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89화 (189/774)

189화. 비인외도(非人外道) (3)

“제법 날씨가 선선해지려고 하는구먼.”

이숭(李崇)의 나른한 말에 상간(尙看)이 고개를 저었다.

“조장님은 광동 토박이 아니십니까.”

“그렇지.”

“저는 산동(山東) 출신입니다. 여기 십만대산에서 구만리는 떨어진 곳이죠. 양민들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무림인들도 이 정도 거리를 오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더워요.”

상간이 진지하게 말했다.

“심각하게 덥습니다. 저요, 입교 십오 년 차인데 지금까지도 날씨가 적응이 안 됩니다. 그나마 겨울이 되어야 살 것 같다니까요.”

“무공 수련 열심히 해. 적어도 한서불침은 되어야지.”

“한서불침이 되는 것과는 달라요. 이놈의 습기가 좀 지독해야지, 젠장.”

“한서불침의 끝자락이라도 밟아 봤냐?”

“…….”

“아니면 말을 하지 마, 이놈아.”

“조장님은요?”

“나? 나야 진즉에 밟았지.”

“어? 그건 처음 듣는데요?”

“좋은 현상이다. 남의 무공 수준 알려고 들 시간에 경계나 똑바로 서. 시간 나면 누워서 쉬지 말고 칼이라도 한 번 더 잡고.”

상간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문위사는 문파의 얼굴이다. 개나 소나 될 수 있는 직책이 아닌 것이다.

당연히 마도 무림의 총본산이라는 천마신교의 수문위사가 되려면 어지간한 무공으론 불가능하다. 덤으로 격식과 법도에도 빠삭해야 하고 눈치도 빨라야 한다.

하지만 조장님이 벌써 한서불침의 경지에 올랐을 줄은 몰랐다. 한서불침이란 곧 내력의 수급이 완전하게 자유로워지는 경지를 뜻하는바, 소위 절정고수라 불리는 이들도 기공이 무르익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경지다.

“어쨌든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군요.”

“겨울이 오면 바빠질 거다. 파순제 준비하랴, 조직별 하반기 실적 신경 쓰랴 난리일 거야.”

“제가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애교해라.”

“……?”

“본교를 사랑하라고, 인마.”

“아.”

“아? 하여간 속도 좋은 놈이군. 넌 야망이라는 것도 없냐?”

“저는 제 직책에 굉장히 만족합니다. 천마신교의 수문위사는 아무나 되는 줄 아십니까.”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건 좋은 일이다만 넌 지나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어.”

상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등바등 애쓴다고 교주님의 제자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에 이숭이 눈을 치켜떴다.

“교주님의 제자? 미쳤구만. 그분들은 신(神)의 선택을 받으신 분들이야. 애초에 올려다본다고 떨어질 감이 아니란 말이다.”

“알아요. 아니까 그러죠.”

“그냥 지금처럼 현실에 안주해라. 되지도 않는 꿈을 꾸느니 그게 낫겠다.”

“휴…… 대공자님 정도는 바라지 않으니까 최소한 삼공자님처럼은 되고 싶었는데.”

이숭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이게 미쳤나? 삼공자님처럼 되기가 쉬운 줄 알아?”

“그냥 하는 말이에요.”

시끄러워질 것 같은 느낌에 상간이 대충 얼버무렸지만, 이숭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남들에게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마군(魔君)이라 불리는 삼공자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그로서, 상간의 말은 그냥 넘기기 힘든 것이었다.

“이놈아! 삼공자님께선 천재라는 말로도 형용이 안 되는 괴물이시다. 입마(入魔)로 모든 무공을 소실했음에도 이 년 만에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신 걸 몰라?”

“알아요. 안다니까요.”

“그뿐이냐? 그간 보여 주셨던 화통함과 추진력을 봐라. 의천맹 떨거지들이나 철혈성 나부랭이들 중 삼공자님에 비견되는 놈들은 장담컨대 한 명도 없을 거다.”

삼공자님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벌게져서 열변을 토해 낸다. 상간은 괜한 얘기를 꺼냈다고 후회했다.

물론 워낙 솔직한 성격 탓에 저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는 말까지 막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무공에선 대공자님과 비교가 안 될걸요? 대공자님 소문 들으셨어요? 극마를 깨우치셨다잖아요, 극마를. 세상에, 불혹이 되기 전에 극마를 깨우친 분은 신교 역사에도 몇 없…….”

그때, 저 멀리서 먼지구름을 피워 내며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이숭과 상간이 입을 다물고 자세를 바로 했다. 신교의 수많은 외성 대문 중에서도 정문인 이곳으로 오는 자들이라면 분명 신교 소속 마인들이리라.

잠시 후, 휘황찬란한 백색의 기형검을 멘 한 여인이 나타났다.

“광마대주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길이야.”

“패를 보여 주십시오.”

위홍련이 익숙한 듯 품에서 패를 꺼냈다. 광마대주를 상징하는 흑색의 철패였다.

철패를 확인한 이숭이 고개를 숙였다.

“여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상 위사는 안에 기별을 넣도록.”

상간이 곧바로 성문 옆, 굵직한 밧줄을 잡아당기자 성문 안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쿠구구궁!

거대한 성문이 열리는 소리는 무척이나 웅장했다.

“아, 그리고.”

위홍련이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저 마차에 삼공자님과 공자님의 손님도 타고 계셔.”

“헛? 그, 그렇습니까?”

“……뭐야? 왜 이렇게 놀라?”

위홍련이 뒤를 돌아보았다.

“삼공자님.”

덜컹.

마차의 문이 열리고 체격 좋은 미청년이 내렸다.

이숭의 얼굴에 상기되고, 상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후욱.

은은하게 깔리는 기파에 두 사람의 자세가 절로 뻣뻣해졌다.

청년, 서량이 걸어왔다.

“미안하군. 몸이 찌뿌드드해서 기파 조절이 잘 안 돼. 이해해 주게.”

“아, 아닙니다!”

“바로 교주님을 뵈러 갈 테니 따로 기별 좀 넣어 줘.”

“옙!”

잠시 후,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마차를 보던 이숭이 상간을 힐끔거렸다.

상간의 얼굴은 그야말로 볼만했다. 멀어져 가는 멍하니 마차를 주시하는데 마치 여우에 홀린 표정이었다.

“어떠냐?”

이숭이 악동처럼 웃었다.

“대공자님만 극마에 오른 게 아니지?”

* * *

“이로써, 지난 열흘간 정리한 내용을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수고했네.”

호요성이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그간 잠도 잘 못 잤는지 두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었다.

이천상이 검지를 까딱였다.

우웅.

어디선가 날아온 약재 한 덩이가 호요성의 앞에 툭 떨어졌다.

“엇? 이게 무엇입니까, 교주님?”

“피로에 좋다더군.”

“하하, 역시 절 생각해 주시는 건 교주님밖에 없으십니다.”

“힘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마냥 감사히 받을 건 아니로군.

약재를 품에 안은 호요성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하면 이만…….”

“근래 비각(秘閣)은 어떤가.”

느닷없는 물음이었지만 호요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예산도 빵빵하고 새로 들인 애들도 빠릿빠릿하고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음, 뭐지?

호요성은 내심 의아했다. 이천상이 간혹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비각에 대해서는 물은 적이 없었다.

비각은 군사부 내 정보 조직으로 교내 정보는 물론 중원 전역의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곳이다. 군사부에 속해 있지만 조직 특성상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번 상반기, 비각의 조직 평가는 무척 우수했지.”

“아, 예.”

“슬슬 교외로 돌려 보게.”

“……예?”

이천상은 말없이 잔을 채웠다.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교외로 돌린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강호의 정세를 보다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라는 말씀이신지요?”

“그렇다네.”

더 신경 쓰라는 수준이 아니다. 교내 정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까지 외부로 돌리라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잔을 그대로 비워 낸 이천상이 말했다.

“그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을 뿐일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감이라는 말이었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시간부로 비각의 눈 중 구 할을 교외로 돌리겠습니다.”

“그러게.”

이유를 알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이천상의 감각은 중원제일을 논해도 손색이 없다. 그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조만간 심상치 않은 사태가 터질 것이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호요성이 이만 대전을 나가려 이천상에게 인사를 올리려던 그때.

‘…….’

무엇을 떠올렸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조금은 무거워진 어조로 말했다.

“이제 늦여름이군요. 곧 가을이 오겠습니다.”

“그렇군.”

“하반기 실적의 시작을 위해 각 조직 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요?”

“그렇겠지.”

“가장 여유 있는 사람들은 역시나 후계 후보분들이겠군요.”

이천상은 대답 없이 재차 잔을 채웠다.

호요성이 물었다.

“본격적으로 판을 만들어 주실 생각이십니까?”

“판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녀석들이 알아서 만드는 것이지.”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올라갈 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라갈 것이고, 떨어질 놈은 어떻게 해도 떨어질 걸세.”

“그래도 최대한 공평한 판을 만들어 주려고 하시는군요.”

“세상에 공평이라는 것은 없네.”

가만히 이천상을 바라보던 호요성이 이내 허리를 숙였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러시게.”

그때, 대전의 문밖에서 마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삼공자가 알현을 청하옵니다.”

호요성의 눈이 커졌다.

‘벌써?’

이천상이 말했다.

“들이도록.”

쿠구궁!

대전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서량이 걸어 들어왔다.

서량이 뜻밖이라는 듯 호요성을 보았다.

“두 분이 말씀 중이셨네요. 밖에서 기다릴까요?”

“총군사와의 얘기는 끝났다.”

“아, 때를 잘 맞춰 왔군요.”

호요성이 고개를 숙이며 그를 지나쳤다. 마신궁의 대전이기에 사사로이 떠들 수는 없는 법, 그는 눈인사로 말을 대신했다.

서량 역시 마주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호요성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꼭 차나 한잔 마시러 오라는 듯한 눈빛이구먼.’

그렇게 호요성이 나가고 서량과 이천상만이 남았다.

“다녀왔습니다.”

“앉거라.”

“아, 예.”

서량이 그 자리에서 철퍼덕 주저앉았다.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리 스스럼없이 앉는 서량이나, 무뚝뚝한 이천상이나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서량이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네가 선택한 길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피로함이 느껴지는 얼굴,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내상이 아직도 낫지 않았군.”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단순한 내상이 아니기 때문이지.”

서량이 의아한 눈으로 이천상을 올려다보았다.

“내상에도 단순하고 복잡한 게 있습니까?”

“모르고 있었나?”

“……?”

서량은 머리를 긁적였다.

운남에서 신교까지 오는 길은 그야말로 피곤한 여정이었다. 이왕 쉬려면 신교에 도착해서 쉬자는 마음으로 몇 번 쉬지도 않고 마차를 몰았다.

당연히 오는 길 내내 내상을 다스리는 데에 주력했다. 극마에 오른 그의 경지는 자세나 외부의 자극에 구애를 받지 않는지라, 가부좌를 틀지 않고도 충분히 내부를 다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상이 다 낫지 않았다. 회복력 자체는 뛰어났지만, 탁기가 끊임없이 치솟고 있어 결과적으로 크게 호전되지는 않은 것이다.

구유마공으로도, 무애공으로도 잡히지 않는 내상.

결국 그 찝찝한 상태로 여기까지 와야만 했다.

물끄러미 서량을 내려다보던 이천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 한잔하겠느냐?”

내상도 다 낫지 않은 사람한테 술을 권하는 저 무심함이란.

서량이 툴툴대며 일어났다.

“좋은 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서량은 생각했다. 자신도 참 많이 변했다고.

당대 천마한테 투덜거릴 만큼 배포가 커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예전을 생각하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죽지 않고 살았으면 내 나이가 환갑이 지났을 텐데.’

하긴, 사람이 변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서른에 보는 세상과 마흔에 보는 세상도 그리 다른데.

잠시 후, 두 사람이 정자에 올라 다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시원하군.’

광동, 광서에 걸쳐 뻗어 있는 십만대산의 기후는 상당히 후덥지근한 편이다.

하지만 뜻밖의 운남 생활이 길었던 걸까? 공기가 무척 상쾌하게 느껴졌다. 그 상쾌한 공기에 들끓는 내상도 조금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받거라.”

“예.”

쪼르르 따라지는 주향이 몹시 고왔다.

술이 안 취하는 몸이 된 후로 이천상과의 술자리가 아니면 딱히 술을 즐기지 않았다. 취하지 않으면 술을 마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하고 싶기도 했다.

“감사합…….”

“마시기 전에.”

“예?”

“내상부터 다스려라. 지금 당장.”

그대로 혼자 잔을 비운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따위 꼬락서니로 이 귀한 술을 마시게 할 순 없지. 별것 아닌 내상도 못 고쳐 놓는 무능함을 계속 보인다면 바로 내쫓을 것이다.”

……아, 또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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