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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46화 (146/774)

146화. 핏빛 늪에서 악의 연꽃이 피다 (6)

“후욱. 후욱.”

몇 리(里)나 되는 거리를 얼마나 빠르게 달려온 것일까.

초절정고수인 고구조차도 호흡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체력과 내공의 효율은 집어치운 채 오로지 속도만을 낸 결과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헉헉!”

그의 뒤를 따르는 흑조위들의 호흡 소리는 천둥처럼 컸다. 몇몇 흑조위들의 가면 밑으로 드러난 턱 언저리에 허연 거품 자국을 달고 있었다.

고구가 외쳤다.

“조금만 더 버텨라!”

평소 무뚝뚝하기로는 호법원주 무담을 넘어 이천상에 비견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수하들을 독려할 만큼 모두의 체력이 좋지 않았다.

파바바박!

호흡이 그리 격한 와중에도 그들의 속도는 여일(如一)했다.

체력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았던 그들의 신심(信心)이, 신(神)의 제자를 구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달렸을까.

고구의 눈이 번뜩였다.

저 멀리 적사가가 보였다.

“다 왔다!”

아직 한참 떨어져 있지만 드디어 육안에 포착된다. 그것만으로도 모두는 고통을 참아 낼 수 있었다.

고구는 입술을 깨물었다.

‘엉망이군.’

언뜻 봐도 대문과 외벽 곳곳이 박살 나 있었다. 희뿌연 연기가 일어나는 걸 보니 화재도 발생했던 모양이었다.

“속도를 높여라!”

파아아아앙!

정신력으로 고통을 억누른다. 고구와 흑조위들이 이전보다 한층 더 속도를 올렸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자 서서히 기감에 잡히는 것들이 있었다.

‘많다. 수백 명이 얽혀 있어. 엄청난 난전…… 음?’

고구의 눈이 흔들렸다.

너무나도 강대한 존재감을 풍겨 내는 두 사람.

그중 한 사람의 생기(生氣)가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었다. 생명의 불길이 꺼져 가고 있는 것, 그 불씨가 스러지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삼공자?!’

차아아아앙!

허리춤에 돌돌 말아 놓은 연검을 뽑아 든 그가 마공을 개방했다.

우웅!

낭창거리던 연검이 꼿꼿해졌다.

고구가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번쩍!

무시무시한 검기가 충천했다.

강력한 마기가 실린 검광(劍光)이다.

바로 이곳에 지원군이 있으니 아군은 힘내라는 뜻을 전하고, 적에게는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위협을 가하는 일격이었다.

투둑. 쏴아아아!

그때 느닷없이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를 맞아 가며 고구가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대문으로 돌아가거나 저 멀리 부서진 외벽으로 들어갈 틈도 없다. 정면으로 벽을 부수고 들어간 고구와 흑조위들이 빠른 속도로 전권에 가까워졌다.

그때였다.

‘……!’

고구의 눈이 흔들렸다.

‘뭐지?’

사아아아악.

바람이 불어왔다.

이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닌 것 같다. 바람은 바람이되, 바람에 실린 기(氣)의 특성이 달랐다.

선선하고 부드러운 미풍 속에 깃든 마(魔)의 숨결.

파바박!

고구와 흑조위들이 신법을 멈추었다.

거칠어진 호흡을 골라 가던 그들의 얼굴이 일순 창백해졌다.

고구가 외쳤다.

“모두 피해라!”

동시에 화려한 빛이 폭발했다.

퍼어어어엉!!

* * *

크아아앙!

금호가 울부짖었다.

서량이 불렀을 때, 언제나 사위를 압도하는 위엄과 살기를 뿜어 대던 금호.

그러나 지금의 금호는 달랐다.

콰드드득! 콰아앙!

주변의 온갖 것들을 모조리 부수며 발광한다.

여우치곤 거대하다 해도 범보다는 작은 그 몸뚱이로 사방의 건물을 부쉈다.

금호와 함께했던 홍여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가, 가문이…… 가주실이…….”

가주실에는 아버지가 누워 계신다. 한데 그 가주실의 건물이 순식간에 부서진 것이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셨는데.

“머, 멈춰!”

그때, 금호가 홍여린에게 눈을 돌렸다.

‘헉!’

홍여린은 입을 떡 벌렸다.

부르르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떨린다. 극심한 공포에 그녀의 눈이 뒤로 홱 돌아갔다.

의식을 잃기 전, 그녀는 생각했다.

‘저건 영물이 아니야.’

신비롭고 아리따운 얼굴이 일그러졌을 때, 보석처럼 영롱한 푸른 눈이 오색으로 물들었을 때.

황금빛 털을 세우며 포효를 내지른 바로 그때, 그녀는 금호라는 영물의 진정한 실체를 깨달았다.

‘통제 불능의 재앙 그 자체…….’

금호가 대가리를 쳐들었다.

「캬아아앗!!」

콰르르릉!

터져 나가는 황금빛 요기(妖氣).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마동필이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금호가 왜…….”

쾅! 와르르!

내원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많은 검사들이 뛰쳐나왔다.

“으아아아!”

“크아아!”

괴성을 지르는 검사들. 그 속에는 목강인이 내심 자신의 후계로 점찍어 둔 유하검단주 장국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사가 사방에 당가의 독을 풀어 둔 보검단의 검사들과 목강인의 최측근인 금문도 있었다.

그 모두가 목이 터져라, 괴성을 지르며 아무렇게나 검을 휘둘러 댔다.

두 눈 가득, 오색의 광채를 피워 올리며.

마동필이 외쳤다.

“종리 가주님!”

사태가 너무 급박해졌다. 퇴로를 만들고 병력을 뺄 때가 아니었다.

종리산이 외쳤다.

“해왕위와 삼단(三團)의 마인들은 적도를 주살하라!”

파아아악!

제각기 창을 쥔 거경가의 마인들이 검사들에게 달려들었다.

퍼어어억! 푸화악!

“크아아악!”

“끄르륵!”

검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거경가의 마인들, 특히나 해왕위의 무공이 돋보였다. 거경가 최강의 조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무위를 보여 주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종리산의 눈이 흔들렸다.

‘도대체 왜?’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검궁의 검사 모두의 눈이 오색으로 빛났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눈앞에 있는 아무나 죽이겠다는 듯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러 댔다.

전후좌우, 아군에게도 검을 휘두른다. 심지어는 제대로 된 검법도 아니었다.

마치 집단으로 미치기라도 한 듯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 주는 검사들.

종리산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 정도면…….’

저들은 칠보단혼산의 독무를 정통으로 맞은 이들이었다. 마동필이 내원을 부수며 독무의 대부분이 내원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피부 곳곳이 시커멓게 죽은 검사들이 쓰러졌다. 상처를 통해 침투한 칠보단혼산이 빠른 속도로 피를 응고시킨 것이다.

‘차라리 병력을 빼는 것이 낫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굳이 부딪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놈들과 부딪쳐 독기가 전염될 수 있다. 그리되면 전투에서 승리해도 피해가 커진다.

종리산이 소리쳐 퇴각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커억!”

“으아아!”

선두에 선 해왕위 삼십여 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그들 모두가 비명인지 뭔지 모를 괴성을 질렀다. 흑백 또렷했던 그들의 눈이 점차 오색으로 물들었다.

종리산과 마동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두, 모두 뒤로 물러나시오!”

“물러나라!”

파아아악!

거경가의 병력이 재빨리 뒤로 빠졌다.

평소에 워낙 훈련이 잘되어 있었기에 그런 건지, 다행히도 서른 명을 제외한 피해자는 생기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경악하는 마동필와 종리산.

그 와중에도 미쳐 버린 검사들과 해왕위들이 마구 병기를 휘둘렀다.

푸화아악!

수백 명의 무사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 나갔다. 검에 베이고 창에 찔리고 중독되어 죽어 간다.

주르르르륵.

벌건 선혈이 대지를 적셔 왔다.

쓰러진 시체 위로 시체가 쌓이고, 그 위로 또 다른 시체들이 쌓여 간다. 압력을 받은 시체들은 더 많은 피를 짜내며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시산혈해(屍山血海)가 따로 없다.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쿠웅!

시체라는 누에들이 뽑아내는 핏빛 실.

그 뒤로, 황금빛 요기를 피워 내는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더 커졌다.

여느 범보다 작았던 금호의 체격이 어지간한 대호(大虎) 못지않게 커졌다. 얇고 길었던 주둥이가 더욱 두툼해지고, 네 다리는 호랑이의 그것처럼 굵어졌다.

더 이상 호리호리했던 금호는 없었다. 산천초목을 떨게 하는 맹호(猛虎)처럼, 굵고 긴 야수의 몸통을 한 금호는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었다.

시리디시린 오색 광망을 뿜어내는 금호의 눈.

목강인이 입을 쩍 벌렸다.

“……뭐야?”

검사의 부동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저 짐승은 현실의 존재가 아니다. 전설 혹은 신화의 영역에서나 언급될 재앙의 화신이었다.

“넌 대체 뭐냐!!”

그때였다.

한 줄기 담담한 목소리가 목강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금호라고 한다.”

“……?”

“고죽림을 수호하는 영물이지.”

목강인이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쓰러졌던 서량, 어느새 그의 눈이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스르륵.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 그 손이 목강인의 발목으로 향했다.

“헉!”

깜짝 놀란 목강인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서량의 팔을 뿌리치고 목을 베었을 테지만, 본능이 그것을 거부했다.

놈에게 붙어서는 안 돼. 놈과 가까이 있어선 안 돼.

……놈과 싸워선 안 돼.

콰직!

서량의 손이 땅을 파고들었다.

다섯 손가락이 파고든 땅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쩌저적 그어졌다. 고개를 숙인 채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일어난다.

우우우우웅!

서량의 등 뒤로 검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고개를 쳐든 서량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아…….”

극상의 쾌락이 묻어 나오는 신음.

천상의 감로주라도 마신 듯했다. 피범벅이 된 서량의 얼굴에 짙은 환희가 깃들었다.

그때, 목강인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걸레가 된 서량의 상의. 그 안에 가득했던 온갖 자상과 멍.

스르르륵.

그 상처들이 점차 아물기 시작했다.

눈에 띌 정도로 상처의 수복이 빨랐다. 가히 불가해한 회복 속도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서량.

그의 눈이 완전한 흑색으로 물들었다.

툭. 투둑.

먹구름 낀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저녁, 언제 먹구름이 꼈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쏟아지던 빗줄기는 삽시간에 장대비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빗방울이 핏물을 더욱 넓게 퍼트렸다. 빗물과 핏물이 스며들어 질척해진 검붉은 대지가 그야말로 불길한 늪처럼 보였다.

이윽고 서량의 마공이 폭발했다.

번쩍! 콰르르릉!

핏빛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천공으로 쏘아져 올라갔다.

우우웅.

더 이상 암뢰(暗雷)의 번갯불은 피어나지 않았다. 다만 더 어두워지고, 동시에 형형해진 초고순도의 마기만이 서량의 육체를 꽉 채울 뿐이었다.

그렇다. 어떠한 수준이란 걸 넘어서 버린, 극에 다다른 마기였다. 조화로운 마기였다.

마(魔)에 몸을 담은 자가 마의 한계를 찢었을 때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차원의 절대마기(絶對魔氣)였다.

후우우우웅.

어느새 서량의 앞으로 네 자루의 칼이 둥둥 뜬 채 나타났다.

도첨을 밑으로 하며 신비롭게 회전하는 칼들. 이제야 진정한 주인이 나타났음에, 네 자루의 마병들이 환희에 몸을 떨었다.

서량의 손이 용린도의 도병(刀柄)을 쥐었다.

꾸욱!

손에 깃든 강렬한 힘.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서량의 쾌락에 불을 붙였다.

“아쉬웠지? 내가 구사했던 무공들 말이야.”

“……?!”

“제대로 보여 주마.”

스르륵.

상단으로 들어 올린 용린도의 도신에서 무시무시한 돌풍이 일었다.

“이것이 진짜 지옥풍(地獄風)이다.”

그가 칼을 내리쳤다.

콰콰콰쾅!!

핏물 가득한 늪에서 피어오른 악마의 연꽃.

드넓은 대륙에, 또 다른 마왕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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