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마귀와 귀신 (1)
“우웨엑!”
몇 번이나 속을 게워 낸 장우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빌어먹을. 속이 뒤집히는군.”
흐트러진 의관, 붉어진 얼굴, 그답지 않은 거친 말까지.
전형적인 취객의 모습이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그와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던 청년이 코를 움켜쥐었다.
장우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뭘 봐, 이 개자식아! 안 꺼져?!”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청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거칠게 침을 뱉은 장우휘가 이죽거렸다.
“개새끼! 어디서 감히…… 어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연신 비틀거리던 그가 결국 털썩 주저앉았다. 하필이면 쓰러진 자리도 조금 전 한바탕 토사물을 쏟아 낸 곳이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멍하니 있다가, 이내 히죽 웃어 버린다.
“뭐 어떠냐. 내 삶이 시궁창인걸.”
벽에 머리를 댄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 구름이 가득해서 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너답다. 출세 한번 해 보자고 세상에 나와 험한 꼴만 당하더니…….”
어쩌다 홍관의 눈에 띄어 적사가에 들어가고, 나름대로 일 처리에 능해 순식간에 총관 자리까지 올랐다.
마도에 속한 가문이라는 게 걸렸지만 어쨌든 이쪽에선 명문가가 아닌가. 찝찝했지만 그래도 하늘이 날 버리진 않았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마도 무림의 총본산에서 파견한 괴물 하나 때문에 겨우 정착한 가문도 초토화가 되지 않았는가.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경이었다. 발버둥 치고 노력해도 결국은 실패하지 않나. 이럴 거면 굳이 아등바등 살 필요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
장우휘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꼴사납다, 이놈아.”
좌절이 크다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경멸했는데 정작 자신이 이러고 있을 줄이야.
애써 정신을 차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현재 적사가의 내부는 잔뜩 곯아 있었다. 가주는 병상에 눕고 이가주는 죽었으며, 장로들은 이 와중에 이권 다툼에 빠져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라도 중심을 잡아야지.”
적사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럴 때가 아니었다.
우웅.
너무 취해서 내공도 제대로 끌어올리기 힘들다. 아직 진기로 주기(酒氣)를 날려 버릴 실력은 못 되지만, 그래도 술이 좀 깨는 느낌이었다.
‘응?’
벽을 짚어 가며 걷던 그는, 문득 골목길이 더욱 어두워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지?’
장우휘가 고개를 들었다.
“헉!”
어느새 그의 앞에 피풍의를 두른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낭인의 차림새다. 하지만 장우휘가 깜짝 놀란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분위기.
끝없이 펼쳐진 사막보다 삭막하고 펄펄 끓는 쇳물보다 위협적이다. 저 먼 북해(北海)의 찬바람도 사내의 눈빛에 비하면 따스한 봄바람과 같을 것이고, 한여름의 뙤약볕도 사내의 안광에 비하면 반딧불보다 못할 것이다.
차림새는 흔했지만 이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만큼은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설령 신교의 마귀들이라도 이 남자처럼 이질적인 기파를 뿜진 못할 것이다.
“적사가 총관, 맞나?”
오싹하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에 힘이 빠졌다.
본능은 도주를 외쳤지만, 힘이 빠진 채로 굳어 버린 몸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입 한 번 여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번쩍!
사내가 푸르스름한 안광을 터트렸다.
술 때문에 붉어졌던 장우휘의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귀신?’
스르릉.
피풍의에 가려져 있던 장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맞군.”
장우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누구……?!”
퍼어어어엉!!
그는 말조차 다 끝내지 못하고 폭사(爆死)해 버렸다.
말 그대로 온몸이 터져 죽었다. 사내는 그저 검을 겨누었을 뿐인데 장우휘의 몸은 화탄에 맞은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날아갔다.
골목 벽을 가득 적신 선혈. 부서진 살점들이 추위에 파르르 떨어 대는 듯했다.
검을 납검한 사내가 몸을 돌렸다.
사사삭!
동시에 그의 등 뒤로 세 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피풍의를 입은 검사와는 달리 흑색 전포를 입은 그들의 외양은 깔끔하고도 매서웠다.
“애들은?”
사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현재 적사가에서 오십여 리 떨어진 곳에 대기 중입니다.”
“적사가의 감시망이 약해졌기에 삼십 리 더 접근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칠가에서의 지원군은 없습니다. 아직 소문을 내지 않은 모양입니다.”
피풍의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놈들은?”
“모호합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면 진즉에 개입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시의 침묵.
사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알든 모르든 상관없겠지.”
무심하게 뱉는 말 한마디에 강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애들에게 전해라. 금일 자정 내로 적사가 권내 오 리(五里) 앞까지 들어오라고.”
사내, 검궁(劍宮)의 부궁주(副宮主) 목강인(木康仁)이 말했다.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적사가를 우리 수중에 넣는다.”
* * *
서량과 마동필의 이동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하지만 와중에도 여유가 있었다.
서량은 결코 급하게 가려 하지 않았다.
이동할 땐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쉴 때는 확실하게 쉬었다. 먹을 때는 꼭 배부르게 먹었고 수면도 세 시진은 넉넉히 취했다.
마동필은 의아했다.
“공자님.”
“엉?”
“이렇게 여유롭게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딱히 여유롭다는 생각은 안 하는데? 우리가 이틀 새에 이동한 거리를 생각해 봐.”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굳이 다급하게 움직일 필요 없어. 한시가 급한 사태가 아니면 휴식을 배제해선 안 돼.”
“그렇긴 하지요.”
“너도 명심해라. 어느 분야든 비슷하겠지만 특히 무인에게는 때가 중요해.”
“때요?”
“시기를 말하는 거다. 죽자고 수련해 왔으면, 그만큼 죽어라 놀아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왜 웃냐?”
“공자님과 어울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왜? 나는 뭐 조언하면 안 되는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공자님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랄.”
마동필이라고 어찌 서량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사람마다 제 분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지만 쉴 때는 확실히 쉬어야 하는 법이다.
다만 놀라운 것은 서량의 분위기였다.
‘큰일을 앞둔 사람 같지가 않아.’
거래를 제안하든 힘으로 찍어눌러 노예처럼 부리든, 적사가와는 이미 불편한 관계로 얽혔다. 막말로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위험천만한 지역을 가는데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 놀라웠다. 사람이 긴장하고 다급해지면 이렇게 편히 쉬기도 힘들 테니까.
하지만 서량은 마동필이 보는 것처럼 긴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이거 영 껄끄러운데?’
토끼 고기를 열심히 씹어 대며 서량은 생각했다.
‘지금의 적사가라면 공략하기에 어려운 대상은 아니야.’
그것은 단순한 유추가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었다.
이미 감찰사로서 한 번 뒤집어엎은 전적이 있지 않은가. 비요왕의 제자 때문에 눈이 돌아가긴 했지만, 적사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인식했다.
‘나와 동필이, 그리고 금호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해.’
썩어 문드러졌어도 칠가는 칠가다. 가주가 병상에 누웠고 이가주는 죽었지만 남은 병력은 건재하다.
초절정고수가 불리한 전황(戰況)도 한순간에 뒤집을 수 있는 존재라지만, 수백의 고수로 무장한 집단을 겨우 셋이서 상대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
다만 공략하기 쉽다고 생각한 것은, 싸우자고 가는 게 아니라 거래를 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래가 불발되면 그냥 나오면 된다. 적사가가 미치지 않은 이상 두 번이나 방문한 교주의 제자를 건드릴 리는 없다.
화병은 무지하게 나겠지만 말이지.
‘그런데 왜 또 경계심이 드는 거지.’
적사가가 함정을 파 놓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데 자신이 올 줄 어떻게 알고?
‘이것 참 모르겠군.’
생각에 빠져드니 어느새 고기를 다 먹은 것도 몰랐다.
서량이 쪽쪽 빨던 뼈다귀를 모닥불로 던졌다.
“공자님.”
“왜?”
“금호는 어찌…….”
서량이 고개를 돌려 금호를 바라보았다.
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금호가 죽은 호랑이의 털을 핥고 있었다. 먹으려고 죽인 건 아닌 게 분명한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서량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기(死氣)를 취하는 거야.”
“예?”
“전에도 한 번 범을 잡은 적이 있지?”
“아, 그랬지요. 분명 형산에서…….”
“범은 산중지왕이다. 그 생명력은 다른 짐승들과 비교할 게 아니지.”
마동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금호가 흡정마공이라도…….”
“말이 되냐? 아무리 영물이라도 어떻게 무공을 익혀?”
왠지 금호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생명력이 넘치는 짐승들은 많지. 와중에 굳이 범을 잡은 것은, 지금껏 잡은 범들이 사람을 많이 죽였기 때문이야.”
“호환(虎患)을 일으킨 범들이었습니까?”
“그래. 범의 원정(原精)에 귀(鬼)가 들러붙었어. 사람만큼 상단전(上丹田)이 발달한 생물이 아니면 귀가 될 수 없지. 금호는 귀에 물든 범의 원정을 취해서 자신의 힘으로 삼는 거야.”
마동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귀라는 것은 귀신(鬼神)을 뜻하시는…….”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딱히 가져다 붙일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거지. 확실한 건 금호가 범을 죽이는 건 단순히 재미로 그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라는 거다.”
“한데 사기(死氣)는 무슨 뜻인지요? 원정을 취한다고 하셨는데 사기라는 것은?”
“저기 봐 봐라.”
서량이 가리킨 곳은 금호가 엎드린 땅 주변이었다.
마동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곳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관찰력 없는 새끼. 잘 봐 봐, 인마.”
“저는 잘…… 어?”
마동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참 금호의 주변을 보던 그가 다시 자신이 선 땅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호가 있는 곳의 풀이 이곳보다 더 크고 질겨 보이는군요?”
“심지어 꽃봉오리도 피어났지.”
“어, 어떻게?!”
“말했잖아. 금호는 귀에 물든 원정을 취한다. 하지만 원정이란 것도 살아 있을 때나 원정이지, 죽으면 서서히 사기(死氣)로 물들어 사라지게 돼. 그건 알지?”
“예에.”
“금호는 사기의 핵(核)만 취하고 남은 불순물을 자연으로 퍼트려. 말하자면 순환을 가속화하는 거야.”
“가속화요?”
“생물이 죽으면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잖아. 금호는 중간에서 그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해. 그러니까 범의 사체가 저 모양이 되는 거다.”
마동필이 범의 사체로 시선을 돌렸다.
퍼석!
마치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부서지는 것처럼, 범의 대가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부서진 목에선 피도 거의 나지 않았다.
마동필은 경이로운 눈으로 금호를 보았다.
“정말 대단한 영물이로군요.”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놀랄 거 없어.”
“예?”
“내 무애공을 봐라. 무애공의 정화결은 공기 중의 탁기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잖아?”
“아! 금호라는 존재는 무애공과 같은 것이로군요.”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뭐 그런 거지.”
서량이 나무에 편히 등을 기댔다.
“어찌 되었든 호환을 일으킨 범도 잡고, 땅에도 좋고. 금호는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마동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 의문이 불쑥 떠올랐다.
범도 잡고 자연에도 좋단다.
‘그럼 금호는?’
과연 금호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안전한 존재인가, 혹은 위험한 존재인가.
“이제 하루 남았다. 푹 쉬고, 반나절 뒤에 출발하자고.”
“알겠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새끼 참 궁금한 거 많다. 뭔데?”
“왜 하필 이쪽 길입니까? 조금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 그거?”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혹시 몰라서 퇴로를 되짚어가는 거야.”
“퇴로요?”
“응.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자는 거지. 혹시라도 적사가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신나게 튀어야 할 거 아냐? 이쪽 퇴로에 변수의 여지가 있는지 확인할 겸 돌아가는 거야.”
여유는 갖되 준비는 철저히.
마동필은 새삼 서량의 치밀함에 감탄했다.
“알았으면 너도 이만 쉬어. 난 좀 잘란다.”
“아, 예! 편히 주무십시오.”
* * *
반나절 뒤 출발한 이인일수.
그들이 한 시진 동안 쉬지도 않고 달렸을 무렵이었다.
“헉헉!”
저 멀리서 피투성이가 된 여인 한 명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서량의 눈이 커졌다. 마동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도 년?”
사태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