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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31화 (131/774)

131화. 배움에는 때가 없다 (1)

번쩍!

일검(一劍)에 바위가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잘린 바위의 단면을 내려다보는 주서윤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심했다.

한참이나 단면을 보던 그녀가 제자리에서 다시 검을 휘둘렀다.

사사사삭!

빠르고 경쾌하지만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은 검식.

동강 난 바위에 수십 개의 실금이 그어졌다.

퍼서석!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 온 거대한 바위가 수백 개의 돌덩이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터엉.

납검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때, 한쪽에서 박수 소리가 울렸다.

“굉장하시군요!”

주서윤은 그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 전에 와서 줄곧 자신의 무공을 구경 중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에 관해선 잘 모르지만 충분히 일가(一家)를 이루신 것 같습니다. 그 연배에 대단하세요.”

타인의 수련을 구경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하지만 주서윤은 상대를 책잡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호요성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성격상 눈치를 주진 않았을 테지만.

“십대마공을 연성하신 지 얼마 안 되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언뜻 보기론 몸에 완전히 붙이신 것 같습니다.”

감탄 섞인 호요성의 말에 주서윤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조용한 고갯짓만으로 대답과 인사를 끝낸다. 말수 없는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근래 삼공자라는 걸출한 송곳이 튀어나왔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제자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이는 오공녀 주서윤이었다.

실력이 아닌 재능에서 그렇다. 물론 실력도 대단하겠지만 주서윤의 성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넘어 불신마저 일으킬 정도로 빨랐다.

칠공녀인 채여민의 재능 역시 주서윤에 비해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뚜렷한 목표라는 게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너무 어렸다.

일곱 제자 중 무재(武才)에 가장 특화된 제자. 그게 바로 주서윤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무심하고 무겁다.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 목소리에 이런 무게감이 실리기도 쉽지 않다고 호요성은 생각했다.

“하하! 저도 어지간하면 농담 몇 마디 틱틱 던져 보겠는데 오공녀 앞에서는 그게 쉽지 않군요.”

“…….”

“어…… 좋습니다! 오공녀께서도 바쁘실 테니까 용건만 간단히 하도록 하죠.”

호요성이 웃으며 서신을 건넸다.

서신을 받은 주서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철마방(鐵馬房)?”

“그렇습니다.”

“……여긴 왜?”

“근래 들어 저희 측 사업을 제법 건드린다고 하더군요. 그 지역 지부에 맡기려고 했는데, 그놈들이 세력을 상당히 확장했다고 합니다.”

고개를 든 주서윤이 호요성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눈동자에 의구심이 일었다.

철마방은 같은 마도의 방파지만 흔하디흔한 중소 방파에 불과했다. 애초에 지부가 처리할 수 있느냐를 떠나, 감히 신교를 건드릴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사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본교에는 비밀리에 진행하는 사업체가 제법 많으니까요. 극소수긴 해도 이렇게 사정 모르고 날뛰던 세력이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어지간하면 슬쩍 신교의 비밀 사업장이라고 흘려 주는 정도로 끝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라요. 철마방의 뒤를 봐주는 모종의 세력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모종의 세력이요?”

“예.”

“어디죠?”

“검궁(劍宮)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주서윤의 눈에 다시 한번 이채가 번득였다.

새외(塞外)라 하면 보통 중원의 북쪽 변방을 가리킨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중원 외, 다른 지역을 칭하는 말로도 쓰였다.

그 새외 무림에는 네 개의 대표 문파가 존재했다. 이른바 새외사궁(塞外四宮)이라 불리는 게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 검궁은 새외사궁 중 동방을 담당하는 검귀(劍鬼)들의 문파였다.

“아직 정황에 불과합니다만 그게 사실일 경우 우린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 됩니다. 그렇다고 확신도 없이 그들을 추궁하긴 어렵지요.”

“그래서 저를 보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막말로 원로분들을 보내거나 백팔마장을 보내도 되지만, 이런 경우 무력보다는 이름값이 더 잘 먹히겠지요?”

주서윤의 눈이 깊어졌다.

무력보다는 이름값이 필요해서 찾아왔단다. 그녀는 대단한 고수였지만 아직 원로와 마장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강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그녀 역시 제 경지가 그 정도는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들었을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하필 저죠?”

“대공자는 아직 폐관 중입니다. 이공자는 교주님께서 따로 시키실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삼공자는 현재 특수감찰사 신분으로 하산 중이고 사공자야 뭐…….”

“…….”

“육공자는 이런 일에 투입하기엔 나이도 어리고 무력도 부족하죠. 게다가 귀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경가의 절학을 연성하느라 고생이 많답니다.”

칠공녀인 채여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다.

“즉, 이 일에는 오공녀가 적임자일 수밖에 없지요.”

주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을 보낼 수는 없나요?”

“수련에 부족함을 느끼십니까?”

“…….”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교주님의 재가까지 다 받았거든요.”

주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여기까지 진행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아쉬웠다. 또 다른 경지를 향한 교두보를 찾은 지금 한시가 아까웠기 때문이다.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던 호요성이 말했다.

“뭐, 제 볼일은 여기서 끝입니다.”

“출발은…….”

“다만, 저는 무공에는 문외한이어도 세상사 이치는 그럭저럭 꿰뚫었다고 자부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한 말씀 드리고 싶군요.”

“…….”

“폐관으로 뭔가를 얻어 보려 하는 게 아니라면, 수련이란 단어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서윤의 눈이 반짝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집착하면 멀어진다는 말.”

주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요성의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저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 같으니, 예의상 반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호요성의 다음 말엔 무심하던 그녀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삼공자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지요.”

“……?”

“삼공자는 하루하루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임무에서도 최선을 다했지요. 못다 한 수련을 크게 아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

“일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부딪쳤습니다. 무공을 써야 할 때는 과감하게 돌진했고 머리를 써야 할 때는 칼은커녕 주먹도 들지 않았습니다.”

“…….”

“그런 과정, 경험들이 하나하나 모여 ‘배움’이란 것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수만 권의 책을 독파해도 지식만 늘 뿐 지혜를 얻긴 힘든 것과 같은 이치지요.”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지금의 삼공자가 그렇게도 강해진 모양입니다.”

주서윤의 눈이 흔들렸다.

마음 한구석에서, 그건 당신이 무공에 대해 잘 모르니 하는 소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당신 말마따나 무(武)의 경험을 모르니 하는 소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야 호요성의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일지, 버릴지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어이쿠! 바쁘신 분의 시간을 뺏었군요. 조언조차 되지 않는 참견이었을 뿐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십시오.”

“…….”

“자, 그럼.”

꾸벅 인사를 올린 호요성이 휘적휘적 멀어져 갔다.

주서윤은 그런 호요성의 등을 주시했다. 눈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감았다.

“……철마방이라?”

* * *

투왕마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산 정상.

흐드러진 달빛을 구경하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만든 것처럼 평평한 바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두 눈 가득 월광(月光)이 그득하여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린다.

바위 옆에 엎드린 황금빛 짐승. 그리고 바위 위에 앉아 달빛을 올려다보는 서량의 모습은 묘하게 운치가 있었다.

물끄러미 일인일수를 바라보던 종리산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오셨습니까?”

종리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량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달 보기 좋은 날입니다. 구경하시려면 여기 앉으시지요.”

종리산은 대담하게도 서량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위홍련에게 무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 말한 그가 정작 서량의 영역은 잘도 침범하고 있었다.

대범한 게 아니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량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으리란 걸.

종리산이 금호를 힐끔거렸다.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말씀하십쇼.”

“저 여우는 정체가 뭐요?”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 친구입니다.”

“친구?”

“든든한 아군이기도 하고요.”

그건 그럴 만하구나 싶었다. 워낙 충격을 받은 터라 머리에서 지웠지만, 사흘 전 대치했을 때 저 여우가 뿜어내는 기세는 초절정고수의 기파에 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놀라웠다. 한낱 짐승 주제에 그만한 기세를 뿜어냈으니까. 게다가 여우이면서 호랑이를 물어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나.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짐승이다.

“소위 말하는 영물(靈物)인 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으니 일단은 영물이라고 봐야겠죠.”

종리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소할 수 없는 호기심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사실 진짜 궁금한 건 금호보다 서량이었다.

‘참으로 모를 사람이군.’

종리산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찌 이 연배에…….’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다. 당시 서량이 발산하던 기파는 자신에 비해서도 별 모자람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이곳까지 오면서 보여 주던 안목은 가히 종사급이라 불릴 만했다. 투왕마가의 영향력과 전력 배치도를 보며 거경가의 병력이 어떤 식으로 이동해야 할지 기가 막히게 짚어 내지 않았던가.

그 덕에 현재 투왕마가 인근에는 거경가의 실제 병력 삼 할이 절묘하게 주둔해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업 관련으로는 지나칠 정도로 무지했지.’

투왕마가가 사업체를 어찌 돌리고 있는가에 관한 얘기가 잠깐 나왔었다.

당시 서량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쪽으로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시인하기까지 했다.

‘무공이나 전술에 관해서는 출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기습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천하를 논할 만한 안목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종리산의 눈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문외한이었다.’

한 조직의 대표 고수가 될 역량은 차고 넘칠 만큼 가졌으되, 한 조직의 수장이 되기는 힘든 사람이다. 말하자면 장단점이 확실한 인간이었다.

이런 사람을 감찰사로 보내다니, 확실히 교주님도 보통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위 장부가 아니라는 걸 용케도 꿰뚫어 봤구나 싶다.

“……신기하군.”

“뭐가 말입니까?”

“내 아들은 삼공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소. 권력욕과 과시욕이 지나치지만, 그만큼의 재능이 있어서 오히려 위험한 사람이라고.”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종리산의 아들이라면 육공자를 말하는 것일 테다.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잘 봤군.’

적어도 자신이 이 몸뚱이를 차지하기 전까지의 서량은 그러했다.

“하지만 녀석의 안목도 아직 멀었던 모양이오. 녀석에게 듣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군.”

“원래 사람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종리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호와 마찬가지로, 서량 역시 당장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크게 숨을 들이켠 종리산이 물었다.

“투왕마가의 영역까지 왔소. 이제 어쩌실 생각이오?”

“들어가야지요.”

“언제 들어간단 말이오?”

“축제는 역시 밤에 열려야 흥이 나는 법이지요. 길게 시간 끌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후딱 정리하러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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