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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59화 (159/774)

159화. 귀환, 그리고 (5)

서량은 이천상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근질이 독특하게 변했군.

- 예. 원래 제 근육은…….

- 지구력이 좋았지. 호흡이 길고 끊임이 없어 연환식(連環式)을 구사하기에 좋은 몸이었어.”

- 그렇습니다. 한데 지금은 달라요. 짧고 폭발적인 무공을 연성하기에 좋은 몸이 되었습니다.

지구력이야 마기로 감당할 순 있겠지만 꽤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 후속 공격을 감행하지 않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 예?

- 첫 일도가 막힌 이후를 말함이다. 이전의 너였다면 곧장 또 다른 공격을 준비했어야 했다.

- 아, 예. 준비는 했는데…….

- 발이 움직이지 않았겠지.

- 다 아시네요, 정말.

- ……벽력(霹靂)이 어울리겠군.

- 예?

- 마경각의 출입을 허가해 주겠다. 가서 괜찮은 것들을 추려 보도록.

- 마, 마경각이요?

- 내 일수(一手)를 받아 냈으니 마땅히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천상은 말했다. 벽력이 어울리겠다고.

“이거였나?”

천마벽력권(天魔霹靂拳).

신교의 권공(拳功)으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의 무공이다.

이 역시 혈강수처럼 신교 정통 마공이 아니었다.

삼백 년 전 천하제일권(天下第一拳)이라 불리었던 신권(神拳) 막효(漠曉)가 신교에 귀의했고,

그의 절기였던 뇌정팔십일격(雷霆八十一擊)을 마공과 섞어 만든 것이 천마벽력권이었다.

정통 마공이 아님에도 천마(天魔)라는 칭호를 받은 권법이다. 타격기에도 능하지만 기공과 섞어 파괴력을 극대화했기에 권공(拳功)이라 불리어야 옳다.

‘제천기와는 달리 내공 소모가 심하다. 빠르고 섬세하지도 않고 연환식에 중점을 둔 무공도 아니야. 하지만…….’

서량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일타, 일타가 무겁고 강렬하다. 연환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야.’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여러 번을 연달아 치기보다는 강력한 한 방으로 압도하는 것.

‘여기에 제천기에서 얻어 온 폭산경 등을 섞어 보면 제법 물건이 나오겠군.’

며칠 굶은 사람이 산해진미를 눈앞에 둔 것처럼, 그는 게걸스럽게 벽력권의 구결을 외웠다.

벽력권의 구결은 혈강수의 세 배에 가까웠다. 게다가 근본이 마공이 아닌지라, 구결 하나하나에 심오한 뜻을 담고 있었다.

역대 신교에서 벽력권을 익힌 마인들이 극소수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공의 구결 자체가 마공보다는 신공에 가깝기에 해석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물론 마인들이 정파 무인보다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성향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게 한 시진이 꼬박 지나서야 그는 벽력권의 구결을 몽땅 외울 수 있었다.

“좋아.”

조금은 지쳐 보이는 서량의 눈에 다시 활력이 차올랐다.

“이제부터는 달음박질하는 법이나 찾아볼까.”

* * *

“공자님!”

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떠났을 때보다 앵화의 키가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젖살 가득하던 통통한 볼도 좀 더 갸름해진 것이 제법 여인의 티가 나고 있었다.

앵화가 감격한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앵화가 공자님을 뵙습니다.”

“잘 지냈냐.”

“네에.”

앵화의 눈가가 붉어졌다. 진심으로 서량을 반가워하는 것이다.

서량은 가슴이 아려 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 참.’

떠나기 전, 앵화와는 다시 못 볼 줄 알았다. 그래서 잘 되라는 마음에 그럴듯한 심법도 구해다 주지 않았던가.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

서량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호오? 느껴지는 내력이 상당하구만? 심법 공부를 꽤 열심히 했나 본데?”

“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단련했어요.”

“손.”

“네?”

“손 줘 봐.”

“아, 네!”

서량이 앵화의 맥문을 쥐었다. 앵화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잠시 후, 서량이 맥문에서 손을 떼었다.

“너 상당한데?”

서량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두런두런 인사나 주고받기 뭐해서 맥문부터 확인했는데 느껴지는 내력이 기대 이상이다.

아직 일류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자리를 비운 기간을 생각하자면 놀라운 진보였다.

앵화의 얼굴에 보람찬 미소가 어렸다.

“하루 두 번, 두 시진씩 꼬박꼬박 행공을 공부했어요.”

“두 시진씩? 그럼 하루에 네 시진이나 심법을 물고 늘어졌단 말이야?”

“네!”

축기(畜氣)란 말 그대로 기운을 축적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공심법이라고 축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천지자연의 기를 받아들여 혈맥을 가다듬고 내력을 운용해 체내 불순물을 제거하기도 해야 한다.

그 일련의 작업은 결코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공을 연마할 때는 꾸준함이 중요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 네 시진씩 축기와 운기를 반복하다니, 어지간한 집중력과 인내심이 아니고선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장하다.”

“가, 감사합니다.”

“빈말 아냐. 아직 초보인데 너처럼 진득하게 심법을 붙들기는 어려워.”

앵화가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께서 주신 비급인데 어찌 소홀히 연마하겠어요.”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참 고마우면서도 떨떠름한 말이다. 이별 선물로 준 무공을 언제 돌아오실까 고대하며 익힌 거 아닌가.

“여하간 고생했어.”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필이는 여기 안 왔냐?”

“아, 네! 조금 전에 다녀올 곳이 있다고 나갔습니다.”

“다녀올…… 아하.”

호법원에 갔을 것이다. 외유가 길었으니 한번 들르라고 지나가듯 말했었으니까.

“공자님. 배는 안 고프시나요?”

“배? 음…….”

배를 쓰다듬은 서량이 씨익 웃었다.

“그래, 간만에 돌아왔는데 집밥 맛 좀 봐야지. 한 끼 제대로 먹어 보자.”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후다닥 뛰어가던 앵화가 멈칫했다.

“아, 저 공자님.”

“엉?”

“혹시…….”

앵화가 은근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호는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품에 넣고 계신가요?”

금호를 품에 넣는다고? 내가 그놈 아가리에 들어가면 모를까 그게 가능해?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내 이해했다. 앵화는 금호가 그렇게 성장한 걸 보지 못했으니까.

“오고 싶을 때 알아서 들어올 거야.”

“네? 어, 어떻게요?”

“잘.”

대호만큼 커진 덩치도 덩치지만, 금호의 능력은 가히 초절정고수를 방불케 했다.

게다가 서량과 기(氣)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쪽의 위치를 귀신처럼 알아낼 수 있다.

담을 넘든 개구멍을 파서 돌아오든, 제 놈이 오고 싶을 때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앵화의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삶은 고기 좀 먹여야 하는데…….”

걔 이제 삶은 거 안 먹어.

“어쨌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천천히 해라.”

후다닥 사라지는 앵화.

서량이 연무장 위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군.”

석 달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깔끔하다. 앵화가 매일 열심히 청소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정겹기도 하고.”

미소를 짓던 서량.

이내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제부터 시작인가.’

거처를 나설 때는 신교에서 벗어날 생각에만 몰두해 있었지만, 다시 돌아온 지금은 의천맹과 철혈성을 박살 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일단 하오문 부문주에게서 서신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해.’

아마 지금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디부터 공략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서량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의천맹 쪽이겠지.”

맛난 건 묵혀 두고 아껴 먹어야 제맛이다?

웃기는 소리다.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먹어야 만족감이 큰 법이다.

‘당가…… 상황에 따라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놈들이야. 어차피 독룡각주 놈과 얽혔으니 그쪽부터 치워 버리는 게 속 편할 테지.’

당가의 무공은 강하다.

단순히 독을 잘 다루고 기상천외한 암기를 제조한다고 오대세가에 꼽힐 수는 없다. 실제 그들의 기량은 다른 세가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그토록 대단한 무공을 연성하면서 독과 암기까지 뿌려 대니 당가가 위험한 것이다.

구파인 청성과 아미를 제치고 사천의 제왕 소리를 듣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죽사발을 만들어 버려야지.’

최소한 적사가가 당한 만큼은 되돌려 줄 것이다.

“세부 계획은 오늘 저녁에 짜도록 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는 서량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들어찼다.

“일단 가져온 거나 몸에 붙여 보도록 할까.”

그가 마경각에서 얻은 무공은 총 다섯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마동필에게 건네줄 검법이었고, 나머지 네 개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나머지 중 하나는 구결을 외웠어도 당장 써먹진 못할 무공이었다.

결국 그가 지금 당장 연마해야 할 무공은 세 가지.

천마벽력권과 능공만리행(凌空萬里行), 그리고 마황군림보(魔皇君臨步)였다.

서량은 그중 마황군림보부터 꺼내 들었다.

“굉장한 보법이야. 지금의 나한테도 맞고.”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좀 찝찝하군.”

마황군림보는 이천상이 직접 추천해 준 보법이었다.

실제로 당대 신교에서 이 보법을 익힌 자는 이천상과 대공자, 그리고 원로원주밖에 없다고 했다.

이제 익힌 사람은 서량까지 넷이 되겠지만, 정작 마황군림보의 극의를 본 사람은 이천상 뿐이었다.

그만큼 접근이 제한된 무공이었고 연성하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이천상이 말하기로, 원로원주도 아직 칠성(七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들었다.

구대마존의 수장인 원로원주조차 여태 칠성에 머무르고 있다면 난해해도 보통 난해한 무공이 아닐 것이다.

‘이것까지 익히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마인인가.’

서량은 피식 웃었다.

“웃기지 마라. 넌 이미 마인이야. 좋은 무공을 익히는 데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진 말자고.”

툭. 툭.

발끝으로 바닥을 몇 번 두들긴 그가 구유마공을 끌어 올렸다.

“쉴 시간 없다. 바로 시작하자.”

그렇게 그는 보법의 연성을 시작했다.

‘일보좌궁(一步座穹)에 이보탐천(二步探天), 삼보입위(三步立威), 사보쟁선(四步爭先)을 기점으로

오보정선(五步靜旋), 육보비상(六步飛上)으로 올라가 칠보군림(七步君臨)으로 끝을 맺는다.’

우우웅.

팔뚝에 도드라진 핏줄이 은은한 형광을 뿜었다.

순식간에 마기가 전신 가득 차올랐다. 기파를 발산하진 않았지만 구유마기를 전신으로 분배한 그는 마귀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가자.’

스윽.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 만에 그는 보법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여기, 그리고 여기. 단순히 다리를 움직이는 게 아니야. 신경을 써서 힘을 분배해야…….’

서량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몇 번이나 멈칫할 때도 있었고 한 호흡에 대여섯 걸음을 옮기도 했다. 허리를 트는 동작이나 발목의 회전, 발가락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저 몇 동작에 불과했지만 서량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만큼 심력 소모가 극심했던 것이다.

‘대단해.’

서량의 얼굴이 황홀함으로 젖어 들었다.

‘마도 제일의 보신경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야.’

극에 이르면 한 발자국 움직인 것만으로 영역 내 모든 강자를 무릎 꿇린다는 최고위 마공.

살수로서 당연히 살법에 능했지만, 유독 뛰어난 것이 보법과 신법이었다.

도주와 침투에 능한 축지신보를 공격형으로 바꿔 쓴 것만 봐도 보법에 대한 그의 이해도가 여타 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축지신보보다 느려. 하지만 축지신보보다 훨씬 내게 어울려.’

엄밀히 말해 축지신보는 보법보다 신법에 가까웠다. 비교를 하려면 마황군림보가 아니라 능공만리행과 비교해야 한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었다. 마황군림보와 능공만리행을 익힌다면, 적어도 전투에 있어서 축지신보보다 월등한 능력을 자랑할 수 있으리란 걸.

‘믿어도 돼. 이로써 난 더 강해질 수 있어.’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앵화가 뒤뚱거리며 큼직한 쟁반을 들고 올 때쯤, 마동필도 거처로 돌아왔다.

“어, 왔냐?”

“수련 중이신지요?”

“그렇지.”

“언제까지 하십니까?”

“밥도 차려졌겠다, 슬슬 마무리 지어 보려고. 왜?”

마동필이 다소 심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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