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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35화 (135/774)

135화. 배움에는 때가 없다 (5)

순식간에 마차에서 뛰쳐나온 서량은 오십 리를 더 달리고 나서야 멈춰 섰다.

콰드드득!

잠시 후, 마동필도 도착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신법을 펼쳤는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후우. 역시 공자님은 빠르시군요.”

“별거 아냐.”

“한데 금호는…….”

서량이 말없이 엄지로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느새 도착한 금호가 혀로 앞발을 핥고 있었다.

마동필은 혀를 내둘렀다.

“금호도…… 빠르군요.”

“빠르지.”

딱히 놀랍지도 않다는 투다.

“이놈은 영물이잖냐. 내 팔뚝만 했던 놈이 범처럼 거대해진 것부터가 설명이 안 되는걸, 뭐.”

“그것도 그렇습니다.”

“됐으니까 모닥불이나 피워 놓고 있어라. 사슴이나 한 마리 잡아 올 테니까. 만날 건량에 육포만 처먹다 보니 속이 허해서 죽을 것 같다.”

파악!

돌아오는 대답도 듣지 않는다. 서량과 금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멀뚱하니 서 있던 마동필은 이내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주웠다. 사냥도 자신한테 맡기면 될 텐데, 참 제 손으로 하기 좋아하시는 분이다.

얼마간 나뭇가지를 주운 마동필은 땅을 조금 파낸 자리에 나뭇가지들을 모아 넣고 불을 피웠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제법 쌀쌀한 날씨다. 봄이 왔지만 산중의 밤은 여전히 추울 수밖에 없었다.

초절정의 벽을 앞에 둔 마동필은 이미 한서불침(寒暑不侵)의 경지를 지난 고수, 하지만 모닥불이 주는 따스함은 여전했다.

탁탁 소리와 함께 타오르는 불을 들여다보기 한참.

마동필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은근히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군.’

젊은 나이에 호법원의 조장이 되었고, 지금은 후계 후보의 개인 호위를 맡게 되었다.

평범한 마인이 보면 그야말로 승승장구한 인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한 임무도 많이 맡았지만,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위험을 헤치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더 위험한 삶을 살게 되겠지.’

공자님께서는 의천맹과 철혈성을 강호에서 지워 버릴 생각을 하고 계신다.

왜 그들에게 그리도 분노하셨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자님께서 이전과는 달리 제대로 결심하셨다는 것이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울창한 숲의 하늘, 마치 우물에 떨어진 개구리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저 하늘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면 뛰어 봐.”

“헉!”

깜짝 놀란 마동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어느새 돌아온 서량이 큼직한 사슴을 어깨에 들쳐 메고 서 있었다. 사슴의 목은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서량 옆에선 금호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분한 기색이 엿보였다.

“빨리 오셨군요.”

“내가 왜 여기서 모닥불 피우고 있으라 했겠어? 사슴 발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랬지.”

마동필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으면서 짐승의 발소리까지 들었다니?

스르릉.

서량이 유성쌍도 중 하나, 홍도(紅刀)를 빼 들었다.

“공자님!”

“어? 왜?”

“설마…… 가죽을 벗기시려고 그러십니까?”

“그럼 벗겨야지. 너 설마 가죽도 구워 먹냐? 식성 특이한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문제야, 그럼?”

마동필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칼로 가죽을 벗기시려고요?”

“크기가 딱 좋잖아? 용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칠야도도 너무 길어. 네 묵왕검도 칠야도랑 비슷하고.”

서량이 홍도를 살살 흔들어 보였다.

“최고로 날카로운 데다가 길이도 짤막하니 딱 좋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그리 외칠 뻔했다.

‘세상에 저 좋은 병기로 사슴 가죽을 벗기려 하시다니.’

청홍(靑紅)의 삭풍(朔風)이란 이명으로 불리며, 강철도 단박에 베어 버리는 신도(神刀)를 고기 손질하는 데에 써먹는다고?

삼류 파락호 하나 때려잡겠다고 구대마존을 소환하는 꼴이다. 저 매끈하고도 푸르스름한 도신(刀身)에 사슴의 살점이 묻는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공자님. 제가 처리…….”

“됐어, 인마.”

삭삭!

홍도가 사슴을 훑자 빠르게 가죽이 벗겨졌다.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침음했다. 공자님께서 기어이 만행을 저질러 버리신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마동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기가 막힌 손놀림으로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긁어내는 칼질.

‘…….’

유려하다.

두 자 길이나 될 법한 짧은 칼이 사슴을 해체하는데 그 움직임이 참으로 부드럽다. 고기를 손질하는 게 아니라 마치 초식을 펼쳐 내는 것 같지 않은가.

대충 고기를 손질한 서량이 칼을 털어 내곤 다리 하나를 들었다.

“나머지는 네가 다 먹어라.”

캉!

금호가 기쁜 듯 사슴을 씹기 시작했다. 내장부터 씹는 걸 보니 확실히 맹수는 맹수다.

적당한 굵기의 나뭇가지를 꺾은 서량이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 고기를 잘라 꽂곤 모닥불에 굽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마동필이 불쑥 물었다.

“공자님.”

“응?”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새삼스럽게 뭘. 해 봐.”

“조금 전 사슴을 손질하실 때 말입니다.”

“어어.”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 칼 놀림…… 고죽림에서 보여 주시던 무공 아닙니까?”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천삼도(斷天三刀)라고 하지. 인화도법을 익히기 전에 대성해야 하는 도법이야.”

서량이 고기를 뒤집었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에서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현란하지도 않고 그렇게까지 수준이 높지도 않아. 다만 도법(刀法)의 교과서적인 무공이라, 이걸 대성하면 수준 높은 도법들도 쉬이 익힐 수 있지.”

“…….”

“용케 꿰뚫어 봤군. 네 안목도 성장했다는 뜻이야.”

“아, 감사합니다.”

“근데 그게 왜?”

오히려 의아한 듯 되묻는다. 마동필의 안목에는 놀랐지만, 사슴 해체하는데 초식을 쓴 게 뭐 특별하냐는 투였다.

그런 서량을 보며 마동필은 더 이상 황당해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못했다.

‘이것은…….’

고기를 자를 때 신병이기를 쓰고, 해체할 때는 무공 초식까지 끌어와 자른다.

언뜻 우스워 보이지만 이건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어.’

마동필은 그간 서량의 행적을 떠올렸다.

거처에서 지낼 때야 별일이 없으면 항상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셨더랬다. 그러나 임무를 받거나 어딘가를 이동할 때는 당연히 수련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맡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동할 때는 최선을 다해 신법을 펼쳤고, 방을 정리할 때의 손놀림은 빠르고 신속했으며 정확했다.

파순제 때, 마검가주를 만나기 전 축제를 즐길 때도 그랬다.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파고드는 서량의 뒤를 쫓기 위해 마동필과 위홍련은 무진 애를 써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보법의 극의(極意)를 담고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이곳으로 이동할 때조차 서량은 마동필과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최대의 깨달음을 녹여 내며 이동했다.

‘무(武)가 일상에 녹아 있다.’

수련에 때를 두지 않는다. 사슴의 가죽을 벗기는 간단한 동작에도 능숙하기 짝이 없는 무리(武理)를 담는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어딘가를 이동할 때도, 누군가와 장난을 칠 때도.

서량에게는 순간순간이 수련이고, 성장이었던 것이다.

마동필의 얼굴에 경이로움이 묻어 나왔다.

“공자님께선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긴 개뿔. 아직 멀었다.”

“그래서 더욱 그렇습니다.”

“엉?”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공자님께선 대단하신 겁니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끝을 보려 하는 성격.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공자님께서 진짜 대단한 이유는 애초에 끝이 어디인지를 정해 놓지 않았음에도 목표 지점이 있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무공이란 것에, 삶이란 것에 이 정도로 몰입해야 진정한 대가(大家)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에서 얻은 깨달음이 크다. 마동필은 이제야 자신이 무(武)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거나 하나 받아라. 잘 익었다.”

“아, 예.”

그렇게 이인일수(二人一獸)는 신나게 고기를 씹어 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서량은 나무 하나에 편히 기대앉았다. 그러자 금호가 그의 옆에 다가와 털썩 엎드렸다.

“새벽쯤에 이동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한데…….”

“음?”

마동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적사가에는 어찌 다시 가시는 겁니까?”

“…….”

“감찰이 끝나기도 끝났거니와 유독 분란이 컸던 가문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공자님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거경가주도 호출한 거야.”

“그렇군요.”

“그리고…….”

금호의 머리를 쓰다듬는 서량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이번에는 감찰사로서 가는 게 아니야. 그래서 감찰 견장도 떼어 놓고 온 거 아니겠냐.”

마동필은 그제야 서량의 어깨에 견장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이게 무슨 말이지?

“감찰사로서 가시는 게 아니라면…….”

“적사가를 내 휘하로 두려고.”

“……!”

마동필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휘하로 두신다고요?”

“그래.”

“어, 어찌……?”

“가주의 상처는 하루 이틀 만에 치료될 것이 아니야. 못해도 반년간은 요양해야 하지. 게다가 이가주의 자리도 공석 아냐?”

“물론 그렇습니다만.”

“총관이란 놈의 능력이 제법 출중해 보이더군. 하지만 놈은 가주 대행은 가능해도 가주가 되진 못해. 말하자면 현재 적사가는 그럴듯한 힘만 갖춘 무주공산(無主空山)이란 거지.”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먹잇감으로 삼기에 딱이야.”

먹잇감이라는 말이 이리도 무섭게 들릴 수 있구나 싶었다.

“공자님 말씀은, 그들을 수하로 두시겠다는 뜻입니까?”

“수하? 그런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만한 여지는 얼마 전에 완전히 날려 버리지 않았어?”

“……?”

“거래, 혹은 폭압.”

“……!”

“차기 후계자가 되기 위한 도움을 받기에 아주 좋지.”

마동필은 침을 삼켰다.

당당하게 차기 후계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이전에도 이와 관련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이렇게 분명히 자신의 목표를 드러내신 적은 없었다.

서량은 눈을 감았다.

“될지 안 될지는 나도 몰라. 그것도 가 봐야 아는 거지.”

“……그것이 가능하다곤 해도, 거경가주가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문제 있어?”

“거경가주는 칠가의 가주입니다. 같은 칠가가 한 후보의 디딤돌이 된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도 별문제가 안 돼.”

“예?”

“거경가도 먹어 치울 생각이거든.”

더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게 나올 줄이야.

“……거경가주는 육공자의 아비입니다.”

“알아.”

“가능하겠습니까?”

질문을 뱉어 놓고도, 마동필은 다소 주제넘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간 공자님이 보여 주신 무시무시한 추진력과 위업을 생각하면 정말로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동필아.”

“예, 공자님.”

“지금까지 내가 성공했던 일들, 그게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서 추진했던 게 아니야.”

“…….”

“그냥 믿는 거야.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방향을 돌린다. 하지만 방향을 돌리기 전까지 목숨 걸고 부딪쳐 보는 거야.”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렇지.”

“하면 그 일이 가능한 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곁에서 돕겠습니다.”

서량은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인마. 그간 너한테 때려 부은 선물 생각하면 넌 평생 굴러 줘도 모자라.”

“하하.”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변한 것 같지만 전혀 변하지 않은 공자님의 모습에 마동필은 깊은 안도와 즐거움을 느꼈다.

“일단 좀 쉬어라. 그간 따라다니면서 피로가 꽤 쌓였을 텐데.”

“예. 공자님께서도 푹 쉬십시오.”

“오냐.”

웃으며 눈을 감은 서량.

그의 표정이 조금씩, 조금씩 굳어져 갔다.

‘……적사가나 거경가는 별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뭐랄까.

‘공기가 또 바뀌는군.’

초감각이 조용히, 조심히.

그리고 미세하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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