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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65화 (165/774)

165화. 북해에서 온 바람 (5)

“철마방 건,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는 주서윤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녀를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 하였지. 그간 열심히 노력한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이천상에게서 이런 칭찬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주서윤의 재능과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자전마공(紫電魔功)은 십대마공 중 유독 파괴력에 특화된 면이 있다. 반면 지구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지.”

“네.”

“네 특유의 진기 운용법으로 부족한 지구력을 살렸군. 장점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단점을 메웠구나.”

“그렇습니다.”

“너의 무(武)가 지향하는 길을 잘 꿰뚫어 보고 있다는 증거다. 나쁘지 않아.”

술을 한 잔 들이켠 이천상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군.”

주서윤의 눈이 번뜩였다.

교내에서 그녀의 마음에 파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하는 말이다. 그녀는 그런 이천상의 말을 결코 흘려듣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떴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자존심을 접어도 될 유일한 상대이기도 하다. 가르침을 바라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이유였다.

이천상이 말했다.

“너의 무(武)는 그저 무(武)라는 글자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아.”

“……?”

“무공의 장단점 따위야 사소한 것이다. 너는 네 무공에 진짜 중요한 요소를 넣지 못했다.”

“그게 무엇인지요?”

“말해 준다고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바, 스스로 직접 깨닫도록 하라.”

주서윤이 더욱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이천상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녀는 이천상의 말을 완전히 신뢰했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그런 주서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이천상이 재차 입을 열었다.

“수만 권의 서적을 읽은 선비라도 세상의 이치에 능통할 순 없지.”

“……?”

“세상사 이치에 능통하기 위해선 서탁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법. 오직 책 속의 글을 맹신하는 선비와 지금의 너는 결코 다르지 않다.”

주서윤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는 얼마 전,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 일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부딪쳤습니다. 무공을 써야 할 때는 과감하게 돌진했고 머리를 써야 할 때는 칼은커녕 주먹도 들지 않았습니다.

- 그런 과정, 경험들이 하나하나 모여 ‘배움’이란 것을 완성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수만 권의 책을 독파해도 지식만 늘 뿐 지혜를 얻긴 힘든 것과 같은 이치지요.

- 그래서 지금의 삼공자가 그렇게도 강해진 모양입니다.

총군사 호요성이 했던 말이었다.

호요성 역시 무공을 익혔지만, 결코 고수라 할 수준은 아니었다. 충분히 가슴을 흔들 만한 말이었지만 그의 조언이 그렇게까지 와 닿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이천상 역시 그녀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걸까. 무(武)의 극치를 엿본 이천상과 문(文)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호요성, 그 두 사람이 주서윤의 단점을 똑같이 본 것이다.

“하면…… 어찌해야 합니까.”

“네 굳은 머리를 뜯어고치는 건 오로지 너밖에 할 수 없는 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꾸준히 성장할 것인즉.”

“…….”

“이만 나가 보아라.”

“……네.”

주서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머리가 굳었다고?’

무인이란 무(武)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배워 왔고 그렇게 성장해 왔다.

한데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바른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전 바깥에서 한 마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교주님. 삼공자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들라 하라.”

쿠구궁.

대전의 문이 열리고 서량이 들어왔다.

주서윤의 눈이 그를 향했다.

‘셋째 오라버…….’

순간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푸스스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걸을 때마다 땅에서 연기가 솟구치는 듯하다.

굳이 기파를 발산하지 않는데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감이 풍겨 나온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서량의 모습에서 굉장한 여유가 엿보였다.

주서윤의 안색이 일순 돌변했다.

마기를 풍기지 않는데도 체내의 기가 절로 들끓는 듯한 이 느낌.

‘설마?!’

서량이 힐끔 주서윤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드리워진 한 줄기 놀라움, 그리고 그 놀라움 속에 깃든 감탄과 혼란이 느껴졌다.

‘감각 좋군.’

한눈에 자신의 경지를 알아보았다. 초절정의 영역에 올라서지 못했음에도 수준이 다른 기질을 느꼈다. 무척이나 예민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녀에게서 눈을 뗀 서량이 이천상에게 고개를 숙였다.

“왔습니다.”

“그래.”

이천상이 말했다.

“다섯째는 이만 나가 보도록.”

“……네.”

주서윤이 대전을 나섰다.

‘잘못 본 게 아니야.’

그녀의 미안(美顔)이 충격으로 얼룩졌다.

‘극마(極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자가 부딪치는 절대의 벽.

무(武)라는 개념에서조차 탈피하기 시작하는 지고한 경지가 바로 극마지경이다. 셋째 오라버니는 어떠한 마공도 손쉽게 익혀 버리는 마(魔)의 극한을 이룬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무공을 연성하면서 단 한 번도 자만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특출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장 강호를 둘러봐도 그녀만 한 경지에 오른 고수를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

셋째 오라비는 그런 자신과 차원이 다른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나이 차이라고 해 봐야 서너 살밖에 나지 않는데도 아예 수준이 달랐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대전을 나섰다.

“어떠하냐.”

“예?”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다섯째 말이다.”

“……?”

“너의 눈으로 본 다섯째는 어떠하더냐.”

“괜찮은데요?”

괜찮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 강함과 재능이 놀라워 잠시 주시하게 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포함, 재능으로 치자면 본교에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막내가 녀석과 비교될 만하지.”

“그렇더군요.”

“그러나 단 하나의 문제점을 고치지 못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넘치는 재능의 소유자들이 항상 버거워하는 벽이지요. 그것만 뚫어 내면 무서울 정도로 강해질 겁니다.”

“그 또한 맞는 말이지.”

이천상이 손을 올렸다.

우웅.

빈 잔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한잔하겠느냐?”

“아, 감사하죠.”

서량이 받아 든 잔에 사천의 명주, 오량액이 담겼다.

“사천 술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사천의 땅은 풍요롭기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빚은 술은 의심할 나위 없는 최고지.”

“그런가요?”

서량이 잔을 비웠다. 확실히 향은 좋은 것 같지만 다른 명주들과 그리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이천상이 물었다.

“빙궁의 작은 주인과는 대화가 잘 끝났느냐.”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알고 계셨습니까?”

“교내에 벌어진 일 중 내가 모르는 일은 없다.”

당연하다는 듯 내뱉은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서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깜찍한 제안을 해 오더군요.”

“본교를 구경하고 싶다는 말은 역시 구실에 불과했군.”

“그래서 고죽림에 넣어 주신 겁니까?”

“나름의 배려였다.”

“한서불침의 경지를 진즉에 돌파한 것 같던데요.”

“몸은 멀쩡해도 정신은 지칠 수 있지.”

교내 마인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눈과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이천상은 말이 많은 사람도, 누군가와 대화를 길게 하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 녀석이 무슨 제안을 했느냐면…….”

“궁금하지 않다.”

“예?”

이천상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간 침묵했던 새외사궁의 수좌가 움직였다. 심상치 않은 일이겠지. 동맹이든 도발이든, 중요한 것은 너와 그 아이의 대화 이후 벌어질 일이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시잖습니까.”

“적어도 녀석이 나를 찾아오지 않고 널 불렀다는 사실은 알지.”

서량이 재차 눈을 빛냈다.

“주인을 찾지 않고 주인의 자식을 불러 담소를 나누었다. 심지어 검궁과 야수궁이 그 난장을 친 시국에.”

이천상이 잔을 넘겼다.

“본교에 이득이 되거나, 손해가 되거나. 결국, 그 둘 중 하나의 이유겠지.”

서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만약 그놈에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면요? 말하자면 본교에 해를 입히기 위해 찾아왔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빙궁의 소궁주는 본교에 들어와 있다.”

“…….”

“어떤 이유에서건 무리할 수 없는 상황이지.”

수틀리면 잡아서 탈탈 털어 버리면 그만이란 얘기.

서량은 나직이 감탄을 토해 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누구라도 궁금해할 사항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중요한 건 이유가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의 종류를 짚고 역으로 생각해 보면 굳이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무림사, 나아가 세상사에 통달한 사람이다.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은 없어도 언제나 사태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기에 여유를 잃는 법이 없다.

‘무섭다.’

무공이나 존재감 때문이 아니었다.

서량은 이천상의 지혜와 안목에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꼈다. 호요성 역시 상상 못 할 안목의 소유자지만 이천상은 그와는 또 달랐다.

‘지혜를 초월한 깨달음이다. 아예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

여름이 오면 더워질 것이요, 겨울이 오면 추워질 것이다. 언제 여름이 올 것을 알고, 언제 겨울이 올 것도 안다.

그 당연한 이치를 알고 있으니 더위와 추위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천상이 보는 세상은, 그러한 ‘당연함’이란 단어 안에 녹아 있었다.

“그래서.”

서량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천상이 흥미가 담긴 얼굴로 말했다.

“네가 또 바빠질 일이냐?”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교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냐? 아니면 교외로 나가야 하느냐?”

“둘 다입니다.”

“동맹이군.”

등골이 오싹했다.

“놈을 보지는 못했지만 빙궁의 작은 주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혈육에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곳이야. 즉, 네가 만난 녀석은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그러더군요.”

“휘둘리지 말고 휘둘러 보아라. 너의 꿈을 이루고 싶다면.”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하라.”

“본교의 병력을 동원해도 됩니까?”

“비밀리에 행해야 할 일이라면 불가(不可)하다.”

“으음…… 역시 그렇군요.”

감찰사에 광마대가 붙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대외적인 일이기 때문이며 공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알아야 할 사람이 적어야 한다면 병력을 붙일 수 없다. 단순 교내의 일이라면 또 몰라도 외부 세력이 얽혀 있는 일이 아니던가.

머리를 긁적이던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수 없지요. 조금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우우웅.

이천상의 손으로 한 장의 문서가 날아왔다.

그 내용을 확인한 이천상이 문서를 서량에게 던졌다.

“참고하도록.”

서량이 문서를 들여다보았다.

‘흠, 그냥 교내 병력들의 임무 상황 보고서잖아? 근데 뭘…….’

어라?

문서 하단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서량이 이내 씨익 웃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올 때도 보행이 어설프면 보법을 빼앗겠다.”

한눈에 마황군림보의 경지를 꿰뚫어 본 모양이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쪽팔리지 않게 이보다는 나아져야지요.”

“이만 나가 보도록.”

“예.”

쿠구궁.

서량이 대전을 나서자 이천상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기본은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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