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54화 (154/774)

154화. 씨앗을 뿌리다 (4)

“……그러니까.”

금란화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남부의 살수조직 세 군데를 멸문시키고, 나머지 세 군데에 의뢰를 넣어 사천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막고, 하오문을 협박해서 저 사람을 납치한 거라고요?”

“그렇습니다만.”

도대체 이 사람이 교주님의 제자인지 시정잡배인지, 그도 아니면 머리가 기가 막히게 돌아가는 모사꾼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공자님.”

“말씀하십시오.”

“결과를 내기 위해서 최단기간에 최선의 수를 쓴 건 인정할게요.”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요.”

금란화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황이 드러났다.

“저 사람은 그냥 당문도가 아니라 당가의 독룡각주(毒龍閣主)라고요!”

독룡각은 당가의 독을 연구하는 조직이었다.

수많은 독이 독룡각에서 만들어지며 동시에 해약도 만들어진다. 온갖 암기를 제조하는 암운각(暗雲閣)과 함께 당가의 핵심 조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닙니까?”

“예?”

“독룡각주 정도 되면 신선폐의 해약을 제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제대로 구해 왔잖습니까?”

“독룡각주는 당가주의 형제예요!”

“그럼 가주님은 왜 적사가에 의리를 지키러 오신 겁니까?”

“네?”

“적사가 역시 가주님에게 동료였기 때문 아닙니까?”

“……!”

“검궁이 적사가를 쳤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치들이 적사가를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가의 독 덕분입니다.”

부궁주인 목강인은 감당키 힘든 고수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신선폐를 들고 오지 않았다면 적사가는 그들을 넉넉히 막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는 컸을지라도 지금처럼 궤멸적인 타격을 받진 않았을 거란 말이다.

“금가주께서는 지금 독룡각주를 납치한 이후의 사태를 걱정하고 계시는가 본데, 정작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

“당가 역시 우리의 원수입니다. 심지어 적도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 마도 무림에 큰 피해를 주었지요. 게다가 이 싸움을 먼저 시작한 쪽 아닙니까?”

금란화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서늘하게 웃었다.

“당가 놈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는 두 배로, 당한 건 열 배로 갚아 준다고. 저는 달라요.

은혜는 못 갚을지라도 당한 건 열 배, 스무 배로 갚아 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가 한옆에 있는 꽁꽁 묶인 중년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중년 사내는 독기가 줄줄 흐르는 눈으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내공이 봉인 당했는지 굵은 밧줄로 묶인 채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제법 비참했다.

“팔다리를 잘라 개먹이로 줘도 아쉬울 판에 후일을 걱정하다니요. 칠가의 가주님답지 않은 말씀이십니다.”

거칠다.

삼공자는 그간 보아 왔던 어떠한 마인보다도 거칠고 파격적이다.

동시에 너무나도 마인다운 사상을 갖고 있다. 먼저 치고 들어가지는 못할망정, 당했는데 복수조차 안 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마인이 아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금란화가 고개를 숙였다.

“그간 평화에 젖어 마인다움을 잃고 있었던 건 저였군요. 죄송해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중요하니까요.”

“네.”

금란화가 중년 사내, 당경(唐逕)을 바라보았다.

“그럼 문제는 이자의 입을 어떻게 여느냐로군요.”

“어떻게 열기는요. 두들겨 패서라도 열게 만들어야지요.”

“당씨들의 폐쇄성을 아시잖아요? 이들은 독한 이들이에요. 어지간한 고문이나 협박으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괜찮습니다. 사람을 고문하는 데에는 워낙 이골이 나서요.”

“……에?”

“자랑은 아니지만 제 고문을 버틴 놈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철천지원수 놈을 상상하면서 얼마나 아득바득 연마했는데.

“여하간 제 고문술이 나름 대단하다는 뜻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어떤 고문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통할까요? 이자, 딱 봐도 독종이에요. 입을 쉽게 열지는 않을 겁니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쉽고 가벼운 주둥이에서 나오는 말이 대단해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무거운 주둥이에서 나오는 말이야말로 판을 흔드는 법이지요.”

“……!”

“맡겨 주십시오. 오늘 내로 신선폐의 해독 제조법을 알아 올 테니.”

* * *

독룡각주 당경은 사천당가에서도 독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사내였다.

가주의 혈육이 아닌 자들과는 말도 섞지 않는 이였으며 일신의 무공 또한 절정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큼이나 자신이 만든 독과 해약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금란화가 우려할 만한 인사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는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불식되었다.

“자, 여기에 있습니다.”

“……!”

핏자국 가득한 종이에는 수많은 글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서량이 얼굴에 튄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말했다.

“혹시 몰라 살려는 두었습니다만 진짜일 겁니다.”

“어떻게…….”

“예?”

“어, 어떻게 그의 입을 여셨죠? 그것도 이 짧은 시간 안에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간단합니다. 그저 제 고문술이 놈의 무거운 주둥이를 열게 할 만큼 지독했다는 것이죠.”

금란화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을 고문으로 만신창이를 만들어 놔서가 아니었다.

‘이 사람은 정말이지…….’

이십 대 중반의 나이. 심지어 이 년 전에는 주화입마에 걸려 본래 익혔던 무공도 몽땅 소실했다고 하였다.

‘정말로…….’

그런 그가 무서운 속도로 무공을 되찾아 가더니, 고작 이 년 만에 마공의 궁극이라는 극마에 도달하였다.

천재라 불리던 마인들 중에도 실패의 쓴잔을 마신 이들이 수두룩한데, 서른도 되지 않아서 마도 무림 최고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위험해!’

그래서 위험하다.

젊어서도, 상식을 넘어서는 성장 때문도 아니다.

‘도저히 젊은 연배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

극마라는 지고한 경지에 도달한 절대고수임에도 무게를 잡거나 함부로 기파를 발산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치 않는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부조리한 상황을 연출한 적도 없으며 권위로 상대를 압박한 적도 없다.

그저 윗사람의 덕목을 잘 지킨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금란화의 생각은 달랐다.

‘무서울 정도로 침착해.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

이십 대 중반이면 한창 혈기가 왕성한 나이였다. 가끔 보여 주는 모습은, 실제로 그 나이대의 청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강력한 힘을 단 한 번도 함부로 휘두른 적이 없다.

젊은 나이에 높은 경지에 올랐다면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게 정상인데 도무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청년의 외양을 한 경험 많은 노강호.

그러나 가끔은 강호초출보다도 단순해 보이기도 하는 기인(奇人).

금란화의 눈에 서량은 잘생긴 청년이 아니라 수많은 얼굴을 가진 기괴한 괴물처럼 보일 뿐이었다.

“얼추 보니 해약을 만드는 데에 그다지 비싼 약재들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합에 있더군요.

양 조절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생기면 해독이 되질 않는다고 하니, 이 점 참고해 주십시오.”

“네, 알겠어요. 그리고 공자님.”

“예.”

“감사해요. 바삐 움직여 주셔서.”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분 삼 할을 꿀꺽 삼키기 위해 별수 없이 움직인 것뿐입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뭣 하러 귀찮게 빨빨거리면서 싸돌아다녔겠습니까?”

금란화가 미소를 지었다.

“아까 했던 말씀과는 사뭇 다르네요. 의리 운운하며 저를 질책하셨던 분이 공자님이셨잖아요.”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부끄러우세요?”

서량이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끄럽다니요? 제가요? 왜요?”

“적사가와는 여러모로 악연으로 얽혔다고 들었어요. 그런 이들을 포용해 주셨으니…….”

“포용이 아니라 이용이고, 악연이 아니라 선연입니다. 어쨌거나 나한테 도움을 줬으니까.”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진짜라니까요.”

“믿어요.”

“안 믿잖습니까?”

“어머, 왜 화를 내실까.”

“화 안 냈……!”

서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으니까 해독에나 집중해 주십시오. 해약만 만들어진다면 무공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동필아!”

저 멀리서 마동필이 뛰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야 인마, 평소에는 똥간에 갈 때도 졸졸 따라오더니만 어디서 뭘 하다가 온 거야?”

“아, 아까 공자님께서 시키셨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킨 일?”

“예. 사람들을 모아서 병장기의 녹을 벗겨 내라고 하셨잖습니까.”

“아, 그랬었지.”

금란화가 슬쩍 끼어들었다.

“녹을 벗기라고요? 그건 또 왜요?”

서량이 콧방귀를 퍽퍽 뀌어 댔다.

“신선폐에 당해서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던 놈들입니다. 내공을 되찾아도 몸이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기나 하겠습니까.

때깔 좋은 병기를 들고 좀 뛰어 봐야 기분도 좋아지고 예전 기량을 찾는 속도도 빨라질 거 아닙니까.”

“아하?”

“하여간 손이 많이 간…….”

순간 서량은 찝찝한 얼굴로 금란화를 바라보았다.

금란화가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참 모를 분이네요.”

“또 뭐가요.”

“어떨 때는 무지 거치신데, 또 어떨 때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무엄하신데.”

“그러고 어떨 때는 엄청 착하시잖아요. 방금의 공자님은 협의 넘치는 정파 무림인처럼 보였다니까요.”

“소름 돋는 얘기는 그쯤에서 그만두십시오.”

“호호.”

서량이 마동필의 등을 두들겼다.

“남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슬슬 출발해 보자.”

“예, 공자님.”

한참 웃던 금란화는 깜짝 놀랐다.

“가시게요? 어딜요?”

“어디긴 어딥니까, 본교로 가야지. 감찰 끝난 지가 언젠데.”

“아니 그래도……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

“됐습니다. 보수한 건물들을 볼 때마다 적사가의 선조들이 날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 같아 기분이 영 꽝이란 말입니다.”

금란화가 아쉽다는 듯 서량을 바라보았다.

“별수 없군요.”

서량이 포권을 취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덕분에 한바탕 재미있게 놀다 갑니다.”

“어인 말씀을 그리하시나요. 오히려 제가 공자님 덕분에 은혜를 입었지요.”

“나중에 신교로 놀러 오시면 꼭 찾아 주십시오. 술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매혹적인 말씀이시네요. 조만간 꼭 시간을 내서 올라갈게요.”

서량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만.”

그렇게 두 사람이 적사가를 나섰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금란화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정말이지…… 누가 정파고 누가 마도인지 모르겠다니까.”

* * *

감찰사로 하산한 지 무려 석 달 만에 돌아오는 두 사람.

뙤약볕에 날씨는 후덥지근했고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들이 두 사람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렸다.

“이제 여름이구나.”

“그렇습니다, 공자님.”

“돌아가면 당분간은 좀 쉬어라. 나 따라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감당키 힘든 말씀이십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서량이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좋은 하늘일세그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하늘.

웃음 짓던 서량의 눈이 점차 싸늘하게 식었다.

‘너희 동네도 여기처럼 덥냐?’

의천맹, 철혈성.

자신의 죽음에 관여한 두 초거대 집단.

“……씨앗은 잘 뿌려 두었으니 이제 꽃피울 일만 남았군.”

서량이 차갑게 읊조렸다.

“발바닥에 땀 나도록 움직여라, 부문주.”

유월의 어느 더운 날.

서량이 신교로 돌아왔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