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91화 (191/774)

191화. 비인외도(非人外道) (5)

“그렇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정말 독특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더냐.”

“그 흡정마공과 비슷한 짓거리 말입니다.”

서량은 저도 모르게 툴툴거렸다.

“제자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무학의 경지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행위의 부덕함을 논하기 이전에, 그런 기괴한 무학을 최근 은근히 많이 봤습니다. 왜 그러고들 사는지, 원.”

“기괴하다?”

“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단호함이 묻어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것을 기괴하다고 느낀다면 네 무공 역시 기괴함의 극치라 아니 말할 수 없지.”

“예? 저는 다른 사람 원정을 빨아먹은 적은 없는데요?”

“대신 고죽림의 영죽을 취했지.”

“아…….”

이천상이 잔을 채우며 말했다.

“심법(心法)이란 곧 대자연의 기(氣)를 체내로 순환시켜 불순물을 제거하고 힘을 얻는 방법이다. 주천(周天)을 통해 마음을 깃들게 하고 단전에 고이도록 만들면(畜氣) 기는 곧 진기(眞氣)로 변화하지.”

“그렇지요.”

“이 대자연에는 동물도, 나무도, 사람도 있다.”

“…….”

“넓게 보면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무공을 연련하는 것이다.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너나 야수궁주나 별반 다를 것 없다.”

이천상이 잔을 비웠다.

“결국, 방법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강해진 지금의 자신을 한낱 과거의 추억거리로 만들 수 있는 추진력과 뚝심을 함양하는 것이지.”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확실히 이천상의 안목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다. 어쩌면 저런 넓은 시야야말로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었다.

“하나만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어보도록.”

“본교에도 그와 유사한 방법이 있습니까?”

“있다.”

“……역시.”

“그러나 보관만 하고 있을 뿐, 그것을 익히려 드는 자는 없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막았으니까.”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천상의 눈이 가라앉았다.

“흡정(吸精)은 근본적으로 마공과 어울리는 수법이 아니다.”

“……?”

이건 또 놀라운 일이다.

타인의 내공을 취하는 방법을 보통 마공이라 부른다. 한데 마공과 어울리는 수법이 아니라고?

“잡스러운 마공 따위야 그럴 수 있지. 그러나 진정한 마공은 정파의 신공(神功)보다도 돈오(頓悟)를 중시한다.”

돈오란 곧 별안간 깨닫는 것을 뜻한다. 보통 현문(玄門), 도문(道門)의 무공이나 불가 무학이 돈오를 중시한다.

“돈오점수(頓悟漸修), 크게 깨닫기 위해선 점진적인 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

“음, 알 것 같습니다.”

중단전을 일그러트려 인간 본연의 욕망과 마주하는 것이 마공이다. 근본을 파헤쳐 보면 이만한 자기 수양이 따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광인(狂人)이 되거나 욕망에 사로잡힌 귀신이 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어쨌든,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남은 병력의 후속 공격이 없더군요.”

장추와 광마대가 급습한 부대가 아닌, 야수궁 본진의 병력을 말하는 것이다. 궁주가 죽고 정예 병력 상당수가 몰살을 당했다면 들고일어나 복수를 천명해야 함이 마땅한데, 그들은 지금까지도 잠잠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수궁이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다. 상대가 포식자라고 생각하면 도망치고, 먹잇감이라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물어뜯지. 놈들은 본교를 먹잇감이 아니라 이길 수 없는 포식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문파들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비슷하지만 약육강식의 원리에 도덕을 결합시켰으니 문제가 된다. 그런 면에서 야수궁은 솔직하다. 고민이란 게 없지.”

오늘은 어째 여러 가지로 배우는 게 많은 것 같았다.

“빙궁의 작은 주인은 북해로 갔겠군.”

“아, 예. 곧 볼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문은?”

느닷없이 던져진 질문에 서량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하오문이요?”

“네가 하오문의 도움을 받아 야수궁을 뒤집어 놓은 걸 알고 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일전 감찰사 업무 때도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오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추측은 할 수 있어도 확신을 하긴 어려운 법이었다.

서량이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원활한 거래였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재미를 볼 것 같습니다.”

“그런가.”

“예.”

“이번에도 부문주와 거래를 튼 건가.”

……제기랄.

이 양반 앞에서는 뭘 숨길 수가 없다. 소문주와 접선한 것까진 모르는 게 확실할 텐데,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조여 오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서량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당가주를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이천상의 눈이 번뜩였다.

“하오문이?”

“예.”

“대가는?”

“저와 함께 의천맹을 작살내는 겁니다. 겸사겸사 제가 차기 후계자가 되는 걸 돕기도 하겠다더군요.”

서량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얘기가 여기까지 진행된 이상, 괜히 숨겨 봐야 이천상의 분노만 살 뿐이다.

이천상이 묘한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의천맹과 철혈성을 무너트리겠다는 너의 꿈에 꽤 여러 사람이 끼어들었구나.”

“그 호로 새끼들이 워낙……!”

“…….”

“아니, 그 나쁜 놈들이 워낙 미운 짓을 많이 했으니까 그렇겠지요.”

이천상은 말없이 서량을 바라보았다.

왠지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 것 같다. 서량은 등에 식은땀이 맺힐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이천상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쿨럭! 예, 예? 뭘요?”

“후계자 말이다.”

“후계자요?”

“그렇다.”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씀은…….”

“진정 네 마음에, 나의 후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느냔 말이다.”

“……!”

서량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지금껏 이천상은 후계자 건에 관해서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정확히는, 언급을 한 적은 있어도 이리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 공격적인 질문에 순간 손이 차가워졌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서량이 호흡을 정리했다.

“농담으로 흘릴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질문에, 감히 농담으로 넘길까 생각이라도 해 본 놈은 네가 처음이다.”

“음, 저는…….”

서량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는…….”

이천상의 눈이 빛났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형형한 안광이 서량의 목을 콱 조여 왔다.

서량이 고개를 숙였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칼이 흘러내리며 그의 표정을 숨겨 주었다.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하냐?”

“예.”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실망한 것 같지도, 안도한 것 같지도 않았다.

“알았…….”

“하지만 되어 보려고 합니다.”

스르륵.

고개를 든 서량의 눈은 진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주라는 자리 자체에 매력을 느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뒤를 이어 교주가 되면, 놈들을 작살내기가 한결 편해질 것 같더군요.”

“…….”

“그래서 되어 보려고 합니다.”

“그렇군.”

“불순한 동기라서 실망하셨습니까?”

이천상이 고개를 저었다.

“동기가 무엇이든 목표한 바가 있다면 응당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함이 당연하다. 네 의지가 그와 같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제안을 던질 뿐이다.”

제안이라니?

“올해, 파순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예?”

“파순제 대신 차기 후계자를 공표하는 자리를 열 것이다.”

“……!!”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푸스스스.

이천상이 쥔 잔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공력의 조절이 극한에 달했다는 그답지 않은 실수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그가 그만큼의 격동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는지도 모르겠다.

“파순제가 열리기 전에 끝내라. 네가 진정 나의 후계자가 되어 십만마도(十萬魔道)를 이끄는 마도대종사가 싶다면, 의천맹과 철혈성을 없애고 마도천하(魔道天下)를 이루고 싶다면.”

“…….”

“그리고 이 얘기는, 너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에게도 이미 전달했다.”

주서윤까지는 그렇다 쳐도, 후보 중엔 나이 어린 여섯째와 막내도 있었다. 이번 파순제의 날 후계자를 공표한다는 것은 그 두 제자는 탈락시키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천상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마지막 잔이다.”

서량은 그대로 잔을 비우고 몸을 일으켰다.

“하면,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아, 그리고…….”

“할 말이 남았는가.”

서량이 눈을 찡긋거렸다. 천년 마교의 주인에게 감히 해서는 안 될 요망한 표정이었다.

“조만간 한 수 배우러 또 오겠습니다.”

뜻밖의 말이었을까. 이천상이 알 수 없는 눈으로 서량을 바라보았다.

서량이 고개를 꾸벅 숙이곤 몸을 돌려 나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천상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내상 때문에 봐준 줄도 모르는군.”

생각보다 보법의 성장이 더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내상을 입지 않았다면 제대로 혼을 냈을 것이다.

“……한 수 배우러 오겠다?”

그게 스승이자 교주에게 할 소린가.

이천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제법 송곳니가 자랐어.”

언제 꺼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검을 슬슬 들어 볼 때가 된 것 같았다.

* * *

단박에 내상을 고치니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마신궁을 나오는 서량의 걸음은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다.

‘후계자를 정한다고?’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어쩌면 다른 제자들은 일찌감치 포기한 걸 수도 있다. 제자 중 무려 두 명이나 극마에 올랐으니, 그 둘을 제외하면 이미 끝난 싸움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렇게까지 급하게 정할 이유라도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적대 세력에 관한 정보를 알아본 적은 많아도, 천마신교의 정보를 진지하게 파헤쳐 본 적은 없었다.

‘신교의 상황이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양반도 아니니까. 게다가 당장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갑자기 후계를 정하겠다고?’

서량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유가 있다면 내부가 아니다. 외부에 있어.’

물론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다. 이천상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놀랍지 않을 인간이니까.

‘어찌 되었든 슬슬 칼을 뽑으라는 거지.’

하기야, 야수궁 건을 해결하기 전에 진관용이 출관하지 않았다면 관평을 그 자리에서 묻어 버렸을 것이다.

후계 싸움은 이미 자신과 진관용에게로 무게가 쏠렸다. 더 이상 질질 끄는 것은 의미가 없기도 할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뭐 나야 좋지.”

서량이 씨익 웃었다.

고민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그 얼굴이 맹수를 연상케 했다.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야.”

후계자가 되는 즉시 의천맹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후계자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영감. 곧 목 따러 간다.’

후끈 열기가 달아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걸음도 절로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만 보고 나오지.”

스르륵.

건물 옆,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서량이 씨익 웃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포착했군. 이전과는 다르게 말이야.”

사내는 바로 진관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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