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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190화 (190/774)

190화. 비인외도(非人外道) (4)

천호와의 격한 싸움.

첫 싸움의 시작은 인질을 사이에 두고 벌인 몇 번의 공방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싸움은 진지하게 부딪쳤다고 보긴 어려웠다. 말하자면 간을 본 것에 가깝다고 할까.

그러나 서량이 지반이 약해진 절벽을 통째로 무너트렸을 때, 천호도 마침 눈을 떴다.

‘빗맞았지.’

긴박한 순간에도 천호는 서량에게 장력을 내질렀다. 워낙 파괴력 넘치는 장력이라 피하지 않았다면 서량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피가 반 박자 느렸고, 천호의 강력한 장력이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어, 내 내상은.’

정확히는, 그때 입은 내상 때문에 쏟아져 내리는 돌무더기에 파묻혔다. 혈규대홍련의 한기로 돌을 얼린 후, 차례로 깨부수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곳이 무덤이 되었을 것이다.

‘호왕이라는 방패도 있었지. 여하튼 그게 문제가 아니야.’

서량은 생각했다.

‘왜 내상이 잡히질 않지.’

여기까지 오며 그 이유에 대해 수만 번을 생각했다.

하지만 명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탁기가 치솟으면 왜 치솟는지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혈맥도 멀쩡하고 단전도 튼튼했으며 혈도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그런데도 내상이 낫지를 않았다. 특히나 폐장(肺臟)과 심맥 사이에서 끊임없이 탁기가 흘러나와 호흡이 텁텁할 지경이었다.

‘제길.’

서량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술이야 안 마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내상은 지금 제대로 처리를 해야 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도 모르겠다며 질질 끌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고민하는 서량을 보는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고심하는군.”

“예?”

“…….”

“아, 예. 오만 수법을 다 써 봤거든요. 그런데도 내상이 바로잡히지 않았으니까요.”

서량이 초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방면으로 생각해 봐도 도통 답이 나오질 않아요.”

“그렇겠지.”

“예?”

이천상이 또 한 번 잔을 비워 냈다.

서량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유를 아십니까?”

“무(武)에 통달하면 자연히 의술에도 통달하게 되는 법이다.”

재차 잔을 채우는 이천상이 유달리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대 천하, 나보다 무학에 통달한 이도 없다. 고작 내상이 고쳐지지 않는 이유 따위 모를 수가 없지.”

뜬금없지만 서량은 괜한 섬뜩함을 느꼈다.

무공의 한계를 뚫고 나아가 신(神)의 경지를 엿보기 시작하는 자. 그의 능력은 이미 인세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은지라 극마를 깨달은 고수의 고민조차 시시한 문젯거리로 여긴다.

서량은 새삼 이천상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문제는 너다.”

“저요?”

“그따위 내상, 네 능력이라면 고치지 못할 리가 없다.”

“……!”

“그럼에도 끙끙 앓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까지 하다. 내 기분이 더 나빠지기 전에 속히 고치도록.”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내 능력이라면 고치지 못할 리가 없다고?’

내가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거지?

‘구유마공은 그렇다고 쳐. 탁기를 제거하고 최상의 몸 상태로 되돌려 주는 무애공으로도 고쳐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애공을 쓰면 탁기의 농도가 더 심해졌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마공을 익혔다고 무애공이 듣지 않을 리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무애공은 인체에 삿된 것을 없애고 정화시켜 주는 무공일 뿐, 마기와는 상관없으니까.

‘두 가지 무공으로도 안 된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심지어 금호가 곁에 있어도 이 내상을 바로잡지 못했다.

‘대체 왜?’

점점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서량.

집중이 극에 이르자 이곳이 어디인지, 눈앞에 누가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 서량의 모습에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집중력 하나는 발군이란 말이지.’

마치 죽음을 불사하고 목표물을 노리는 암살자의 그것 같다.

‘하지만 그 집중력이 언젠간 네 녀석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서량이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이천상을 앞에 두고도 그리 내뱉는다.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순식간에 눈 밑이 거무죽죽해졌다.

“왜 안 되는 거지? 이유가 뭘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서량.

물끄러미 서량을 주시하던 이천상이 잔을 들며 말했다.

“근본을 잊고 있군.”

근본?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본? 어떤 근본? 근본이라는 게 뭐지?”

말은 들었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는 것 같다. 서량의 눈이 금세 붉게 충혈되었다.

“근본, 근본, 근본…….”

화르르륵!

순간 서량의 몸에서 마기가 솟구쳤다.

붉게 달아오르는 마기는 구유마공 특유의 불꽃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지저(地底)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구유(九幽)의 세상, 천하를 불태울 겁화(劫火)였다.

내상을 무시하고 전력으로 개방되는 마공.

화아아아악!

끝 간 데를 모르고 퍼져 나가는 기파가 기화요초 만발한 선경을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갈라진 땅에선 화염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주르륵.

서량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내상이 더 악화될 게 분명한데도 멈추지 않았다.

멈춰서는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들부들.

전신이 떨려 온다. 서량이란 땅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동공이 확장되고 피부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내상이 더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이천상이 손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그의 손짓에 정자와 다탁이 흔들림을 멈추었다. 서량의 인간 같지 않은 기파를 한 손으로 제어하는 것, 과연 만마의 제왕다운 무공이었다.

일각, 이각, 그리고 반 시진.

“아!”

서량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사아아아악.

그의 코와 입을 통해 반투명한 연기가 새어 나왔다. 심맥에 꽁꽁 틀어박혀 결정화되었던 탁기가 빠져나온 것이다.

스르르륵.

다친 폐장이 조금씩 아물었다. 미세하게 뒤틀렸던 심맥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일각이 지나.

사라락.

용암처럼 들끓던 구유마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후우우.”

서량이 깊은숨을 토해 냈다.

붉게 얼룩진 입가를 닦고 이천상을 바라보는 서량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천상이 턱으로 잔을 가리켰다.

“마셔라.”

“……예.”

서량이 그대로 잔을 비웠다. 육천심주의 고아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앞으로는 그따위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길 바란다.”

“…….”

“한 잔 더 하겠느냐?”

“주십시오.”

이천상이 서량의 잔에 술을 따랐다.

졸졸 채워지는 잔을 보며, 서량은 자책했다.

‘근본을 잊고 있었다…… 이거야 원, 검기를 피우는 검객이 파지법(把持法)을 잊어버린 격이군.’

그의 내상이 낫지 않았던 이유는 구유마공에 불가의 무학이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심법을 익혔든 간에 극에 이르면 종국에는 하나가 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고금을 통틀어 무공을 익힌 이들 중, 그 누구도 진정한 만류귀종에 이른 자가 없었다. 다만 만류귀종을 추구하는 진짜배기 고수들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 진짜배기 고수에는 서량도 속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어울리지 않는 불가의 무학과 마도학을 결합한 서량의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구유마공이야말로 만류귀종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공이니까.

바로 그래서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구유마공을 완벽하게 다뤄 왔지만, 정작 난 제대로 된 마인이 아니었어.’

신공(神功)의 극이 상단전을 다루는 것이라면, 마공의 극은 중단전(中丹田)을 해방하는 데에 있다.

마공의 파괴력은 중단전을 비트는 데에서 온다. 중단전은 곧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담당하는바, 격한 감정을 자양분 삼아 힘을 불려야 마공이 제대로 돌아간다.

서량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무공을 쓸 때와 치료를 할 때를 확연히 구분 지어 놓았다. 그것은 곧, 그가 무학의 순리(順理)를 따르는 데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극마란 말 그대로 마의 극한이다. 선천의 영역을 넘보는 마기로 전신이 꽉 찬 지금, 그는 모든 것을 마학(魔學)의 운용 원리를 근본으로 두고 움직여야 한다. 불가의 무학이 섞였다고 불가의 무학처럼 내상을 치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차라리 다행이었어.’

천호의 장력은 살상력에 특화된 무공이었다. 체내로 침투한 경력이 심맥을 터트려 버리는 종류의 침투경인 것이다.

심맥과 폐장 사이에서 탁기가 끊임없이 치솟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곳은 곧 중단전의 영역이었으니, 중단전을 놓고 하단과 상단을 중심으로 치료를 해선 고칠 수 없었던 것이다.

“신(神)이 되기 전에 일단 인간이 되어야 한다.”

퍼뜩 놀란 서량이 이천상을 바라보았다.

잔을 든 이천상이 지나가면서 툭 던지는 듯한 말투로 덧붙였다.

“네가 진정 신의 영역을 추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제대로 녹아 보지도 못한 자가 인간의 껍질을 탈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

“화내고, 웃고, 슬퍼해야 한다. 그 모든 감정에 충실해 본 자만이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라 할 수 있는 법.”

이천상이 잔을 비웠다.

“신화(神化)의 세계에 들기 위해서는 조화(造化)가 무엇인지부터 깨달아야겠지. 조금 전, 너답지 않게 초조해한 것은 네가 진정한 마인(魔人)이 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신화란 곧 신화경(神化境)을 뜻하고, 조화란 조화지경(造化之境)을 뜻한다.

그것을 마도 무림식으로 말하면 초마지경(超魔之境), 마(魔)를 초월하기 위해선 극마(極魔), 극에 이른 마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묘하군.’

내상을 고치는 과정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놀라운 것은 이천상의 말에 깃든 무리(武理)가 정파 무림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은…… 진정한 만류귀종에 도달했는지도 몰라.’

이천상이 잔을 놓았다.

“따라 보아라.”

“아, 예.”

서량이 머쓱한 표정으로 그의 잔을 채웠다.

“못난 꼴을 보여 드렸습니다.”

“알면 되었다.”

“앞으로는…….”

“두 번의 실수를 하는 제자 따위 키운 적 없다.”

……말을 해도 꼭.

이천상이 잔을 들었다.

서량도 공손하게 자신의 잔을 들었다.

칭.

잔과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무척 아름답게 들렸다.

“야수궁주와 한판 붙었다고 들었다.”

“그랬지요.”

“용케 살아남았군.”

“마음을 흩트려 놓지 않았다면 밀렸을 수도 있습니다. 야옹 선생이 저보다 한 수 위던데요.”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옹 선생?”

“아, 야수궁주 말입니다.”

“재미있는 호칭이로군.”

술을 마시던 서량은 순간 사레가 들릴 뻔했다.

이천상이 담담하게 말했다.

“새외사궁의 주인들은 그 무위가 구대마존과 비해도 손색이 없다. 무학의 특성이 워낙에 달라 가능했던 일, 야수궁주가 마공을 익혔다면 너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겠더라고요.”

탁.

잔을 놓은 이천상이 상체를 앞으로 수그렸다.

처음 보는 자세였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남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듣고 싶다. 네 입으로 직접.”

* * *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여상린이라고 합니다.”

멍하니 여상린을 보던 앵화가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마동필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위홍련은 쭈그려 앉아 호포검으로 바닥을 박박 긁어 댔다.

휘이잉.

서량의 거처에 시린 바람이 불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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