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66화 (166/774)

166화. 실몽당이 (1)

마신궁을 나온 서량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야수궁이라.’

이천상과는 시원시원한 대화를 이어 갔지만,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빙궁은 다른 삼궁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고 했다. 검궁, 야수궁 그리고 천룡궁 모두와 척을 지고 있다는 뜻이야.’

세력 간의 관계라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하여 무조건 척을 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타 조직의, 그것도 수장의 혈육을 납치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빙궁은 야수궁과, 나아가 다른 두 궁과도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시파, 막장도 이런 개막장이 없구만.’

어차피 무림이란 동네도 파락호들이 판을 치는 뒷골목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파락호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더러운 짓이 판을 치는 곳이 바로 무림이다.

다만 그런 뒷골목 파락호들보다는 수준 높은 더러운 짓을 일삼는다는 것이 다를 뿐.

그래도 수백 년간 사궁(四宮)이라는 이름 아래 똘똘 뭉쳤던 집단들이 이렇게 파탄이 날 줄이야.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다.’

빙궁의 소궁주와 손을 잡는다?

그 말인즉, 그가 차기 후계자가 되는 데에 힘을 실어 줄 강력한 아군이 생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빙궁을 지지자라고 부를 수 없다.

이 기묘한 거래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적사가의 지분을 가졌고 거경가가 뒤를 받쳐 주고 있어. 하지만 그들은 날 대놓고 도울 수는 없다. 그들은 신교의 지파지만, 신교 내부의 조직은 아니기 때문이야.’

빙궁도 마찬가지다?

‘아니야.’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히려 동떨어진 세력이기 때문에 더더욱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동맹을 맺어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수백 년간 공동 노선을 펼쳤던 사궁이 사소한 의견 차이로 찢어진 것처럼.

“어찌 되었든 한번 해 볼 만은 한 거래라는 거지.”

히죽거리며 걸어가던 서량.

스륵.

‘헉!’

골목 한쪽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한 명의 여인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바로 오공녀 주서윤이었다.

“어…….”

서량이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생각에 빠져 주변을 보진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인기척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앞길을 막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주서윤.

서량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안녕?”

“…….”

시벌, 이게 무슨 천진난만한 인사냐. 얘가 애야?

어쩐지 채여민이 생각났다. 녀석과 처음 만났을 때도 얼추 비슷한 반응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니 걔는 지금쯤 뭐 하려나?’

그때, 주서윤이 고개를 숙였다.

“오라버니를 뵈어요.”

“어? 어어, 그래.”

“…….”

“…….”

뭐야? 인사도 해 놓고 왜 아무런 말이 없어?

머쓱해진 서량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중에 보자.”

말 그대로 인사하려고 아는 척을 했나 보다. 그는 슬쩍 오른쪽으로 돌아 걸어 나갔다.

서량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고민거리가 생기면 풀릴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그의 집중력은 여러모로 비범한 데가 있었다.

‘일단 이 일을 해결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야수궁과 접촉을 해야 해. 십중팔구 화기애애한 만남이 되진 않겠지.’

그의 손에 야수궁 후계자 중 하나가 작살이 났다. 얼마나 공들여 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부리는 늑대들도 모조리 작살을 내 놨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놈들은 그런 짓을 벌인 게 신교의 삼공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려나? 아냐, 모르겠지. 놈들 영역권도 아니고 본교에서 싹 정리를 해 놨으니까. 그래도 신교의 마인이라 하면 좋게 보진 않을 거야.’

순간 서량은 멈칫했다.

‘신교의 마인이라…….’

그는 내심 고소를 지었다.

‘나도 어느새 나 자신을 자연스레 마인이라 칭하는군.’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와는 달랐다.

마공을 익혀서 마인이 아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그는 진짜로 마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스스로 진짜 마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니 편한 것이다.

다만 새삼스러울 뿐이다. 자유를 꿈꾸었던 살수 나부랭이가 어느새 누구보다도 마인다운 마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상관없어. 놈들을 죄다 작살 낼 수만 있다면.’

어쨌거나 야수궁과 접촉할 수 있는 방도부터 짜내 봐야지.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향하던 서량은, 문득 자신을 따라오는 익숙한 기척이 신경 쓰였다.

“…….”

뒤를 돌자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서윤이 보였다. 마신궁에서 거처까지 절반이 넘도록 걸어왔는데 주서윤은 여전히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없습니다.”

“…….”

“…….”

“아, 이쪽 가는 길에 볼일이 있구나.”

“……네.”

“어, 알았다.”

서량은 다시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저기…… 음…… 뭐라고 불러야…… 아, 그래. 다섯째야.”

“네.”

“이제 다른 길이 없는데?”

“있습니다.”

“이 길로 쭉 가면 내 거처야. 내 거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알고 있습니다.”

“……?”

“…….”

“너 설마, 나 따라오는 거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이 없다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서량이 얼굴을 찌푸렸다.

“나한테 할 말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날 따라오지?”

“굳이 말은 필요치 않으니까요.”

“엥?”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들겨 패는 소리야.

“그러니까 나한테 볼일은 있는데 대화는 필요치 않다?”

“네.”

“너는 필요 없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좀 필요할 것 같다만?”

“…….”

“이유를 말해 봐. 왜 따라오는 거야?”

주서윤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서량은 답답함을 느꼈다.

“도대체가…….”

뭐라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서량이 입을 닫았다. 주서윤의 얼굴에 서린 고심의 기색을 읽은 것이다.

잠시 후, 주서윤이 말했다.

“저의 무(武)에 무엇을 녹이면 되는 거죠?”

“뭐?”

“…….”

또다시 말이 없어졌다.

어떤 성격인진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사람의 인내심을 자극하는 데엔 뭐가 있는 애가 분명하다. 서량은 밀려드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싶었다.

“사람이 알아듣게 설명을 해야 뭐라 말을 해 줄 수 있지 않겠냐고.”

“저도 설명이 안 됩니다.”

“뭣이라?”

“그래서 보려고 합니다.”

“뭘?”

“오라버니를요.”

서슴없이 나오는 오라버니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헤벌쭉할 뻔했다.

“나한테서 대체 뭘 보겠다는 말이냐?”

“어떻게 하면 그리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까.”

주서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떻게 하면 벌써 극마에 오를 수 있었을까.”

서량이 ‘요것 봐라?’ 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극마를 노리고 있었어?”

“…….”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행동에서 보이는 것도 아니라는 거 알 텐데?”

“네.”

주서윤의 눈이 번뜩였다.

“하지만 시도해 본 적은 없어요.”

아니라는 건 알지만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거다.

여전히 답답한 대답이었으나, 서량은 그녀의 행동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틀린 걸 알고 있어도 직접 확인하고 온전히 체감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서량이 손을 저었다.

“나한테 뭘 바라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은 알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 당분간은 내가 바빠. 그러니까 나중에 와라.”

“안 돼요.”

“뭐?”

“제게는 한시가 급한 문제예요.”

“네 급한 일 때문에 내 일정을 포기하란 말이냐?”

“그런 말은 아니에요.”

“그럼?”

“그냥 옆에서 지켜볼게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냉랭한 웃음이었다.

“까먹은 것 같아서 말해 주겠다만, 너와 난 경쟁자다.”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넷째 박살 낸 건 알아?”

“알아요.”

“그런데도 그런 속 편한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저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상관없는 일이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교주님의 제자인 이상, 너도 분명 차기 대권을…….”

“노리지 않아요.”

서량의 눈이 커졌다.

강조라도 하듯, 주서윤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는 대권을 노리지 않습니다.”

* * *

다음 날.

“어디 한번 보자.”

연무장 한편에 팔짱을 끼고 앉은 서량.

그리고 그 앞에 마동필이 묵왕검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급하게 할 필요 없어. 네가 시작해도 되겠다 싶을 때 바로 시작해.”

“예.”

잠시 눈을 감고 뭔지 모를 소릴 읊조리던 마동필이 눈을 떴다.

번쩍!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신검의 보광(寶光)을 닮았다.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금강야차마공의 경지. 무거움과 격렬함을 한데 품은 철혈의 마공이 어느새 그의 검도(劍道)에 녹아들어 냉엄하기 짝이 없는 기파로 바뀌었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동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수련에 열중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갑니다.”

파아아악!

튕겨 나가듯 신형을 옮긴 마동필이 힘차게 검을 뻗었다.

우우우웅.

중단을 노리고 찔러 들어가는 검격. 흑색 검신(劍身)에서 풍겨 나오는 박력이 실로 대단했다.

치리링!

바닥을 긁고 상단으로 치고 올라가는 묵왕검에서 눈부신 금광(金光)이 일었다. 중단의 자격(刺激)에서 하단, 그리고 상단까지 올라가는 참격(斬擊)의 이어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때부터 마동필의 멋들어진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자연스러웠지만 부드럽진 않았다. 빨랐지만 고요했고, 무겁지만 답답하진 않았다.

중간중간 절도 넘치는 위엄을 보여 주는 절정의 검도다. 검을 그리 많이 휘두르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수많은 검영(劍影)이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눈은 한 쌍이되 팔방을 보고 있었고, 팔도 분명 한 쌍이되 대여섯 개쯤 되는 듯 사방으로 휘둘러졌다. 말 그대로 삼두육비(三頭六臂)의 명왕(明王)을 보는 듯했다.

서량은 내심 깜짝 놀랐다.

‘저 새끼 저거?’

금강야차마공과 새로이 준 검법을 어느새 합치시켜 버렸다.

무공의 성취가 뛰어나서 대단한 게 아니라 마공에 검법을 섞어 넣었기에 대단한 것이다. 금강야차마공에 대한 마동필의 깨달음이 유독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언제 저렇게…… 놀랍구만.’

마동필은 검객이었다.

하지만 검객이기 전에 무인이었다. 검에 국한되었던 그의 깨달음이 이제는 무공 전반으로 확장된 것이다.

보다 더 넓게, 보다 더 깊게.

어느새 마동필은 초절정의 영역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공자님?”

“…….”

“공자님.”

“어? 아, 그래.”

“어떠셨습니까?”

서량이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대단한데? 새로운 검법을 익힌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공에 녹여 냈다니, 어지간한 노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야.”

“감사합니다.”

“네가 익히고 있는 구중마검세(九重魔劍勢)는 본교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독보적인 검법이다. 당연히 난해할 수밖에 없는데, 마공과 결합해서 강제적으로 성취를 올렸어. 굉장히 창의적인 방식이야.”

서량의 눈에 흥미가 일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지 의문이군. 대단했다. 비급을 가져다준 보람이 있어.”

마동필의 얼굴에 솔직한 기쁨이 어렸다. 서량이 자신의 무공에 이렇게까지 감탄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기대한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뒤에 출교할 생각이다.”

느닷없는 말에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출교를요?”

“그래. 제법 험한 길인지라 넌 신교에 두고 갈까 생각했어. 새로운 무공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면 안심이다. 어디를 데리고 가도 무공에 흔들림이 없겠어.”

“무슨 일로 출교를 하시는지요?”

“구해 내야 할 사람이 있거든.”

“구해 내야 할 사람이요?”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싸늘한 미소에 어린 살기, 마동필의 얼굴이 절로 굳어졌다.

“짐승들한테 잡혀 간 공주님 구출하기 대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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