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57화 (157/774)

157화. 귀환, 그리고 (3)

서량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여전하군.’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을 들어 까딱인다. 여유가 묻어 나오는 손짓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달라.’

육신이 극마에 오르니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예전 이천상과 비무 아닌 비무를 벌였을 때, 당시 그가 느꼈던 이천상의 자세는 완벽(完璧)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성된 무인. 간간이 빈틈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빈틈이 아니었다.

그저 이천상이란 무인이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자세의 연장이었을 따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빈틈투성이야.’

그때는 너무 완벽해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빈틈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이 안 선다.

휘잉.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이천상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바람 같다.’

산악처럼 커다란 덩치. 서량보다 큰 키에 골격도 훨씬 장대했다.

그럼에도 전혀 둔해 보이지 않는다. 어떨 때는 산들바람처럼, 어떨 때는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은 시시각각 서량을 유혹했다. 허점을 여지없이 내보이며 즉각적인 공격을 종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이잉.

머리 한구석에서 초감각의 나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빈틈이 많다고 함부로 공격을 감행하다간 그 즉시 잡아먹힌다.’

우웅.

용린도에 모인 구유마기가 도첨(刀尖)에 감돌다 서서히 도신(刀身)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가는…….’

뭐 하나 해 보지도 못하고 이 승부는 끝나게 될 것이다.

‘어쩐다?’

짧은 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서량.

툭.

그의 눈이 흔들렸다.

바람에 따라 흩날리던 나뭇잎 하나가 그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은 더운데 나뭇잎은 유독 차가웠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 하고 있냐.’

빈틈 하나 없이 완벽하든, 빈틈이 너무 많아 고민이든 이것은 가르침이다. 그리고 가르침 이전에 승부였으며, 승부 이전에 증명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 봐야 이길 수는 없어. 그렇다면 제대로 된 일도(一刀)를 휘두르는 것부터…….’

서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도 모자라다.

‘단칼에 머리를 쪼갤 생각으로 공격해야 한다. 그 정도 각오가 기본이 되어야 해.’

완벽과 빈틈은 한 치 차이다.

스륵.

서량이 눈을 감았다.

우우우우웅!

주춤거리던 마기가 유장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상단전에서 내려온 명에 따라 하단전의 진기가 솟구치고, 솟구친 진기는 이내 중단전으로 올라와 보다 강한 마기를 생성해 냈다.

번쩍!

그의 명치 부근에서 아름다운 적색 광채가 뿜어졌다. 사악하고 흉포하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빛의 구형이었다.

그리고 그 구형의 광채에서 어느새 진한 살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과연.’

이천상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다르긴 달라.’

이와 같은 대련은 구대마존들과도 몇 번 해 봤다.

결과는 똑같았다. 시간이 지남에도 마존들은 공격을 시도하지 못했고 이내 무릎을 꿇었다.

신(神)의 위대함을 칭송했으며 자신들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돌아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마(魔)는 먹이사슬 관계가 철저해서, 상위의 마를 가진 자가 작정하면 어렵지 않게 하위의 마(魔)를 억압할 수 있다.

서량은 달랐다.

‘안 되도 해 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날 죽일 생각이군.’

저 녀석은 아직 마존들에 비해 약했다. 한두 수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단계가 다르다.

괜히 구대마존이 강호십대고수와 동격의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한데 마존들보다도 약한 놈이 자신을 죽일 각오로 공격을 준비한다.

적어도 그 정도 집중력은 보여 줘야 자신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작은 의지의 차이. 그러나 모든 변화는 작은 차이에서 오는 법이다.

‘어느새 죽음(死)보다는 마(魔)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영혼 깊숙한 곳에는 사신(死神)으로서의 본능이 살아 있다는 것.’

생사의 이치를 깨달은 저 젊은 사신은 마의 극에 다다랐음에도 마의 흐름을 거부하는 파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일도(一刀).”

척.

서량이 오른발을 뒤로 빼곤 자세를 낮추었다.

“갑니다.”

“와라.”

번쩍!

와라, 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린도는 어느새 이천상의 정수리 한 치 앞까지 도달했다.

무섭도록 빠른 일도였다. 대강(大江)의 물길마저 뚝 끊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무공이었다.

살의(殺意)의 섬광. 빛살과도 같은 그 일격에 대응하는 이천상의 손짓은 부드럽기만 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용린도가 무섭게 떨려 왔다.

이천상이 용린도를 잡고 있었다. 지금껏 손을 쓰지 않고 기(氣)로만 대응했던 것과 다르게, 처음으로 손을 들어 막은 것이다.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치이이익!

이천상의 정수리 반 치 위에 머물러 있던 용린도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구유마기가 폭발적으로 실리고 있는 것이다.

꾸욱.

용린도의 칼날이 이천상의 손바닥을 조금씩, 조금씩 파고들었다.

이천상의 눈이 번쩍였다.

퍼어어엉!

한 줄기 폭음과 함께 서량이 훨훨 날아갔다. 폭발적인 발경이었지만 용케 칼을 놓치진 않았다.

파악!

땅에 발을 디딘 순간 후속 공격을 감행하려던 서량이 멈칫했다.

‘……젠장.’

축지신보를 펼칠 수가 없다. 구결을 모조리 잊었기 때문이다.

설령 구결을 외우고 있다 해도 이전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 내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육체가, 무공이 축지신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서량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쉬워할 것 없어. 기회는 언제나 있다.’

그가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응?’

이천상은 서량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

“…….”

“교주님?”

이천상이 고개를 들었다.

“다음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좋다.”

“예, 그럼.”

“아니, 이번에는 좀 다르게 가 보지.”

자세를 잡던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이천상이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막아 보아라.”

“……제가요?”

이천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르륵.

서량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이천상의 손에 은은한 마기가 실리기 시작했다. 크고 완강한 손 주변으로 시커먼 안개가 몰려들었다.

‘……!’

서량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쿠구궁!!

시계(視界)가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공간 전체가 일그러지는 듯한 환상이 인다.

화아아악!

불어오는 바람도, 뜨거운 열기도, 내리쬐는 햇볕도 닿지 않는다.

어느새 서량은 어둠만 가득한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전신의 감각이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이천상의 마기는 수준이 달랐다.

‘시벌, 저걸 받아 내라고?’

우두둑.

‘흡!’

전신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구유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육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았다.

‘미친!’

굉장하다? 그런 수준이 아니다. 두렵다? 그 정도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작정하고 마기를 실은 순간 호흡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경지, 칠대천마에 비교되는 마도대종사 이천상의 진신진력이었다.

“능천마라수(凌天魔羅手)라는 것이다.”

사아아악.

시커먼 귀신 수십 마리가 이천상의 오른팔 전체를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받아 보아라.”

이천상이 손을 뻗었다.

후웅.

가볍게 내민 손.

순간 서량은 어두웠던 눈앞이 더욱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화아아아악!

장력이 날아온다거나, 권풍을 쏘아 낸다거나 하는 차원의 무공이 아니었다.

‘끄으으윽!’

전신의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뼈마디가 모조리 바스러질 것 같았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압력이었다.

‘기(氣)를 방출하는 게 아니야.’

일그러진 서량의 눈이 잔뜩 충혈되었다. 충혈된 눈 밑으로 붉은 눈물이 쏟아지다 흩어졌다.

‘천지자연의 기운과 동조하여 공간마저 장악한다.’

의지만으로 허공섭물을 쓰고, 눈빛 한 번으로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거나 되살릴 수 있는 능력.

그러한 초능(超能)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재능 따위도 아니다.

그저 기의 활용도가 상상을 초월할 뿐이다.

단전에 쌓아 둔 기로 무공을 구사하는 여느 무인들과 달리, 이천상은 자신의 기와 자연의 기를 동조시켜 시야에 잡히는 온갖 외물에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무(武)에 이러한 경지가 있다니.’

이미 무공(武功)이라는 두 글자를 붙이기도 힘든 반선의 능력. 신(神)이라 불리는 남자의 진면목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막아야…….’

피슉!

어깨 피부가 찢어졌다. 쏟아지는 압력을 막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이천상이라도 이럴 수가 있나 싶다. 지금의 구유마공은 가히 천하제일마공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그런 마공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는데 어깨가 찢어진다고?

‘이건 뭐 도저히 막을 수가…….’

그때, 이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너는 그 칼을 용린도라고 부르더군.”

서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천상의 말이 이어졌다.

“무슨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주인 마음이겠지. 하나 네가 사용하기 전까지 그 칼은 참룡마도(斬龍魔刀)라 불리었다.”

참룡마도.

용을 베는 마귀의 칼이란 뜻이다.

“초대천마(初代天魔)께서 대산(大山)에 터를 잡을 때, 이곳의 원주인인 용의 목을 벤 칼이라 전해지지.”

이천상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렸다고 느낀 건 착각일까?

“넌 역대 천마 중 두 선조의 칼을 가진 셈이다.”

거병 용린, 사병 칠야.

“칠대천마께서 애용하셨던 칠야도는 마병이 아니다. 희대의 역사를 써 내려간 선조의 애병이기에 귀하게 여기는 것일 뿐. 그러나 참룡마도는 달라.”

치이이익!

용린도가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극마에 오른 후 이 정도로 마기를 실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붉게 달아오른 용린도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칼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봐라.”

어떻게?

“그 칼의 본성을 이해해라.”

무슨 수로?

“그 칼의 광기를 느껴 봐.”

그런 게 가능해?

“무공명이란 곧 그 무공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 병장기도 같다. 너는 비로소 용린도의 진명(眞名)을 알았어.”

이천상의 목소리에 더 짙은 웃음기가 어렸다.

“칼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지금 나의 무공을 어찌 막아야 할지도 알 수 있겠지.”

서량의 눈이 커졌다.

후웅!

극에 이른 마기에 침식당하는 용린도.

이내 그가 마기의 성질을 바꾸었다. 용린도에 마기를 싣는 것이 아니라, 기와 칼이 공명할 수 있도록 부드럽게 바꾼 것이다.

우우우웅!!

순간 강렬한 도명(刀鳴)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용음(龍吟)을 연상케 했다. 전설이나 신화에서 날뛰는 환상의 신수(神獸) 용의 울음소리와 같았던 것이다.

‘공명.’

그리고 간섭이다.

충혈되었던 서량의 눈에 마기가 불타올랐다.

“이 칼의 진짜 힘 같은 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부터 저만의 마도(魔刀)로 만들어 보지요.”

양손으로 용린도를 쥔 서량이 힘차게 휘둘렀다.

콰지지지직!

어느새 육신을 억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휘이이이이이잉!

사라져 버린 시커먼 세상,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서량의 몸에 한 줄기 뜨거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쉬는 서량 앞에서, 이천상이 말했다.

“잘했다.”

공간을 기(氣)와 공명시켜 자신의 영역으로 만든 것처럼.

구유마공과 용린도를 공명시켜 상대의 영역에 작은 빈틈을 만들어 냈다. 그랬기에 이천상의 수공(手功)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고수는 나뭇가지로도 검기를 막아 낼 수 있다. 그것은 곧 기의 활용도가 하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

“…….”

“기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그것만 잊지 않는다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천상이 몸을 돌렸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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