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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38화 (138/774)

138화. 마귀와 귀신 (3)

홍여린의 설명은 다소 두서가 없었다.

심신이 지치기도 했고 와중에 긴장도 했으며 스스로도 워낙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량은 대략적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저놈들이 적사가로 들이닥쳐서 몽땅 뒤집었다는 거냐?”

“……네.”

“분명 저것들은 보통이 아니야. 얼마나 제대로 단련되어 있는지는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지. 하지만 적사가가 하룻밤 만에 장악당할 만큼 만만한 가문도 아니지 않나?”

홍여린은 말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서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정도의 병력이 들이닥친 거냐?”

“…….”

“그렇단 말이지.”

마도칠가는 정파 무림의 오대세가(五大世家)와 동급이다. 단순 고수의 숫자는 오대세가 측이 우세하겠지만, 활용 가능한 병력의 규모에선 칠가가 우위에 있다.

말하자면 결코 쉽게 당할 세력이 아니란 것이다. 칠가의 병력을 압도하는 세력은 중원에서 손에 꼽힌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룻밤’이라는 시간을 제외하면.

‘당연하다면 당연한가.’

그 손에 꼽히는 세력이 적사가 정도의 가문을 점령하려 했다면 어중간한 병력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원 병력을 호출할 틈이 생기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화력으로 단숨에 휩쓸려 했을 것이다.

하룻밤 만에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마동필이 입을 열었다.

“확실한 것은 저들이 의천맹 소속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본교의 주적은 의천맹입니다. 철혈성 역시 마찬가지지만 주시하는 농도가 다르지요.”

“그렇지.”

“호법원의 위사들은 정파 무림, 특히 의천맹 고유의 무공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습니다. 그들 무공의 특성과 습관, 주로 사용하는 진법까지도 숙지해 두지요.”

“흐음.”

“저들은 분명 강했습니다만 정파 무공 특유의 선기(仙氣)와 중첩된 기예를 구사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전적인 검결과 살법에 능했지요.”

“…….”

“정파 무림의 어떤 문파에서도 저런 무공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진 않아.

서량은 살왕이라는 괴물을 키운 것이 그들이라고, 작정하면 천마신교보다도 지독한 병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의천맹 놈들이라고 굳이 말해 주지 않았다. 일례로 구대문파의 비기를 모아 만든 구유인화도법에서, 마동필은 정파 무공의 흔적을 읽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서량은 마동필의 말에 동감했다.

“첨언하자면 이놈들은 철혈성에서 파견된 놈들도 아니야.”

마동필이 의아한 듯 서량을 보았다. 적사가를 하룻밤에 집어삼킬 만한 조직은 의천맹을 제외하면 철혈성밖에 없다.

“의천맹은 협(俠)과 대의(大義)를 중시한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렇지. 그렇다면 철혈성은 어떠냐?”

“패도(覇道)를 지향하지요.”

“그래. 어떤 면에서는 본교와도 닮은 구석이 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철혈성은 얼기설기 기워 놓은 거대한 인형과 같아. 본교처럼 근본부터 단단히 지탱해 주는 역사가 없다는 뜻이지. 그래서 세력은 커도 본교나 의천맹보다는 한 수 아래로 치는 거다.”

“아!”

서량이 나무에 걸린 장한을 바라보았다.

“이놈들의 무공은 실전적이고 살기가 짙었으되, 정파 무림 못지않은 역사가 엿보여. 한두 세대에 완성된 무공이 아니란 뜻이야.”

“…….”

“중원의 세력이 아니다.”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새외 무림.”

“확신은 못 하겠어. 하지만 너무 공교로워.”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그때 기억 안 나? 수송대를 습격한 놈들.”

마동필은 탄성을 질렀다.

“남만야수궁. 새외사궁(塞外四宮)의 일익이었지요.”

“그때야 워낙 경황이 없어서 생각 못 했지만 아무리 미친놈들이라도 단독으로 본교를 건드릴까? 맹성(盟城), 둘 중 하나와 손을 잡았다손 치더라도 말이야.”

서량과 마동필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검궁(劍宮)이다.”

“검궁이로군요.”

중원 무림은 새외 무림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

쉽게 말해 오랑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중원의 패권을 다투는 맹성교(盟城敎)와 달리 새외사궁은 동서남북으로 찢어져 있음에도 나름의 결속이 생긴 이유였다.

게다가 그들은 변방의 척박한 땅과 달리 기름진 중원의 땅을 호시탐탐 노려 왔다. 하지만 단신으로는 중원을 손아귀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궁(四宮)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하나이자 넷이고, 넷이자 하나인 새외 무림의 연맹이라 할 수 있겠다.

서량이 이들을 검궁의 무리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야수궁이 신교의 병력을 공격했다면, 검궁 역시 신교를 노릴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이 구사하는 무공까지 본 바에야 다른 집단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홍여린은 당황했다.

“검궁이라니요? 동방의 그 검궁을 말하는 건가요?”

두 사람은 홍여린의 말에 대꾸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어.”

“그렇습니다.”

“음? 너도 같은 생각이냐?”

“공자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진 모르겠습니다만,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말해 봐.”

“도대체 뭘 믿고 이런 짓을 벌이냐는 겁니다.”

천마신교는 자타공인 마도 무림 최강의 세력이다.

단일 세력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거니와 마도의 모든 문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다. 신교에서 떨어진 명령 하나면 마(魔)를 가슴에 담은 무인들이 모조리 들고일어난다.

차라리 본산을 쳤다면 모를까, 장악한 곳은 칠가의 하나다. 마도칠가는 충분히 대단한 세력이지만 천마신교를 대체할 만한 집단은 아니었다.

“적사가를 장악한 건 굉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뒷수습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도 같다. 소문을 막는 것도 한계가 있어. 적사가를 손아귀에 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아.”

현재 적사가를 장악한 무리는 사면초가에 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쪽과 서쪽으로 도망쳐 봤자 신교의 권역이고, 남쪽으로 빠지는 건 그냥 자살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남쪽 끝엔 신교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으니까.

“결국 퇴로는 북쪽밖에 없는데, 북쪽에는…….”

순간 마동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북쪽에는 의천맹이 있지.”

두 사람이 나무에 매달린 장한의 밑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고색창연한 보검, 효음검이 놓여 있었다.

“설마 의천맹과 검궁이 협력 관계를 맺었다는……?”

“과도한 상상은 금물이야. 게다가 그런 거대 단체들의 협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마동필은 입을 다물었다.

서량의 말대로다. 특히나 의천맹처럼 협과 대의를 내세운 연합체가 동도보다는 적에 가까운 새외 무림과 손을 잡는다? 그럴 가능성은 한없이 무(無)에 가깝다.

“뭐, 사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예?”

마동필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홍여린 역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턱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서량이 눈에 불그죽죽한 살기가 일었다.

“중요한 건 내 먹잇감을 엄한 놈이 가로챘다는 거지.”

“……!”

“중원의 판도가 바뀌느니 마느니 하는 건 나하고 관계없어. 나는 적사가를 내 아래에 두려고 왔다. 철저하게 부려 먹으려고. 하지만 중간에서 탈취를 당했잖아?”

“…….”

“이거 기분이 너무 개 같같단 말이지!?”

지금은 대권보다는 제 삼의 세력이 누구인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마동필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서량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서량이 홍여린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있던 홍여린이 움찔했다.

“총관은?”

“네?”

“그 떠버리 총관은 어쩌고 있냐고.”

“……없어요. 습격을 당하기 전 저녁에 본가를 나섰는데 그 이후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염병이 첩첩산중이네, 시부럴.”

홍여린의 눈이 흔들렸다.

“설마 장 총관이 놈들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나요?”

“혹은, 이미 살해당했을 수도 있겠지.”

“살해라뇨?”

서량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적을 섬멸키 위해 군사(軍師)를 없애는 건 전술의 기본이다. 가주도 병상에 누웠고 이가주도 없는 마당에 총관까지 부재하면 적사가는 덩치만 큰 머저리 집단이랑 뭐가 달라.”

“아뇨, 장 총관이 놈들과 연수했다는 게 훨씬 신빙성이 높아요.”

두 눈 가득 흉흉한 살기를 띤 것이, 이미 홍여린은 장우휘를 배신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배신자든 뭐든 상관없어. 어쨌거나 그 총관 놈이 현재 적사가에 없다는 거 아냐.”

“…….”

“빌어먹을, 점찍어 둔 놈이 사라져 버렸군.”

마동필이 물었다.

“점찍어 둔 놈이라니요?”

“그놈한테 적사가를 맡기려고 했단 말이다. 적당히 머리 굴릴 줄 아는 놈이 필요했는데 사라져 버렸다잖아.”

가주의 핏줄이 눈앞에 있는데 잘도 그런 말을 해 댄다.

홍여린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시끄러워!”

“…….”

“정신 사나우니까 넌 좀 닥치고 있어. 안 그래도 열 받아 뒈지겠는데 확.”

서량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마동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 일단은 본산에 연락해야 할 것 같습니다.”

“…….”

“공자님?”

“어?”

“…….”

“왜? 할 말 있어?”

“커험! 본산에 연락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량이 얼굴을 구겼다.

“그래야지. 젠장, 간만에 일이 시원시원하게 풀린다 싶더니만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았네.”

“일단 제가 가까운 지부로 가서 전서구를…….”

“아니, 그건 됐어.”

“예?”

“네가 움질일 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때, 저 멀리서부터 훅 끼쳐 드는 강력한 기파가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이룬 경지가 지고(至高)하여 숨쉬기도 어려운 존재감을 풍긴다. 어둡고 무거운 심해를 연상케 하는 기도였다.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깜짝 놀란 홍여린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맞춰 오셨네.”

잠시 후, 종리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장창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거구가 실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종리산이 나무에 걸린 장한을 힐끔거렸다.

“이 사람은?”

“적입니다.”

“적이라…… 의천맹이나 철혈성의 무사라도 되는 거요?”

“그보다 더 복잡합니다.”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서량.

종리산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적사가가……? 그게 정말이오?”

“진위 여부는 이쪽에다 물어보십시오.”

종리산이 홍여린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넌 적사가주의 여식이 아니더냐?”

“…….”

“설마? 감찰사님의 말씀이 사실이더냐?!”

홍여린이 고개를 숙였다. 같은 칠가 소속의 마인을 만나서 그런 걸까? 까닭 없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 모습만으로 충분했다. 종리산은 서량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감히 어떤 놈들이!”

후욱!

종리산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파가 터져 나왔다.

가는 길이 다르다 해도 같은 칠가의 일익이다. 정체도 모르는 놈들에게 장악당했다고 하니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량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앞뒤 가릴 것 없이 밟으러 가야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이오.”

“사람 하나를 시켜 본교로 전서구를 띄워 주십시오.”

“알겠소.”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갑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이내 무심하게 변했다. 점차 마(魔)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그에게는 사신(死神)으로서의 정체성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너희는 잘못 걸렸어.”

의천맹과 철혈성을 박살 내기 위한 길.

그 길목에는 후계자라는 일차 목적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적사가를 발아래 두는 건 후계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한데 그것이 누군지도 모를 놈들에게 방해를 받았다.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려던 자리가 진흙탕이 되어 버린 격이다.

서량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검궁이든 뭐든 아주 개작살을 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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