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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75화 (175/774)

175화. 답이 없는 문제란 없다 (5)

휘파람을 불며 매듭을 짓는 서량의 얼굴은 그런대로 행복해 보였다.

“…….”

“…….”

너무 놀라서 표정이 굳어 버린 여강휘는 양손으로 제 얼굴을 주물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놀라움이 수그러지진 않았다.

어리벙벙하던 그가 마동필을 돌아보았다.

마동필 역시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지만 여강휘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쁘지 않은 방법이네.’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마 호위.”

“예?”

“……저래도 괜찮습니까?”

말수 적은 호위무사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량보다는 상식적이지 않겠느냔 생각이었다.

마동필이 헛기침을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한둘도 아니고, 야수궁의 후계자들을 모조리 납치해 버리다니요?!”

“……야수궁주가 어떤 후계자를 가장 총애하는지 모르니까요.”

이게 말이야, 방귀야?

여강휘가 재빨리 서량에게 다가갔다.

“삼공자.”

“엉? 왜?”

“어서, 어서 이들을 풀어 주시죠.”

서량이 인상을 썼다.

“잡은 물고기를 아깝게 왜 풀어 줘?”

물고기란다. 여강휘는 기절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야수궁과 전쟁을 벌이실 생각입니까?!”

“전쟁 안 벌어져. 후계자들이 몽땅 우리 손에 잡혀 있는데 지들이라고 별수 있겠어?”

“별수 있지요! 저러다가 앞뒤 안 가리고 칼을 뽑기라도 하면……!”

“네 여동생도 작살이 나겠지.”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그걸 삼공자가 어떻게 압니까!”

서량이 히죽 웃었다.

“야수궁주가 바보냐? 고작 적의 혈육일 뿐인 애새끼 하나에 자기 후계들을 몽땅 버리게?”

“……!”

“차라리 네가 잡혀 있다면 몇 번 으르렁댈 수야 있겠지. 후계자 대 후계자의 구도니까. 하지만 걔들이 잡고 있는 건 그저 빙궁주의 자식이지 후계자가 아니잖아?”

꾸욱!

정신을 잃은 여섯 남녀가 움찔거렸다. 밧줄을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세게 묶었기 때문이다.

“야수궁주 나이가 칠순은 되었다더만. 무공이 워낙 강하니 백수야 누리겠지만 지금 그 나이에 제자를 다시 받아서 키워? 그러고 싶겠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강휘는 여전히 불안했다. 혈육이 납치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삼공자는 야수궁주의 나이를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성정을 논하고 싶군요. 혹시라도 그가 돌발 행동을 하면 그때부터는…….”

“파국이지.”

“…….”

“그 파국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놈은 절대 무리수를 둘 수 없어.”

이렇게까지 말하니 여강휘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불안함과는 별개로 서량의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손을 탁탁 털어 낸 서량이 기지개를 켰다.

“뭐,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야수궁주는 허튼짓 못 해.”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알게 될 거다.”

잠시 후, 일행은 다시 마차를 타고 달렸다.

마차 위에 꽁꽁 묶인 여섯 남녀가 짐짝처럼 실려 있었다. 마차의 무게가 늘어난 만큼 속도는 느려졌지만,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저리 지붕에 매어 놔도 되겠습니까?”

“걱정 마라. 단전 봉인에 혼혈까지 짚었으니 문제 일으킬 일 없어. 그냥 궤짝이라고 생각해.”

사람을 궤짝이라고 생각하란다. 너무 당연한 듯 말해서 여강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정말이지 감당키 힘든 사람이구나.’

서량과 함께 하는 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경천동지의 무위를 뽐낸 것도 아니요, 귀신같은 책략으로 적들의 허를 찌르겠다 외친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식에 가까운데 막상 설명을 들어 보면 반박을 할 수가 없다.

‘평범한 사람과는 사고의 흐름이 달라. 상식과는 한참 동떨어졌다. 그런데도 일 처리엔 막힘이 없으니 참으로 신기하군.’

어쩌면 이 사람의 가장 무서운 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공도 신분도 아닌, 상식을 파괴하는 과격한 지혜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창가를 바라보던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공자님.”

“엉?”

“혹, 저희가 지금 애뇌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마동필은 담담하게 넘어갔지만 여강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애뇌산으로 향한다니요? 야수궁이 아니라요?”

서량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야수궁엘 왜 가냐.”

“아니, 분명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야수궁으로 향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한데 왜?”

“후계자들을 몽땅 사로잡은 지금 야수궁으로 가면 어떻게 하라고.”

야수궁주가 섣부른 짓 못 한다고 말한 지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았으면서!

“불러낼 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불러내다니요? 야수궁주를요?”

“거기에 네 여동생까지.”

“……!”

“후계자들을 납치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쪽이 훨씬 강한 패를 들고 있는데 왜 위험을 감수하고 거기까지 들어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되냐? 목줄은 우리가 틀어쥐고 있잖아.”

“아…….”

“이럴 때는 약세를 보이면 안 되지. 그런 놈들을 상대할 때는 더더욱.”

따귀를 맞으면 칼로 갚아 준다. 강수(强手)에는 초강수로 대응하는 서량식의 문제 해결법이었다.

역시 세상에 답 없는 문제는 없다.

“알아서 대가리를 조아리게 만들려면 정신없이 몰아붙여야 해. 그게 짐승 흉내나 내는 머저리들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지.

* * *

“……!”

천호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사실인가?”

“…….”

“사실이냐고 묻지 않는가!”

높은 음색의 목소리가 마치 짐승의 포효처럼 들렸다.

뇌응의 수장, 야극(夜剋)이 부들부들 떨었다. 빙궁의 소궁주가 어디로 증발했는지 알아보던 찰나에 받은 이 서신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럴 확률이…….”

구 할 이상이라 말하려던 야극은 침을 삼켰다. 분노한 천호에게 확신 없는 답변을 했다가는 그대로 머리통이 날아갈 터였다.

“사실입니다.”

콰앙!

분노 섞인 주먹질에 땅이 움푹 파였다.

“은표(隱豹)를 출격시켜라! 당장 놈들을 찾아 죽이라고 해!”

은표의 지파는 표범을 신봉하는 이들로 은밀한 살수(殺手)에 능했다.

볼 것도 없다는 듯 외치는 천호를 보며 야극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구, 궁주님.”

“당장 움직이지 못하겠는가!”

야극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지만 궁주의 이 명령에 따를 수는 없었다.

아들이 죽을 것이다.

“일단은…… 진정을 하시지요.”

크르르릉.

천호의 뒤에서 거대한 짐승이 몸을 일으켰다.

마치 집채만 한 바위가 움직이는 듯하다. 한 쌍의 붉은 안광을 토해 내며 일어난 범은 대호(大虎)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었다.

쿵. 쿵.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대전이 울린다.

어지간한 곰보다도 훨씬 큰 덩치에, 유독 도드라진 송곳니가 턱 밑까지 내려와 있다. 선명하게 드러난 앞다리 근육의 움직임은 산맥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 무게가 천 근은 됨직했다. 오백 근만 나가도 흔치 않은 대호라 불리는 걸 생각하면 숫제 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극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호왕(虎王)!’

야수궁주 천호가 키우는 마물.

수백 년간 발전을 거듭해 온 야수궁의 술법이 집대성된 괴물이 바로 호왕이었다. 절정고수의 창칼에도 긁힌 상처 하나 나지 않고, 덩치가 저리 큰데도 말보다 빠르고 체력도 좋다.

그리고 저 살기.

번쩍! 번쩍!

붉은 안광에 서린 흉악한 살기가 압권이었다. 한낱 짐승의 살기인데도 야극은 숨도 못 쉴 것 같은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다시 한번 말해 보게.”

분노 가득한 천호의 음성에 호왕의 살기도 한층 지독해졌다.

“내가 직접 키운 제자들이 이름 모를 놈에게 잡혀 있어! 그런데도 참으라고?!”

“궁주님!”

“그중 하나는 네놈의 아들이 아니더냐!!”

쿠르릉!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대전이 뒤흔들렸다.

야극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적이 누구인지,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섣불리 움직였다간 인질들의 목숨이…….”

콰앙!

“컥!”

번개처럼 움직인 천호가 야극의 머리를 잡아채 땅에 처박았다. 야극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쥘 정도로 크고 우악스러운 손이었다.

“……입 닥쳐라.”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범의 울음소리 같았다.

“네가 감히 내 말에 토를 달아? 주제도 모르고 나불대는 그 주둥이를 뭉개 주랴?”

오싹!

머리통이 깨진 고통보다 귓가로 전해지는 살기가 백배는 더 충격적이다.

하지만 야극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 것도 두렵지만 이대로 가다간 아들을 시작으로 야수궁의 후계자들이 모조리 죽을 수도 있다.

그리되면 궁 안에서도 내전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저런 꼴을 당하곤 있지만, 현 궁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그는 난장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때였다.

“궁주님!”

“무슨 일이냐!”

급하게 대전으로 들어온 자는 천호만큼이나 덩치가 큰 초로의 사내였다. 바로 패웅의 지파를 다스리는 흑웅(黑熊)이었다.

“하오문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한데……!”

“한데 뭐!”

흑웅이 조심스럽게 서신을 내밀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경쟁자를 보았음에도 기뻐할 수가 없었다.

스륵.

호왕이 흑웅의 손에서 서신을 물었다. 거대한 이빨 사이에 끼었음에도 서신은 찢어지지 않았다.

호왕에게 서신을 전해 받은 천호가 그것을 읽어 내렸다.

“또 무슨 내용이기에…… 헉!”

천호의 눈이 흔들렸다.

“이, 이것이 사실이냐?”

후계자들이 납치를 당했다는 서신을 봤을 때와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흑웅이 침을 삼켰다.

“사실입니다. 하오문뿐이 아니라 청효(靑梟) 측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천호의 입이 경악으로 떡 벌어졌다.

“……마교 놈들이 대관절 왜?!”

서신에는 마교의 전투 부대인 광마대(狂魔隊)와 진마대(眞魔隊), 그리고 백팔마장 중 세 명이 애뇌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 마교 놈들이 움직여? 애초에 운남에 진을 치고 있었던 건가?’

마교 정도 되는 거대 방파가 작정하고 부대를 운용하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시국도 시국이지만, 후계자들이 납치를 당한 와중에 마교의 부대도 움직이고 있단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순간 천호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랬군.”

“……예?”

“북왕의 자식 놈이 어디로 사라졌나 싶었거늘, 마교에 빌붙은 것이었어!”

콰앙!

거세게 발을 구른 천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 수치를 모르는 놈! 손을 잡을 데가 없어서 마교도들과 연수를 했단 말인가!”

의천맹과 연수한 그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야수궁과 천마신교 간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지사 때문이었다.

수백 년 전, 애뇌산에 똬리를 틀었던 야수궁은 천마신교의 압도적인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이곳까지 쫓겨났다. 그들로선 당연히 천마신교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쿨럭! 궁주님.”

천호가 야극을 내려다보았다.

야극이 피를 줄줄 흘리며 말했다.

“어쩌면 후계자들을 납치한 것도 마교 측의 소행일 수 있습니다.”

“……!”

“게다가 마교의 전투 부대까지 애뇌산으로 이동 중이라면…… 당가(唐家) 쪽과의 일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

“그쪽 인사와 마주치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입술을 질겅대던 천호가 호흡을 정리했다.

“계집년을 데려와라.”

콰앙!

장력으로 대전의 문을 날려 버린 천호가 호왕과 함께 움직였다.

“놈들이 요구한 대로 내가 직접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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