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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37화 (137/774)

137화. 마귀와 귀신 (2)

평소 즐겨 입던 화려한 의복은 거지가 입는 누더기처럼 변해 있었다.

뿐인가? 무표정을 고수하던 얼굴은 분노와 공포로 잔뜩 일그러졌고, 곱게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었다. 전신이 피로 물든 꼴이 전쟁터에서 이탈한 병사를 보는 듯했다.

서량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저거?”

짧은 혼잣말에 오만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

마침 그때, 홍여린도 두 사람을 발견했다.

“학!”

반응이 일품일세그려.

숨까지 딱 멎어 버린 듯한 표정이 압권이다.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지고 두 눈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늑대한테서 도망치던 사람이 호랑이와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서량은 입맛을 다셨다. 어찌 되었든 갑자기 무슨 일인지 물어는 봐야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할 기회를 놓쳤다.

“설마 당신이?!”

“엉?”

“당신…… 정말이지……!”

쌍심지를 켠 눈썹. 분노와 공포가 앞을 다투던 눈빛이 살기로 꽉 차올랐다.

“죽어!”

파아아악!

홍여린이 득달같이 검을 휘둘렀다.

호흡도 안 될 만큼 지친 게 분명한데 달려드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만큼 화가 났다는 뜻일 것이다.

서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미쳤나!”

따아아앙!

아무렇게나 휘두른 손짓에 홍여린의 검이 튕겨 날아갔다. 이미 여기저기가 너덜거리던 호구도 그 일격에 완전히 찢어져 버렸다.

“어디 인사도 없이 그 흉한 걸 휘두르고 지랄이야!”

퍼억!

홍여린의 몸이 허공에 붕 뜨더니 이내 땅으로 고꾸라졌다. 쓰러진 그녀의 눈은 흰자위만이 드러나 있었다.

그야말로 인정사정없는 주먹질이었다. 턱뼈가 부서지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살심을 품고 검을 휘둘렀으니 마동필이라고 홍여린을 좋게 볼 순 없었다. 하지만 너무 살벌한 대응이라 그조차 주춤하고야 말았다.

서량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진짜 악연은 악연이라니까? 적사가를 잡아먹을 생각이 아니었으면 넌 이 자리에서 맞아 죽었…… 응?”

순간 그의 눈이 번뜩였다.

마동필의 얼굴도 굳어졌다. 저 숲 너머에서부터 뿜어지는 강력한 예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공자님?”

“그래, 나도 느꼈다. 한데…….”

“마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서량이 홍여린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기절한 홍여린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이거 다 검상(劍傷)이로군.”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몸 곳곳에 예리한 상처들이 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강력한 기도는 검사 특유의 예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차아앙!

묵왕검을 뽑은 마동필이 서량의 앞에 섰다.

잠시 후, 일단의 무리가 그들 앞에 다가왔다.

“……오호?”

서량의 얼굴에 은은한 감탄이 일었다.

“제대론데?”

나타난 일곱 검사의 자세는 완벽했다.

자연스러운 자세임에도 은근한 절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았다. 언제라도 자유로운 일격을 쳐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설프지도, 어중간하지도 않은 완벽한 중도(中道). 강함의 경지로 본다면 그들 모두 마동필보다 약했지만 검사로서의 자세는 완벽에 가까웠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까지도.

“너희는 누구냐?”

중앙의 검사, 어두운 청색 장포를 걸친 사십 대 장한이 물어 왔다.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대꾸하지 않는 마동필. 그런 그를 보며 장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답무용이라 이건가?”

스릉.

유일하게 검을 뽑지 않았던 장한이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서량의 눈이 커졌다.

“상관없겠지. 저 여자를 본 순간 너희 역시 죽은 목숨이다. 너희의 불운을 원망토록…….”

서걱!

“음?”

장한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뚝뚝했던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붉은 선이 그어졌던 그의 정강이가 기우뚱하더니 서서히 미끄러졌다.

푸화아악!

“크윽!”

두 다리를 잃은 장한이 쓰러졌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검사들은 당황했다.

마동필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칠야도를 꺼내 든 서량의 눈에 마기가 스쳐 지나갔다.

“동필아.”

“예, 공자님.”

“나머지 여섯, 싹 조져 버려라.”

“명을 받듭니다!”

쿠웅!

강한 진각과 함께 마동필의 몸에서 황금빛 마기가 치솟았다.

검사들의 눈이 흔들렸다.

마공을 익힌 자들은 대개 기도를 갈무리하는 데에 능하지 못했다. 그도 당연한 것이, 마기라는 기운 자체가 발산과 파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강력한 마기를 완벽하게 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상대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직전에 다다랐다는 의미였다.

파아아악!

마동필이 검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장한이 외쳤다.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그는 냉정한 지시를 내렸다.

“죽여라!”

터엉!

수장이 다리를 잃었는데도 명령에 동요하지 않는다.

마동필과 여섯 검사가 부딪쳤다.

쩌저저저정! 콰릉!

검과 검이 부딪치고 마기와 예기가 비산했다.

칠야도를 빼 든 서량이 장한에게로 걸어갔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장한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누구냐?!”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척.

서량이 장한에게 칠야도를 겨누었다.

“그 검, 어디서 났냐?”

“뭐라?”

“제법 한 수는 있어 보인다만,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의천맹에 잠입해서 훔쳐 왔을 리는 없잖아.”

“……?!”

마기가 들끓는 눈에 짙은 살기가 솟구쳤다.

“너희의 기파를 보건대 절대 의천맹 소속은 아니야. 그런데 어떻게 효음검(曉音劍)을 갖고 있지?”

“……!”

“어디 소속이냐?”

장한이 이를 악물었다.

“네놈, 마인 주제에 어찌 효음검을 알아보느냐?”

“질문은 내가 했어.”

퍼어억!

창백하던 장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혈을 짚어 완벽하게 지혈해 둔 상처에 다시 칼질을 해 댄다. 잔혹하기 짝이 없는 수법, 날카로운 통증에 정신이 다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어디 소속이든 너희를 그냥 두지는 못하겠다.”

홍여린과 마주했다는 이유로 죽이겠다며 칼을 뽑으려 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천맹의 보검, 의천이십팔검(義天二十八劍)에 속하는 효음검까지 차고 있는 바에야.

그때, 마동필과 검격을 교환하던 검사 중 하나가 힐끔 서량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웅.

검사의 검에서 강력한 검기가 피어올랐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장한이 외쳤다.

“안……!”

쩌어어엉! 푸화악!

빛살과도 같은 일도(一刀)에 검이 부서지고, 검사 역시 두 쪽이 되었다.

수준을 달리하는 무력이다. 인화도법이나 단천삼도를 구사하지 않아도, 평범한 일격에 강력한 위력과 드높은 무리(武理)가 배어든다.

서량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동필아. 애들 손이 논다.”

콰직!

단혼(斷魂)의 검격에 검사 둘의 가슴이 쩍 갈라졌다. 뼈를 부수고 심맥까지 갈라 버린 무자비한 강검(强劍)에 두 검사의 목숨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치이이이익!

묵왕검에 집약된 금강야차의 마기가 금빛 아지랑이를 피워 냈다.

마동필이 서늘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금방 끝내겠습니다.”

파아아악!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가 법왕검법(法王劍法)을 구사했다.

기본공이자 방어에 특화가 된 검법이 호마검식(護魔劍式)이라면, 법왕검법은 공방이 일체가 된 절정의 검법이었다.

다만 전반부만 전수하였기에 그 스스로 필살의 무공을 창안해 낼 수밖에 없었던바. 비기인 단혼(斷魂)과 귀천(歸天)의 검초는 법왕검법에서 태어난 자식과도 같았다.

쾅! 쩌저저정!

금강야차의 태산 같은 힘으로 신교의 법치를 바로 세우는 심판의 검을 구사한다.

미칠 듯이 쏟아지는 장중한 검격에 남은 세 검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일검, 일검의 무게가 엄청나서 받아 내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확실히 저놈도 물건이라니까.’

전반부밖에 알지 못하는 검법으로 저만한 검법을 펼쳐 낸다.

그것은 마동필의 깨달음이 검법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것을 뜻한다. 매번 서량에게 감탄했지만, 그런 서량을 따라잡기 위해 죽어라 노력한 마동필 역시 일가(一家)를 이룬 달인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쪽에서 마음먹고 도와주면 녀석도 자신만의 검도(劍道)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자신의 조언으로 빠르게 강해진 무사가 눈앞에 있다. 제자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앞으로 더 신경을 써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서걱!

번개처럼 빠른 검결로 마지막 검사의 목까지 날려 버린 마동필이 절도 있게 납검했다.

“수고했다.”

“아닙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서량이 장한을 내려다보았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비로소 공포가 맴돌았다.

“저 강도 년을 본 순간 우리 역시 죽을 목숨이었다고?”

“……!”

“그 말, 정정해야 할 것 같은데?”

투둑!

효음검과 검갑까지 뜯어 낸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이 병신 같은 검을 든 순간, 네 수명도 끝난 거야. 나는 의천맹을 지독하게 싫어하거든.”

* * *

“허억!”

거친 호흡과 함께 일어난 홍여린은 일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으윽!”

왼쪽 볼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얼마나 호되게 맞았는지 턱뼈가 시큰시큰했다.

‘여기는 어디지?’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수많은 나무뿐이었다.

그때, 한옆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냐?”

“헉!”

깜짝 놀란 그녀가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나무 밑동에 앉아 한가롭게 고기를 뜯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의 옆에는 크기가 다른 도(刀)가 세 자루, 그리고 빈 도갑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홍여린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당신……!”

퍽!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참았다. 사슴의 다리뼈에 이마를 맞은 그녀의 얼굴이 치욕으로 물들었다.

서량이 손을 털었다.

“아직은 멀쩡하게 세상을 보고 싶지?”

“뭐라고요?”

“눈깔에서 힘 안 빼면 뽑아 버린다는 얘기다.”

홍여린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저 사람이 얼마나 지독하고 흉흉한 인간인지 안다. 눈알을 뽑겠다는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닐 것이다.

“와서 앉아. 물어볼 게 있으니까.”

“……그전에.”

“그전에?”

홍여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날 죽이지 않았죠?”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 넌 재수 없는 데다가 주제도 모르고 발악하는 머저리일 뿐이야. 어떤 면에서는 위 대주보다 더 미친 건 아닌가 싶기도 해. 생각해 보니 그건 그것대로 놀랍다 싶네.”

“…….”

“하지만 내가 널 죽여야 할 이유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는데? 왜 널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한 거야?”

“당연히…… 당신들이 본가를…….”

“뒤집어 놔서?”

“역시 당신이었군요?”

“개소리를 왜 개소리라고 하는지 알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야.”

“무슨 말이에요?”

“감찰사로서 난 너희 가문을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너희 가문을 노리고 공격한 적은 없어.”

서량이 엄지로 본인의 뒤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홍여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주르르륵.

다리가 잘린 장한이 나무에 매달려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치명적인 상태인 게 분명했다.

“소싯적부터 그랬는데, 난 내가 점찍은 먹잇감을 강탈하는 놈들이 제일로다가 싫어.”

“…….”

“그러니까 말해 봐.”

푹.

홍도로 사슴고기를 찍은 서량이 고기를 모닥불 안에 집어넣었다.

“너희 가문, 지금 얼마나 난자된 상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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