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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87화 (187/774)

187화. 비인외도(非人外道) (1)

“은공(恩公)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여상린이라 합니다.”

워낙에 새하얀 피부라 안색을 읽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입술에 발갛게 핏기가 도는 것이 몸 상태가 나쁘진 않은 듯했다.

“오라비에게 대략적인 상황을 들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거래였으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서슴없는 하대였지만, 딱히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허리를 편 그녀가 서량을 바라보았다.

‘크다.’

안 그래도 큰 체격이 본래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커 보인다.

그것은 서량이 풍기는 존재감 때문이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이 태산처럼 무거웠다.

여상린의 눈빛이 묘해졌다.

‘일대종사의 무공이다. 천위(天位)의 경지야.’

북해에서 천위의 경지는 중원 무림의 화경, 극마와 동급의 경지다. 부르는 이름은 각기 달라도 극에 이르면 비슷해지는 것, 만류귀종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대단하세요. 저희 오라버니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시는데 벌써 천위, 아니 극마를 깨우치셨군요.”

한옆에 서 있던 여강휘가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북해제일의 기재라고 명성이 자자한 그였지만 서량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조금 모자랐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건 뭐 그렇다 치고.”

서량이 가늘게 뜬 눈으로 여상린을 바라보았다.

여상린은 괜스레 긴장이 되는 걸 느꼈다.

“너, 상당히 신기한 무공을 익혔군.”

“네?”

“그때야 경황이 없어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데 말이야. 분명 대단한 무공이긴 한데…… 어쩐지 완전하지 못한 것 같다?”

여강휘는 담담했지만 여상린은 깜짝 놀랐다.

천위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북해 무학에 정통하지 못하면 꿰뚫어 볼 수 없는 게 그녀가 익힌 무공이었다. 정확히는, 무학의 특성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상대의 날카로운 안목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그런 것도 보이시나요?”

“뭐, 그냥.”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여하간 좀 더 안정을 취하도록 해. 야수궁 놈들한테 상단전도 제법 주물러진 것 같더만. 다른 단전과는 달리 상단전은 말썽을 일으키기 쉬운 단전이야. 제대로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멀쩡하다가도 확 일그러질 수 있어.”

서량이 몸을 돌렸다.

“쉬어라.”

그렇게 서량이 방을 나갔다.

여강휘가 여상린을 힐끔거렸다.

“삼공자 말마따나 더 쉬는 게 좋겠다. 근래 부쩍 수면이 줄었다고 했잖으냐.”

“오라버니.”

“음?”

“혹시, 삼공자가 오라버니의 유리잠력대법도 꿰뚫어 봤나요?”

여강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상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군요.”

“무공이 강한 게 전부가 아니야. 무학(武學)을 관통하는 안목 자체가 남다른 사람이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연배에 어찌 저런 학식과 통찰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여상린이 한숨을 쉬었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괜히 저 때문에 무리하셨잖아요.”

여강휘가 고개를 저었다.

“혈육을 구하는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궁에서도 말이 많았지요?”

“물론이지.”

여강휘는 굳이 좋은 말로 포장해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 알게 될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동생이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강단 넘치는 성격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삼궁과는 다른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어. 빙궁의 소궁주로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단독으로 그들을 상대하긴 힘들다.”

“그렇지요.”

“여러모로 천마신교와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었어. 게다가 널 무사히 구해 내지 않았느냐. 일이 잘 풀렸다고 봐야 한다.”

“…….”

“왜? 뭔가 걸리는 일이라도 있느냐?”

“오라버니.”

“음?”

“삼공자한테 유리잠력대법의 실체에 대해서도 말했나요?”

여강휘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 않았다.”

“하세요.”

여상린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소문 중 절반만 사실이더라도 천마신교는 결코 손을 잡아선 안 될 집단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오라버니는 신교와 연수하기 전에 삼공자 개인과 손을 잡았죠.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관계를 확실하게 맺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와도 할 얘기가 있다.”

“네?”

여강휘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 * *

“부르셨습니까.”

“음.”

서량은 품에서 꺼낸 서신을 장추에게 건넸다.

장추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먼저 교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그 서신을 총군사에게 전해 주시오.”

“총군사 말씀입니까?”

“그렇소.”

교주님도 아니고 총군사란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장추는 묻지 않았다. 대화를 많이 나누진 않았지만, 삼공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이다.

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이오?”

“외람되오나 아직 삼공자님의 상태는 정상이 아닙니다. 물론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공자님의 호위를 맡고 있지만, 한 사람의 마인이 아쉬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고맙소만 나도 딱히 무리할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오.”

이렇게까지 말하니 별수 없다. 장추가 고개를 숙였다.

“하면 먼저 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옥체 강녕하시길 바랍니다.”

파악!

장원을 벗어난 장추는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서량이 크게 기지개를 켰다.

“끄응, 좋구만.”

산에서 내려온 일행은 여상린이 머무는 한 장원에 짐을 풀었다.

놀랍게도 이 장원은 족히 오백 명은 거뜬히 수용할 정도로 넓고 컸다. 운남 지방에서 보기 힘든 중원식 가옥 형태로, 마치 관직에서 내려온 사람이 말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 같았다.

이 장원은 바로 하오문의 소유였다. 적당히 건조한 지대에 만든 가옥은 환자가 거주하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했다.

“하오문이 확실히 능력이 좋아.”

널찍한 후원, 큼직한 나무에 기대앉은 서량이 가부좌를 틀었다.

잠시 후.

“음, 좋아. 빠르군.”

삼단전을 바로잡으니 며칠 만에 마기가 왕성해졌다. 얼추 사흘이면 모든 내공을 되찾을 것이며, 내상을 치유하는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적당히 추스르고 귀교해야겠어. 하지만 그 전에 당전을 처리해야 할 텐데.’

당전은 현재 광마대가 지키고 있었다. 단전이 봉인되고 정신까지 잃은 상태라 위험하진 않았지만, 언제까지 달고 다닐 수는 없었다.

‘뇌옥에 들이기도 힘들어.’

이미 신교의 뇌옥에는 독룡각주 당경이 있다. 거기에 당가주까지 집어넣으면 여러모로 일이 커질 것이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집어넣을 순 있다. 그러나 훗날 옥에 가둔 당전을 빼낼 때가 문제였다.

문제가 될 행동은 아예 안 하는 게 낫다.

‘그렇다고 아무 데나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인데.’

고민하던 서량이 입술을 달싹였다.

잠시 후, 마동필이 찾아왔다. 한창 수련 중이었는지 전신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아, 수련 중이었나? 미안하구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신지요?”

“그래, 이왕 미안하게 된 거 조금 더 미안해 보자. 여기 하오문 담당자 좀 불러 줘 봐.”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금방 불러오겠습니다.”

서둘러 움직이는 마동필을 보는 서량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저 녀석도 많이 컸어.’

생각해 보면 마동필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서량의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그를 교주는 고죽림으로 보내 버렸다. 당연히 그곳에서 만난 마동필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 그가 어느새 목숨을 함께한 전우가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호위무사가 되었다. 그때의 마동필과 지금의 마동필을 생각해 보면, 가히 다른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신분도, 무공도, 성격도.

그리고 자신도.

‘앞으로 더 힘든 길을 걷게 될 거다.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경지로 발돋움해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동필이 한 남자를 데리고 왔다. 중키에 단단한 체격, 완고해 보이는 눈매가 인상적인 중년의 사내였다.

“부르셨습니까.”

“음.”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상대를 주시하는 눈에 날카로운 빛이 감돈다. 하지만 사내는 여전히 담담함을 유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광서에도 지부를 두고 있다 했지?”

“그렇습니다.”

“지부는 안전한가?”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 충분히 궁금해할 만하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잘 숨겨져 있고?”

“예.”

“그곳에 사람 하나를 맡기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사내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을 맡기는지, 그 사람의 상태는 어떠한지, 강호에서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나아가 언제까지 맡길지에 따른 금액을 전적으로 부담해 주셔야 합니다.”

마동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나치게 딱딱한 사내의 말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주를 맡기려 한다.”

“…….”

“기한은 없어.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일 년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지.”

사내의 눈이 깊어졌다.

“당가주라 하심은, 사천당가의 가주 당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 정도의 거물급 인사는 저희로서도 부담이 큽니다. 특히 당가의 가주라면 특급 사안으로 분류되며, 그 사실이 의천맹에 적발될 시 저희 하오문은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예전 부문주 상백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당가의 정보를 건네는 것은 큰 부담이며,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 정보를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적살루가 관리하던 명부의 필사본을 건네지 않았다면 목이 떨어져도 정보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를 알려 주는 것조차 부담이라 생각하는데, 당가주를 가둬 달라는 요청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내는 거부 의사를 비치지 않았다.

“고로,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오호?”

서량이 뜻밖이라는 듯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든 그만큼의 값만 치르면 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뒷일이 무섭지는 않고?”

“저희는 거래를 통해 지금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거래가 체결되기만 하면, 저희는 그 거래가 온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결국 판단을 내리기까지가 문제라는 건데, 자네는 이미 판단을 내렸군. 금액만 제대로 지불하면 언제든지 숨겨 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큰 사안을 단독으로 허가하기는 힘들지. 자네 정체가 궁금한데, 물어봐도 되겠나?”

놀랍게도, 사내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솔직하게 답했다.

“공야치(公冶治)라 합니다. 당대 하오문의 소문주(小門主)이자 제삼문주(第三門主)를 겸하고 있습니다.”

“……!”

이때만큼은 서량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보통 신분이 아닐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하오문의 작은 주인일 줄이야.

마동필도 그답지 않게 깜짝 놀란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하오문의 소문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운남에 있었다고?”

“본래는 사천에서 활동하다가 보름 전, 한시적으로 운남 일을 맡으러 왔습니다.”

“한시적이든 뭐든, 소문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외지에 올 일은 많지 않지.”

“…….”

“나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사내, 공야치는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저는 삼공자를 보기 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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