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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55화 (155/774)

155화. 귀환, 그리고 (1)

서량이 귀환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교내에 퍼졌다.

외부감찰대리, 특수감찰사라는 직책으로 교를 나선 지 무려 석 달 만의 귀환. 마인들의 반응은 제법 열광적이었다.

“드디어 돌아오셨군. 이번 감찰은 상당히 화려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화려했다고?”

“그렇다네. 감찰을 상당히 공격적으로 끝내셨다는군. 반발하는 칠가의 가주들을 상대로 호통도 치셨다던데?”

“역시 대단하시구만. 어? 근데 그건 어디서 들었나?”

“귀창(鬼槍) 선배 알지?”

“알지.”

“그 선배, 천보금가로 파견 나갔잖나.”

“허어, 금가주를 상대로…….”

“아니, 천보금가는 아니고 다른 가문을 탈탈 털다 못해 거의 박살을 내셨다더라고. 금가주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대하셨다고 하더군.”

“하기야 금가주는 성격 깔끔하기로 정평이 난 양반이니까.”

“어쨌든 본교의 위엄을 제대로 알리고 오셨다고 하네. 몇몇 가주들은 삼공자님 앞에서 벌벌 떨었다는 얘기도 있다니까.”

“그건 좀 과장된 소문 아닌가?”

“과장된 소문이면 또 어떤가? 그리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거 봤나? 그런 소문이 난 이유가 있겠지.”

“하긴.”

“어쨌든 굉장해. 대공자님 이후로 처음이잖아? 교주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완수한 제자 분은.”

“거야 우린 모르는 거지. 자세한 사정이야 윗분들이 아시겠지.”

“그에 비하면 다른 제자 분들은 좀 안타깝지 않나?”

“안타깝다니?”

“대공자님이야 워낙 걸출하신 분이니 그렇다 치고, 제자 분들 중에서 삼공자님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 분이 또 누가 있나?”

“쉿! 이 사람아,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뭐 어떤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공자님만 해도 그래. 아직까지 교주님께서 대리 명령을 내려 주신 적이 없으니 말이야.”

“어허, 그만 하래도. 자네 그러다가 제명에 못 죽을 걸세.”

“킬킬. 제명에 죽으면 그게 마인다운 삶인가? 마인이 마인다워야 마인이지.”

“흰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세. 배가 등가죽에 들러붙겠어.”

“어어, 같이 가!”

시시덕거리며 뛰어가는 두 명의 마인.

두 마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골목에 선 제환(濟喚)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저놈들이 감히……!”

그때, 관평이 손을 들었다.

“그만하게.”

“공자님.”

“무지렁이들의 대화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 있나?”

“천한 놈들이 공자님을 함부로 평가하였습니다. 저 더러운 주둥이들을 찢어 놔야 할 것입니다.”

관평이 고개를 저었다.

“마인들 중에는 나는 물론 대사형, 심지어 교주님을 욕하는 자들도 있네. 자네는 그들을 일일이 찾아서 다 죽일 셈인가?”

“하지만…….”

“뒤에서는 황상을 욕해도 죄가 아니라 했네. 그렇게 열 낼 필요 없어.”

멀어져 가는 마인들을 시린 눈으로 주시하던 제환이 자세를 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괜찮네.”

한기가 절로 느껴지는 목소리.

외양만 봤을 때, 관평은 그다지 인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관평과 마주한 사람은 누구나 그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성정이 그러해서가 아니라, 그가 익힌 무공이 자아내는 기도 때문이었다.

제환은 안타까웠다.

모두가 공자님을 차갑고 잔혹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공자님이 정도 많고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걸 아는 이였다.

그리고 매우 출중한 능력을 갖춘 분이시라는 것도.

“그만하고 갈 길이나 가세.”

“공자님. 지금이라도 마차를 타고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관평이 고개를 저었다.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는데 뭐하러 마차를 타나.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

“슬슬 걸어가며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사람들 얼굴도 보고. 나는 걷는 게 좋네.”

“알겠습니다.”

제환은 관평이 평소 마차를 즐겨 타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관평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정확히는 교내 분위기를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조직의 분위기라는 것은 마인들의 언행에서 읽을 수 있는 법. 하지만 단순히 분위기만을 파악해 보고자 산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권위라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 제환이 생각하는 관평은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몰라. 공자님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분.

만약 공자님이 작정하고 본인의 역량을 드러낸다면 교내의 평가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제환.”

“예? 아, 예.”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고 있나?”

“아닙니다. 속하가 잠시 정신을 놓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도 많군. 그나저나 모친께서는 좀 어떠신가?”

“아, 병세에 차도가 있으십니다. 조만간 기력을 되찾으실 것 같습니다.”

관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혈혼각에서 약재를 좀 얻어 왔네. 기력을 회복하는 데에 효험이 좋은 약재라 하였어.

그런 쪽으론 문외한이라서 잘 모르겠네만 도움이 되었으면 싶네.”

“황공하옵니다.”

제환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아무리 가까운 수하라도 가족까지 챙겨 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관평은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진심이든, 꾸며 낸 모습이든.

관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기가 뜨겁군.’

한서불침이라 더위를 타진 않지만 숨쉬기가 답답할 정도로 공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그는 중원의 동북부 출신이었다. 동북 지역은 더위보다 추위가 강세를 보이는 곳이었다.

어릴 때 교주의 제자로 발탁되어 신교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 더위만큼은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동북 지역의 황량하고도 메마른 땅과 달리 푸르른 숲이 우거진 남부의 경치 역시 아직도 어색함이 느껴졌다.

‘익숙해져야지.’

그래, 익숙해져야지.

‘이곳을 나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선.’

관평의 눈이 번뜩였다.

사람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 역시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제자들 중 가장 대권에 집착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야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사형제들의 견제가 무섭다거나 귀찮은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야망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그저 주변이 번잡스러워지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야망은 크면서 정작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하다니, 나도 별스러운 놈이긴 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두 사람의 눈에 마신궁이 보였다.

척.

관평이 걸음을 멈추었다.

마신궁을 올려다보는 관평, 그의 눈에 아무도 모르는 경탄이 일었다.

‘몇 번을 봐도 대단해.’

화려하지도, 휘황찬란하지도 않다.

하지만 고풍스러운 맛이 있고 웅장했으며 동시에 고요했다. 절대자의 거처, 신의 거처로 딱 어울리는 건물이었다.

‘마음에 들어.’

관평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이곳에 살며 천하를 관조한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애써 억눌러 두었던 야망이 불쑥 치솟는다.

절대자는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는 법. 대륙의 판도를 뒤흔드는 천하인(天下人)은 언제나 고요하게 세상을 관찰할 뿐이다.

꾸욱.

뒷짐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선공(先攻)을 날릴 필요는 없지. 내가 아니더라도 서로 알아서들 물어뜯을 것이다.’

후계 싸움은 가장 치열하면서도 신기할 정도로 심심해질 수 있는 싸움이다.

한동안의 후계 싸움은 무척이나 심심했다.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몇 달 전, 그 고요한 싸움에 한 줄기 금이 갔다.

‘넷째가 그런 식으로 무너질 줄은 몰랐어.’

넷째는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녀석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평가보단 잔머리에 능하다는 평가만을 받은 것이다.

‘상대를 제대로 파악했어야지.’

스스로가 가장 특별하다는 자신감.

사람에게 자신감은 중요한 요소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넷째가 딱 그러했다.

“……셋째라.”

“예?”

“아닐세.”

관평의 눈이 깊어졌다.

‘그렇게 보면 나도 셋째를 잘못 파악하고 있던 것이겠지.’

입마에서 깨어난 후 셋째는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어쩌면 주화입마가 잠들어 있던 녀석의 본성을 끄집어낸 걸 수도.’

관평이 고개를 저었다.

상대를 제대로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무려 일 년 만에 제 발로 마신궁을 찾아온 것이다.

‘셋째는 신경 쓰지 말자.’

그가 수문위에게 말했다.

“둘째가 알현을 청한다고 전해 주시오.”

수문위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금일 마신궁은 어떠한 외인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관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신궁에 무슨 일이라도 있소?”

“삼공자가 교주님과 독대 중입니다.”

“……!”

“내일 다시 오십시오.”

관평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환이 한 걸음 나섰다.

“말씀이라도 전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공자님께서 오랜만에 찾아오신 만큼 교주님께서도…….”

“돌아가십시오.”

냉정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제환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이보…….”

“그만.”

관평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하지만 공자님.”

관평은 한 점의 아쉬움도 없다는 듯 휘적휘적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제환은 이내 한숨을 쉬며 뒤를 따랐다.

관평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서량.’

* * *

“한 잔 받아라.”

“예.”

서량이 잔을 들었다.

이천상이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사천의 검남춘이다.”

“역시 향이 좋군요.”

“마실 만하지.”

서량의 잔을 채워 준 그가 잔을 내밀었다.

공손하게 잔을 부딪친 서량이 시원하게 술을 넘겼다.

‘크으.’

독하다. 그리고 시원하다.

속이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다. 취하지 않는 몸이지만 식도를 훑고 지나가 위장을 뱅뱅 감도는 이 느낌은 분명 중독성이 있었다.

“수고했다.”

서량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이천상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보던 서량이 술병을 들었다.

“한 잔 따라 드릴까요?”

이천상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따르라.”

쪼르르 소리를 내며 잔을 채우는 검남춘.

잔을 받은 이천상이 그대로 비웠다. 여전히 시원시원한 음주 방식이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교주님.”

“말하라.”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속은 안 쓰리십니까? 어떻게 이 독한 술을 안주도 없이 그리 드십니까?”

인간미가 묻어 나오는 질문이다.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음식으로 주향을 해치고 싶지 않다.”

“아, 그러시구나.”

서량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누가 천하제일 아니랄까 봐 위장도 강철이구먼.

이천상이 그의 잔을 재차 채워 주었다.

“술을 즐기지 않았더냐?

서량이 움찔했다.

자신이야 속없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하지만, 이천상이 저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 도통 취하질 않아서요.”

“제법 하나 보군.”

“술은 취하라고 마시는 건데 아무리 들이부어도 안 취하니까 점점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마시고 실수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어, 그렇긴 한데.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오늘 이 양반,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인간적으로 보였다.

‘불세출의 마신이라 불리긴 해도 결국 사람은 사람이란 것일…….’

“일단은.”

퍼뜩 놀란 서량이 이천상을 보았다.

어느새 잔을 채운 이천상이 무심한 듯 물어 왔다.

“검궁의 부궁주 놈이 어땠는지 감상평을 듣고 싶군.”

“아, 그놈이요?”

“그리고 감찰이 끝났음에도 제때 돌아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상세히.”

……시파, 여전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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