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193화 (193/774)

193화. 비인외도(非人外道) (7)

자미루로 가는 동안 두 사람은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애초에 원활한 대화가 오가기 어려운 관계이기도 했다. 그간의 후계 싸움이 다소 막연했다면, 이제부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형제지간이지만 최고가 되기 위해서 서로를 짓눌러야 하는 사이. 사실상 남보다도 못한 사이인 것이다.

그 텁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진관용이었다.

“혹시 다섯째에게서 얘기 들었느냐?”

“어떤?”

“후계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구나.”

서슴없이 후계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이런저런 대화로 포장해 봤자 좋아질 관계가 아니라는 걸 진관용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들었지.”

“옛날부터 그랬지. 서윤이는 언제나 무(武) 하나만을 쫓았어. 본교의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 같다.

주서윤에 대한 인상은 뭐랄까, 차가운 바위와 같았다.

한없이 싸늘하고 딱딱하기만 한 녀석. 이유는 몰라도 주서윤의 마음에 깃든 무(武)에 대한 열망은 죽는 그 순간까지 옅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윤이를 경계했다.”

“그랬나.”

“그럴 수밖에. 제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다 한들 여인은 교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이다.”

서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신교는 의외로 중원의 어떠한 문파보다 개방적인 면이 있었다. 여인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쓰레기들도 많지만,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최고위직에 올라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위홍련이었다. 위홍련은 여인에다 천마신교의 적이었던 위씨세가의 핏줄이었음에도 그 어린 나이에 광마대주가 되었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었다.

출신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것. 진정한 의미의 강자존을 실현코자 노력하는 집단이 천마신교였다.

“본교의 교주란 곧 천마파순의 점지를 받은 신의 대리자다. 신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 여인이라고 교주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실제로 여성 교주가 있기도 했다.”

“사대천마(四代天魔).”

“그렇다.”

여인의 몸으로 양강(陽强)하다는 군림마황기를 대성한 천고의 기재.

놀랍게도 사대천마 때가 천마신교의 악랄함이 가장 부각되었던 시기였다. 이유인즉, 사대천마가 교주직에 오른 직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중원 정벌의 기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리한 정책이다? 그렇지 않다.

당시 천마신교의 병력은 사천(四川)과 호북(湖北), 하남(河南)까지 침공하여 정파 무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당시 소림사 최고의 고수들이라는 소림삼신승(少林三神僧)과 단독으로 싸워 승리를 거머쥔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했다.

역사상 두 번째로 마도천하를 이룰 뻔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대천마가 교주로 취임한 지 삼 년째 되던 해, 알 수 없는 이유로 급사하면서 신교의 중원 정벌은 끝이 났다.

이후 천마신교는 수십 년간 내분에 휩싸여야 했다. 사대천마가 후계를 정해 두지 않았기에 수많은 마인이 권력을 쥐기 위해 난장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사대천마께서 얼마나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서윤이의 재능이 그분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

“그런 서윤이가 후계자 자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나로서는 다행이었지.”

“다행이라?”

“아닌 것 같으냐?”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와서는 상관없는 문제 아닌가? 넌 극마에 올랐고 다섯째는 아직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지도 못했어. 그 격차는 재능으로 메우기 힘들 정도로 크지.”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음?”

진관용이 걸음을 멈추고 서량을 돌아보았다.

“서윤이는 약한 아이다.”

무공이나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시야가 트이지 못한 것은 녀석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만약 서윤이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강한 의지를 품는다면, 녀석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이다.”

“그런가?”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서윤이가 대권에 관심이 없다 하니, 참으로 다행이지.”

그 말은 곧, 진관용 자신은 차기 교주가 되기를 강하게 희망한다는 뜻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솔직하군.”

“이제 와서 숨길 이유가 없지.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다. 난 사부님의 제자가 된 그 순간부터 신(神)이 되기 위해 달려왔다. 경쟁자의 존재는 달갑지 않을 수밖에.”

진관용의 묵직한 눈빛에 묘한 기색이 어렸다.

“그런 의미로, 너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달갑지 않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겠지.”

“입마에 들어 모든 무공을 상실했음에도 이 년 만에 그러한 경지에 올랐다고?”

“뭐, 그렇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거다. 서윤이만 한 재능이 없는데도 넌 그렇게나 강해질 수 있었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너도 한 번 죽었다 살아나 봐.

물론 전생의 서량도 나름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구파비전의 무학들에 통달했다 해도 그가 익힌 것은 살수공이었다. 그 수준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한계가 명확한 살수공을 토대로 성장한 그가 오십 대에 화경에 오른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집중력도 좋았고 경험도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탄하게 살아왔다면 천하제일의 무공을 익혔다 한들 화경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새로운 경지라는 것도 결국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 누군가는 저잣거리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을 얻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죽고 죽이는 사선을 겪는 정도가 아니면 자극을 못 받을 수 있어.”

“맞는 말이다.”

진관용의 눈이 깊어졌다.

은은한 마기가 실린 그 눈빛에 깊은 의문이 드리워졌다.

“하면 넌 어떠냐?”

“뭐가.”

“너는 어떤 일을 겪어야 자극을 받을 수 있지?”

가만히 진관용을 바라보던 서량이 씩 웃으며 답했다.

“자극이야 항상 받지.”

“……?”

“걸음 한 번, 호흡 한 번, 밥알 하나 씹는 것에도 자극을 받는다.”

“…….”

“그리고 네가 왜 자미루로 가자고 한 걸까, 라는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기가 꿈틀거리고 있어.”

진관용의 눈이 흔들렸다.

- 시험해 볼 게 있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극마에 이른 고수에게 시험해 볼 게 있다고 한판 붙자고 하는 녀석.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저런 발언은 나오기 힘들다. 상대를 자신의 아래로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장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또한,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배움의 일환이요, 성장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보는 세상은 그렇게나 타인과 달랐다.

“그렇구나.”

진관용이 미소를 지었다.

딱딱한 얼굴에 드리워진 한 줄기 미소가 은근히 섬뜩했다.

“그랬었어.”

순간 서량은 머리 한구석을 울리는 강한 자극을 느꼈다.

지이이잉!

실로 오랜만에 활성화된 초감각.

‘결심했군.’

서량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날 죽이겠다 마음먹었어.’

자미루에 무슨 짓을 해 놓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방금의 대화로 진관용은 자신을 위험한 놈이라고 확신했다.

진관용이 몸을 돌렸다.

“가지.”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 진관용.

그림자 진 그의 얼굴에 하얀 미소가 드리워졌다.

서량은 볼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누군가가 그의 얼굴을 본다면 섬뜩함에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그렇게 또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남았지?”

“금방이다.”

“아하? 이 길로 가 본 적은 없어서.”

서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음?”

“아까 전음으로 사람을 좀 불렀거든.”

섬세함과는 동떨어진 마공으로도 천리전음술(千里傳音術)이 가능하다. 효율은 극악이지만.

진관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굴 불렀다는 게냐?”

“우리가 싸우는 걸 안 좋아하는 인간이 하나 있어. 거리가 워낙 떨어져서 닿을까 싶었는데, 용케 잘 닿은 것 같군.”

“뭐?”

그때였다.

‘……!’

서쪽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한 줄기 강한 기척이 느껴졌다.

극마에 오른 고수는 아니다. 하지만 신분으로도, 무공으로도 신교 최고라 할 만한 진관용조차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진관용의 볼이 살짝 떨려 왔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나도 자미루에 들어가 보고 싶어. 네가 날 족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 놨는지 궁금하거든.”

“…….”

“근데 나도 딸린 식구가 있어서 말이야. 위험을 즐기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싶어. 동필이가 있었으면 한번 시도해 봤을 텐데, 녀석도 지금 바빠서 말이야.”

사박.

중년 사내 하나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면이지? 서로 인사들 해.”

사내, 고구가 투명한 눈으로 진관용을 바라보았다.

“대공자.”

“……형법당주.”

서량이 고구에게 말했다.

“이 양반이 자미루에 차 한잔하러 가자고 하더라고. 댁도 같이 갈래?”

“…….”

“동의한 걸로 알지.”

서량이 진관용을 보았다.

표정 없는 진관용, 그러나 서량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당혹감을 읽을 수 있었다.

“형법당주를 부른 김에 환희원주도 불러 볼까 싶어. 내가 그 양반하고 나름 친분이 있거든. 이것저것 받은 것도 많아서 한번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자미루 정도면 괜찮지.”

“…….”

“갈까?”

고구를 보는 진관용의 얼굴이 어느새 침중해졌다.

“오랜만에 뵙소이다.”

“그렇구려.”

“셋째의 부름에 득달같이 달려오다니, 환희원과 함께 가장 중립적인 조직이라는 형법당의 수장다운 처사는 아니라고 생각하오만.”

자존심을 자극하는 언사였다. 하지만 고구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차 한잔하는 걸로 중립이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라 생각하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진관용이 고개를 저었다.

“누가 마시자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삼공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서량이 투덜거렸다.

“너무하는군. 상처받는다고.”

진관용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호출을 받고 예까지 직접 왕림하셨소?”

“사적인 친분을 공적인 업무와 결부시키는 것은 위정자의 덕목이 아니외다.”

고구의 연이은 공격적인 언사에 서량은 내심 놀랐다. 딱딱하기가 쇠막대 같은 양반이기는 하지만 저런 말을 대놓고 할 만한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군.’

서량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형법당주를 부른 건 좋은 선택이었어.’

물끄러미 고구를 응시하던 진관용이 서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귀신같구나.”

“내가 좀 예민해.”

“차는 나중에 마시도록 하지.”

“조만간 내가 초대할게.”

“기대하고 있겠다.”

그게 끝이었다. 몸을 돌린 진관용이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소 갑작스럽지만 서량은 진관용을 이해했다. 무슨 패인지는 몰라도, 그 패가 위협적이라는 걸 들킨 상황에서 승부를 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오히려 저렇게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더 어렵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서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부터 아주 달콤살벌하구먼.”

그가 고구를 바라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한 끼 할 텐가?”

“삼공자.”

“음?”

“조심하시오.”

고구는 여전히 진관용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용(龍)이오. 하지만 마귀가 들린 마룡(魔龍)이지.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소.”

“그거야 다들 비슷하지.”

“그렇소.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은 닮았소. 하지만 악랄함이란 측면에서, 삼공자는 대공자의 상대가 될 수 없소.”

“왜?”

“그는 최소한의 도덕조차 결여된 진짜 악마이기 때문이오.”

흥미로운 평가로군.

고구가 몸을 돌렸다.

“차는 나중에 마시겠소. 살펴 가시길.”

8