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82화 (182/774)

182화. 짐승의 왕 (2)

폭음을 내며 뛰쳐나온 규격 외의 짐승에 올라탄 청년이, 어어 하는 순간 당가 최고수의 복부에 칼을 날리곤 대번에 인질을 삼아 버렸다.

오늘의 애뇌산은 인질극이 판을 치고 있었다.

“이, 이놈!”

당표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좌측 어깨에 박힌 칼이 관절을 찢어 버렸다. 평생 외팔이로 살아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가주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이 더러운 마교도 놈! 당장 가주님을……!”

푸욱!

당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유성홍도를 역수로 쥔 서량이 당전의 허벅지를 찔러 버린 것이다.

서량이 당표를 노려보았다.

독하기로는 중원제일이라는 당가의 암운각주도 기가 질릴 만한 눈빛이었다.

“주둥아리 안 닥치면 가주 눈알 뽑아다가 채소볶음마냥 오독오독 씹어 먹을 줄 알아.”

오싹!

장난기가 묻어 나오는 말이지만 목소리에 실린 살기는 진짜였다. 제 섣부른 언행 한 자락에 가주가 죽을 수도 있다.

“동필아!”

“예, 공자님!”

“진마대는 어디쯤 왔다더냐?”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광마대도?”

“그렇습니다.”

“젠장.”

임무를 마치고 귀교하는 부대를 억지로 불러들였다. 처음엔 미안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아쉬워해선 안 돼.’

그들을 부른 것은 정보로 야수궁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와 준다면야 큰 도움이 되겠지만, 거기까지 바라서는 안 될 일이다.

‘야수궁주가 친위대만 데리고 왔을 리가 없다. 놈은 자기 제자는 물론 여강휘까지 노리고 있었어.’

여상린의 안위를 확인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여강휘였다면 확실히 죽었을 것이다. 극마에 이른 그조차 아차 하면 당했을 정도로 빠른 일격이었으니까.

즉, 야수궁주는 빙궁주의 핏줄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

그때, 당전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 개 같은 놈! 놓지 못하겠느냐!”

푹!

“크아아악!”

당전이 비명을 질렀다. 단전이 봉인된 즉시 마혈까지 짚여서 사지를 놀릴 수가 없었다. 만약 움직일 수 있었다면 그 즉시 왼쪽 눈을 감싸 쥐었을 것이다.

툭.

깔끔하게 도려낸 눈알이 땅에 떨어졌다.

서량이 홍도를 흔들었다.

“막상 씹으려니 더러워서 안 되겠다.”

당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저도 모르게 쌍욕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그는 꾹 참았다.

이미 가주는 한쪽 눈을 잃었다. 남은 하나까지 잃게 할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시원시원해서 좋군.”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데리고 온 병력은 녹왕단뿐이냐?”

당표는 내심 깜짝 놀랐다. 마인 놈이 한눈에 녹왕단을 알아볼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 그렇다.”

푸욱!

당전의 몸이 학질에 걸린 듯 달달 떨렸다. 허벅지에 다시 한번 홍도가 박힌 것이다.

당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짓이냐, 이놈!!”

“독을 풀려고 했잖아.”

“……!”

“혈액독인지 신경독인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군. 너희 가주 놈 진짜로 봉사 만들고 싶어?”

당표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설마 놈이 하독(下毒)을 시도하려던 걸 단번에 간파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녹왕단뿐이냐?”

“그렇다 하지 않았느냐!”

“거짓말쟁이의 최후가 좋은 적은 없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녹왕단뿐이냐?”

스륵.

홍도가 당전의 코 밑에 대어졌다.

서슬 퍼런 홍도의 칼날은 무서운 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칼날이 닿지도 않았는데 당전의 코에 핏물이 어릴 정도였다.

당표가 입술을 깨물었다.

“……애뇌산 북쪽 자락, 암왕단(暗王團)이 대기 중이다.”

“녹왕단에 암왕단까지, 과하기도 하다. 역시 야수궁을 믿긴 힘들었던 모양이지?”

녹왕단은 독(毒)에, 암왕단은 암기에 특화된 당가의 대표적인 무력집단이었다. 독과 암기의 특성을 생각하면, 암습 시 어지간한 대문파도 괴멸시킬 만한 전력이었다.

“긴말 안 한다. 암왕단까지 불러들여서 야수궁을 쳐라.”

“뭐, 뭐라고?!”

“궤멸시킬 필요까진 없어. 애초에 불가능하기도 할 거고. 다만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겠지. 그래도 당가를 대표하는 조직이 둘이나 모였는데 말이야.”

“……!”

“야수궁 역시 너희를 믿지 못해 남쪽 인근에 제법 거창한 부대를 끌고 왔다. 하지만 그들은 암왕단의 존재를 몰라.”

당표가 으르렁거렸다.

“거래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야수궁과 싸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질 것 같으냐?”

“……!”

“하긴 여긴 야수궁 앞 동네니까. 생각해 보면 야수궁씩이나 되는 집단을 고작 당가 따위와 비교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유치하다면 유치할 수 있는 격장지계.

하지만 놀랍게도 이 격장지계가 당표에게 먹히고야 말았다.

“개소리! 본가가 야수궁 따위에게 밀릴 것 같은가!”

당가는 성격이 독한 만큼 자존심도 무시무시하다.

그런 당가더러 야수궁에 한참 모자란다는 식으로 말하니 당표가 열을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 증명해 봐.”

“이익!”

“반나절을 주겠다. 여기서 그리 멀진 않을 거야. 적당히 조지고 돌아오면 가주를 풀어 주지.”

“너를 어떻게 믿지?”

“믿고 말고는 네 자유지. 거기에 한 가지 더 얹어 주마.”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음에도 당표는 그 미소를 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맛보았다. 피투성이 몸에 마기도 불안정한 놈인데 이상하게 위축이 되었다.

“본교의 뇌옥에 당경이란 놈이 잡혀 있다. 서신 봐서 알지?”

“……!”

“가주는 물론 그놈도 풀어 주지. 독에 관해선 당가에서도 최고로 해박하다는 독룡각주를 풀어 주겠다는 거다. 이만하면 목숨을 걸어 볼 만하지 않은가?”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공자님.’

그는 내심 의아했다.

그가 아는 공자님은 인질을 잡고 협박 같은 걸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골머리 썩을 바에야 직접 칼을 뽑아 모조리 박살 내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당경이라니?

본교의 뇌옥에 갇힌 순간 그를 어찌할 수 있는 것은 교주님뿐이다. 아무리 교주의 제자라도 서슴없이 내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 할 테냐?”

“익!”

물끄러미 당표를 보던 서량이 버럭 외쳤다.

“빨리 선택해!”

그때, 부들부들 떨던 당전이 입을 열었다.

“거, 거래에 응하지 마라!”

“가주님!”

“마교도를 어찌 믿으려 하느냐! 이놈들은 믿을 만한 놈들이 못 돼!”

서량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이십 년 전, 사천 청화리(靑華里)라는 마을을 없애 버린 네놈들이 믿음을 논해?”

순간 당전과 당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뿐만이 아니지. 독의 위력을 확인하겠답시고 월인문(月刃門)과 무도방(武刀幇)이란 중소 문파도 몰살시키지 않았더냐?”

당표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암운각주!!”

깜짝 놀란 당표가 입을 다물었다.

미소 짓던 서량의 얼굴이 다시 냉랭해졌다.

“선택해.”

입을 꾹 다물었던 당표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암운각주, 자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가주님.”

당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미 자신의 말은 먹히지도 않는 상태였다.

당표가 서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가서 싹 쓸어 버리고 오겠다.”

“잘 생각했어.”

“하지만 이건 공평한 거래가 아니다. 보아하니 저 검사를 제법 아끼는 것 같던데, 우리도 저놈을 인질 삼아 데리고 가겠다.”

당표가 눈짓으로 마동필을 가리켰다.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공자님. 제가 다녀…….”

푹!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어느새 서량이 당전의 새끼손가락을 뜯어 버린 것이다.

무슨 짓이냐고 외치려던 당표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사아아악!

서량의 몸에서 파멸적인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처럼 일렁이는 구유마기와 결합한 살기에 공기가 다 얼어붙는 듯했다.

“공평?”

서량이 당전의 검지를 쥐었다.

콰득! 푸화악!

당전의 몸이 덜덜 떨렸다. 끔찍한 고통은 둘째 치고, 등 뒤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지독한 살기에 정신이 반쯤 날아가 버린 것이다.

“거래 물품에서 당경은 제외한다.”

“……!”

우둑! 우두둑!

순식간에 당전의 오른손이 뭉개졌다.

서량의 손이 그의 왼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왼손의 손가락을 모조리 뜯어 버리려는 것이다.

“셋 셀 동안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가주는 죽는다.”

눈을 뽑니, 심장을 파내니 따위의 자극적인 협박도 없다. 그냥 죽이겠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어떠한 협박보다도 무섭게 들렸다.

“하나.”

우둑!

검지가 부러졌다.

“둘.”

당표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녹왕단은 날 따라와라!”

파아아앙!

당표를 선두로 녹왕단 전체가 이동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마동필과 여강휘는 경악했다. 아무리 가주를 인질로 잡고 있다지만, 서량의 협박에 정말로 움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마동필은 보았다.

‘떨어?’

빠르게 신법을 펼치고 있지만 당표의 사지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얼굴도 창백한 것이 병이라도 걸린 사람 같았다.

마동필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마기(魔氣)에 침습 당했다!’

처음에는 분노였지만, 지금은 공포를 느낀다. 당표는 살기로 범벅이 된 서량의 마기에 저도 모르게 움직인 것에 가까웠다.

상대가 풍기는 위압감에 몸이 얼어 버리는 경우는 왕왕 있다. 하지만 당표 정도의 고수가 저런 상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가히 심인상인(心印傷人)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구나.’

심인상인이란 곧 마음으로 상대를 해하는 경지를 말함이다.

물론 과장된 말일 뿐이다. 상대를 죽인다는 마음을 품는다고 진짜로 상대가 죽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발산하는 기(氣)만으로 저만한 고수의 의지를 빼앗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것이 심인상인이 아니고 또 무엇이란 말인가.

털썩!

당전이 옆으로 쓰러졌다. 가까이서 서량의 살기에 직격당한 그의 눈은 멍하니 풀려 있었다.

“후욱!”

서량이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마기와 살기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흥분했군.’

애초에 살수 시절에도 당가를 싫어했던 그였다. 그런 놈들이 마동필을 인질로 삼겠다는 헛소리를 지껄이자 한순간 눈이 뒤집혀 버렸다.

그것은 그의 몸 상태 때문이기도 했다.

‘삼단전(三丹田)이 몽땅 흔들렸어.’

극마에 오르기 직전, 검궁의 부궁주였던 목강인과 피 터지게 싸웠을 때도 이런 내상을 입진 않았다. 무너진 절벽을 뚫기 위해 짧은 순간 대부분의 마기를 소모한 게 컸다.

‘그놈의 장력에 맞지만 않았어도…….’

그가 복부를 어루만졌다.

떨어지던 천호의 일장(一掌)에 빗맞은 복부가 아직도 얼얼했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제아무리 서량이라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공자님.”

옆으로 다가온 마동필의 얼굴에 걱정의 기색이 스쳤다.

“괜찮으십니까?”

“인마, 네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냐?”

서량이 여강휘를 돌아보았다.

여강휘의 얼굴은 제법 복잡해 보였다.

“약속은 지켰다.”

“…….”

“네 동생 데리고 이만 내려가. 이곳은 빙궁이 낄 자리가 아니야. 일을 마무리 짓고 찾아가도록 하지.”

“그럴 순 없습니다.”

“뭐?”

여상린을 어깨에 멘 여강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무리를 지을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요?”

“오늘 밤이 오기 전에는 끝나겠지.”

“기다려 주십시오. 이 아이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후, 다시 오겠습니다.”

파아악!

대답을 듣지도 않는다. 신법을 펼친 여강휘가 어느새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황소고집이군.”

그가 마동필을 돌아보았다.

“고생했다. 네 검기가 아니었다면 팔 하나는 떨어져 나갔을 거야.”

“아닙니다.”

마동필의 어깨를 두들겨 준 서량이 금호에게 다가갔다. 금호가 서량의 가슴팍에 머리를 비볐다.

“내상약 있냐?”

“아, 물론입니다.”

그에게서 내상약을 받아 든 서량이 가부좌를 틀었다.

“금호가 호법을 설 거다. 저 괴물 고양이도 한동안은 정신 못 차릴 테니까 너도 운기나 해.”

“저는 괜…….”

“괜찮지 않아. 마지막 싸움은 치열할 거야.”

“예?”

서량이 무너진 절벽을 바라보았다.

“놈이 살아 있어.”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