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40화 (140/774)

140화. 마귀와 귀신 (5)

“뭐라?”

목강인의 안광이 흉흉하게 번뜩였다.

그야말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무슨 무공을 익혔는지, 그의 눈빛은 마주하는 사람이 감당키 힘들 만큼 이질적이었다.

“감찰사?”

“그렇습니다.”

느닷없이 감찰사라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마교에 감찰사라는 직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금천도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분명 마인입니다. 그것도 굉장한 고수입니다.”

“…….”

“더하여…….”

“뭐지?”

금천은 침을 삼켰다.

“상대측에서…… 소궁주님을 인질로 잡고 있답니다.”

쩌저저정!

목강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예기가 피어올랐다.

피슉!

방 안의 기물들에 칼자국이 새겨졌다. 무형의 검기가 제멋대로 발산된 것이다. 피하지 못한 금천의 어깨에서도 피가 새어 나왔다.

“소하가 인질로 잡혔다?”

“예.”

“……재미있군.”

목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보도록 하지.”

* * *

푸스스스.

불어오는 바람에 돌가루가 휘날렸다.

마동필은 혀를 내둘렀다.

‘엄청나다.’

강력한 도풍에 휩쓸린 것은 대문만이 아니었다. 대문과 이어진 외벽 일부까지 산산히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그 파괴의 흔적을 보자면 성채만 한 괴수가 앞발을 휘둘러 깨부순 것만 같았다.

‘인화도법이 아니야. 그럼에도 이런 위력이라니.’

마동필은 힐끔 서량을 보았다.

화르르르륵! 파지지직!

불꽃처럼 화려한 마기를 피워 내는 서량. 번져 나오는 적색 마기 사이사이로 위협적인 번갯불이 튀어 올랐다.

‘더 강해지셨다.’

확실하다. 공자님은 이번 감찰행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가신 게 틀림없다.

‘정말이지 대단하시구나.’

분야를 막론하고 대가의 반열에 오를수록 성장은 더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자님은 그러한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계신 것 같았다.

‘한계를 초월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또 한 걸음을…….’

초절정의 영역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경지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벽이 있다. 인간의 한계는 초월했지만 무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그 틀에서조차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어떤 성채보다도 높고 어떤 강철보다도 단단한 벽.

무공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 마인들이 마주하게 되는 그 벽을 세인들은 마중지벽(魔中之壁)이라 부른다.

‘설마 공자님께선 벌써 마중지벽의 앞에 서 계신 걸까?’

마동필은 기억하고 있었다. 파순제가 열리기 전, 서량이 피워 낸 상마진화(上魔眞火)를.

상마진화는 곧 정파 무림의 삼매진화와 같은 경지였다. 그리고 삼매진화는 조화경에 든 이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고로 상마진화를 피워 내신 공자님은 극마지경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공자님은 부정했다. 아직 자신은 극마지경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극마지경에 도달했다면 이전 적사가에서 그리 다치실 리도 없었을 테니까.

‘달리 말하면 극마의 경지를 코앞에 두고 계신다는 뜻이다.’

마동필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 하물며 주화입마에 걸려 모든 무공을 소실하셨던 분이다. 고죽림이라는 사지(死地)에서 수많은 영죽을 취했다곤 해도 불가사의한 성장 속도였다.

더는 놀랄 게 없다고 생각했거늘, 틀렸다. 모시면 모실수록 새삼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경이로운 분이다.

‘이것이 바로 신의 선택을 받은 자, 차기 마신(魔神)의 후보로 뽑힌 천재의 재능…….’

감탄을 넘어 감동 어린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는 마동필.

정작 서량은 그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기(氣)가 강해졌어.’

그는 왼 주먹을 들어 올렸다.

굵게 도드라진 핏줄 속에서 미세한 광채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의 다 왔군.’

구유마공의 진정한 개방인 지옥개문(地獄開門)은 단순히 더 강한 힘을 발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지옥문의 개방은 시전자를 보다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깨달음의 돌파구였다.

일 층, 지저옥관귀문식(地底獄官鬼門式)은 마(魔)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옥에 득실거리는 악마의 기운을 끌어와 몸으로 마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저옥관귀문식에 통달하면 천하 어떤 마공도 손쉽게 익힐 수 있다.

이 층, 마관상천지문식(魔觀上天知門式)은 귀문식에서 얻은 마(魔)의 기운을 증폭시켜, 한계점까지 끌어올린다. 극에 이른 마기를 한계까지 증폭시킨다는 것은 결국 극마(極魔)의 벽을 끊임없이 두들긴다는 뜻과 같다.

마귀가 드높은 하늘을 바라봄에(魔觀上天) 비로소 진정한 문이 어디인지를 깨닫는 것(知門). 마(魔)의 본질을 끊임없이 체화시키는 공부.

결국, 귀문식과 지문식은 하나다. 그 두 개이자 하나인 식(式)은 극마지경을 뚫기 위해 만들어진 기공인 것이다.

‘곧 마벽(魔壁)을 뚫을 수 있어.’

그는 몇 번이나 귀문식과 지문식을 개방했었고, 그때마다 중단전이 깨져 나갈 만큼 격렬한 감정을 표출했다.

그 과격한 분노와 한(恨)이 구유마공을 무섭도록 자극했고, 자극된 구유마공은 서량의 몸을 넘어 마음까지 마(魔)에 물들도록 만들었다.

지금의 그는 마에 한없이 가까워져 있었다. 이제는 정말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나를 자극할 만한 고수를 만나면 좋을 텐데.’

그때였다.

치이잉!!

탄력 있는 신검 두 자루가 부딪치면 이런 소리가 날까.

‘온다.’

화아아아.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적사가 안쪽에서 기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불처럼 뜨겁고 화려한 서량의 기파에 비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기운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뿜어져 나오는 기파에 무형의 검기마저 섞여 있었다.

‘허?’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이거 걸물이군.’

연마될 대로 연마된 장인의 검에 피에 젖은 귀신이 들러붙은 것 같다. 소름 끼치도록 날카로운 예기와 음험하기 짝이 없는 귀기(鬼氣)가 공존하는 기괴한 기파였다.

푸스스스스.

땅을 구르던 돌 부스러기들이 서량이 선 방향으로 휘날렸다.

적사가의 영역 전체를 장악하기 시작한 초고수의 기도다. 거대한 숲을 뒤덮었던 서량의 기파보다 범위가 넓진 않지만 농도는 훨씬 짙었다.

바로 이곳이 나의 왕국이라는 듯.

무시무시한 존재감으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는 일대 거인의 등장이었다.

“마교의 감찰사라고?”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성루 위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한 남자.

평범한 피풍의를 걸친 남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핏 삼, 사십 대로 보이는데 달리 보면 육십이 넘은 것 같기도 하다. 이질적인 존재감만큼이나 기이한 생김새였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도둑 대가리가 납셨군.”

“도둑 대가리?”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이다. 목강인은 상대의 말을 무시했다.

“마교에는 감찰사라는 직책은 없는 걸로 아는데.”

“시끄럽고, 이 정도 존재감이라면 필시 네가 검궁의 부궁주란 놈이렷다?”

목강인의 눈에 희미한 귀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 안광에 깃든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전했을 텐데? 너희 측 후계자가 우리 수중에 있다고.”

목강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반 각이란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믿을 수 없군.”

“뭐가 말이냐.”

“본궁의 소궁주가 그걸 다 알려 주던가?”

“그러니까 알지.”

“소하는 검사답지 않게 경박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쉽게 입을 열 아이는 아니야. 본궁은 주둥이가 가벼운 자를 후계자로 삼을 만큼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목강인의 눈이 번뜩였다. 보면 볼수록 섬뜩한 눈빛이었다.

“묻겠다. 우리가 검궁의 검사들이라는 걸 누구한테 들었지?”

“너희 후계자한테.”

“……어디서 말장난을.”

“믿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어차피 너희, 마도 무림에 소문을 낼 작정 아니었어?”

“……!”

“나는 신교의 특수감찰사다. 교주님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만하면 충분한 거물 아닌가?”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너희, 빌어먹을 도둑놈들이 영접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과분한 위치라고 생각하는데.”

스르르르.

목강인의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형형하게 빛나는 안광이 점점 진해졌다.

“네 말이 맞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적의를 갖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지.”

“시원시원해서 좋군.”

“이곳으로 들어와 보겠나?”

“들어가야지. 하지만 무턱대고 들어가긴 좀 뭣한데?”

우우우우웅.

용린도가 웅장한 도명(刀鳴)을 뿜어냈다.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비록 모난 구석이 있지만 검궁은 한 자루 검에 목숨을 건 검귀들의 집단이라고 들었다. 무인으로서의 도리는 몰라도 검사로서의 명예는 아는 위인들이라고 하였어.”

“…….”

“그 명예마저 내팽개치고 독을 푼 반편이들이 우글대는 곳에 그냥 들어가긴, 우리로서도 껄끄럽지 않겠냐?”

물끄러미 서량을 바라보던 목강인.

잠시 후, 그의 손이 검병(劍柄)에 닿았다.

스르르릉.

“감찰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둥이 놀리는 솜씨는 일품이로구나.”

“칭찬 고맙군.”

“어디 네 무공이 주둥이만큼 대단한지 보겠다.”

“거기서 확인해 보시게? 이리 내려오지?”

섬뜩하게 번득이던 목강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수준부터 확인하고 나서 판단해 보도록 하마.”

스르륵.

중단으로 빼 든 검.

중원식 검과는 달리 손잡이가 긴 쌍수검(雙手劍)의 형태다. 하지만 보검도, 신병도 아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철검(鐵劍)이었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파사사사삭!

목표 대상을 검으로 겨누는 것만으로도 기도가 가일층 증가했다.

화살처럼 쏘아지는 예기의 폭풍. 무형의 검기가 저절로 일어나 주변 외물들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치이이이익!

검신(劍身)에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공형검도(空形劍道)라는 것이다.”

위이이잉!

아지랑이를 피워 내던 검신이 이내 완전한 청광(靑光)에 물들었다.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번쩍!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퍼런 검광(劍光)이 서량을 향해 쏘아졌다.

‘……!’

마동필의 눈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빠르…….’

사고의 속도가 검광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의 검기공(劍氣功)이었다.

서량의 양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콰르르릉!!

서량이 선 땅 일대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파괴되고 부서진 경력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느닷없이 불어닥친 폭풍에 마동필조차 오 장 거리 뒤로 튕겨 나갔다.

“공자님!”

후우우웅.

땅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먼지가 하늘까지 닿을 듯 치솟았다.

목강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콰앙!

먼지구름 속에서 폭음이 울렸다.

동시에 무형의 거력(巨力)을 담은 칼바람이 솟구치면서 먼지구름이 빙빙 소용돌이쳤다.

휘이잉! 파지지지직!

매서운 속도로 돌아가던 돌풍 속에서 새빨간 번갯불이 일었다.

후욱!

이내 거대한 먼지구름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러자 드러나는 광경.

뚝. 뚝.

오른손에는 용린도, 왼손에는 칠야도.

낮은 자세로 두 자루 칼을 교차한 서량의 눈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눈은 물론이거니와 머리 반쪽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목강인의 눈에 은근한 놀라움이 어렸다.

“막아 냈나?”

“쉽진 않았어.”

서량이 씨익 웃었다.

번쩍!

교차한 자세 그대로 쌍도를 휘두른다.

번갯불처럼 격렬한 십자형(十字形) 도기가 목강인을 향해 쏘아졌다. 속도는 공형검도보다 느리지만 훨씬 힘 있고 격렬한 도기였다.

목강인이 검을 크게 내리쳤다.

쩌어어어엉!

부서진 도기가 비산하며 사라져 갔다.

“답례로 나쁘지 않았나?”

“……충분히.”

퍼석.

목강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기를 막아 낸 검신에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이야.”

목강인이 고개를 들어 서량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흔들렸다.

화르르르륵!

불꽃 같은 마기를 피워 내는 서량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목강인의 귀안(鬼眼) 못지않게 흉악한 안광이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중간에서 내 먹잇감 채 가는 놈들은 절대 봐주지 않거든.”

“……먹잇감?”

파지직!

용린과 칠야가 대량의 전광(電光)으로 물들었다.

“너희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개자식들을 모조리 작살 낼 참이니까 한 놈도 도망칠 생각 마라.”

서량이 버럭 외쳤다.

“금호!!”

카아아아앙!

저 멀리서부터 터져 나온 괴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흉악한 마기가 몰려들었다.

목강인의 눈이 커졌다.

서량이 자세를 낮추었다.

“동필이 따라붙어!”

“예!”

파아아악!

두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부서진 대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귀의 대장과 귀신의 수장이 마주 돌진하는 가운데, 마침내 적사가를 둘러싼 광기 어린 싸움이 시작되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