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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63화 (163/774)

163화. 북해에서 온 바람 (3)

“쩝쩝쩝.”

“…….”

“후루룩, 캬! 이거 오랜만인데? 다시 먹어도 맛있구만?”

감탄 어린 눈으로 사발을 내려다보는 서량의 얼굴은 그럭저럭 행복해 보였다.

그가 요란하게 쯥쯥대며 이 사이에 낀 살점을 빼내곤 말했다.

“소궁주 취향이 제법이외다. 육 족 닭대가리 새끼, 겉보기에는 입맛 떨어지게 생겼지만 막상 먹어 보면 보통 별미가 아니거든. 나도 꽤 먹었지, 이거.”

“아, 그러십니까.”

“맛이 워낙 좋기도 했고, 혹시 아오? 이놈 먹으면 콩알만 한 내공이라도 더 쌓일지. 한때는 이 닭대가리들을 멸종시켜 버릴 기세로 때려잡곤 했었소. 그때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해.”

어휘력 좋은데?

여강휘는 왠지 상대를 대하기가 편해지는 걸 느꼈다. 처음의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식성이 좋으시군요.”

“밥을 든든히 먹어 둬야 제때 힘도 잘 쓰는 법 아니겠소.”

도대체 힘쓸 일이 얼마나 많기에 저리 많이 먹나 싶다.

여강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말씀하시오.”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음?”

여강휘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눈은 어떻게 된 겁니까?”

서량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수련 중에 생긴 상처요. 그냥 그렇게 아쇼.”

“아, 예.”

서량은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염병, 호리호리하니 젓가락 들 힘도 없게 생긴 주제에 주먹은 오지게 매섭네.’

물론 정상적으로 붙었다면 이런 일격을 허용했을 리가 없다.

서량은 내공을 아예 봉쇄한 채 아직 일성(一成)에 머문 마황군림보와 벽력권만으로 그녀를 상대했다. 소연심 역시 내공을 봉쇄했다지만 그녀의 벽력권과 보법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체력, 감각, 힘, 속도 등등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해도 하나의 무공에 통달한 사람에겐 힘들다. 극한의 반사 신경과 전투 경험 덕에 박빙의 승부를 만들어 냈으나 무공 자체의 연성 차이를 이기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 쪽팔리게 참.’

극마에 오르며 알게 모르게 안도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방심한 것이다.

만약 눈에 맞은 게 주먹이 아니라 칼이었다면 운이 좋아도 실명, 운이 나빴다면 죽었을 것이다.

‘긴장하자. 너 아직 생전의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어. 뭘 얼마나 이뤘다고 벌써부터 안도하냐.’

서량의 투덜거림은 섬뜩한 다짐과 함께 끝났다.

‘다음엔 마공 개방하고 싸워 보자고 해야지.’

여강휘가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십니다.”

“음?”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무공을 보유하셨는데도 그리 열성적으로 단련을 하시는군요.”

“그게 무슨 말이오?”

“예?”

“무공이 강하든 약하든 단련은 무조건 해야 하는 거 아니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저 추켜세워 주려고 한 말을 진지하게 받는 서량을 보며 여강휘는 입맛을 다셨다.

‘빈말은 말아야겠군.’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서량이 탁자를 한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어쨌든 맛난 것도 얻어먹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나를 보고 싶으셨다고?”

“아, 예.”

“이유가 뭐요?”

여강휘가 목을 가다듬었다.

“검궁의 검사들과 만나셨다고요?”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그랬지.”

왠지 어조가 확 달라진 것 같다.

여강휘가 진지하게 물었다.

“어땠습니까?”

“강했소만.”

“……그게 끝인가요?”

“싸움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소. 그저 그놈들은 강했고 덕분에 고생을 제법 했다는 게 전부요.”

“그렇군요.”

물끄러미 여강휘를 주시하던 서량이 툭 던지듯 말했다.

“소궁주보다 두어 수 더 강했소.”

“예?”

“검궁의 부궁주 말이오.”

여강휘가 멋쩍은 듯 웃었다.

“저를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그나마 후기지수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아직 여러모로…….”

“지금 모습 말고.”

“예?”

“당신의 숨겨진 진짜 힘을 꺼내 든다면 검궁의 부궁주와 몇 합 나눠 볼 만은 할 거요.”

“……!!”

여강휘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물론 그만한 잠재력을 풀어냈을 때 육신이 그에 맞춰질 수 있도록 제대로 연마해야겠지.”

서량의 얼굴에 묘한 기색이 떠올랐다.

“봉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 갑갑하오? 그 힘을 꺼내 들기만 한다면 단숨에 새외제일의 후기지수로 불릴 텐데.”

“…….”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굳어진 여강휘의 얼굴은 냉랭하기만 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보니까 알겠던데.”

“…….”

“자세, 호흡, 기질 등을 보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게 분명한데 어찌 근력과 내공은 절정고수 수준인가. 그게 궁금해서 자세히 들여다봤을 뿐이오.”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다 보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이오?”

가만히 서량을 보던 여강휘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걸 꿰뚫어 봤다고?’

유리잠력대법(琉璃潛力大法)을 꿰뚫어 본 사람은 빙궁에서도 단 셋뿐이다. 그중 둘은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얼핏 위화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북해제일고수라는 아버지, 당대 빙궁주(氷宮主)만이 꿰뚫어 본 잠력대법을 신교의 삼공자가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

“삼공자는…… 정말 놀라운 고수로군요.”

“제법 하오.”

“감탄했습니다. 이 대법은 무공이 강하다고 꿰뚫어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안목이 뛰어나시군요.”

“칼질 못지않지.”

서량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고작 검궁의 검사들 수준이 궁금해서 날 부른 건 아닐 거요.”

“……그렇습니다.”

“쓸데없이 얘기 빙빙 돌리지 맙시다. 나는 본론을 원하오.”

“…….”

“교주님도 아니고, 왜 날 보자고 한 거요?”

“마인들 중, 삼공자가 가장 신교를 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교를 위해? 이게 무슨 말인가?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여강휘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현재 신교에서 가장 큰 명성과 지지를 얻고 있는 분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삼공자를 보자고 한 겁니다.”

“못 알아들을 소리는 그만하시고…….”

“다리를 맺어 주십시오.”

“다리?”

“예. 본궁과 귀교가 동맹을 맺을 수 있도록 삼공자가 가교의 역할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순간 서량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동맹을 맺자고?”

“그렇습니다.”

“갑자기?”

“…….”

“……이거 점점 이해할 수가 없구만.”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본교와 귀궁의 동맹을 위해 왔다면 더더욱 교주님을 찾아뵈었어야 옳지 않소? 나는 그저 교주님의 제자일 뿐 어떤 권한 같은 건 없소.”

“알고 있습니다.”

“한데 왜?”

“말씀드렸잖습니까. 삼공자가 가장 신교를 위하는 사람이라 판단했다고.”

“오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소만.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한들 그게 날 찾아온 이유가 되진 않소.”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여강휘의 눈에 열기가 어렸다.

“본궁과의 동맹은 귀교에 크나큰 이득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삼공자라면 거기에 힘을 실어 주기에 적합한 분이지요.”

“이건 또 흥미로운 얘기로군.”

서량이 팔짱을 꼈다.

“들어 봅시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굳이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본궁은 두말할 나위 없는 새외 최강의 세력입니다. 이런 세력과 동맹을 맺는데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서량은 상대의 자신감을 인정했다.

소문 중 절반만 사실이더라도 빙궁의 힘은 소림사와 동급이다. 그러한 세력과 연수를 맺는다면 천마신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을 일이었다.

“신교를 구경하고 싶어서 왔다더니 아주 깜찍한 속내를 감추고 계셨군.”

무례한 언사였다. 하지만 여강휘는 서량의 말투를 책잡지 못했다.

이곳이 천마신교여서가 아니라, 서량의 몸에서 풍기는 관록 어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

“그래서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물었소.”

여강휘의 눈이 반짝였다.

“바란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요?”

“한 번만 더 말 빙빙 돌리면서 간 보면 나 그냥 나가겠소.”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의뭉을 잘 떨어서요.”

“이제 말해 보시오.”

여강휘가 다시 한번 호흡을 골랐다.

긴장 어린 기색이 절로 묻어 나왔다. 적어도 지금의 이 표정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제 동생을 구해 주십시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생이 있었소?”

“그렇습니다.”

“그런데 동생을 왜 이쪽에다 구해 달라 하시오?”

스스스.

여강휘의 몸에서 은은한 한기가 일었다. 복잡한 심사 때문에 무의식중에 발출되는 기운이었다.

“제 동생이 야수궁(野獸宮)에 잡혔습니다.”

서량의 눈이 커졌다.

“야수궁? 그 시뻘건 개새끼들 부리는 놈들?”

“혈랑대와 조우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었지. 어찌나 몸통이 단단하던지 칼도 잘 안 박히던데?”

여강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잔뜩 찌푸려졌음에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놀랍군요. 삼공자의 무공으로도 혈랑대가 벅찼다니. 수왕대법(獸王大法)을 완성시켰다는 말이 참말이었어요.”

“아, 벅찬 정도는 아니었소. 게다가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랐지. 여하간 절정고수라도 한 마리를 잡기 쉽지 않은 정도였소.”

“그럴 겁니다. 수왕대법을 완성했다면 평범한 맹수들도 단시간 내에 마수(魔獸)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음.”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들어 보고 싶군.”

여강휘의 말은 제법 길었다. 숨긴다고 숨기긴 했지만 그간 쌓아 온 분노와 초조함이 컸는지 간간이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면…….”

잠시 고민하던 서량이 말했다.

“소궁주의 동생이 중원 서북부로 유람을 나왔다가 야수궁의 짐승들과 조우, 이후 싸움이 벌어졌고 패배하여 놈들에게 잡혀갔다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빙궁은 본래 중원 땅에 관심이 없고 북해의 평화만을 원했으나, 다른 삼궁(三宮)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 하필이면 이런 와중에 궁주의 핏줄이 납치당했으니 손쓸 수가 없다는 것이로군.”

“요약을 잘하시는군요.”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그렇다고 본교와 동맹을 맺으려 하다니? 본교가 어떤 곳인지 모르오?”

“압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 아니 궁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삼궁(三宮)의 몰락이기 때문입니다.”

“……오호?”

“의천맹과 철혈성도 생각을 해 보았지요. 하지만 아닙니다. 그들은 큰 힘을 갖고 있지만 정작 써야 할 때 제대로 쓰지 않아요. 이유인즉…….”

“연맹체니까.”

“그렇습니다. 반면 천마신교는 일을 벌임에 있어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지요.”

“…….”

“게다가 신교와 야수궁은 지리적으로 의천맹과 철혈성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더하여 이미 이궁(二宮)과 분란이 있으셨다고 하니 신교에도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여강휘가 미소를 지었다.

신비로운 웃음 속, 치명적인 살의가 깃들었다.

“저희에게도 성가시고 귀교에게도 성가신 존재들입니다. 쓸어 버리시지요.”

서량 역시 마주 미소를 지었다.

멋들어진 웃음 속, 광기 어린 살기가 휘몰아쳤다.

“어차피 검궁 놈들이 의천맹과 연수했다는 정황이 포착된 상황이오. 빙궁과 손을 잡고 싹 조져 버린다면 확실히 본교에도 좋은 일일 테지.”

“다행이군요.”

스르륵.

여강휘가 평상에서 일어났다.

“하면 일어나시지요.”

“음?”

“얼추 얘기가 끝난 것 아닙니까?”

“끝나지 않았지. 아직 결정도 못 했으니까. 그리고 이 건은 분명 교주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오.”

“저는 소문으로 들은 귀하의 무공, 성격 등을 고려하여 대면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귀하께서 시간을 끄신다면 곧바로 교주님께 갈 생각입니다.”

“진즉에 그러시지.”

여강휘의 웃음이 짙어졌다.

의미를 알기 힘든 웃음.

“……무례를 용서하시길.”

파아아앙!

그의 고운 손이 서량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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