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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78화 (178/774)

178화. 최고의 해답 (3)

“삼공자 말대로라면 슬슬 당가도 올 때가 되었군요.”

“그렇습니다.”

북쪽을 바라보는 여강휘의 얼굴은 왠지 모를 답답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동필이 담담하게 물었다.

“답답하십니까?”

“아니라고 말할 순 없군요.”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서량의 마기와 이질적인 기파가 미약하게나마 느껴지고 있었다. 필시 지금쯤 야수궁주와 거래 중일 것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삼공자 혼자 분투하고 있다. 그 사실이 여강휘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삼공자를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적어도 분란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저보다 훨씬 낫다는 걸 압니다.”

“그렇…….”

“하지만 그곳에 제가 없군요.”

마동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혈육을 구출해야 하는 곳에 자신은 없고 제삼자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심사가 어지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삼공자는 오직 제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만 움직인 게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할 생각이었지요.”

“…….”

“섭섭하진 않습니다. 계약을 위반한 것도 아니지요. 다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마동필이 애써 그를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자님께서 잘 처리하실 겁니다.”

여강휘가 마동필을 힐끔거렸다.

“신기하군요.”

“예?”

“물론 마 호위는 삼공자의 측근이니 그를 신뢰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가끔 보면, 삼공자를 향한 마 호위의 신뢰는 신앙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은 듯합니다.”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마동필은 개의치 않았다.

“새 삶을 찾아 주신 분이니까요.”

“새 삶?”

“그리고 신뢰가 이 정도로 깊지 않았다 한들, 저는 공자님께서 이 사태를 누구보다 잘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동필의 눈이 빛났다.

“그분의 증오를 알기 때문입니다.”

“……증오?”

“예. 본교의 ‘적들’을 향한 그분의 증오는 가히…….”

그때였다.

마동필의 눈이 재차 번뜩였다.

“오는군요.”

여강휘가 고개를 돌렸다.

한참이나 떨어진 협곡 너머, 녹색 무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접근하고 있었다.

* * *

찰나의 찰나를 쪼갠 시간.

서량은 생각했다.

‘빠르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모여 날카로운 창날이 되었다. 뾰족한 손톱 끝이 마치 신검보도(神劍寶刀)의 예기를 피워 내는 듯했다.

‘뭐가 이렇게 빠르지?’

심지어 살기도 없다. 극마에 오른 마인마저 깜짝 놀랄 속도인데 살기마저 담기지 않아 반응을 반 박자 잡아먹기까지 한다.

천하 어떤 암살자의 살법보다 치명적인 일수.

푸화악!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서량의 몸이 흔들렸다.

순간 천호의 눈이 번뜩였다.

‘이놈!’

파아아아앙!

천호가 움직였다.

거의 엎드리다시피 자세를 낮춘 그의 이동 속도는 바람을 방불케 했다. 굵고 기다란 양팔로 땅을 튕겨 나아가는데 마치 한 마리 야수가 돌진하는 듯했다.

‘감히 날 우롱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후우우웅!

공기를 찢어발기며 나아가는 오른팔에 황금빛 진기가 아른거렸다. 마치 범이 앞발을 휘두르는 듯한 동작이었다.

바위도 날려 버릴 무지막지한 무공.

그때였다.

‘……!’

천호의 손이 서량의 머리 근처까지 도달했을 즈음.

천호는 보았다. 자신을 향해 번뜩이는 서량의 안광을.

핏빛 동공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마기 속, 득의양양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번쩍!

세 줄기 번개가 천호의 머리와 어깨, 등을 노리고 쏘아졌다.

가히 발군의 속도였다. 멈추지 않는다면 천호의 손이 서량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수 있겠지만, 그리되면 천호 역시 전신이 박살 나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천호의 몸이 팽이처럼 돌아갔다.

피이이잉! 퍼버벅!

순식간에 삼 장 뒤로 물러난 천호.

어느새 그와 서량 사이의 땅에 세 자루 도(刀)가 박혀 있었다.

시커먼 색으로 물든 칠흑의 장도와 색만 다를 뿐 똑같이 생긴 한 쌍의 소도(小刀), 칠야도와 유성쌍도였다.

‘어도술(馭刀術)!’

어도술을 구사했다는 사실보다 동귀어진의 수법을 펼쳤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아무리 이기어도의 경지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으면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 미친놈!”

스르륵.

서량이 상체를 세웠다. 어느새 그의 왼손에 여인의 손목이 잡혀 있었다.

주르륵.

그의 쇄골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여인의 수공에 피부가 찢긴 것이다.

“뭔가 준비를 해 놨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단순하고도 확실한 준비물일 줄은 몰랐지.”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악!”

이성이 담긴 비명이 아니었다. 흐리멍덩한 두 눈, 마치 매의 울음과 비슷했다.

천호가 외쳤다.

“데려와라!”

파바바박!

백여 명의 백왕수들이 무서운 속도로 절벽을 올랐다.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미친 듯이 절벽을 기어오르는데, 실로 굉장한 속도였다. 원숭이가 나무를 오르는 듯, 혹은 표범이 나무를 타는 듯 신들린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서량은 움직일 수 없었다. 천호의 기파가 그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인질들을 빼앗길 판, 그러나 서량의 얼굴에는 조급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릴 뿐.

“막아.”

콰아아앙!

그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절벽 끝이 무너져 내렸다.

파바바박!

백왕수들이 절벽에 손가락을 박아 넣으며 어지럽게 움직였다.

벽호공(壁虎功)의 경지가 그야말로 신기(神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쏟아지는 돌무더기는 그들의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벽호공의 경지가 뛰어나다 한들 외물은 피할 수 있어도 소리까지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크아아아앙!

“크아악!”

“으아아아!”

백왕수들 절반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코앞에서 터진 무지막지한 충격파, 진정한 의미의 사자후(獅子吼)다. 천하에서 제일가는 음공(音功)의 고수도 이런 충격파를 뿜어내진 못할 것이다.

퍼버버벅!

떨어진 백왕수 중 이십여 명의 사지가 그대로 부러졌다. 그나마 제대로 착지한 삼십여 명의 백왕수들도 왈칵 피를 토했다. 음파(音波)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크르르!

자세를 낮추고 털을 세운 호왕이 절벽 위를 올려다보며 긴장 섞인 울음을 토해 냈다.

천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호락호락 당해 줄 줄 알았나.”

쿠웅!

큼직한 앞발로 부서진 절벽 끝을 내려치며 선 한 마리 괴수.

바람에 휘날리는 털이 황금빛 불꽃을 연상케 한다. 호왕보다는 작지만 어지간한 대호만큼이나 큰 짐승이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게 뭐야?”

천호가 입을 떡 벌렸다.

‘여우? 늑대?’

모르겠다. 흔들리는 갈기를 보면 수사자 같기도 하고,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보면 늑대 같기도 하며, 굴강한 다리와 오므라진 발톱을 보면 호랑이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오색으로 빛나는 저 눈만큼은 어떤 짐승과도 닮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여우의 생김새인데 생태계 정점에 올라선 온갖 맹수들의 분위기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세상 어떤 짐승보다도 성스럽고 신비로워 보이는, 하지만 그만큼이나 포악해질 수 있는 영물(靈物).

푹.

여인의 혼혈을 짚은 서량이 입을 열었다.

“상황을 나쁘게 만든 건 너다.”

퍼뜩 놀란 천호가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하얗게 웃었다.

“뭐, 어쩌면 내가 바랐을 수도 있지.”

쿵!

앞발로 대지를 찍은 금호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보다 두 배는 낮고 열 배는 섬뜩한 포효.

그 울음소리를 들은 천호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세상 어떤 무인보다도 야생성이 강한 그의 감각이 금호의 포효가 만들어 낼 결과를 간파한 것이다.

“호왕!”

크헝!

금호보다 훨씬 낮고 우렁찬 산중대왕의 외침.

하지만 늦었다. 호왕의 포효에는 초절정고수라도 충격을 받을 만한 살기가 담겨 있지만, 금호의 포효에는 만물을 지배하는 영물의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이 시대, 아니 고금을 통틀어 금호와 같은 영물이 또 있을지.

중원 대륙의 진정한 수왕(獸王)이 외치매, 애뇌산 일대가 들썩였다.

쿠르르릉.

땅이 울렸다.

두두두두!

지진보다도 격렬한 대지의 신음 너머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지원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천호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어엉!

황금빛 권풍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십 리 밖에 떨어진 야수궁의 병력이 움직였다. 개인의 무력으로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한 야수궁주의 집합 신호였다.

쿠구구궁!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격해지는 흔들림에 공기가 지독하리만치 텁텁해졌다. 사방팔방에서 쏘아져 오는 살기가 이곳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의 짐승들과는 다르더라고.”

놀란 천호가 서량을 돌아보았다.

여인을 어깨에 멘 서량이 칠야도를 뽑아 들고는 천호를 향해 겨누었다. 어느새 유성쌍도가 그의 몸을 호위하듯 신비롭게 주위를 돌고 있었다.

“이곳의 짐승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아. 독하고 예민하며, 머리까지 좋아 뵈더만.”

“……!”

“어디 한번 막아 보셔.”

“이놈!”

파아아악!

천호가 서량에게 달려들었다. 작정하고 휘둘러진 그의 주먹은 이전보다 배는 빠르고 강력해 보였다.

그때, 서량이 움직였다.

‘……?!’

천호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뭐냐, 이 움직임은?’

화탄 이상의 위력을 자아낼 것이 분명한 진호신권(鎭虎神拳)의 일격.

그 일격을 부드럽게 회전하며 피해 내더니만, 어느 틈에 마치 강을 거스르는 물고기처럼 접근해 왔다. 바람 부는 절벽에 떨어진 나뭇잎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 같았다.

쿵!

언제 접근한 지도 모르겠다. 반 장 안쪽으로 들어온 서량이 강한 진각과 함께 칠야도를 휘둘렀다.

서걱!

천호의 쇄골에 기다란 도상이 새겨졌다. 야수와도 같은 감각으로 피했지만 피부가 베였다. 상체를 뒤로 빼지 않았다면 오른쪽 어깨가 통째로 잘려 나갔을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칠야도를 역수로 쥔 서량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칼을 쥔 손으로 천마벽력권을 구사한 것이다.

콰앙!

천호가 주춤거렸다. 아직 삼성(三成)에 머무른 벽력권으로는 제아무리 공력을 쏟아부어도 치명상을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파아아앙!

천호가 주춤거리는 사이 서량이 절벽을 타고 올랐다. 중간에 거치적거리는 백왕수들을 향해 칠야도를 휘두르는데, 순식간에 백왕수 십여 명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마황군림보.

축지신보였다면 속도만으로 농락했겠지만 마황군림보로는 그럴 수 없다. 상대를 억압하고 죽이는 데에 능한 전투 보법이기 때문이었다.

칠야도를 놓고 유성쌍도까지 옆으로 날린 서량이 내내 절벽에 꽂혀 있던 용린도를 뽑아 들었다.

“흐압!”

콰아아앙!

용린도 일격에 절벽 일대가 무너져 내렸다. 아직까지 그곳에 있었던 백왕수 전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바로 그때, 나무들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우지끈! 콰지지지직!

부서진 나무 파편을 밟고 나타난 수천 마리의 짐승들.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천벌이다, 이것들아.”

크허어엉!

호왕의 섬뜩한 포효와 함께, 야수끼리의 무자비한 난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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