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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72화 (172/774)

172화. 답이 없는 문제란 없다 (2)

“…….”

“…….”

마주 앉은 두 남자.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차갑게 식은 차는 본연의 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혈화마공(血禍魔功)을 이신합마(二身合魔)의 형태로 만들었더구나.”

진관용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저가 없었다.

관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알아보셨군요.”

“알다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무공을 어찌 못 알아보겠느냐.”

진관용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을 잃은 찻물은 텁텁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건 불완전한 마공이었다. 그것을 네가 완성한 것이냐?”

“보시다시피.”

진관용의 눈이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그 마공에는 결점이 있다. 그것도 심각한 결점이.”

“그 결점을 메우기 위해 노력깨나 했지요.”

“어떻게 바로잡았느냐.”

“알려 드릴 것 같습니까?”

“…….”

“극마에 어찌 오르셨습니까? 알려 주십시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관평이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뒤틀어진 미소였다.

“이신합마공도 그렇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지요.”

“구결을 말해 보아라.”

“내가 왜 그래야 합니까?”

“…….”

“정히 그걸 원하신다면 이 재능 없는 동생을 극마의 경지까지 끌어올려 주십시오. 그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줄곧 변화가 없던 진관용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내 앞에서 생떼를 부리는 것이냐?”

“안 되는 것입니까?”

“…….”

“형님은 날 배신했습니다.”

“…….”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호마관이라는 굴로 쏙 들어가 버리셨지요. 그 덕에 얻은 경지, 달콤하더이까?”

푸스스스.

진관용이 쥔 찻잔이 그대로 가루가 되었다. 그 안에 찰랑이던 찻물도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

“못 본 새에 꼬일 대로 꼬였구나.”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형님 자유입니다. 나는 형님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이거 하나는 알고 계십시오.”

“…….”

“셋째는 주화입마로 무공까지 다 잃었었습니다.”

“……!”

“그게 불과 이 년 전이지요. 그리고 지금, 녀석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극마지경에 올랐습니다.”

진관용의 눈이 희미하게 떨려 왔다. 삼 년 동안의 폐관 수련으로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셋째는 천마신교 역사상, 아니 전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괴물임이 분명했다.

“형님처럼 편법을 쓴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지금의 형님은 셋째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분노와 조롱 가운데 자조의 기색 또한 묻어 나온다. 셋째의 한 수에 그 역시 한순간이나마 절망해 버렸으니까.

관평이 자신의 차를 그대로 넘겨 버렸다.

“물론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셋째도, 그리고 형님도 모조리 내가 잡아먹어 차기 대권을…….”

“알려 주지.”

“……?”

“극마에 오르는 방법을 알려 주마.”

“뭐, 뭐라고요?!”

진관용의 눈이 빛났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안광은 먹구름처럼 칙칙하기만 했다.

“다만 너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 * *

“며칠밖에 안 지났는데 한 달은 된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여강휘의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수련이라도 하고 있지 그랬나.”

“그거야 항상 열심히 하고 있지요. 그래도 마음이 초조하니 손에 잘 잡히진 않더라고요.”

“집중력 부족이야. 노력해.”

“조언 감사합니다.”

여강휘가 힐끔 옆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내 호위무사 겸 친구.”

마동필이 화들짝 놀랐다.

“감당키 어려운 말씀이십니다, 공자님.”

서량이 콧방귀를 뀌었다.

“보다시피 재미는 없다.”

“골려 주는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요?”

“뭘 아는군.”

두 사람이 낄낄거리자 마동필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서, 이제 슬슬 출발하려 하십니까?”

“그래.”

여강휘의 얼굴에 한 줄기 긴장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방법은요?”

“별거 있나. 과감하게 부딪치는 게 내 방식이야. 괜히 이것저것 재면서 가고 싶진 않아.”

“…….”

“왜?”

“그 말인즉, 야수궁의 대문을 직접 두들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정말 그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 지껄이랴?”

“너무 무모하지 않겠습니까?”

“몰래 침투해서 납치당한 네 여동생만 쏙 빼 오는 게 더 무모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

“야수궁은 새외사궁 중 가장 난폭한 집단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난폭해도 천마신교의 삼공자가 왔는데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겠어?”

“당연히 그러진 못하겠지요. 설령 적의를 갖고 있다 해도요.”

“그렇지.”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삼공자는 분명 대단한 강자지만 야수궁 전체와 싸울 수는 없어요.”

“당연하지. 교주님이 아닌 이상 그건 불가능해.”

“……교주님께서도 그게 가능하실지 궁금합니다만, 일단 제쳐 두지요. 만약 놈들이 수작을 부린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선 제 몫 이상을 하는 법이야.”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삼공자라도 야수궁에 들어가면 결코 무사…….”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예?”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 개는 나를 말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야수궁은 운남(雲南)에 있잖아.”

“그렇습니다.”

“왜 운남이 본교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순간 여강휘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관리가 심하게 들어가진 않지만 그곳 역시 우리의 영역이다. 자잘한 곳에서 몇몇 문파들이 설쳐 대고는 있지만 감히 자신들의 권역이라 부르짖진 못하지. 왜? 우리가 버티고 있으니까.”

“…….”

“야수궁이 운남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는 들었다. 뭐, 우리도 애뇌산 자락이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 여태 그 잡다한 것들이 활개를 치는 거겠지만.”

서량이 싸늘하게 웃었다.

“이 기회에 땅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는 것도 좋겠지.”

여강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무섭구나.’

교만한 위정자의 이유 없는 자신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삼공자라는 사람은 진심으로 운남을 천마신교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여 방해하는 놈들이 있으면 직접 밀어 버릴 의사도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소수의 인원으로 가기에는 너무…….”

“누가 소수래?”

“예? 하면 교주님께서 전투 부대라도 동원해 주신 겁니까?”

“아니.”

“하면 교내의 고수들이라도?”

서량이 피식 웃었다.

“걱정이 많은 거야 알고 있지만 더 이상 주절대고 싶진 않아. 어떻게든 네 여동생만 구출해 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기는 합니다만.”

“꼭 싸움이 벌어진다고만 생각하진 마라. 걸어 오는 싸움이라면 몰라도, 이쪽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성격은 아니야.”

잠자코 있던 마동필이 헛기침을 했다.

서량이 도끼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여강휘가 피식 웃었다.

“아닌가 본데요?”

“오해야.”

“어찌 되었든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으니 믿어는 보겠습니다.”

“그러든지.”

가만히 서량을 주시하던 여강휘가 별안간 표정을 굳혔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여유로웠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 놀라운 변화에 마동필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긴장했다.

여강휘가 입을 열었다.

“삼공자님.”

“말해.”

“저희는 동맹을 맺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제 여동생이 구출되지 않는 한, 이 동맹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더하여 구출에는 생존(生存)이라는 개념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하는 거냐.”

“만일 삼공자님의 무리한 언행으로 제 여동생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때는 동맹의 파기로 끝나지만은 않을 겁니다. 신교는 또 하나의 대적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사라라라락.

댓가지 부딪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마동필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씀이 심하…….”

“그만.”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어. 내가 너의 여동생을 구하려는 이유는 날 위해서다. 안전하게 구출해서 너에게 신병을 인도할 테니, 나중에 내게 무엇을 해 줘야 할지나 고민해 봐.”

여강휘가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한다.”

“하면 지금 당장 출발하시는 겁니까?”

“그러려고 한다. 너도 어서 준비해.”

“알겠……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량이 눈을 끔뻑였다.

“뭔 소리냐니? 넌 안 가려고?”

“저, 저도 갑니까?”

“안 가고 싶냐, 그럼? 여동생이 납치됐잖아? 누구보다 앞장서고 싶을 텐데?”

“무,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여강휘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귀교의 특별 호위 대상자가 아닙니까? 삼공자와 함께 출교해도 될 위치가…….”

“이건 또 재미있는 말이로군.”

서량이 대숲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은은한 마기가 일었다.

“이만 나오십시오.”

스르륵.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양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포권을 취했다.

“양정이오. 삼공자를 뵙소.”

여느 마인들처럼 부복하여 존경의 염을 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담백한 인사에는 충분한 예의가 깃들어 있었다.

서량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

“서량입니다. 전대의 선배님을 뵙습니다.”

“선배님이라니, 당치도 않소. 그저 양 무사라고 불러 주시오.”

“좋습니다. 쓸데없는 인사말은 생략하지요. 특별 호위 대상자가 본교를 나가면 안 되는 겁니까?”

양정의 얼굴에 난감함이 어렸다.

“삼공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불가하오.”

“그렇군요.”

여강휘가 그것 보라는 듯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덧붙였다.

“그럼 이 녀석이 특별 호위 대상자로서의 위치를 포기해 버리면 되는 것이로군요.”

순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량이 물었다.

“어떻게 할래? 여기서 내가 네 여동생을 구하러 올 때까지 손가락 빨면서 기다리고 있을래? 아니면 나와 함께 가서…….”

“포기하겠습니다.”

여강휘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포기합니다. 특별 호위 대상자라는 위치를 이 시간부로 포기하겠습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옳지.”

양정이 다급하게 말했다.

“소궁주! 그건 대상자가 멋대로 포기하고 말고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외다.”

여강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선배님. 신교가 언제부터 마인이 아닌 자를 멋대로 통제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

“저는 외부에서 온 손님입니다. 손님이 나가겠다는데 가지 말라고 강제하는 집주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만…….”

“정히 그게 문제가 된다면 제가 직접 교주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되겠지요?”

“허어.”

양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특별 호위 대상자를 호위해 본 적이 서너 번쯤 있었지만, 그중 누구도 저런 식으로 행동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중간에서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양정에게 서량이 말했다.

“군사부에 출교 허가서를 받으러 갈 겸, 총군사와 대호법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거참.”

양정이 고개를 저었다.

“호위 대상자가 호위를 포기하겠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명령을 받은 우리의 처지도 있으니, 삼공자의 말대로 처리해 준다면 감사하겠소.”

“불편하게 만들진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정말 괜찮겠소? 교주님께도 말씀을 올려야 할 텐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제가 벌인 일에 책임만 지면 됩니다. 결과만 좋으면 교주님께서는 별말씀 안 하실 겁니다.”

“…….”

“그간 이 친구를 호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량이 몸을 돌렸다.

“가자, 고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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