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귀환, 그리고 (6)
“뭐?”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그게 뭔 소리래?”
“그러니까…… 음.”
몇 번 헛기침을 한 그가 말을 이었다.
“특별 호위 대상자가 공자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한데 특별 호위 대상자는 현재 거처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어쨌든 말은 전하라고 했기에…….”
“뭘 그렇게 말을 흐려?”
“아, 죄송합니다.”
“됐고, 특별 호위 대상자라는 게 뭐냐?”
마동필이 허리를 폈다.
꼿꼿한 자세.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량의 개인 호위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호법원의 삼 조장이 되었다.
“특별 호위 대상자란 말 그대로…….”
“특별한 호위가 필요한 사람이겠지.”
“…….”
“아냐?”
“마, 맞습니다.”
“내가 궁금한 건 그 특수 호위가 필요한 사람이 본교에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느냔 거다.”
“특별 호위 대상자는 호법원이 최우선으로 담당해야 할 사람입니다.
당연히 본교에도 큰 손님이지요. 해서, 그 대상자를 호위할 때는 호법원 내각(內閣)의 고수들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각은 또 뭐냐? 호법원에 그런 조직이 또 있었어?”
“아, 공자님께서는 모르고 계셨군요.”
모른다기보다 기억을 잃으신 거겠지.
마동필은 이제 서량이 어떤 언행을 보여 줘도 놀라지 않았다. 적어도 신교 일에 한해서만큼은.
“호법원 내각이란, 호법원의 숨겨진 고수들을 뜻합니다.”
마동필은 내각을 이루는 호법들, 바로 전대 고수들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다.
서량이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대 고수? 이전 호법들만이 아니라 전대 마존(魔尊)이나 마장(魔將)도 속해 있다고?”
“그렇습니다.”
대답을 하는 마동필의 얼굴에서 은근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호법원은 전대의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교내 최강의 조직이란 말이니까.
서량은 혀를 내둘렀다.
‘미쳤구만. 그냥 은퇴하는 게 아니라 호법원 내각 소속으로 말년을 지낸단 말이야?’
평소에는 유유자적 지내다가 특수 임무가 떨어지면 우르르 몰려가서 사태를 해결한단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조직 체계다.
전대의 선배들이지만 평소에는 은퇴 상태라 하니, 후배인 호법원주 일에 조금의 간섭도 못 할 것이다.
그리 조용히 있다가 필요할 때만 간혹 쓰이는 도구 노릇이나 한다는 거 아닌가.
‘그것도 교주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단 말이지?’
대체 이런 충성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서량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그랬구만.”
“예?”
“전에 몇 번 스치듯 본 적이 있어. 호법원주 말이야.”
“아, 예.”
“굉장한 강자였다. 천하십대고수와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었지. 말하자면 구대마존과 동급의 고수라는 뜻이야.”
“물론입니다.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지만 무공만큼은 교주님께서도 인정하셨지요.”
“강자들로 채워져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조직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호법원주와 조직원들 간 무공의 격차가 큰 이유가 있었어. 그런 괴물들을 휘두르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어야겠지.”
“그렇습니다.”
마동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공자님께서 원주님을 높이 평가해 주시니 기뻤던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장부(神將部)가 교내 최강의 고수 집단인 줄 알았더니만.”
전대 마존 몇이 끼어 있다면, 호법원에는 원주 말고도 극마에 이른 고수가 몇 명 더 있다는 뜻이다.
절대고수 한 명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력이 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 명이 일만의 병력도 거뜬히 감당하는 진정한 의미의 만부부당(萬夫不當)이 극마의 고수다.
‘원로원이 아니라 호법원이었어. 명실상부한 천마신교 최강의 조직은 호법원이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신교 최고의 방패가 결국은 최고의 창이기도 했다는 것이로군.’
병력의 수에서 천마신교는 맹성(盟城)에 비비기 힘들다. 그럼에도 강호삼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이처럼 절대고수들이 다수 ‘집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 어쨌든 그래서?”
“예에. 그러니까 그 특별 호위 대상자가 공자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서량의 얼굴이 시큰둥해졌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관심 없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구만. 그리고 지가 뭔데 나더러 오라 가라야? 보고 싶으면 직접 와서 문을 두들겨야지.”
“그렇지요. 무례한 처사입니다. 하지만 거처 밖으로 나다닐 수가 없어서…….”
“거처 밖으로 나다닐 수 없다니?”
“특별 호위 대상자가 본교에 입교하는 경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코자 외출을 금지합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본교에 들어온 순간 안전은 보장된 건데. 어떤 간 큰 놈이 본교에 세작이나 암살자를 보내겠어?”
정작 그 말은 하는 서량은 괜한 찝찝함을 느꼈다. 그 어떤 놈이 보낸 암살자가 될 뻔한 게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윗분들 생각은 아닌가 봅니다. 어찌 되었든 만전을 기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렇지.”
식은 차를 단박에 비운 서량이 일어났다.
“어찌 되었든 난 관심 없다.”
“아, 예. 하면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래. 아, 근데 넌 어쩌다가 그 특별 호위 대상잔지 뭔지한테 그 얘길 전해 들은 거냐?”
“직접 만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호법원 일 조장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렇구만.”
서량이 어깨를 뱅뱅 돌렸다.
“어쨌든 후딱 다녀와라. 너한테 줄 선물도 있으니까.”
“선물이라니요?”
“그런 게 있어, 인마.”
* * *
사흘 뒤.
한창 연무장에서 땀을 흘리던 서량은 문득 마차 소리를 들었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시벌, 또 누구야?”
마황군림보의 초석을 잡고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던 때였다. 마차 소리를 들어 보니 이쪽으로 오는 게 분명했다.
하긴, 원체 외따로 떨어진 곳이라 마차 소리가 나면 무조건 이곳일 수밖에 없지만.
잠시 후,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삼공자님, 저…….”
“들어오세요. 문 열려 있습니다.”
“네.”
끼이이익.
열린 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소연심이었다.
소연심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환희원주가 삼공자님을 뵈어요.”
“오랜만입니다.”
소연심이 특유의 아리따운 미소를 머금었다.
“죄송해요, 인사가 너무 늦었죠?”
“공사가 다망하신 거 빤히 아는데요. 귀교했다고 굳이 이렇게 찾아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좀 섭섭한 말씀…… 음?”
“왜 그러십니까?”
“…….”
“……?”
“공자님.”
“예, 말씀하십시오.”
소연심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조금…… 달라지셨네요.”
서량은 피식 웃었다.
“예. 조금 달라졌죠.”
“……어떻게?”
실전을 뛰어 본 지는 오래되었지만 초절정고수로서의 날카로운 기감은 여전히 살아 있는 그녀였다.
소연심은 서량과 마주하자마자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처음에는 몇 달 만에 보는 사람이라 조금 낯설어졌다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극마!’
서량의 눈을 보니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흑백 또렷한 안광은 여전하지만, 그 안에 깃든 여유와 위엄이 은근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쳐다보고 계실 겁니까?”
“네? 아, 네.”
소연심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분이 정말 삼공자님 맞죠?”
“저처럼 잘생긴 사람이 또 있답니까?”
“…….”
“여전히 헛소리에는 반응을 안 해 주시네.”
“대체 어떻게 극마에 오르셨죠?”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로 설명되는 경지는 아닙니다만.”
“물론 그렇겠지만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요.”
“무슨 말씀을 듣고 싶으신지는 알겠는데 저도 딱히 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고한 경지에 올랐음에도 저 성격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한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어쩐 일로 오긴요. 공자님이 귀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뵌 거지요.”
“아, 그냥 인사차 오셨다고요?”
“그렇죠?”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잘하시네요.”
“제가 진짜 속이려 든다면 아무리 공자님이라도 알아채지 못하실걸요?”
“인정합니다.”
서량이 자신의 방을 가리켰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던 거만 마저 끝내고 들어가겠습니다. 얼마 안 걸려요.”
“수련인가요?”
“예.”
“흠. 구경해도 되나요?”
“그러시든지요.”
장난으로 던진 말에 진심으로 반응하니 오히려 소연심이 더 놀랐다.
“정말 구경해도 된다고요?”
“안 될 건 또 뭡니까.”
“아니 그래도…….”
무림인은 자신의 수련 장면을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자신의 약점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너무 소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지만 한 번의 칼질이 목숨과 직결되는 무림이란 세상에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정사마(正邪魔),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계파가 달라도 모든 무림인들이 암묵적으로 그러한 규칙 아닌 규칙을 존중하고 있었다.
서량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약점을 보이는 게 두려우면 애초에 칼 들고 세상에 나서면 안 되지요. 정 그렇게 걱정되면 약점을 만들지 말든가.”
“그건 그렇지만…….”
“여하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각 안에 끝날 것 같으니까.”
“아, 네.”
소연심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량이 움직였다.
한 발, 한 발 부드럽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몰두한 서량의 얼굴은 구도자의 그것처럼 진지하고 경건했다.
소연심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집중하고 있다. 벌써.’
차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자신에게 완전히 빠져드는 집중력.
저러한 집중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독한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날 수 있지만, 집중력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능력이다.
평소 삼공자의 무(武)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소연심은 지금에야 알 수 있었다.
‘저토록 뛰어난 집중력으로 기반을 삼았기에 저 나이에 극마에 오를 수 있었겠지.’
소연심의 얼굴에 은근한 부러움이 일었다.
‘이립이 안 된 나이에 벌써 천하를 논하는 고수가 되었다니…… 굉장하구나.’
아직도 폐관에 든 대공자가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올랐는지 소연심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삼공자만큼 폭발적인 성장은 보여 주지 못했을 거라 확신했다. 삼공자의 성장은 보는 이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빨랐다.
‘입마로 무공을 소실한 지 이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거기까지 생각해 보니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
‘어쩌면 정말로…….’
소연심의 눈이 깊어졌다.
‘차기 대권을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그간 쌓아 온 공(功)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떠나, 이립이 안 된 나이에 극마에 올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삼공자는 자격이 있었다.
당대 교주, 이천상도 이립 중반이 되어 극마지경에 올랐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천상은 마도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이천상보다 십 년이나 빨리 극마에 오른 삼공자는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할까?
소연심이 한참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쿠르릉!
느닷없는 천둥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후우.”
주먹을 내민 자세 그대로 숨을 몰아쉬는 서량. 어느새 그의 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됐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어.”
“공자님.”
“예? 아, 예.”
“그거 설마…….”
소연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천마벽력권인가요?”
“어? 알아보시는군요?”
“알 수밖에요.”
놀라움 속에 드리워진 묘한 기색.
“제 주무공이 벽력권이거든요.”
“……어?”
“…….”
“벽력권을 익히셨다고요?”
“네.”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호리호리한 체형과 유연한 마기로 보아 연환식에 능한 장공(掌功)이 주무기인 줄 알았더니만
이렇게 강맹하고 무거운 권법을 익혔다니?
“오늘 대화는 여러모로 재미있겠네요.”
소연심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 드리고 난 후에 가볍게 한 판 해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