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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71화 (171/774)

171화. 답이 없는 문제란 없다 (1)

후욱.

낮게 깔려 들어오는 기도가 실로 인상적이다. 피부를 곤두서게 하는 묵직한 마기의 밀도는 자신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걸물이로구만.’

자신이야 이전 생에서 이루었던 경지가 있지만, 상대는 그런 것이 없다. 삼십 대 중후반에 극마지경에 올랐다면 차기 천하제일인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서량.

하지만 진관용의 놀라움은 서량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놀랍구나. 나 역시 제법 고생했다고 생각했거늘, 대체 어떤 아수라장을 겪었기에 벌써 극마에 오른 게냐.”

아수라장.

얼마나 노력했느냐도, 그만한 재능이 있었냐는 물음도 아니다.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라는 걸 진관용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서량의 대답은 짧고 투박했다.

진관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경지라는 건 안다만 그래도 놀라움이 쉬이 사라지진 않는군.”

말은 그리하지만 일말의 동요도 엿보이지 않는다. 서량처럼 진관용 역시 지고한 경지에 올라섰기에 어지간한 일로는 심동(心動)을 겪지 않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만하거라. 간만에 사형제들끼리 차나 한잔하자꾸나.”

“넷이 해.”

“음?”

서량이 턱으로 진관용의 뒤를 가리켰다.

“넷이 하라고.”

“정녕 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겠느냐?”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만, 여기까지다. 오지랖 넓은 참견꾼이 훼방 놓을 자리가 아니야.”

“…….”

“가서 볼일들 봐.”

진관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셋째가 극마에 오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저 언사 자체도 놀라운 것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셋째는 자신과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자신감인가.’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심을 가졌대도 이해할 만한 경지다.

진관용이 다시 입을 열려던 때, 서량이 관평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흐름이 끊어져서 마냥 붙기는 뭐하군. 하던 거 계속하지. 어떻게 할 거야?”

관평의 눈가가 희미하게 떨렸다.

단둘이 있을 때와 사형제들이 보고 있을 때는 다르다.

오히려 동생들만 있었다면 부드럽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삼 년 만에 폐관에서 나온 큰형이 있었다.

후보 중 가장 의식하던 사람.

동생들이 자신보다 강해져도 놀라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신경이 쓰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큰형, 진관용이 보는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관평의 표정이 대번에 싸늘해졌다.

“지금 내게 대권을 포기하라 협박하는 것이렷다.”

느닷없이 달라진 반응.

진관용을 제외한 이들은 깜짝 놀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알았지만 대놓고 저런 얘기가 나온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안하다만 내가 대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우우웅.

관평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

“날 죽이는 것이지.”

“그런가?”

“그렇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무공을 소실해도, 난 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권을 노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그리고 우리 사형제들 모두의 운명이다.”

관평이 진관용을 바라보았다.

진관용을 보는 그의 눈빛은 무척이나 험악했다.

“고로, 사형제들끼리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는 행위 따윈 필요가 없지.”

과거 대관회의 때, 다 같이 모여 차라도 한잔하겠느냔 사람이 관평이었다. 바로 얼마 전, 주서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 사람 역시 관평이었다.

그런 관평이 지금은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만큼 진관용을 의식한다는 뜻이리라.

서량이 씨익 웃었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이전과는 다르게 말이야.”

“목숨을 건 싸움을 원한다면, 좋다. 너와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싸움이 벌어진 이상 적당히 할 남자가 아니야, 나는. 적어도 너의 사지 중 하나는 날아갈 것이다.”

거칠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언사였다.

서량의 화답은 압권이었다.

“내 손톱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너의 관 앞에서 눈물 한 방울 정돈 흘려 주마.”

사아아악!

관평의 몸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이전에 풍기던 마기보다 보다 한층 위험천만한 기운이었다.

마치 이것이 내 진짜 모습이라는 듯,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관평.

서량의 얼굴에 흥미가 일고, 진관용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애들까지 휩쓸려선 안 되겠지.”

우두둑.

가볍게 꿈틀거리는 서량의 손가락에 치명적인 살의가 깃들었다.

관평의 얼굴에 긴장의 기색이 차올랐다.

서량이 발끝이 땅을 박차는 순간.

파아아아앙!

관평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온다, 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서량은 자신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뻗어 내는 손이 목젖에 거의 도달했다.

실로 번개처럼 빠른 출수였다.

‘피해야…….’

초절정고수의 반응 속도로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회피, 방어 모두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하게 생긴 것이다.

극마에 이른 고수가 마음먹고 움직이면 이렇게나 빠른 것일까?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지 않은가!

그때였다.

파아악!

어느새 관평 옆에 나타난 진관용이 서량의 팔목을 잡았다.

“그만하거라.”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빠르군.”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가 더 빠르구나.”

“거의 차이가 없지.”

“아주 조금의 차이가 생사를 가르는 법. 정말이지 너의 성장세에 감탄을 아니 할 수가 없구나.”

“그래서, 왜 또 참견이지?”

“애들이 보는 앞이다. 살수를 삼가거라.”

서량은 주서윤과 종리영(鍾里榮), 채여민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진관용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휘이이이잉!!

뒤이어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서량과 진관용, 관평의 의복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진관용의 눈이 가늘어졌다.

우우우웅!

굴강해 보이는 그의 손에서 먹빛 마기가 일렁였다.

화르르르!

서량의 팔에서 피처럼 진한 마기가 일었다.

쿠구궁!

객당이 크게 흔들렸다.

서량이 관평과 기파로 부딪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흔들림이었다. 체격도 비슷하고 이룬 경지도 비슷한 두 절대고수의 힘 싸움에 건물을 넘어 땅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쿠르르릉!

구멍 뚫린 벽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관평을 위시한 제자들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작정하고 힘을 발산한 두 마왕의 힘은 그들의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관용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정녕 여기서 끝을 보자는 것이냐?”

“그럴 생각이었지. 그럴 생각이었는데…….”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요것 봐라?’

충격으로 물든 관평의 얼굴, 그리고 고요한 분노가 서린 진관용의 눈빛을 보며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네 말도 맞아. 애들도 보고 있는데 더 이상 추태를 부려서는 안 되겠지.”

후우우웅.

영역을 뒤흔들었던 절대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한순간에 거대한 마기를 방출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마기를 찰나지간에 갈무리하는 것 역시 굉장한 일이다. 적어도 초절정고수인 관평은 흉내 낼 수 없는 진기 운용이었다.

서량이 팔목을 빙빙 돌렸다.

“악력 좋구만.”

진관용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큼직한 그의 손이 미약하게 부어 있었다.

“마기의 운용 방식이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자칫하다간 한쪽 팔을 못 쓰게 될 뻔했다.”

피식 웃던 서량이 관평을 바라보았다.

관평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차원이 다른 고수라도 팔 하나는 앗아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한 합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충격은 굉장했다. 지금껏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숱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그의 노력과 독심이 송두리째 의미를 잃는 순간이었다.

“자리가 좀 지저분해졌군. 운 좋은 줄 알아라.”

서량답지 않은 말이었다. 어떤 자리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선 터럭만큼의 눈치도 보지 않는 그였다.

서량이 등을 돌렸다.

뚜벅뚜벅 걸어간 그가 주서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뿌리를 뽑아 버리려 했는데, 지금은 안 되겠다, 야.”

주서윤은 말이 없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두 눈동자만이 그녀의 심경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서량의 시선이 종리영에게 닿았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체격이 무척 좋았다.

“역시 핏줄은 못 속여.”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종리영은 수준을 달리하는 무신의 경지를 보곤 얼이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채여민.

“오라버니.”

“오랜만이구나.”

“괜찮으세요?”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주변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서량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채여민은 그저 서량의 기분만을 살피고 있었다.

서량이 채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다. 왔으면 한번 찾아갔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보게 됐구나.”

“아니에요, 오라버니.”

“조만간 한번 찾아가마. 언니 오빠들이랑 담소 잘 나눠라.”

“……네에.”

대문으로 향하는 서량.

문을 열기 전, 그가 뒤를 돌아 말했다.

“관평.”

화아아악!

서량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뿜어졌다.

“‘그렇게’까지 해서 강해져 봤자 대권을 거머쥘 순 없을 거다.”

“……!”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때문에 희생될 마인들을 위해 말하는데, 더 이상은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서량이 대문을 나섰다.

* * *

“으, 아파라.”

관평의 거처에서 나온 서량이 연신 팔목을 주물렀다.

“새끼, 힘이 아주 장사구만. 나도 한 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근력에서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다만 서량은 근력과 기공의 분배를 균형 있게 이루었다면, 진관용은 오로지 기(氣)를 강하게 연마하는 데에 집중한 것이 다를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정통 마공으로 이룬 진정한 극마의 경지일 것이다. 서량이 극마를 이룬 것은 순수하게 마공을 이해해서가 아닌, 마공의 경계를 허물고 여러 무리(武理)를 다각도로 분석해 녹여 낸 덕분이니까.

“그나저나 그놈 대단한데? 벌써 극마에 오르다니. 게다가 그 속도까지 따라잡았어?”

실상 극마에 올랐다고 해서 초절정고수와의 반응 속도가 크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관평이 서량의 공격에 반응조차 못 한 것은 서량의 마기가 관평의 감각을 무자비하게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맹수와 덩치 큰 초식 동물의 싸움과 같았다. 맹수도 초식 동물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당할 수 있지만, 맹수의 살기와 포효로 감각이 흐트러진 초식 동물은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누가 더 거대한 기(氣)를 섬세하게 다루느냐, 얼마나 독창적으로 다루느냐, 그리고 얼마나 더 완벽하게 조율하느냐.

무공의 경지란 바로 기(氣)의 본질을 얼마나 파헤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놀라운 거지.’

관평이 반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별로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진관용이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은 것은 상당히 놀라웠다. 서량의 마기가 관평을 어떤 식으로 억압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그리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진관용, 신교의 대공자라…….”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거 누르려면 힘 좀 들겠구만.”

비록 목적한 바를 이루진 못했지만, 어쨌거나 충분히 만족스러운 방문이었다.

‘대충 할 일도 다 끝났으니까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지.’

거처로 돌아온 서량이 마동필을 불렀다.

“동필아, 준비해라.”

“예?”

서량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우두둑 소리가 날 때마다 서량의 표정이 상쾌해졌다.

“후딱 해치우고 들어와서 주변 정리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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