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39화 (139/774)

139화. 마귀와 귀신 (4)

잔을 비운 목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그렇다고 썩 좋지도 않다. 중원의 술은 향이 너무 강했다. 독한 거야 상관없지만 이 특유의 향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그가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지만 타고난 골격이 커서인지 상당히 건장해 보였다.

노인은 바로 적사가주 홍관이었다.

목강인의 눈이 번뜩였다.

“아쉬워”

그는 진심으로 아쉬웠다.

적사가를 장악하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쉬웠다. 만약 가주가 이 지경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쉽게 장악하진 못했을 것이다.

병력 손실이 거의 없었다는 측면에서는 환영할 일이나, 한 명의 검사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마도칠가의 수장과는 한 판 시원하게 싸워 보고 싶었거늘.”

물론 그는 자신이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칠가의 가주가 소문보다 더 강하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분명 강호에서 흔치 않은 무력의 소유자지만, 또 다른 벽에 도달하지 못한 그저 그런 뱀 대가리일 뿐이었다.

목강인은 초월자의 벽 직전에 다다라 있는 고수였다. 마도에서 말하는 극마지경(極魔之境)이자 정파 무림에서 말하는 대오답극도조화(大悟踏極到造化), 조화지경(造化之境)의 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 경지는 말 그대로 초월자들의 세계인 바, 강호의 십대고수와 천마신교의 구대마존이 이에 속한 천외천(天外天)의 고수들이었다.

물론 목강인이 벽의 직전에 다다랐다고 하여 당장 벽을 뚫고 그 세계로 진입하진 못할 것이다.

오히려 벽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벽을 넘기 위해선 지금까지 쌓아 왔던 피땀 어린 연마보다 훨씬 큰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경지를 사람들은 선택받은 자들의 경지라 말하는 것이다.

“적사가주 정도면 나름의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심했다. 개인의 성장보다 궁(宮)의 업무가 더 중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빈 술잔을 내려놓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오십 대로 보이는 초로인이 부복해 있었다.

“칠성검주(七星劍主)들은?”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목강인의 눈에 기묘한 안광이 일렁였다.

주르륵.

초로인의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소하(蘇河)를 보내도록 하라.”

“……!”

초로인, 금문(金紋)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궁주님. 그런 일에 소궁주를 보낸다면 궁주님께서 진노하실…….”

“…….”

“죄송합니다. 명을 전달토록 하겠습니다.”

스르륵.

금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문을 나선 목강인은 후원으로 걸었다. 후원에는 서른 가량의 검사들이 진을 치고 서 있었다.

검사들의 기파는 실로 놀라웠다. 한 명, 한 명이 뿜어내는 첨예한 기도가 대문파 장로급에 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목강인이 입을 열었다.

“준비는?”

검사들 중 하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시진이 소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 시진으로 줄이도록.”

무리한 명령이지만 토를 달지 않는다. 검사가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검사가 뒤를 돌며 말했다.

“보검단(保劍團)을 도와 일을 마무리 짓는다. 움직여라.”

사삭.

검사들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기민했다. 신법을 펼치는 게 아닌데도 시야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목강인의 안광이 형형해졌다.

“성취가 좋군.”

“감사합니다.”

“새 무공은 잘 맞나?”

“예. 본궁의 무공과 크게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계속 살펴보도록.”

“예.”

목강인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하늘은 밝았다.

‘넉넉하군.’

적사가를 사지(死地)로 만들기만 하면 남은 일은 이제 맛난 먹잇감들을 끌고 오는 것뿐이다.

‘당분간은 고된 생활을 하겠어.’

아마도 중원에서 생활하려면 이런저런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궁(宮)의 세력 확장과 완벽한 중원 진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의천맹 측에서는 연락이 왔나?”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

목강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애들 무공도 무공이지만 의천맹의 동태를 살피는 일에도 한 치의 긴장을 놓지 마라.”

“알겠습니다.”

“이만 가 보도록.”

유하검단(流河劍團)의 단주까지 보내자 후원에는 목강인 하나만 남게 되었다.

‘의천맹주…… 과연 보통이 아니야.’

적사가를 장악, 이후 당가(唐家)의 극독을 이용하여 부나방들을 쓸어버린다는 계획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을 검궁에 맡긴 후, 검궁의 검사들을 맹으로 들여 여론을 호의적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에는 상당히 놀랐다.

‘본인들의 병력은 쓰지 않고 우리를 이용했다.’

당하는 입장에선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목강인은 물론 검궁의 어떤 검사도 이 일에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이 일이 끝난 후 중원으로 입성하면 그들은 마도의 기둥 하나를 박살 낸 영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들끓는 여론도 단번에 잠재울 수 있다.

말하자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의천맹 측에선 수고비 명목으로 보기 드문 보검 몇 자루와 비급 몇 권도 전해 주었다.

‘정치에 능하고 사람도 다룰 줄 알아.’

의천맹의 세(勢)를 불리고, 와중에 검궁의 힘도 측정할 수 있으며 나아가 마도 무림에 상당한 타격까지 줄 수 있는 방법.

‘절대 긴장을 늦춰선 안 돼.’

너무 위험한 상대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목강인은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서성였다.

반 시진 후, 유하검단주가 찾아왔다.

“부궁주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다.”

“그리고 의천맹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길은 잘 닦아 놓았으니 이틀 뒤 자시(子時)까지 안내자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순간 목강인의 눈이 번뜩였다.

“좋아.”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 부나방이 될 놈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최대한 많이 해치우는 일만 남았다.

“마도 무림 전역으로 정보를 풀어라. 현재 적사가가 모종의 집단에게 장악당했다고.”

“예!”

무심하기만 했던 목강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피 냄새가 올라오는군.”

* * *

“빌어먹을.”

소하의 얼굴에 불쾌감이 깃들었다.

“이런 같잖은 일에 날 보내?”

솔직히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현재 적사가를 장악한 검궁의 검사들 중 노는 병력은 하나도 없었다. 한 명, 한 명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니 남은 것은 소궁주인 자신뿐이었으리라.

그래,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해를 하는 것과 기분이 나쁜 것은 철저하게 다른 문제였다.

“목강인…… 마음껏 즐기고 있어라. 조만간 네 분수를 깨닫게 해 주마.”

아무리 검궁의 이인자라지만 작은 주인인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다니.

참으로 불쾌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이곳에 보낸 건 차기 궁주가 되기 위한 수업의 일환이었지, 부궁주에게 명령이나 받으라고 보낸 게 아니었다.

소하가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도 내가 우습더냐?”

소하를 수행하러 온 두 검사는 말이 없었다.

핏발 선 눈으로 씩씩대던 소하가 이내 심호흡을 했다.

“젠장, 됐다. 내가 뭘 바라냐.”

그는 매사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뛰어난 검사이기도 했다. 검사에게 명경지수(明鏡止水)는 필수인바, 언제까지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그가 다시 땅을 박찼다.

파악!

굉장한 속도였다.

마음먹고 신법을 펼치자 천리마처럼 빠르게 내달린다. 와중에 날아드는 검을 언제라도 쳐 낼 수 있도록 자유로운 자세를 유지했다. 검사로서 그의 실력이 일가(一家)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뒤를 따르는 검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하보다는 못하지만 절정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음.’

터어어엉!

나무 한 그루에 다가간 그가 눈을 빛냈다.

‘여기서 방향을 꺾었군.’

칠성검수들의 발자국은 무척이나 엷었고 또한 일정했다. 그들 모두가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발자국은 일정하지 않았다. 부상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검사 중 하나가 말했다.

“대략 두 시진은 지난 흔적으로 보입니다, 소궁주님.”

“나도 알아!”

소하의 얼굴에 짜증이 일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발자국들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솟는다.

“칠성, 이 병신 같은 놈들. 그깟 계집년 하나 못 잡아서 사람을 귀찮게 해?”

그때였다.

“계집년?”

“헉!”

파아아악!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소하와 검사들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눈을 돌렸다.

수풀이 가득 쌓인 그곳에는 훤칠한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질투가 날 정도로 잘생긴 얼굴. 큰 키에 당당한 체격이 무척이나 보기가 좋았다.

놀라운 것은 청년이 차고 있는 병장기의 숫자였다. 다섯 자가 넘는 거도에 삼 척 길이의 장도, 그리고 색만 다르고 똑 닮은 쌍도까지 무려 네 자루의 칼을 차고 있었다.

차아아앙!

검사들이 매서운 기세로 검을 뽑았고 소하 역시 상체를 낮춘 채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소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누구냐?”

청년, 서량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제법인데.”

자세와 기세가 일품이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만한 기량을 보여 주기란 쉽지 않다.

“좀 뻣뻣하긴 하다만 나쁘지 않아. 어지간한 고수들은 몇 합 버티지도 못할 실력이군.”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청년에게 이따위 말을 듣는다.

평소 소하의 성격이라면 쌍욕부터 날아가야 정상이었다. 그는 모욕을 당하는 것도, 비교를 당하는 것도, 평가를 당하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소하.

‘……강하다?!’

자신의 감각을 피해 나타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저 나른함과 무심함을 절묘하게 오가는 눈빛은 마주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강력한 안광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고수다. 그것도 엄청난……!’

하지만 그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사사삭.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또 한 명의 사내.

소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검사들도 당황을 금치 못했다.

‘뭐야?’

한 명이 더 있었어?

아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스슥. 스스슥.

수풀 너머에서부터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못해도 백이 넘는 인원들이 그곳에 있었다. 하나 같이 용맹하고도 무거운 기파를 발산해 내는 고수들이었다.

소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 명이면 그럴 수 있다. 둘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많은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기척을 읽지 못했다. 귀를 기울여 보니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부라도 알아챌 만큼 대놓고 이동 중이었다.

“너희들 뭐냐?”

소하가 서량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오호라, 이제 보니…….”

소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예기는 꽤나 낯익은 것이었다.

“너희, 그 머저리들이랑 한패냐?”

“……머저리?”

서량이 마동필에게 눈짓하자 마동필이 효음검을 들어 보였다.

“저 검의 주인과 한패냐고.”

“……!”

소하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떠올랐다.

저 검은 분명 의천맹에서 보낸 보검 중 하나였고, 적사가를 치기 전에 칠성검주가 하사받은 검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 검을?!”

“맞군.”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쩌저저정!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세 사람이 튕겨 나갔다.

본능적으로 검을 세워 들었지만, 세 사람의 검 모두 보란 듯이 동강이 나 버렸다. 그중 두 사람은 부러진 검처럼 양단되어 쓰러졌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은 한 사람, 소하는 죽진 않았지만 상체가 걸레짝이나 다름없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도풍(刀風)이었다.

“커허억!”

토해 내는 선혈이 땅을 적신다.

지독한 내상에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은 상태였다.

소하가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사람 몸집만 한 칼을 빼 든 마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소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저들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눈앞에 청년이 발산하는 압도적인 기파가 이 숲 일대에 번져 있어서 감각에 혼동이 왔던 것이다.

‘이런 엄청난……!’

한 사람의 기운이 숲을 뒤덮을 정도라니?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경지였다.

서량이 소하 앞에 쭈그려 앉았다.

“피해자는 잘 모르더라고. 지금 적사가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공략을 당했는지 말이야.”

“쿨럭!”

“그 나이에 그 무공…… 나름 한자리하는 놈 같은데.”

“……?”

서량이 하얗게 웃었다.

“편하게 죽고 싶으면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전부 대답해야 한다, 알겠지?”

한 시진 후.

서량과 마동필이 적사가의 대문 앞에 도착했다.

우우우우웅!

용린도를 빼 든 서량이 버럭 외쳤다.

“도둑 대가리 놈! 당장 튀어나와!”

콰르릉!

만든 지 얼마 안 된 적사가의 대문이 다시 한번 박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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