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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52화 (152/774)

152화. 씨앗을 뿌리다 (2)

파앙!

절도 있게 내지르는 창날이 달빛을 받아 시리게 빛났다.

“후욱.”

숨을 몰아쉰 종리산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조금 모자랐나.”

그는 저 멀리 떨어진 바위를 바라보았다.

투둑! 툭!

집채만 한 바위에는 십여 개의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부스러지고 깨진 부분은 있었지만 깔끔하게 갈라지진 않았다.

스륵.

해룡창을 거둔 종리산의 얼굴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역시나 어렵군.”

그때, 뒤에서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단한데?”

종리산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대숲 입구에서 서량이 걸어오고 있었다.

“창을 찌르는 행위, 자격(刺擊)이지. 내공을 실었다면 바위에 창날만 한 구멍이 뚫렸어야 정상이야. 한데 창날로 베어 낸 것처럼 실금만 그어져 있군.”

종리산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주군.”

서량이 손을 저었다.

“낯부끄러우니까 그냥 공자라고 해.”

“그럴 순 없습니다.”

무뚝뚝하지만 나름대로 융통성이 있는 마동필과 달리 종리산은 상당히 고지식한 사내였다. 호칭을 바꾸란다고 바꿀 리가 없었다.

어깨를 으쓱거린 서량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달밤의 수련이라? 운치 좋네.”

“별것 아닙니다.”

“별거 아니기는.”

서량은 멀찍이 떨어진 바위를 살폈다.

“이 장하고도 넉 자 거리. 이 할의 내공으로 저런 기예를 선보였다…… 과연 칠가의 가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만.”

“주군에 비하면 아직 한참 모자랄 뿐입니다.”

“물론 그것도 사실이지.”

종리산이 물었다.

“금가주와는 얘기가 끝나셨습니까.”

서량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바위를 주시하던 그가 종리산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을.”

무인에게 병기를 빌려 달라고 한다.

주군과 신하의 관계라곤 해도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종리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룡창을 건넸다.

“오호?”

몇 번 해룡창을 휘둘러 본 서량은 나직이 감탄했다.

“이거 물건인데? 창대와 창날과의 균형이 절묘해. 연철(軟鐵)을 적당히 섞어 파손의 위험을 한계까지 낮췄어. 단순한 마병(魔兵)이 아니로군.”

부웅! 부웅!

아무렇게나 휘두른 창. 은빛 창날이 공기를 갈랐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어떤 장인이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운이 좋군.”

“감사합니다. 한데…….”

“응?”

종리산이 의외인 듯 물었다.

“창을 쥐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창? 물론이지.”

“과연…… 휘두르는 동작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부웅! 부우웅!

창대의 중심을 잡고 제대로 회전시킨다. 그다지 힘을 들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창이 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창뿐만이 아니야. 도끼, 채찍, 원앙월(鴛鴦鉞), 언월도(偃月刀), 번(幡) 등등 안 다뤄 본 병장기가 없지.”

“대단하십니다.”

“대단할 것도 없어. 손에 잡히는 대로 써먹어 본 것뿐이니까. 필요하다면 찻잔이나 짐승 사체도 휘두르는걸, 뭐.”

“사체요?”

척.

창을 잡고 멈춘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병기술(兵器術)이라는 거, 사실 그렇게까지 어려운 게 아니야.”

“예?”

서량이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려 보였다.

“천하제일이든 고금제일이든 사람인 이상 가슴에 요 정도 구멍이 뚫리면 죽어.”

“……?”

“검의 길이가 길든 짧든, 휘두르는 게 창이든 도끼든 화살이든 상관없지. 단지 그 하나의 결과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게 결국 무공이라는 거 아니겠어?”

“……!”

“뭘 쓰든 그 결과만 만들어 내면 손에 쥔 병장기를 효율적으로 썼다고 할 수 있지.”

종리산의 눈이 흔들렸다.

주군은 자신이 마동필에게 해 주었던 조언을 똑같이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말만 같을 뿐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자신은 손에 든 검을 제대로 이해하라는 무리(武理)를 말했지만,

주군은 손에 든 게 무엇이든 결과만 제대로 만들라는 무도(武道)를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은 무(武)의 이치를 말한 것이고, 주군은 사(死)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같지만 전혀 다른 해석의 차이다. 그것은 곧 두 사람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병장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는 병장기의 형태를 보면 알 수 있어. 그래서 방금 자네가 구사한 무공이 대단한 거야. 찌르는 행동으로 베는 결과를 낳았으니까.”

스륵.

서량이 자세를 낮추었다.

해룡창을 쥐고 뒤로 뺀 그가 좌수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걸 제대로 써먹으려면 이런 느낌으로 휘두르면 돼.”

파앙!

서량이 해룡창을 내질렀다.

후우우웅.

허공에 떠오른 댓잎이 해룡창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맴돌았다.

스으으윽.

종리산의 눈이 커졌다.

쿠구궁!

바위가 수십 조각으로 부서진 채 무너져 내렸다.

서량이 종리산에게 창을 건넸다.

종리산이 침음했다.

“어떻게……?”

“무(武)의 극치든 사(死)의 극치든 결국 결과는 하나야. 말하자면 만류귀종(萬流歸宗)이지.”

“……!”

“자네는 창을 찔러서 베는 결과를 냈어. 하지만 자네의 인식은 창에 국한되어 있지.”

서량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창을 내질렀지만 자네의 기(氣)는 창날의 참격(斬擊)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나? 그것의 연장이야. 자네가 쥔 것이 창이 아닌 도검이라고 상상해 봐.”

“도검?!”

“창에서 창대를 줄이고 창날을 늘린 것이 결국 도검 아니야?”

순간 종리산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스르륵.

다시 한번 천천히 자세를 잡는 종리산.

잔잔한 호흡으로 집중을 끌어올린 종리산이 어느 순간 숨을 멈추었다.

쿵!

대지에서 올라오는 강한 반동이 하체에서 상체로 회오리치며 치솟았다.

휘이이이잉!

섬광처럼 내질러진 창.

동시에 바위 뒤쪽에 있던 십여 그루의 대나무들에 실선이 그어졌다.

투두두두둑!

이내 십여 그루의 대나무들이 수백 조각으로 갈라졌다.

종리산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순간의 깨달음으로 창을 내질렀지만 정말로 성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상상력이다.”

퍼뜩 놀란 종리산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살기나 투기는 의지의 발현. 의지는 곧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거기에 상상력을 조금 얹는다고 자네의 무공이 흔들릴 리가 없잖나?

“……그렇군요.”

“똑같은 거야. 어떤 병장기를 쓰든 상관없어. 자네가 염원하는 것과 기를 일치시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쉬워지지.”

자세를 바로 한 종리산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가르침은 무슨. 그냥 조잡한 단어들 대충 긁어모아서 그럴듯하게 말해 준 것뿐이야.”

“똑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법입니다.

그간 풀리지 않았던 무공을 공자님의 조언으로 깨달았으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라…….”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람 참 민망하게 하는군. 하지만 뭔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

스륵.

종리산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께서는 그저 명을 내려 주시면 됩니다. 부탁이란 단어는 감당키 쉽지 않습니다.”

“쩝. 이 관계도 익숙해져야겠어.”

서량이 자리에 풀썩 앉았다.

허리를 펴고 팔짱을 낀 서량. 그의 얼굴에 약간의 곤란함이 드러났다.

“음, 일단 금가주와의 얘기부터 해 주지.”

“예.”

“얘기는 잘 끝났어. 당장 적사가의 마인들을 정상으로 돌려놓긴 힘들지만 향후 삼 년 동안 재정적인 지원을 해 주기로 했지.

그 정도면 뜨내기들한테 당하진 않을 거야. 하긴, 본교의 이름값을 봐서라도 함부로 건드릴 놈들은 없겠지만.”

“그렇군요.”

“그리고 삼 년 동안 적사가의 지분 삼 할을 내가 갖기로 했다.”

종리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삼 할…… 말씀이십니까?”

“어. 바로 운용할 수 있는 병력도 없고, 당장은 무인보다 돈이 더 유용하니까.”

서량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한 방에 집어삼키려고 했는데 삼 할밖에 얻지 못했어. 이게 다 그 검궁 놈들 때문이야. 개 같은 것들.”

욕심이 좀 과한 거 아닌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종리산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게다가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싸움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조직 간의 전쟁이든 무인 간의 분쟁이든 결국 돈이 받쳐 줘야 제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문제는.

“신교에서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왜? 오히려 적사가보다 자네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예?”

“자넨 나를 주군으로 모시기로 했어. 이거, 달리 해석하면 본교 측에서 난리가 날 사건 아니야?”

“……!”

“그래서 후계자가 될 때까지, 라는 조항을 넣은 거야.

자네와 나의 관계는 내가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끊어지는 관계란 거지. 적사가도 마찬가지. 결국, 이 모든 관계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종리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는 발 뺄 생각을 하면서 주군을 모신 것이 아닙니다.”

서량은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손 잡고 가자는 말, 듣기에는 좋지만 결국 다 죽자는 말이야.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날 최대한 도와주면 돼.”

종리산은 고개를 숙였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종리산을 바라보던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근데 그 삼 할 말이야.”

“예.”

“그 삼 할을 얻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좀 생겼어.”

종리산은 깨달았다. 자신에게 할 부탁이란 게 바로 이 건에 대한 것임을.

“무엇입니까?”

“해독.”

“……예?”

“적사가의 마인들을 해독시켜야 해. 신선폐를 해독시키지 못하면 삼 할의 지분은커녕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돼.”

“그런……!”

“공정한 거래긴 하지. 적사가의 수장과 담판을 지으려고 했지만 정작 담판을 지어야 할 수장이 없어.

그렇다면 살점 조금이라도 뜯어먹어야 하는데 살점이 죄다 문드러져 있잖아?”

“…….”

“어떻게 하겠어? 그냥 먹기에는 찝찝하고, 포기하자니 제법 배를 채울 만한 양인데. 그럼 깨끗하게 씻어서 먹어야지.”

잠시 생각에 빠진 종리산이 말했다.

“적사가는 포기하시지요.”

“…….”

“더 많은 힘을 원하신다면 차라리 다른 세력을 노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함께한다면 칠가 중 한 군데는 더…….”

“안 돼.”

서량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더 이상 다른 데를 건드릴 순 없어. 그건 부담이 너무 커. 단순히 세력이나 금전의 문제가 아니라 소문의 문제야.”

“…….”

“그리고 뭐…… 신선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제법 재미있는 일도 하나 해 볼 생각이라서 말이지.”

“예?”

재미있는 일이라니?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마주하던 종리산이 흠칫 놀랄 만큼 싸늘한 웃음이었다.

“조금은 위험하지만, 천하의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는 일이지.”

“…….”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 아니 명을 내리러 온 거야.”

종리산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 * *

열흘 후, 연주지부로 전서응 하나가 날아들었다.

전서응의 발목에 묶인 서신은 그날 밤, 가문으로 돌아간 종리산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공자님.”

“그래.”

서신을 본 서량이 네 자루 칼을 몽땅 챙겨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휘황찬란한 선물이나 한 보따리 챙겨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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