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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86화 (186/774)

186화. 짐승의 왕 (6)

가부좌를 튼 서량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렸다.

‘이제 좀 봐 줄 만하네.’

삼단전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 아직 내상이 심했지만, 단전이 똑바로 잡혔으니 앞으로의 회복은 빠를 것이다.

‘확실히 극마라도 차이가 있어.’

이만큼이나 심한 내외상을 입었을 때, 정통 마공을 익힌 마인이었다면 압도적인 회복력으로 순식간에 몸을 정상으로 되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옳은 방법이라고 볼 순 없었다. 삼단전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은 회복은 자칫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길에 벽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이 진짜 급했다면 서량도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과 그 방법밖에 없어서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구대마존이나 진관용은 나와 달라.’

그들은 신교의 정통 마공을 수련했다. 무학의 수준을 떠나 그들의 마공은 불순물이 일절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魔)의 정화였다.

하지만 서량의 구유마공은 불가의 무학을 섞은 무공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변종이었으며, 덕분에 그 수준을 교주의 마공인 군림마황기에 비견되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수준은 높지만 여타 마공과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교의 정통 마공이 철저한 파괴를 추구한다면, 서량의 마공은 보다 균형 잡힌 무도(武道)를 추구했다.

그래서 어떠한 마공보다 심오했지만, 운용하는 방식은 정파의 신공과 유사했다.

‘만일 내가 정통 마공을 익혔다면 아직 극마에 오르지 못했을 거야.’

그는 좌선(坐禪)을 통한 깨달음,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조하는 데에 익숙했다. 거기에 불가의 무학까지 섞었으니, 정통 마공을 익힌 마인들과는 달리 극마의 벽을 조금 더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올라간다면 그러한 차이도 의미가 없어지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지저와 마관을 넘어 삼 단계를 여는 것.’

몸으로 마의 본질을 깨닫는 지저옥관귀문식, 증폭된 마력으로 극마의 벽을 두들기는 마관상천지문식.

그다음 지옥문을 열 수 있다면 그는 비로소 전생에 자신이 이룬 경지에 완벽히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완벽히? 그 정도가 아니야. 오히려 더 높은 경지라고 봐야겠지.’

살왕이었던 시절, 그의 무공은 충분히 대단했지만 동시에 애매했다. 그가 익힌 무공 자체가 살수공에 근본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때보다 더 높이.

이 젊은 육신으로, 천마신교의 삼공자란 신분으로 천하를 논하는 무공을 얻게 된다.

서량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바로 그때가 진격의 봉화를 올릴 때인가.’

의천맹과 철혈성.

야수궁까지 작살을 내 놓았으니 놈들에게서도 뭔가 반응이 올 것이다.

‘철혈성은 모르겠어. 하지만 의천맹주, 그 늙은이라면 어떻게 나올까?’

잠시 고심하던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모르겠군.’

워낙에 기상천외한 인간이다.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해도 다음 행동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신하는 게 딱 두 가지 있었다.

‘신교를 건드리진 않을 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천하를 집어삼키기 위해 삼궁까지 끌어들였는데 그중 하나는 머리를 잃었고 다른 하나는 팔이 날아갔다.

지금으로선 감히 건드릴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리고 남은 하나.

‘당가의 힘이 약해진 걸 알게 된 순간, 당가를 흡수하려 들겠지.’

의천맹주는 탐욕스러운 인간이다. 그 탐욕은 욕망으로 똘똘 뭉쳤다는 마인들도 비빌 수 없을 정도다.

자신이 원할 때 휘두를 수 없는 칼은 칼이 아니다. 의천맹주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역시 당가주를 살려 둔 건 좋은 선택이었어.’

서량이 눈을 떴다.

어두운 동굴 속, 불그스름한 안광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게 바로 너의 팔목 하나를 날리게 될 실책으로 돌아갈 거다.’

그때, 동굴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공자님.”

“음, 잠시 기다려.”

크게 숨을 들이켠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부좌를 오래 틀어서 팔다리가 꼬이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몸이 아직은 정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젠장, 앞으로 그런 무모한 수법은 쓰지 말아야지.”

야수궁주, 그 개자식이 장력만 날리지 않았어도 이 지경은 안 됐을 텐데.

서량이 툴툴거리며 동굴을 나섰다.

「캬앙.」

금호가 반가운 듯 다가와 서량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어이쿠, 이놈 배 빵빵해진 거 봐라. 사슴 한 마리를 통째로 삼켰나.”

금호의 머리를 쓰다듬던 서량이 호왕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금호가 으르렁댔다.

스륵.

호왕이 자세를 낮췄다.

의미를 알기 힘든 자세였다. 확실한 것은 덤벼들려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 살기가 온 산을 뒤흔들더구만. 정신 산만해서 불렀다.”

옆에 선 마동필은 내심 의아했다. 그는 호왕의 살기는커녕 여느 야생동물들의 살기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자님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리라. 마동필은 진중한 자세로 서량의 말을 경청했다.

“왜 자꾸 이 근처를 얼쩡거리는 거냐?”

물론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짐승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호왕의 눈을 본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를 노리는 건 아니군.”

알아보시는 건가? 어떻게?

“복수냐?”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아직도 야수궁주를 증오하나?”

크르릉.

호왕이 목을 울렸다.

마동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호왕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서량의 언행도 놀라웠지만, 서량의 말에 반응하는 호왕의 모습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놈은 이미 죽었어. 그때 봐서 알잖아.”

쿵!

호왕이 앞발로 땅을 거세게 내리쳤다.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철컥.

마동필의 엄지가 묵왕검을 살짝 뽑았다. 혹시라도 호왕이 덤비면 그 즉시 발검(拔劍)할 태세였다.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산중대왕으로 태어났으면 그 태생에 걸맞은 격을 갖춰라. 분이 안 풀린 건 알겠지만 이미 죽어 버린 사냥감엔 미련 두지 마.”

크릉. 크르릉.

“널 속박하는 술법도 끊어졌겠다, 이제는 태어난 대로 고고하게 살아라. 내가 해 줄 말은 그것밖에 없어.”

지이이잉.

호왕의 안광이 더욱 붉어졌다.

신기하게도 호왕의 눈빛은 서량의 그것과 몹시 닮아 있었다. 붉은 안광도 안광이지만, 추측하기 힘들 만큼 쌓인 한(恨)이 주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유사했던 것이다.

물끄러미 호왕을 보던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

크르릉!

“미안하지만 난 이제 그쪽에 볼일 없어. 내 사냥은 놈이 죽은 순간 끝났단 말이다.”

호왕의 눈이 번뜩였다.

커허허헝!!

순간 사방 천지로 뿜어져 나가는 매서운 포효.

산천초목이 떤다는 진정한 맹호의 포효였다. 어찌나 과격한 포효였는지 마동필조차 순간 자세가 흐트러질 정도였다.

스르륵.

금호가 서량의 앞을 지키듯이 막아섰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안광이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끄러미 호왕을 바라보던 서량이 금호의 꼬리를 쥐고 흔들었다. 그러자 금호가 자리에 엎드렸다.

금호의 등에 걸터앉은 서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동필아.”

“예? 아, 예!”

“장 마장 지금 어디에 있냐?”

“현재 광마대와 함께 산 밑에서 휴식 및 경계 중입니다.”

“불러와.”

하지만 마동필은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호왕의 무시무시한 포효를 들은 장추가 삼엄한 기파를 뿜어내며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헉?!”

호왕을 보고 깜짝 놀란 장추가 등 뒤의 거검을 잡았다.

그때, 서량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뽑지 않아도 되오.”

“하, 하지만 공자님.”

“그보다 물어볼 게 있소.”

“예?”

“궁주와 지파의 수장 둘이 죽었소. 정예병도 제법 잃었고. 지금 야수궁은 어떤 상태요?”

장추가 공손하게 말했다. 호왕을 노려보는 눈빛은 여전했지만.

“죄송합니다만 현재로선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알고 싶으시다면, 지금 당장 본교에 연락을 취해 야수궁을 조사하라 명하겠습니다.”

“그럼 너무 늦고.”

서량이 호왕을 바라보았다. 호왕은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다.

“혼자서 놈들을 쓸어 버리기 힘들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여기서 얼쩡거리고 있었겠지.”

크릉.

“하지만 우리도 일이 바빠. 더 솔직히 말하면 네 분노 따위는 알 바도 아니고.”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건 어떠냐?”

어슬렁거리다가 슥 사라진 호왕.

서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할, 안 그래도 힘들게 하는 놈들 천지구만 거기에 짐승까지 끼어드네. 하여튼 인생 진짜.”

마동필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공자님.”

“왜?”

“호왕과 의사소통이 되시는 겁니까?”

“의사소통이라…… 뭐, 대놓고 대화를 주고받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알 수는 있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금호랑 오래 지내다 보면 그런 거야 쉽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야.”

“하면……?”

“놈의 머리에 박힌 술력을 제거하면서 내 마기가 좀 남았거든.”

“예?!”

“물론 야수궁주처럼 놈을 수족처럼 부리려고 한 건 아니야. 나도 모르게 흘러간 거니까.”

마동필은 기가 막혔다.

“하면 지금 호왕의 머리에 공자님의 마기가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까?”

“내가 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다. 그 술법, 풀기는 어렵지 않아도 그릇이 형성된 지 너무 오래됐어. 그래서 빈 그릇에 내 마기가 고인 거야.”

서량이 금호의 뒷덜미를 긁었다. 금호가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극마에 오르면 알겠지만, 선천의 영역을 넘보는 마기에는 영성(靈性)이 깃든다. 금호의 영기(靈氣)가 나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내 마기에 깃든 영기가 호왕과의 소통을 가능케 한 것뿐이야.”

“……놀랍군요.”

“그렇게 놀라울 것도 없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氣)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하니까.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서량이 피곤한 듯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여하간 그건 그렇다 치고, 넌 어떠냐?”

“예?”

“벽을 깨고 올라왔잖아. 수습이 잘 되더냐?”

마동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굳이 수습할 것 있겠습니까, 자연스레 맞추어지겠지요.”

“어쭈? 이제는 그럴듯한 말도 잘하는데?”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급하게 붙일 거 없다. 하나의 호흡조차도 무(武)로 녹일 수 있는 지금의 너에겐 오히려 신경을 쓰는 게 더 문제일 수 있으니까.”

“전부 공자님 덕분입니다.”

“그게 왜 내 덕분이냐. 네놈이 죽어라 노력한 거지.”

물론 금강야차마공이나 구중마검세 같은 절학의 도움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마동필이 서량에게 진짜 감사하는 것은 그런 고급의 무공을 얻게 해 준 것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자세였다. 서량의 호위무사로 있으면서 그의 모습을 끊임없이 봐 온 마동필은 어느새 무도(武道)를 대하는 자세가 서량만큼 자연스러워졌던 것이다.

“여하간 기가 막히던데, 네 검공? 한 방에 야수궁주를 두 쪽 낼 줄은 몰랐다.”

죽기 일보 직전, 마지막 힘을 내 서량을 공격한 천호의 움직임은 누구도 막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그때, 마동필이 번개처럼 움직여 천호의 몸을 종으로 갈라 버렸다.

스스로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몰랐던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과 검결(劍訣)이 불러온 마기의 질적 향상을 깨닫는 순간,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벽을 깨부술 수 있었다.

“이미 다 죽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지. 칠 마장이 반응조차 못 할 속도로 움직일 만큼 피폐해진 놈이었지.”

마동필의 얼굴이 어색해졌다.

서량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살았어. 진짜 아찔했다고.”

“공자님을 지키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만큼 성장을 했어도 성격은 여전하구먼.”

피식 웃던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동필이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들었다.

“물 좀 드시지요. 오늘 한 모금도 안 드셨지 않습니까.”

“아니야, 나중에 마시지. 그보다 슬슬 준비나 해 둬.”

“예?”

서량이 몸을 돌렸다.

“내일 산에서 내려간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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