발산해 냈다.

상대가 감찰사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오로지 거경가주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바, 가주에게 무례한 자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충직한 부하들이로군요.”

종리산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해왕위들의 기파가 재차 잠잠해졌다.

“충직하지만 가끔 실수도 저지른다오. 언짢았다면 대신 사과하리다.”

이것저것 잴 필요 없는 깔끔한 성격이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실수를 저지르면 담백하게 인정한다. 무인으로서, 한 단체의 수장으로서 모범적인 성품이라 할 수 있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안 씁니다.”

“이해해 주어서 고맙소.”

“자, 그럼 슬슬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말씀하시오.”

“자질구레한 말은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본교를 위해서 손 좀 빌려주십시오.”

이게 느닷없이 무슨 말인가?

위홍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동필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그 역시 한 줄기 의아함을 감출 순 없었다.

“손을 빌려 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제대로 박살 낼 곳이 하나 있는데 우리 쪽에 머릿수가 부족해서 말입니다. 그곳 소속원들 성질머리가 하나같이 지랄맞아서 순순히 따를 것 같지도 않고.”

“박살?”

그다음 이어진 서량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투왕마가(鬪王魔家)를 봉문(封門)시키러 갑니다.”

* * *

무담이 떠난 자리.

빈 찻잔만이 덩그러니 놓인 곳을 바라보는 호요성의 눈이 유독 진지했다.

“특별 호위 대상자라…… 이 시국에?”

호법원은 군사부가 유일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조직이었다.

물론 호법원 역시 군사부에 관여할 수 없다. 아니, 교내 어떤 조직도 군사부는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군사부의 수장인 총군사를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자라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호법원도 마찬가지였다.

호법원은 내사에 관여하지 않는 조직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신교 최고의 조직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교주의 명만을 받들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호법원 일 조장 이군성은 현재 교내에 있어. 그런데 일 조를 보냈다고?’

무담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 호위 대상자를 호위하러 가는데 조장을 붙이지 않았을 리도 없을 터.

“괴물들을 보내신 게로군.”

호요성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중에서도 일 조라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사람인가?”

호법원이 신교 최고, 최강의 조직이 될 수 있는 이유.

바로 은퇴한 전대의 노마(老魔)들이 호법원에 대다수 집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전대 호법원 조장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전대 마장(魔將)들은 물론 심지어 은퇴한 마존(魔尊)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호법원주는 아무나 될 수가 없다. 그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이끌 만한 통솔력과 강력한 무공, 그리고 신교를 향한 절대적인 충심이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물론 은퇴를 한다고 해서 모든 마인이 호법원 소속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마인들은 은퇴 후에도 현역에서만 물러날 뿐, 호법원에 속하기를 원한다.

신교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벽으로 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거야 원, 안 그래도 복잡한 시국에 특별 호위 대상자라니. 일복이 터졌구만.”

한쪽에서는 칠가를 집어삼키려 하는 족속들이 움직임을 보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총군사도 모르는 특별 호위 대상자가 나타났다.

호요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아니, 파고들면 알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군사란 족속들은 모든 정보를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 이유인즉, 어디에서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 호위 대상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동시에 그런 자신의 마음을 경계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여기까지가 내가 정한 선이군.’

자신이 파고들게 되면 무담은 무조건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향한 무담의 신뢰는 멈춰 설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다른 수뇌부들끼리 반목하는 건 상관없지만 총군사와 호법원주가 반목하면 신교가 삐걱거린다. 교주가 총애하는 두 신하가 경쟁할 수는 있어도 불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중에 차 한 잔 드리면서 알려 달라고 떼나 써 봐야겠군. 뭐, 그거야 훗날 알게 될 일이니 상관없다지만…….”

호요성이 창가를 바라보았다.

“우리 감찰사님께서는 잘하고 계시려나.”

믿는다.

서량이란 사람을 믿는다기보다, 그가 보여 준 능력과 감각을 믿는다.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적사가의 위협까지는 지혜롭게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더 쉽고, 달리 보면 훨씬 어려운 거경가까지도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투왕의 가문은 어떨까?

칠가 중 서열은 가장 아래지만 부족한 세력을 무시무시한 투쟁심과 흔들리지 않는 고집으로 무장한 투왕마가를 잘 처리할 수 있을까?

하물며 단순 감찰이 아닌 봉문을 끌어내란 명령이다.

‘교주님.’

호요성은 눈을 감았다.

‘교주님께선…… 정말 무서운 분이십니다.’

이 사이에 낀 가시를 제거하라고 보내면서 삼공자의 능력과 충심을 확인한다.

근래 가장 총애하는 제자지만 신뢰하지는 않는 제자. 어쩌면 교주님께선 신교의 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보다 삼공자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클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것도 내 착각일지 몰라.’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도(魔道)의 현자(賢者).

그런 그가 유일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그가 모시는 주인이었다.

“그래도 뭐…….”

재차 눈을 뜬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삼공자님 덕분에 요새 살맛은 나니까.”

* * *

“지금 뭐라 하셨소?”

마치 오늘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투로, 서량이 말했다.

“투왕마가를 봉문시킨다고 했습니다.”

“봉문?!”

“그렇습니다.”

종리산의 눈이 흔들렸다.

“칠가의 하나를…… 봉문시키겠다고 말씀하셨소?”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있냐고?

없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투왕마가는 다른 칠가들과 마찬가지로 수백 년 동안 천마신교를 위해 일한 충신의 가문이었다.

“대체 이유가 뭐요?”

“글쎄요? 저는 그저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을 충직하게 이행하려는 것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곳도 아니고 칠가의 하나요! 그런 곳을 감찰도 아니고 봉문을 시키라는데 감찰사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뭐?”

서량이 피식 웃었다.

“적사가주도 그러더니만 가주님께서도 그러시는군요.”

“무엇을 말이오?”

“이유를 궁금해하는 건 이해합니다만, 우리가 굳이 설명해 줘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답답해하고 서운해하더군요.”

“당연한 것 아니오?!”

“그게 왜 당연합니까?”

“뭣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을 왜 꼭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하냐는 겁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신교의 명령을 거부하기라도 하실 겁니까?”

종리산은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교주님의 명령을 대행하는 자는 자의에 따라 이유를 설명해 주는 아량을 베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설명해 줘야 할 책임은 없지요. 이유인즉, 칠가는 신교의 산하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

“얘기가 이쯤 나오니 오히려 제가 궁금하군요. 대체 가주께선 신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건…….”

“혹, 저 정파 무림의 의천맹처럼 본교 역시 연합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종리산은 당황했다. 그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을 만큼.

“그, 그렇지 않소.”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저 의천맹도 소속 문파 혹은 가문에게 의천령(義天令)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파인들도 맹주가 조직 내에서 뽑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요.”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어찌 가주께서는 저 의천맹 산하 조직들도 드러내지 않는 불만을 내보이시는 겁니까? 혹…….”

“…….”

“역심이라도 품고 계신 겁니까?”

종리산의 기도가 날카롭게 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 도열해 있는 해왕위 역시 매서운 기파를 뿜어냈다.

그때였다.

번쩍! 콰르릉!!

빛살과도 같은 일도(一刀)가 해왕위가 도열한 곳 앞에 이 장 길이의 도흔(刀痕)을 만들어 놓았다.

어느새 용린도를 뽑아 든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의 건방을 참아 준 건 가주의 체면을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나의 인내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

“다시 한번 주제넘게 나서면 그땐 모조리 즉참토록 하겠다.”

쿵!

용린도를 땅에 꽂곤 그 위에 양손을 올린 서량이 종리산을 노려보았다.

“잘됐군요. 같은 칠가 소속 가문의 봉문을 하러 가는 길, 이것으로 귀 가문의 마음이 어떠한지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손을 빌려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서량의 미소가 짙어졌다.

“귀 가문은 여전한 신교 소속 가문입니까? 아니면 역심을 품은 가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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