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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49화 (149/774)

149화. 살수지왕의 이름을 버리다 (3)

추적추적 내리는 빗물도, 뻥 뚫린 정자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도 서량의 목소리보다 선명하진 않았다.

“함께하자?”

“그렇습니다.”

“음.”

종리산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그저 스스로 자신의 잔을 채울 뿐이었다.

서량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한 잔 받으시겠소?”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서량이 잔을 내밀었다.

술을 따라 주며, 종리산이 말했다.

“삼공자와 다시 조우하기 전, 나는 생각했소.”

“무엇을 말입니까.”

“감찰이 끝난 적사가를 왜 다시 가려는 것일까. 그것도 나를 데리고.”

“…….”

“가려면 그 즉시 가도 상관없을 텐데, 굳이 칠가의 감찰이 끝난 후에 들르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종리산은 서량의 잔만을 채워 주지 않았다. 마동필의 잔도 천천히 채워 주었다.

“신교의 특수감찰사로서 교주님께 다른 밀명을 받았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소.”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의무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오.”

“의무감?”

“그렇소. 의무감.”

탁.

술병을 내려놓은 종리산이 잔을 들었다.

“의무감이 아니라 욕망이었소. 삼공자의 두 눈에서는 강한 욕망이 꽃피고 있었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욕망 말이오.”

“…….”

“그 욕망은 다른 말로 목표 의식이라 볼 수 있었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제 눈빛이 그리 독했습니까.”

“그렇소.”

잔을 비운 종리산. 이번에는 마동필이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천천히 채워지는 잔을 내려다보며, 종리산이 입을 열었다.

“적사가를 지우려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해도, 감찰 도중에 밀어 버렸으면 될 일이었소.

힘들게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

“거기서 짐작하신 것이로군요.”

“짐작하지 못했소.”

종리산이 서량의 어깨를 힐끔거렸다.

“삼공자의 어깨에 감찰사의 견장이 떼어진 걸 보기 전까지는.”

“…….”

“다시 만난 삼공자는 감찰사가 아니었소. 철저하게 개인이었지.”

“그랬습니다.”

“교주의 후보가 아무런 연관도 없는 마도칠가를 방문한다? 그것도 한 차례 감찰로 완전히 뒤집어 놓은 가문을?”

종리산이 다시 잔을 비웠다.

“교주님의 밀명도 아니고, 적사가를 밀어 버리기 위함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와 거경가의 병력까지 대동하고 적사가로 향했다.”

“…….”

“본가의 병력을 대동하고 간 것은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기만의 수. 나로서는 ‘회유’와 ‘연수’ 이외의 이유를 찾지 못했소.”

서량이 그의 잔을 다시 채워 주며 말했다.

“감이 좋으시군요.”

종리산의 잔을 채우고 자신의 잔을 비운 서량.

그가 술병을 들었다. 하지만 바로 잔을 채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판단을 내리셨습니까?”

본인이 말한 것처럼 긴말은 하지 않는다.

종리산이 짐작을 했다는 건 놀랍지만 그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지 어떻게 짐작했는지, 어떤 감상을 느꼈는지가 아니었다.

종리산이 입을 열었다.

“두 가지만 묻겠소.”

“얼마든지요.”

“만약 삼공자의 제의를 거절하면 어쩔 생각이오?”

“어쩔 생각이라니요?”

“제안을 받은 자는 수락할지, 거부할지를 선택할 수 있소.

하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 내가 거부했을 경우, 삼공자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보통은 수락 이후의 보상을 묻기 마련인데 가주님은 거부라는 선택지의 결과를 궁금해하시는군요.”

“그럴 수밖에.”

종리산의 눈이 깊어졌다.

“나는 삼공자의 능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오. 삼공자가 누군가에게 적의를 갖게 되었을 때 얼마나 지독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소.”

“…….”

“그래서 묻는 것이오.”

“아무것도 안 합니다.”

“……?”

“질문은 하나였지만 두 가지 답변을 드리도록 하지요.”

서량이 술병을 놓았다. 여전히 자신의 잔은 채우지 않았다.

“가주님께서 제 제안을 수락하신다면 저는 가주님께 많은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가주님께서도 필요하시다면 제게 많은 것을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는 결코 주종지간은 아닙니다.”

“필요에 따라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지요.”

종리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거부할 시에는?”

“그걸로 끝입니다. 이곳 연주지부에서 푹 쉬다가 각자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정녕 그게 끝이오?”

“하면 제가 가주님에게 해코지라도 할 줄 아셨습니까?”

“그렇소.”

서량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너무 단호하시군요.”

“내가 본 삼공자는 뒤에서 꿍꿍이를 벌이는 사람이 아니오. 그럴 바에야 직접 만나서 깨부수는 걸 선호하지.”

“그건 맞습니다.”

“세력전에는 중간이 없소. 적 아니면 아군이오. 삼공자의 제안을 거절한 순간부터 나는…….”

“여전한 거경가주님이시지요.”

“……?”

“거절하셔도 가주님은 가주님이십니다. 제 적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내가 다른 사람과 연수하여 삼공자를 공략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어쩌려고?”

“그럼 그때 적으로 마주하면 되겠지요.”

종리산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시원시원한 성격이란 소리는 들을지언정 그다지 지혜롭다는 평가를 듣진 못할 것이오. 적어도 이곳, 마도 무림에서는 말이오.”

“오히려 반대에 가깝지요.”

“무슨 말이오?”

서량의 얼굴에 진지함이 어렸다.

“의천맹과 철혈성을 공략하는 데 있어, 마도칠가의 전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한데 그중 하나를 내 손으로 쳐낸다? 시원하다는 소리는 들어도 지혜롭다는 소린 못 들을 겁니다.”

“……!”

종리산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의천맹과 철혈성을 공략한다고?”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두 집단을…… 설마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이시오?”

“글쎄요. 전쟁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놈들을 없애 버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짓이라도 할 용의는 있습니다.”

멍하니 서량을 바라보던 종리산이 마동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동필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자네도 알고 있었나?”

“물론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투였다.

끈끈한 정으로 이어진 호위무사이니 미리 들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리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네는 삼공자의 호위무사이기 전에 신교의 마인일세. 이리도 큰 사안을…….”

“잘못 보셨습니다.”

“뭐?”

“저는 신교의 마인이기 전에 삼공자님의 호위무사입니다.”

“……!”

“공자님께서 향후 어떤 행보를 보여 주시든, 저는 언제나 그 곁에서 공자님을 지켜 드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일입니다. 공자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든 저는 믿고 따를 뿐입니다.”

종리산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담담하게 말하는 마동필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의천맹과 철혈성을 공략한다고?’

도대체 어떻게?

맹성교(盟城敎), 이 세 집단은 강호삼세(江湖三勢)라 불리는 무림의 초거대 세력들이다. 그중 어느 하나의 세력만 무너져도 강호는 난장판이 될 것이다.

세 집단이 여태 총력전을 벌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어느 두 집단이 전쟁을 벌여 승패가 갈린다 해도, 승리한 측의 병력 역시 반수 이상은 날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리되면 끝이다. 멀뚱멀뚱 서 있던 마지막 하나의 집단이 힘이 빠진 쪽을 공격하여 단숨에 허물어트릴 것이다.

그리되면 강호삼세는 오직 하나의 세력만이 남게 된다. 강호일통(江湖一統)까지는 무리더라도 천하제일세력이 되어 강호를 지배해 나갈 것이다.

“불안하십니까?”

퍼뜩 놀란 종리산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웃음기 어린 서량의 눈. 그 눈빛 속에 은근한 서늘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 반응하시니 저도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

“가주님의 꿈은 무엇입니까? 아니 목표가 무엇입니까?”

“……?!”

“가문을 확장하고 마도칠가의 수장이 되어 땅땅거리며 사는 것입니까? 지금의 세력을 유지하며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으십니까?”

“……!!”

“신교에서 전쟁을 벌이겠다 하면, 그러지 못하겠다 외치고선 숨어 계실 생각이십니까?”

종리산은 이를 악물었다.

“논지는 그게 아니었소. 혹시라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본가는 선봉에 서서 적들을 섬멸할 것이오. 그러나 억지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세력전에 중간은 없다.”

“…….”

“조금 전 가주님께서 하셨던 말입니다.”

서량의 눈에도 어느새 진지함이 어려 있었다.

“좋습니다. 말장난은 집어치우지요. 가주님께서 저의 제안을 거절하셔도 저는 거경가에 일체의 해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이유인즉, 그래도 거경가는 필요한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

“수락하신다면 저와 함께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을 헤쳐 나가야겠지요. 거부하신다면 편히 쉬다가 돌아가시면 됩니다.”

“…….”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게 전부입니다. 만족하셨습니까?”

종리산은 말이 없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신 줄 알겠습니다. 부담도 덜어 드린 것 같고요. 하면 다음 질문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

“어찌 말씀이 없으십니까? 질문이 두 가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대답하셨소.”

“엥?”

“다른 하나의 질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삼공자가 했단 말이오.”

“그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목표.”

“……오호.”

종리산이 잔을 매만졌다.

“수락을 하든 거부를 하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소.

당연히 상대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소.”

“해서, 대답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종리산은 다시 침묵했다.

몇 번이고 잔을 매만지던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반 각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삼공자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꽤 험한 길을 걸어야 할 것 같소.”

“물론입니다. 벌써부터 대가리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그리고 후계자도 되어야겠지.”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종리산은 서량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제법 많은 피를 보게 될 테고.”

“…….”

“그렇지 않소?”

“반드시 후계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후계자가 되면 많은 것들이 편해지겠지요.”

“결국은 후계자가 되겠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정리하자면, 지금 삼공자는 육공자의 아비에게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 말하고 있는 것이로군.”

“동시에, 후계 후보들 중 가장 추진력 좋고 제법 강하기까지 한 인재에게 연수 제안을 받고 계신 것이지요.”

서량이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게다가 제법 호감형이기도 하고요.”

종리산이 피식 웃었다.

“상대가 이성이었다면 무시하기 쉽지 않은 요소였을 것이오.”

“그래서 대답은요?”

종리산이 술을 비웠다.

“따라 주시오.”

“암요.”

쪼르르.

천천히 채워지는 잔.

그 잔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종리산이 말했다.

“내 아들은 교주 재목이 아니오. 삼공자 이전에 대공자나 이공자를 당해 내긴 힘들 거라 생각하오.”

“그렇습니까?”

“그렇소.”

꽉 채워진 잔.

잔을 내민 종리산이 담담하게 말했다.

“후계자가 되기 위한 발판에 내 아들의 핏자국이 묻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죽이겠다.”

담담한 목소리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서량이 진지한 얼굴로 잔을 내밀었다.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째앵!

건배를 한 두 사람이 잔을 비웠다.

잔을 비운 종리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신(臣) 거경가주 종리산, 지금 이 시간부로 공자님을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서량은 일어나지 않았다. 감당키 힘든 예라고 마주 인사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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