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실몽당이 (4)
호마관(護魔館)은 교내 수뇌부들이 폐관 수련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장소로, 호법원에서도 가장 깊은 심처(深處)이자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는 비역(秘域)이었다.
게다가 호마관의 지하 수련장은 역대 형법당주들이 직접 관리했다.
허가받지 못한 자, 설령 호법들의 경계를 뚫어도 호마관의 미로에서 헤매다 죽으리라.
철통같은 경비와 복잡다단한 미로로 악명 높은 호마관.
그 호마관의 삼관(三館)의 문이 열렸다.
덜컹.
“음.”
문을 열고 나온 장년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랜 시간 햇빛을 보지 못해서일까. 창백한 피부와 후줄근한 차림새가 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체격 하나는 장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대단했다. 조금은 말랐으되 크고 단단한 골격은 금강석을 연상케 했고,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떡 벌어진 어깨는 완벽한 비율의 예술품을 보는 듯했다.
“여름인가.”
덥수룩한 수염 사이, 두툼한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전고(戰鼓) 소리처럼 낮은 울림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 사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공기 좋군.”
뜨겁고 습한 십만대산 특유의 여름 공기.
그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자 마기가 들끓었다.
츠츠츠츠.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마기.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일까?
파아악!
저 멀리서 십여 명의 마인들이 달려왔다.
하나같이 일류의 신법을 선보이는 자들은 당월 호마관 경계를 서는 호법 칠 조의 조원들이었다.
“누구…….”
긴장한 자세로 정체를 묻는 조원.
그 조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흡!”
“허억!”
열 명의 호법들이 그 자리에서 딱 굳어 버렸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사내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끝이 없는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내가 말했다.
“호법원의 위사들인가.”
혼잣말에 가깝게 낮은 어조였지만, 호법들의 귀에는 사내의 목소리가 천둥소리보다도 크게 들렸다.
“일 조장, 이군성에게 안내하라.”
느닷없는 하대에 서린 거역할 수 없는 위엄.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호법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호마관 안에서 나왔다면 필경 수뇌부일 터. 그럼에도 최소한의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는 게 정상이거늘 그들은 무릎부터 꿇었다.
사내에게서 풍겨 나오는 존재감에 동류(同流)의 친숙함이 가득했던 것이다.
말없이 사내를 안내하는 조원들.
뒷짐을 지고 그들을 따라가는 사내가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삼 년이로군.”
* * *
“음?”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왠지 모르게 간질간질한 이 느낌.
그가 목덜미를 긁적였다.
“초감각은 아닌데…… 이상하네.”
분명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낀 그였다. 하지만 이 묘한 느낌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는 관평의 기척을 더듬었다.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기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밀폐된 곳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건가?’
오감이든 기감이든 공기의 흐름을 타는 대상이 있어야 잡을 수 있는 법이다. 밀폐되어 기(氣)가 고이는 장소라면 극마의 감각으로도 알아내기 쉽지 않았다.
“뭐, 기다리면 되겠지.”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박하군. 홍위문, 그놈의 거처와는 달라.”
관평의 거처 내 객당은 생각보다 황량했다. 꼭 필요한 집기를 제외하곤 그 흔한 도자기 하나도 놓여 있지 않았다.
“검소한 성품이다, 이건가?”
그는 마동필의 말을 떠올렸다.
- 이공자님은 후계분들 중 유독 소박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저곳 산책하기를 즐기시며 권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인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알게 모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신다더군요.
- 자신의 사람을 무척 잘 챙겨 주는 걸로 유명합니다. 일례로 하인이나 수하들의 가족들에게까지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적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내 사람은 잘 챙기는 사람.
거처를 보니 물욕도 별로 없어 보인다. 적어도 마동필의 말만 들어 봤을 땐 나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소박하고 정 많은 성품. 하지만 그 얼음덩이한테 사람을 붙여 감시하게 했다고?’
이거 흥미롭군.
얼핏 앞뒤가 맞지 않는 듯했지만, 이해하자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평소 성품이 소박하든 정이 많든, 그것은 대권을 노리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였다. 역사를 뒤져 봐도, 넘치는 야망만큼이나 정도 넘치는 군주들이 많지 않았나.
당장 자신만 봐도 그렇다. 목적이야 어찌 됐든 차기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내 사람이라 생각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는 성격 아니던가.
“문제는 지금 당장 어떤 모습을 보여 주는가다.”
아무리 경쟁자라도 부하를 시켜 감시토록 했다. 그것도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동생이었다.
피 튀기는 후계 싸움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딱히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배 째란 식으로 대응할 일도 아니었다.
과연 관평은 어떤 식으로 나올까?
다탁에 두 발을 올려놓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 서량.
잠시 후.
‘……?’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어라?’
그가 문 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문이 아니라 문 너머의 ‘어떤 곳’이었다.
뭉클뭉클.
삽시간에 뿜어져 나오는 기도가 굉장하다. 서량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 기운, 분명 관평 그놈의 기운이었는데?’
관평의 기운이되, 조금 전에 느꼈던 기운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거대한 기운을 어떻게든 갈무리하고 있지만, 채 숨겨지지 않은 기운이 안개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넘치는 공력, 섬뜩하기 짝이 없는 마기였다.
‘게다가…….’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기질도 바뀌었어.’
객당으로 오기 전, 미세하게나마 관평의 기를 느꼈던 그였다.
그때 느낀 관평의 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이었다. 빙궁의 소궁주 여강휘와는 종류가 다른 차가움, 말하자면 서리 낀 안개 같다고나 할까. 어딘지 모르게 음산함이 감도는 음공(陰功)이었다.
지금은 그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힘의 크기는 압도적으로 증대되었으며, 음과 양이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균형을 이룬 마기. 그 마기는 사이하고 요악하여 절로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할 듯했다.
“시파,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훅.
서량의 눈이 빛났다.
한참 멀리 떨어져 있다 싶더니만 어느새 가까워진 존재감.
발군의 신법이었다. 주서윤은 물론 마동필이나 소연심보다도 빨랐다.
슥.
다탁에서 발을 내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문밖에서 친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그러시라.”
드르륵.
문이 열리고 관평이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둘이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서량은 관평의 외양에 신경 쓰지 않았다.
스르륵. 스르륵.
줄곧 흘러넘치던 기운이 빠른 속도로 갈무리된다. 마주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력을 숨긴 건 아니로군. 뭔가 술수를 부렸어. 양기가 승하는 영약이라도 취한 모양인데…….’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고작 반 시진 만에 온전히 자신의 기운으로 갈무리하는 방법이 있어?’
극마에 이른 서량이라면 가능했다.
존재(人)와 개념(武)마저 초월해 진정한 의미의 무신(武神)이 되는 극마, 혹은 조화지경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氣)에 대해 통달해야 하고, 통달한 깨달음을 몸으로 녹여 내야만 하니까.
한데 관평은 극마에 오르지도 않은 실력으로 그걸 해낸 것이다.
‘게다가 본래의 음기(陰氣)와 균형까지 맞춰 가면서.’
그는 자신을 제환이라 소개한 남자를 떠올렸다.
음기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양기 덩어리를 숨긴 자. 그 크기가 초절정고수의 그것에 육박함에도 주서윤과 엇비슷한 내력만을 쓸 수 있었다.
‘냄새가 나는군.’
관평이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
“오랜만이구나. 그때 대전회의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가?”
“그렇지.”
아랫사람의 말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관평은 굳이 서량의 말투와 예의를 책잡지 않았다.
“일단은 앉자꾸나.”
“그러자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고 앉았다.
“차 한잔하겠느냐?”
“좋을 대로.”
관평이 미소를 지었다.
평소 정이 많은 성품이란 소리는 들어도 웃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은 없던 그가 오늘 유독 많이 웃는다.
그 웃음을 든든하게 받쳐 주는 것은 바로 자신감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이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자신감.
“보아하니 차를 별로 즐기지 않는 듯하구나. 하면 술이라도…….”
“그 전에.”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음?”
“분명 너, 벽을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준이었어. 강호에서 흔히들 말하는 초절정고수 수준이랄까.”
“……!”
“한데 이 반 시진 사이에 품은 공력이 두 배 이상 늘었군. 어설픈 기운이 아니라 완전히 네 것으로 녹인 기운이야.”
관평의 얼굴이 굳었다.
서량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반 시진 동안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도 잡쉈나?”
놀랍다. 설마하니 셋째가 자신의 힘을 고스란히 꿰뚫어 볼 줄이야.
“네 기감이 놀랍구나.”
“자주 듣는 말이지.”
“신교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무공들이 많다. 차후 더 넓은 세상을 겪다 보면 너도 그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무림 천하, 온갖 무공들을 접해 본 그였다. 정파 명문의 무공은 물론 사파의 잡학, 신교의 마공까지 가짓수만 천 단위다. 놈은 그런 자신에게 저따위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뭐, 아무렴 어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무슨 말이냐?”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는 알지?”
관평이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부족한 수하 때문이겠지.”
“얘기가 빠르겠군. 그럼…….”
“잘못 찾아왔다.”
“엥?”
“서윤이가 찾아왔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넌 아니야. 내가 보는 대상은 네가 아니란 말이다.”
“댁 수하가 줄행랑치면서 독탄까지 터트렸어. 덕분에 내 호위무사가 낭패를 당할 뻔했지. 이만하면 우리도 충분히 불편한 관계로 엮였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마.”
사과.
진중한 성품이라도 동생에게 선뜻 사과하기란 쉽지 않다. 마도 무림의 정점이라는 천마신교의 마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내 목표는 네가 아니다.”
“물론 그렇겠지.”
“그러니 그리 날 세울 것 없다. 목이나 좀 축이고…….”
“네 목표는 대권이잖아.”
“……?!”
“그러니까 다섯째부터 건드려 보는 거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진짜로 다섯째에게 마음이 있는 거야?”
관평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참고 들어 주려 했지만 실로 가관이구나. 예의를 차리라고 말하진 않겠다만, 굳이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겠느냐?”
“원인 제공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대체 내가 무슨…….”
“그리고, 이유가 없다 한들 불편해지면 안 되는 건가?”
“뭐?”
서량의 얼굴이 냉랭해졌다.
“네가 다섯째를 공략하는 것처럼, 나 역시 너를 공략할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런가?”
관평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구구절절 긴말은 하지 않겠다.”
“…….”
“네가 날 감당할 수 있겠느냐?”
서량이 피식 웃었다.
“감각이 혼란스럽지?”
“뭐?”
“무슨 수로 그만한 힘을 네 것으로 만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내력은 완성되었어도 마공은 완성되지 않았어. 한참 감각이 흐트러질 만도 하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는 거지.”
위이이잉.
서량의 눈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순간 관평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상대의 무시무시한 마안(魔眼)에 등골이 오싹해진 것이다.
“감당이라 했나?”
“……!”
“내, 지금 이 자리에서의 네 알량한 힘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