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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48화 (148/774)

148화. 살수지왕의 이름을 버리다 (2)

천마신교 연주지부는 적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넉넉히 걸어가면 사흘, 말을 타고 이동하면 하루 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늦은 밤, 지부로 찾아온 세 명의 남자들로 인해 연주지부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찾아온 사람들 모두가 하나 같이 쟁쟁한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오히려 수뇌부들이 잘 들르지 않는 연주지부는 처음으로 최고 수뇌부를 모시는 영광을 얻었다.

세 사람, 그리고 인근 야산에 숨어든 한 마리의 영물은 실로 오랜만에 푹 쉴 수 있었다.

* * *

쏴아아아.

사흘 전부터 내렸던 비는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빗줄기가 굵지는 않았지만 사흘 내내 쏟아진 탓에 공기가 무척 습했다. 조금은 후덥지근했지만 그래도 보기엔 시원했다.

‘음, 곤란하군.’

조촐한 술상을 들고 온 마동필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지.’

우우우웅.

그의 몸 주변으로 황금빛 마기가 일었다. 반투명한 마기가 그의 몸을 둥글게 에워쌌다.

투두두둥.

빗방울은 반투명한 진기의 막을 뚫지 못했다. 그는 그대로 큼직한 정자를 향해 걸었다.

정자에 서서 마동필을 바라보는 종리산의 얼굴에 은근한 놀라움이 일었다.

“굉장하군.”

마동필이 종리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예?”

“진기의 조율이 완벽에 가까워. 그렇게 빈틈없는 기막(氣膜)은 오랜만에 보는군.”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야. 자네는 절정의 끝자락에 와 있지만 그 벽을 초월하지는 못했네. 한데도 벽을 초월한 고수들 이상의 섬세함을 보여 주는군.”

무뚝뚝한 종리산의 입에 작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지금도 충분하지만, 조만간 자네가 모시는 분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자가 되겠어.”

마동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천하의 거경가주 입에서 나오는 덕담이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감사했다.

그때, 정자 끝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필이는 제게 너무 과분한 사람입니다. 약하든 강하든 그 사실엔 변함이 없지요.”

종리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오히려 마 호위에게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소.”

“그렇습니까?”

“당연하오. 마 호위는 감찰사, 아니 삼공자를 지키는 데에 강한 의무감과 그 의무감 못지않은 보람을 느끼는 것 같으니까.”

그가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은가?”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여하간 이만 올라오게. 자네의 실력이 대단한 건 알지만 쓸데없이 진기를 소모할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자 위로 올라온 마동필이 중앙에 술상을 놓았다.

“공자님?”

“음, 잠시만 기다려. 얼마 안 걸리니까 가주님과 먼저 시작해.”

서량은 정자 끝에 앉아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수수한 백의(白衣)를 입고 머리카락까지 풀어 헤친 그의 모습은 무척 초탈해 보였다.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모습이 마치 도(道)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젊은 도사를 보는 것 같았다.

슬쩍 서량을 보던 종리산이 고개를 저었다.

“술잔은 함께 들어야지. 기다릴 테니 여유롭게 관조하시오.”

“알겠습니다.”

가만히 서량을 바라보던 종리산은, 이미 그가 스스로에게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쏴아아아.

잦아드는 듯했던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졌다. 빗방울이 건물과 땅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마치 금(琴)을 튕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종리산이 마동필에게 말을 걸었다.

“공자님과는 언제부터 알게 되었나?”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이제 이 년 차에 접어들지요.”

“놀랍군. 사람 간의 정(情)이라는 것이 세월 따라 깊어지는 것만은 아니라지만…… 난 족히 십 년은 되는 줄 알았네.”

“공자님께서 저를 많이 위해 주셨습니다.”

“그런가.”

“예.”

마동필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가 본 삼공자는 누군가 머리를 들이민다고 넉살 좋게 받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필시 삼공자가 먼저 마동필에게 정을 쏟았을 것이다.

그러나 관계라는 것은 단순히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삼공자가 준 정 이상으로 마동필 역시 삼공자를 위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신기한 관계다. 신분 높은 공자와 호위무사 간의 관계가 아닌, 마치 혈육 못지않은 전우지간(戰友之間)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마동필을 주시하던 종리산이 팔짱을 풀었다.

“몸 한번 풀어 보겠나?”

“예?”

“먼저 술자리를 시작하라 했지만, 그건 도리가 아니지. 그렇다고 하릴없이 기다리기도 뭣 하니 땀 한번 빼 보자는 것일세.”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이유는 뭔가? 마침 비도 오고 운치도 있겠다, 상대해 봄 직한 무인이 있다면 굳이 놀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칠가의 수장에게 비무를 제안받는다. 정말이지 호법원 조장 시절에는 꿈도 꿔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마동필은 거부하지 않았다.

“가주님께서 괜찮으시다면 한 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좋네. 정자에서 조금 떨어지세.”

잠시 후, 두 사람이 마주 섰다.

마동필은 종리산의 손에 들린 창을 바라보았다.

“굉장한 병기로군요.”

“자네의 검만은 못해. 그 검, 강호십대마검에 꼽히는 절대마검이 아니던가.”

“저는 이 검의 진면목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그저 단단하고 예리한 검일 뿐이지요.”

종리산이 고개를 저었다.

“단단하고 예리한 칼로 적의 목숨을 취한다, 그것이 결국 병장기의 본질이 아니던가.

묵왕검이 제아무리 놀라운 마검이더라도 병장기는 결국 병장기일 뿐일세.”

“…….”

“모든 병장기의 진면목이란 형태에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이지.

자네가 할 일은 그 검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휘두르는 것일 뿐,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것에 집중할 필요는 없네.

무(武)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런 건 불순물일 뿐이야.”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마동필의 표정이 그러했다.

종리산의 눈이 빛났다. 창검을 맞대기도 전에 이미 상대가 무언가를 깨달은 것이다.

“몇 마디 더 첨언해 보지. 사흘 전 삼공자와 싸웠던 검궁 부궁주의 검을 기억하는가?”

“……예.”

“그의 검은 불세출의 신병(神兵)도, 이름난 보검도 아니었네. 그저 평범한 철검이었지.

그는 그 검으로 삼공자를 몰아붙였어. 병기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스윽.

마동필에게 겨누어진 해룡창.

길쭉하고도 예리한 창날에 부딪힌 빗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천하제일고수도 심장에 구멍이 나면 죽는다네. 신병이기로 뚫든 나뭇가지로 뚫든 마찬가지야.”

“……!”

스르륵.

종리산이 마동필을 향해 걸어갔다.

빠른 신법도, 절묘한 보법도 없는 평범한 걸음걸이. 그러나 해룡창은 결코 흔들리는 법 없이 마동필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우우우웅.

마동필이 금강야차마공을 개방했다.

차아앙!

뽑혀 나온 묵왕검이 화려한 금화(金火)를 피워 올렸다.

“들어가겠습니다.”

“언제든지.”

파아아악!

종리산의 여유 넘치는 걸음과 달리 마동필의 접근 속도는 눈이 부실 만큼 빨랐다.

순식간에 전권으로 들어가 검을 내치는 마동필.

종리산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쩌어어엉!

빗소리도 충돌음을 막아 내지 못했다. 마동필이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났다.

종리산이 짧게 외쳤다.

“다시.”

터어엉!

대답도 없었다. 재빠르게 접근하던 마동필이 어느새 좌측으로 몸을 틀어 묵왕검을 휘둘렀다.

사선으로 베어 가는 검격. 솔직하고도 진중한 참격에 종리산의 얼굴에도 언뜻 감탄이 일었다.

쩌엉!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동필의 강검이 해룡창의 창대에 막혀 뒤로 홱 튕겨 나갔다.

파바바박!

무서운 속도로 밟아 가는 땅.

땅에 스민 빗물이 터져 나가고, 부딪치는 병장기의 충격파가 습기를 몰아냈다.

내공 소모가 심한 무공을 쓰는 것도 아니요, 상대를 죽이고자 살기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의 병장기를 부딪쳐 가며 무(武)의 본질을 탐독하는 두 사람.

일검, 일검을 쳐 내 가던 마동필의 눈이 어느새 몽롱해졌다. 이 싸움에 완전히 몰입한 것이다.

같은 얘기라도 언제 듣느냐에 따라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다.

목강인의 고차원적인 검법을 본 이후에 종리산의 시기적절한 조언이 더해지니 마동필 역시 또 다른 성장의 끈을 잡은 것이다.

종리산의 눈에 은근한 감탄이 일었다.

‘이 녀석도 걸물은 걸물이야.’

그는 마동필의 집중력에 크게 감탄했다.

이것은 무재(武才)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끊임없이 무(武)를 생각하고, 무도(武道)를 대하는 자세 역시 변함이 없어야 조언도 효력을 얻는 법이다.

호위 대상에게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도 무의 바다에 몸을 던져 놓는 것.

재능과는 다른, 재능보다 훨씬 얻기 힘든 무인의 자세였다.

“좋아!”

시원하게 창을 휘두를 만한 인재를 만났다. 승부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더라도 병장기를 부딪치는 것 자체가 신명 난다.

정작 마동필에게 조언을 했지만, 집중하는 상대를 보고 종리산 역시 이 싸움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두 고수의 배움을 위한 비무.

살기가 없어도 치열했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두 사람의 비무는 한 시진 만에 끝이 났다.

비교적 멀쩡한 종리산과 달리 마동필의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빗물에 젖은 의복 곳곳에 피가 배어 나왔지만 의외로 상처는 깊지 않았다.

깔끔하게 수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이 다시 정자로 올랐을 무렵엔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먹구름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어두워서 정자 곳곳에 화등을 걸어야만 했다.

경지에 오른 고수들의 안력(眼力)이라면 화등도 필요 없었지만, 빛이 있느냐 없느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투두둑! 투둑!

쏟아지던 비가 조금은 잠잠해졌다.

술상을 앞에 두고 무(武)에 관한 열띤 토론을 벌이길 얼마일까.

“음.”

그제야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셨소?”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소.”

“죄송합니다. 시간이 이렇게까지 지났을 줄은 몰랐습니다.”

“괜찮소.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무인이 그 신세계를 탐방할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를 모르지 않소.”

서량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종리산의 말마따나 새로운 경지로 진입했을 때, 그 힘을 수습하기 위해서 모진 애를 써야 한다. 경우에 따라 몇 달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 서량에게 이 경지는 신세계가 아니었다. 이미 올라와 본 적이 있었고, 다만 마(魔)로서 올라왔기에 명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극마(極魔)라는 경지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동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상을 다시 차려오겠습니다.”

“괜찮아.”

“음식이 다 식었습니다.”

“그냥 대충 집어먹으면 되지 뭘. 안 그렇습니까?”

종리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상관없지만 삼공자는 배가 고프지 않소? 술상을 갈 필요는 없지만 음식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내일 해장하면서 많이 먹죠.”

그렇게 세 사람이 술상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았다.

서량이 종리산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어지러운 싸움터에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내가 고생한 건 하나도 없소. 삼공자가 제일 고생했지.”

“그냥 분에 못 이겨 날뛴 것일 뿐입니다.”

이번에는 마동필의 잔을 채워 주었다.

“너도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량의 잔도 채워졌다.

“자, 일단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켜 볼까요?”

칭!

건배를 한 세 사람이 시원하게 잔을 비웠다.

잔을 비우자마자 서량이 입을 열었다.

“가주님.”

“말씀하시오.”

“구질구질하게 긴말은 안 할랍니다.”

“음?”

탁.

잔을 놓은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저와 함께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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