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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32화 (132/774)

132화. 배움에는 때가 없다 (2)

투왕마가의 가주와 대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교의 감찰사가 왔으니 가주에게 알리라는 한마디를 끝으로, 일행은 이각 만에 가주실이 있는 내원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심지어 적사가 때처럼 병장기를 수거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투왕마가의 가풍에 기인했다.

그들은 일체의 병장기를 휘두르지 않고 오로지 두 주먹만으로 강호를 헤쳐 나가는 무투 집단이었다. 이미 전신이 무기인 가문에 들어왔으니, 굳이 손님으로 온 사람의 병장기를 빼앗지 않겠다는 것이다.

꽤나 공평성 있는 모습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감 때문이다. 어떤 병기를 들고 와도 두 주먹으로 깨부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야말로 그들의 진짜 무기였다.

그래서일까.

가주 조광(趙洸)은 손님들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줄 것을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았다.

파파파팡!

연무장에서 홀로 움직이는 조광의 무공은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한 것이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체격. 하지만 드러난 상체의 근육은 보는 이가 넋을 잃을 만큼 꽉 짜여 있었다.

하루하루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진짜 무사의 몸은 시간이란 마물의 송곳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십이 넘은 나이임에도 탄력을 잃지 않은 육체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위홍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하자는 거야, 저 양반?”

일행을 이곳까지 안내한 조양(趙壤)의 눈이 번뜩였다.

“문제라도?”

“문제? 그럼 댁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위홍련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조광이 자신의 수련을 거리낌 없이 보여 준 것에 놀란 게 아니었다.

“신교 본단에서 감찰사가 오셨어. 무공을 단련하는 중이든 밥을 처먹는 중이든 여자랑 뒹구는 중이든, 버선발로 뛰쳐나와야 정상 아냐?”

“말조심하시오.”

“예의 밥 말아 먹은 행태를 보인 건 그쪽이야. 내가 왜 말을 조심해야 하지?”

조양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더욱 꽉 쥐어 살벌한 소리를 냈을 뿐이다.

위홍련의 눈에 흉흉한 살기가 일었다.

“죽을래?”

“…….”

“몽실몽실한 솜방망이에 힘 빼고 가주나 불러와. 여기 싹 다 밀어 버리기 전에.”

사아아악.

조양의 몸에서 강력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여느 마인들에게서 보기 힘든 독특한 마기다. 마기 특유의 불길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무척이나 잘 제련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기다리시오.”

“뭐?!”

“가주님의 연마는 누구도 방해할 수 없소. 설령 교주님께서 직접 오셨다 한들 가주님은 수련을 멈추지 않으실 거요.”

기가 막힌 발언이다. 상식과 너무 동떨어진 말에 위홍련조차 말문이 턱 막혔다.

종리산이 입을 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조양이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입구에서 설명했으니 아리라 믿네.”

“거경가주님이시지요.”

감찰사와 거경가주가 함께 왔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어쩌면 굳이 신경 쓸 가치를 못 느끼는지도 모른다.

종리산 역시 상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았다. 깜짝 놀라길 바라서 신분을 밝힌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왔다면 그럴 수 있네. 같은 칠가의 수장이니까. 하지만 이분은 교주님께서 직접 보내신 특수감찰사일세.”

“…….”

“가주의 성격은 알지만 그래선 안 돼.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처사야.”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 언사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통하는 건 아니었다.

“저는 그런 건 모릅니다. 다만 가주님께서 중간에 연무를 멈추시진 않을 겁니다.”

종리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 참인가?”

“저희는 가주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양의 단호한 말투를 보건대, 투왕가의 마인들은 가주의 말을 거의 이천상의 말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상대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걸 넘어 귓등으로도 안 듣는 듯했다.

그때, 서량이 나섰다.

“동필아.”

“예, 공자님.”

“이것 좀 맡고 있어라.”

서량은 허리춤에서 칠야도와 유성쌍도를 풀어 그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세 자루 칼을 받아 든 마동필이 의아한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철컹!

등 뒤에 걸린 용린도를 뽑아 든 서량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몸이라도 푸는 듯했다.

조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 하시는 겁니까?”

서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한 얼굴로 어깨를, 허리를, 무릎을 차례로 풀어 나갈 뿐이었다.

조양이 다시 물었다.

“지금 뭐 하시냐고 물었…….”

“아가리 안 닥쳐!”

쩌어엉!

위홍련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

“감찰사님이 뭘 하시든 네깟 놈이 알아서 어쩌려고 꼬치꼬치 캐묻고 지랄이야?”

“감찰사께서 심상치 않은 행동을 하고 계시오. 그것도 본가의 내원에서. 가만히 두고 보란 말이오?”

“너희 가주 놈도 지금 심상치 않은 짓거리를 하고 있잖아?”

순간 조양의 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경망스러운 언사를 조심하지 않으면…….”

“한 번만 더 개소리 지껄이면 이곳에 모인 병력으로 너희 내원을 쑥대밭으로 만들 줄 알아.”

철컥!

호포검을 잡은 위홍련에게서 위험천만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너와 가주, 두 놈은 확실하게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테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진 말고.”

“이 요사한……!”

조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몸을 다 푼 서량이 힐끔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서량과 눈이 마주친 그는 자신의 몸이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느꼈다.

‘헉!’

전신에서 식은땀이 솟구치고 사지에 힘이 쫙 빠졌다.

털썩!

어느새 조양이 무릎을 꿇었다. 헐떡이는 숨과 창백한 얼굴, 그리고 약하게 떨리는 손은 그가 큰 충격을 받았음을 증명했다.

한참이나 조양을 바라보던 서량이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에 잡힌 것은, 이 와중에도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조광이었다.

“뭐, 이런 식도 나쁘지 않지. 그동안 너무 주절대서 주둥이 좀 쉬고 싶었거든.”

소매를 걷은 서량의 팔뚝에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동시에.

콰아앙!

단숨에 날아오른 서량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내려섰다.

폭발적인 신법으로 날아올랐으면서 땅에 내려설 땐 깃털과도 같은 가벼움을 선보인다.

파아아앙!

허공으로 뻗어진 주먹이 처음으로 멈추었다.

조광의 주먹은 정확하게 서량의 명치 앞, 반 치 거리에 멈춰 있었다.

조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중간에 주먹을 거두지 않았다면 당신은 죽었어.”

“어쩌라고.”

“…….”

“눈치를 보아하니 우리가 왔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셔?”

장난스러운 말투 속에 강렬한 흉포함이 감돈다. 홍관과 종리산에게 썼던 말투와는 전혀 달랐다.

조광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그래?”

“그러니 내 단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게.”

“굳이 그럴 필요 있겠어? 달 좋은 밤에 혼자 춤추는 것보다는 둘이 어울리는 게 낫지 않나?”

스륵.

조광이 자세를 바로 했다.

서량의 위아래를 훑는 그의 눈에 묘한 빛이 어렸다.

“내 수련을 돕겠다는 겐가?”

“부족해 보이나?”

“충분해 보이는군. 그 연배에 이만한 기도…… 놀라워.”

“나도 놀랐다.”

어깨에 척 하니 올려 두었던 용린도가 서서히 중단으로 내려갔다.

“이렇게까지 경우 없는 칠가주는 처음이거든. 그래봤자 둘밖에 못 봤지만.”

“불만이라도 있나?”

“지금은 없어.”

“…….”

“벽창호한테 불만 같은 감정 품어 봐야 쓸데없는 감정 소모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조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언행을 함부로 하는 벽창호도 있는데 이 정도야 뭐.”

“참으로…….”

“다만 감찰에 들어가기 전, 자세 교정 차원에서 쓴맛은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온 거야.”

서량의 미소가 짙어졌다.

“싸움을 좋아하나 본데, 내가 다른 차원의 싸움도 있다는 걸 알려 주지.”

꽤 화가 났음에도 상대의 말에 솔깃해한다. 조광은 마(魔)에 일생을 바친 자가 아니라 싸움에 일생을 바친 자였던 것이다.

“혓바닥이 좀 길었지? 슬슬 시작해도 될까?”

“싸움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다만…….”

“뭔데?”

조광의 얼굴이 붉어졌다. 싸움을 앞둔 투사의 흥분이 엿보였다.

“실전의 묘미를 이해했으면 좋겠군.”

죽어도 날 원망하지 마라.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차 마찬가지야.”

“좋다. 어디 그 큰 칼이 장식이 아니…….”

번쩍!

허공을 가로지른 용린도가 단숨에 조광의 정수리를 쪼개려는 듯 내리쳐졌다. 그야말로 번개와도 같은 일격이었다.

기습이라면 기습일 수 있는 일도, 하지만 조광은 상대에게 원망을 쏟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싸움이 결정된 이상 굳이 말은 필요가 없으며, 기습 역시 싸움의 묘미 중 하나다.

상대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서 더더욱 매력적이다. 조광은 그렇게 생각했다.

따다다당!

용린도가 주춤거렸다.

짧은 사이에 양 주먹을 휘둘러 도배를 연달아 쳐 댔다. 그 빠른 주먹질에 도신(刀身)에 깃든 마기가 흩어져 버린 것이다. 속도도 속도지만 섬세함이 눈부신 무공이었다.

더 휘둘러 봤자 의미가 없는 칼질, 땅으로 꽂히던 용린도의 도첨이 단숨에 조광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조광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도양단(一刀兩斷)으로 휘둘렀던 중병의 투로를 단숨에 바꿔서 찌르고 들어온다. 거병(巨兵)이자 중병(重兵)을 휘두르는 데에 도가 튼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무공이었다.

파아아악!

조광의 몸이 순식간에 서량의 품으로 들어왔다.

거리를 좁히는 보법이 절묘하기 짝이 없다. 단순한 일보(一步)로 칼을 피하고 빈틈을 쑤시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최적의 공격 경로까지 만들어 낸다.

쐐애애액!

조광의 주먹이 서량의 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별다른 기세가 깃들지 않은 주먹, 하지만 그 일격에 맞으면 십중팔구 턱뼈가 으스러질 것이다.

그때, 서량의 발이 땅을 찍었다. 마치 조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파고들기 직전에 내친 진각이었다.

콰앙!! 콰지지지직!

엄청난 진각에 조광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공격은 아니었지만 충격파가 어마어마했다.

조광의 눈에 환희가 깃들었다.

“대단하구나!!”

단 두 합에 불과했지만 상대가 얼마나 실전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상대다운 상대에 그는 극도로 흥분했다.

서량의 눈에 짙은 마기가 스쳤다.

조광과는 달리 그는 상대와 감정을 공유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위 대주, 그리고 가주님!”

모두의 시선이 서량에게로 쏠렸다.

“지금 바로 병력을 소환해 내원을 치십시오!”

화르르르륵!

본격적으로 구유마공을 개방하는 그의 몸에서 붉은 번개가 휘몰아쳤다.

서량이 악귀처럼 웃었다.

“저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습니다!”

조광은 경악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냐?!”

“말했잖아? 새로운 차원의 싸움을 보여 주겠다고.”

파아아아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서량이 지옥의 칼바람을 불러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 개지랄을 떨었는지 실력 좀 보자.”

콰르릉!

무극도의 불길과 대홍련의 얼음 폭풍이 연무장을 가득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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