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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64화 (164/774)

164화. 북해에서 온 바람 (4)

번개처럼 내지른 손끝에는 흉흉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단숨에 서량의 목을 꿰뚫어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

“…….”

두 사람 모두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여강휘가 물었다.

“왜 피하지 않으신 겁니까?”

“피할 필요가 없으니까.”

“왜지요? 분명 살기를 담았는데.”

“억지로 불사른 살기에는 진심이 배어들지 않는 법이오.”

여강휘의 눈에 웃음이 맺혔다.

“대단하십니다. 그걸 안다 해도 무인의 본능이라면 피하거나 막는 게 정상인데 말입니다.”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걸 안 좋아해서.”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진짜로 해보자는 것도 아닌데 의미 없이 공격한 이유가 뭐요?”

여강휘는 대답 없이 자세를 푼 채 십여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서량을 바라보는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고혹적인 눈빛에 한기가 어리니 섬뜩함이 배가 되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빙혼천강수(氷魂天罡手)는 본궁의 오대절학 중 하나입니다. 파괴력으로는 소림사의 백보신권(百步神拳)에 견줄 만하고, 기공의 심오함으로는 무당파의 태극진기(太極眞氣) 못지않지요.”

“왜 공격했냐니까 별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계쇼?”

“자, 다시 들어갑니다.”

“참나.”

우우우우웅.

번져 나오는 한기가 순식간에 일대를 장악했다.

푸스스스.

땅 위에 솟은 잡풀들이 허옇게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잡풀들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퍼석퍼석 소리를 내며 바스러졌다.

휘이이잉!

살을 엘 듯한 한풍. 넘실거리는 백발 위로 하얗고 조그마한 구슬이 생겨났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구슬은 주변의 습기를 빨아들이며 조금씩 그 크기를 불려 갔다.

반짝이는 구슬은 가장 선명한 별, 북극성과 같았다. 무공명에 천강(天罡)이라는 글자가 왜 붙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갑니다.”

느닷없는 비무의 시작이다. 서량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좋소. 하지만 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요.”

여강휘의 얼굴에 언뜻 감사의 기색이 비쳤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정의 말을 들어 보면 삼공자는 적에게 있어 자비가 없는 마인이 분명했다. 제안을 던져 두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투정을 계속 받아 준다. 고맙기 짝이 없었다.

어느새 평상에서 일어난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오시오.”

후욱.

여강휘의 몸이 어느새 서량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그다지 빨리 움직인 것 같지도 않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접근한 것이다.

후우웅.

머리 위에 떠 오른 구슬이 번쩍이고, 여강휘의 섬섬옥수가 새하얀 광채로 뒤덮였다.

여강휘의 동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량이 주먹을 휘둘렀다.

‘억?!’

여강휘의 눈이 커졌다. 빙혼천강수의 일격을 내치기도 전에 이미 상대의 주먹이 가슴으로 파고든 것이다.

콰르릉!

“큭!”

여강휘의 신형이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났다.

전신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곳으로 집결한 한기가 무서운 속도로 흩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힘이다!’

일권(一拳)에 실린 압력으로 천강구(天罡球)에 금이 가 버렸다. 이런 상태로는 빙혼천강수의 진정한 힘을 뽑아낼 수가 없다.

“백보신권에 준할 만한 무공임은 분명하지만.”

여강휘가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거둔 서량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약점이 너무 도드라진 거 아니오? 시전과 공격 사이의 시간이 다소 긴 것 같소.”

“…….”

“물론 무공 자체의 결함은 아니고, 시전자의 연성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지만.”

여강휘의 눈동자가 더욱 확연히 요동쳤다.

“그렇다면 삼공자께서 보시기에, 제가 이 무공을 완성시킨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음.”

잠시 고민하던 서량이 자세를 낮췄다.

“잘 보시오.”

스르륵.

서량이 천천히 움직였다.

무척이나 느린 움직임. 마치 무당파의 태극권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무공 시연인가 싶어 서량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여강휘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투웅!

내공을 싣지도, 전신 근육에 힘을 집중시키지도 않았는데 허공에서 울림 가득한 소리가 들려온다.

“어떻소?”

“괴, 굉장합니다.”

“얼마 전에 익히기 시작한 천마벽력권이란 무공이오. 이제 입문 단계라 제 위력은 나오지 않지만, 딱 봐도 수준이 높아 보이지 않소?”

“예. 움직임은 단조롭지만 순일(純一)로 만변(萬變)을 제압한다는 이치를 제대로 머금고 있군요.”

“안목이 굉장하시군.”

“별말씀을요.”

“당신이 펼쳤던 그 빙혼 뭐시기란 수공(手功)도 이와 유사하오. 벽력권처럼 변화를 죽이고 파괴력을 살린 전형적인 강권(强拳)의 무공이지. 다만 벽력권은 한 점에 집중했고, 그 수공은 전방위로 힘을 퍼트리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뿐.”

“정확하십니다.”

서량이 자신의 시퍼런 눈두덩이를 가리켰다.

“벽력권의 달인과 내공 없이 붙었다가 얻은 영광의 흔적이오. 그 사람과 나의 수준 차이는 실로 명백하지. 그럼에도 내공 없는 백타 싸움에서는 내가 밀렸소.”

“아, 그래서 그런…….”

“그만큼 무학 자체의 수준이 뛰어나다는 뜻이지. 당신의 수공도 이와 같소. 그 수공을 대성했다고 가정 시, 엇비슷한 기량이라면 누구와 붙어도 밀리진 않을 거요.”

한마디로 뛰어난 무공이란 뜻이었다.

여강휘가 고개를 숙였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느닷없이 그 무공을 보여 준 이유는 뭐요?”

“그래야 삼공자의 한 수도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응?”

“삼공자의 무공을 제게 보여 달라 청한들, 쉽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안 보여 주겠지. 쓸데없이 움직이는 거 싫어하니까.”

“귀찮은 걸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무공을 쉽사리 보여 주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각자가 가진 창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아야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서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의미심장한 말이로군.”

교주에게 가서 동맹을 맺자고 하면 될 걸 굳이 자신에게 와서 도와 달라 요청한다. 자신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와전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다.

그런 여강휘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천마신교와 북해빙궁이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를 뜻함이었다.

여강휘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교와 빙궁의 동맹을 추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

“저와 삼공자, 둘이서도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우리 둘이 동맹을 맺자?”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차기 대권을 짊어질 작은 주인들끼리 동맹을 추진한다면, 차후 조직을 쥐고 휘두를 때 여러모로 이점이 되지 않겠습니까?”

순간 서량의 눈에 놀라움이 일었다.

‘이 녀석 봐라?’

그렇다. 여강휘의 진짜 목적은 단순히 동생의 구출만이 아니었다.

동생을 구출함과 동시에 서로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도록 돕자는 제안이었다. 말하자면 공동 노선을 구축하자는 뜻이다.

“삼공자께선 분명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직 차기 후계자로 내정되진 않았지요.”

“…….”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어떤 종류의 힘이든.”

“그러니 나 역시 당신을 도와야 한다?”

“그렇습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왔다는 것은 핑계인가?”

여강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 제안을 물리셔도 상관없습니다. 대권을 거머쥐는 것보다 동생을 구하는 게 제겐 우선입니다. 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 삼공자와 악연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서량.

이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둘이 각 조직의 동맹을 구축하는 다리가 되어 차기 대권을 손쉽게 거머쥘 수 있도록 서로 돕자는 것이군. 여론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겠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놈 참 생긴 것답지 않게 아주 화끈한 면이 있구만.”

이전과 다른 말투였다. 마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말하는 듯하다.

듣는 이로선 기분이 상할 만도 할 텐데 여강휘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근데 너무 손해 보는 장사 아니냐? 나는 삼공자지만 넌 소궁주잖아? 이미 차기 궁주로 내정되었을 텐데?”

“차기 궁주로 내정되어 있긴 하지만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정적을 치우고 싶은가?”

“그렇습니다.”

“혼자 힘으로 하지 않고?”

“당신을 끌어들여 정적을 제거하는 것 역시 저의 역량입니다.”

“말 잘하네.”

“삼공자만 하겠습니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교주님께 가지 않고 나를 불렀군. 현재 교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제자와 함께 손을 잡고 판을 흔들어 볼 생각이었어.”

여강휘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지금껏 말을 질질 끌어서 죄송합니다. 다만 저로선, 귀하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이해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함께 나아가시겠습니까?”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나를 못 믿겠지만, 나 또한 너를 못 믿어. 말이 좋아 동맹이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가 아니던가?”

“그도 그렇습니다.”

“확실한 공증이 있어야만 할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여강휘가 미소를 지었다.

보는 사람이 다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예로부터 나라와 나라 사이의 동맹을 체결하는 데에 손쉬운 수단이 있었지요.”

서량이 가고 얼마 후.

“커험.”

대숲에서 양정이 걸어 나왔다.

여강휘가 싱긋 웃으며 그를 맞았다.

“오셨습니까?”

“아, 그렇소.”

양정이 평상에 앉았다.

그의 표정은 상당히 묘했다. 감탄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불만이 있는 듯도 하다. 전체적으로 심란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강휘가 입맛을 다셨다.

“역시 다 들으셨군요?”

“어? 아,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

“괜찮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 알려질 사실이니까요.”

“그렇기도 하고, 말했다시피 우리는 일선에서 물러난 처지요. 일거리가 떨어졌을 때만 움직이지. 그 외의 일에 발을 얹을 생각은 없소이다. 얹어서도 안 되고.”

양정의 눈이 굳어졌다.

“한데 괜찮겠소?”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삼공자와의 동맹이라…… 위험하지 않겠소?”

“위험하다니요?”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 아니오? 만약 삼공자가 입을 싹 닦아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하하, 선배님께서는 신교의 마인이시면서 오히려 저를 걱정해 주시는군요.”

“커험! 나야 삼공자와는 대화 한 마디 나눈 적 없지 않소. 반면 소궁주와는 안면을 텄으니까 말이오.”

여강휘가 고죽림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진즉 사라진 서량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왜 신교의 마인들이 삼공자를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 것 같습니다.”

“……?”

“그는 결코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겁니다. 겉으로는 투덜거리지만 진짜 동맹이라 생각되면 필요 이상으로 잘해 줄 사람이라 확신합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가 있소?”

“예.”

여강휘의 얼굴에 아련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삼공자의 목표가 차기 대권을 거머쥐는 것 이상임을 깨달았거든요.”

* * *

“오셨습니까, 공자님.”

“어.”

마동필을 지나치려던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너 얼굴이 왜 그러냐?”

“아, 이거는…….”

마동필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의 왼쪽 눈도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서량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여우 같은 양반이 아주 쌍으로 쪽을 줬구만.”

“…….”

“앵화한테 계란이나 하나 구해 달라고 해라.”

“아, 예.”

잠시 후, 서량이 멀끔한 차림으로 다시 나왔다.

“어디 가십니까?”

“응.”

“모시겠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거기서도 기다려야 되잖아.”

“예?”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흑백 또렷한 동공에 진한 마기가 일렁였다.

“교주님을 뵈러 가야겠다.”

맑은 하늘 너머에서 언뜻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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